STATUE OF CORNELIA ANTONIA
대리석
Antiocheia ad Pisidium
로마 Middle Antonine Dynasty
AD 2세기 후반
BC 2세기말 로마의 개 혁가였던 그라쿠스 형제(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의 어머니로 훌륭한 교양을 갖추었던 여인이다. 코르넬리아는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1:로마가 카르타고와 벌인 전쟁)의 영웅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둘째 딸로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혼인하여 12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가운데 죽지 않고 성장한 아이는 그라쿠스 형제와 딸인 셈프로니아뿐이며, 딸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와 결혼했다. BC 154년 남편이 죽은 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8세 에우에르게테스의 청혼도 물리친 채 혼자 지내며 자녀교육에 헌신했다. 훗날 코르넬리아가 아들들에게 '급진적인' 개혁을 실시하도록 부추겼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나 다른 이야기를 보면 오히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121년 가이우스가 피살되자 미세눔(지금의 이탈리아 미세노)으로 갔다. 키케로는 코르넬리아의 편지를 놓고 그 문체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다. 2편의 편지가 코르넬리우스 네포스(BC 1세기 활동)의 필사본에 남아 있으나 진본이 아닐 수도 있다.
<2014. 8. 9>
첫댓글 코르넬리아 안토니아 상(Statue of Cornelia Antonia)’은 안토니누스 왕조 시기(기원후 160~170년경)에 제작되었으며,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현 Yalvaç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오른쪽 다리에 몸의 무게중심을 두고 왼쪽 다리는 살짝 뒤로 구부려 힘을 뺀, 고전적인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자세 덕분에 고정된 자세 속에서도 신체의 자연스러운 곡선과 리듬감이 살아나며, 고전 그리스·헬레니즘 미술의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긴 튜닉(치톤) 위에 온몸을 감싸는 커다란 히마티온(망토)을 두르고 있다. 옷자락은 발밑의 받침대(플린스)까지 길게 흘러내린다.
고대 로마 여성들의 미덕인 ‘정숙함’을 상징하는 푸디키티아(Pudicitia) 양식 혹은 데메테르 여신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 쪽으로 끌어올려 베일(망토) 끝을 잡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자락을 쥐고 있다. 두껍고 정교하게 잡힌 옷 주름은 천의 질감과 부피감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신체의 굴곡을 자연스럽게 강조한다.
몸의 비율과 전반적인 포즈는 헬레니즘 미술의 고전적이고 정형화된 미 기준을 충족한다.
고전적인 몸과 달리,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 얼굴 표현(눈, 코, 입)에는 개별적인 인물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전형적인 여신상이 아닌, ‘코르넬리아 안토니아’라는 실제 인물의 개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 로마 초상 조각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아나톨리아 지역(현 튀르키예 영토) 특유의 뛰어난 석공 장인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대리석 표면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고 매끄럽게 광택(Polished)을 내어,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피부와 천의 질감이 부드럽게 대비되도록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