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기도란 중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디모데전서 2:1)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의인 오십 명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열 명까지 줄여 가며 간구했다. 하나님은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품고 하나님 앞에 섰던 것이다.
이처럼 중보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간구하는 기도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문제를 대신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중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맡기신 중요한 사명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품고 눈물로 기도하는 중보자를 찾고 계신다.
1. 중보 기도의 목적
중보 기도의 목적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받으며, 믿음이 자라고 성숙하도록 돕는 데 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편안한 삶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악에서 보호받으며,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하셨다(요 17:15, 17).
그러므로 중보자는 눈앞의 문제보다 그 사람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며, 믿음이 더욱 성숙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
중보 기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데 있다. 사람은 당장의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바라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영혼을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불신자가 병에 걸렸다면 치유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질병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신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고난이 빨리 끝나는 것보다 그 과정을 통해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예수님의 중보는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의 뜻과 거룩이 이루어지는 데 초점이 있었다. 중보자는 눈앞의 상황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
둘째,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중보 기도의 가장 큰 대상은 사람의 육신보다 영혼이다. 질병이 낫고 형편이 좋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중보자는 눈앞의 필요만이 아니라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불신자를 위해서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믿음에서 떠난 사람을 위해서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중보 기도는 사람의 환경만 바꾸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도록 간구하는 기도이다.
셋째,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기도한다.
중보 기도는 어려움을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고난과 연단을 통해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빚어 가신다.
그러므로 중보자는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만을 구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통해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도록 기도한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의 형편보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9)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기를 간구했다.
중보자는 사람의 현재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떤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가실지를 바라보며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이다.
2. 중보 기도자의 자세
첫째, 사랑과 희생으로 기도한다.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품는 사랑에서 시작된다. 중보자는 단순히 기도 제목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중보에는 사랑과 희생이 반드시 따른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 백성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2)
모세는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간구했다. 사무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삼상 12:23)고 고백했다. 그는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길 만큼 중보자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중보자는 사랑으로 기도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시간과 편안함까지 기꺼이 내려놓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요 12:24), 사랑과 희생으로 드리는 중보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열매를 맺게 된다.
둘째, 응답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중보 기도는 한 번 드리고 끝나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계속 드리는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같은 기도를 세 번 반복하여 드리셨다(마 26:44). 또한 조지 뮬러는 믿지 않는 다섯 명의 친구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기도했다. 어떤 이는 그의 생전에 회심했고, 어떤 이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중보자는 응답이 더디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끝까지 무릎을 지킨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기도를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
셋째, 비밀을 지킨다.
중보자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죄, 깊은 사정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중보자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11:13)
기도를 부탁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뢰를 맡은 것이다. 중보자가 기도 제목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전한다면,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공동체 안의 신뢰도 무너뜨리게 된다.
야고보는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약 5:16)고 권면한다. 그러나 그 고백이 밖으로 흘러간다면 누구도 마음을 열고 기도를 부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보자는 열린 무릎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되, 닫힌 입술로 사람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 맡겨진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만 올려 드려야 할 거룩한 책임임을 기억해야 한다.
3. 성경 속 중보 기도의 본
첫째, 아브라함 – 롯과 소돔을 위한 중보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의인 오십 명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열 명까지 줄여 가며 간구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창 18: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긍휼을 붙들고 한 사람이라도 살려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은 그의 중보를 기억하시고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다. 중보 기도는 한 사람의 간구를 통해 한 가정과 한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통로가 된다.
둘째, 모세 – 백성을 위한 희생의 기도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백성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했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면…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 32:32)
모세는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품고 중보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사랑과 희생의 본을 보여 주었다.
셋째, 예수님 – 가장 완전한 중보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장차 믿게 될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요 17:9)
예수님은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고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간구하셨다. 또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롬 8:34, 히 7:25).
예수님은 중보 기도의 가장 완전한 본이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이유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넷째, 바울 – 교회를 위한 끊임없는 중보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운 뒤에도 쉬지 않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골 1:9)
바울은 성도들의 형편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음 안에서 성숙해지기를 위해 기도했다. 참된 중보는 문제 해결을 넘어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이다.
아브라함은 한 가정을 위해, 모세는 한 민족을 위해,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바울은 교회를 위해 중보하셨다. 이들의 기도는 중보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다른 사람의 영혼과 구원을 위해 간구하는 거룩한 사명임을 보여 준다.
4. 중보 기도의 대상
첫째,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중보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맡기신 영혼은 가족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사명이다.
가족을 위한 중보는 단순히 건강과 형통을 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족을 위한 눈물의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
둘째,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교회는 중보 기도의 무릎 위에 세워진다. 중보자는 목회자와 예배,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목회자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 가운데 말씀을 전하고, 예배가 성령 안에서 살아나며,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기도해야 한다. 교회를 위한 중보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도이다.
셋째, 미혹된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잘못된 가르침과 세상의 가치관에 미혹된 사람들은 중보의 대상이다. 그들을 정죄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다시 믿음 위에 바로 세워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중보자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회복시키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도한다.
넷째, 선교사와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도록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정의와 공의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무너진 성을 막아설 한 사람의 중보자를 찾으셨다.
“내가 그 가운데서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그 가운데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겔 22:30)
에스겔 시대에도 하나님은 무너진 성을 막아서서 기도할 한 사람을 찾으셨고, 오늘도 가족과 교회, 미혹된 영혼과 선교사,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 앞에 품고 기도할 중보자를 찾고 계신다. 한 사람의 무릎을 통해 한 가정이 살아나고, 한 교회가 회복되며,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온다. 그러므로 중보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맡기신 거룩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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