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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검호 3
제24장 천 년의 한, 그 진실은
좌옥린은 탈진한 자세로 문 안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공기를 흡입해 보기가 꽤 오랜만이었다. 그가 피부호흡을 연성하지
않았고, 금강불괴의 신체를 이룩하지 못했다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백만 대군과 접전을 치른 것보다 더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지친 걸음걸이로 광장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복도를 따라 걷는데, 복도 끝에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 천외천(天外天) >
복도 너머에는 거대한 광장이 펼쳐져 있다.
"아아, 이곳은……?"
좌옥린의 뺨이 보기 좋은 사과 빛깔로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는 벽면
을 바라보았으며, 거기 적힌 무수한 글귀를 보았다.
< 절대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여기 들어설 자격이 있다. 그리고 살아
나가는 자라면 절대 중의 절대일 것이다. 환우무림의 모든 전설의
우상이 여기에 모였으며, 초인과 영웅이 여기에 모두 모였도다. 이제
패(覇), 은(隱), 마(魔), 사(邪)의 사대맥(四大脈)의 맥주(脈主)들
이 모두 모여 천외천을 이룩하니, 무림천하에서 이곳 이상 가는 장소
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어(古語)로 적혀 있었다. 좌옥린은 학문의 대
가였기에 고어를 쉽게 해독할 수 있었다.
……천외천진(天外天殿), 모든 무사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장소이
다.
천외구환각(天外九環閣)에 의해 호위되며, 사대성자궁(四大聖者宮)이
천외천의 본전(本殿) 둘레에 사상대진(四象大陣)으로 펼쳐져 있다.
천외천전의 본전에는 각로의 절대자들만이 들어설 수 있으며, 그들은
천외천황(天外天皇)이라는 천년제일고수(千年第一高手)를 대전주로
섬기며, 만학을 연구한 바 있었다.
그것이 바로 천외천전의 역사였으며, 무림인들이 꿈속에서조차 바라
마지않는 것은 그들이 연구하였던 각종 무림비예들이었다.
기실, 천외천전의 무공은 지난 천 년에 걸쳐 세 차례 동안 외부로 유
실이 되었다. 첫 번째 유실은 은자맥(隱者脈)을 이루었고, 그것은 천
년 세월이 지난 후 사해유림(四海儒林)으로 변화했다. 두 번째 유실
은 불자맥(佛者脈)을 이룩하였고, 그 중 하나인 만겁뇌무는 소림사로
흘러 들어갔다.
세 번째의 유실은 패자맥(覇者脈)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대천마성(
大天魔城)의 전설을 이룩하였고, 지난 이백 년 간 강호에 군림한 대
륙마검회를 이룩하였다.
다시 말해, 천외천전은 무너진 지 일천 년이 되어 가고 있는 고대방
파였으되, 그들의 전설은 당세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무려 일천 년 만에, 천외천전은 첫 번째의 방문자를 맞이하는 셈이었
다.
* * *
< 여기 들어서는 자는 모든 무학(武學)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절대
사십좌(絶代四十座)에 대한 예우이다. >
글귀 하나가 보였다.
글을 적은 사람은 천외천전을 이룩한 천외천황(天外天皇)이었다. 그
는 살아생전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은자(隱者)였으며, 패주(覇主)들이 천하
패권을 잡기 위해 일으킨 대전에 혐오감을 느끼며 속세를 떠난 인물
이었다.
당시, 천하 각 지대는 그와 생각이 흡사한 사십 인이 있었으며, 그들
은 각기 한 방면에서 절대자적인 경지에 이른 천하대가(天下大家)들
이었다.
천외천황은 그들을 하나 하나 끌어들였으며, 그들과 더불어 대역사를
일으켜서 천외천전을 구축했다.
그것이 바로 천외천전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 우리는 모두 막강하였으며…… 수천 일 내내 싸운다 하더라도 서로
패배하지 않을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는 초인맹(超人盟)을 이룩하였
으며, 상호의 무공을 비교하여, 완성된 절정무예(絶頂武藝)를 창안하
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초인이되 완전한 초인은 되지 못했다. 우리는 차츰차
츰 내분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천외천전의 무공이 은연중에 외부로
유출되었다. 도합 사십구종 무예가 외부로 흘러나갔으며, 강호천하에
는 천외천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무사집단이 속속 나타나게 되었다.
결국, 본좌와 사십절대좌와 노영웅들은 허심탄회한 마음에서 한자리
에 모이게 되었으며,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순수한 야망을 회복하기
에 이르렀다. 그래서 만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천외천관(天外天關)!
이곳이 세워지면서 천외천전의 다른 지역은 모조리 와해되었다. 그곳
은 마(魔)로 뒤덮이고, 욕망과 탐욕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기에 우리
는 그 장소를 직접 파괴해 버린 것이다. >
천외천황이 남긴 글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천외천전은 자멸한 것이 아니다. 천외천전은 무너졌다기보다 부활하
기 위한 몸부림으로 썩어 버린 몸뚱이를 버리고 또 하나의 장소를 이
룩하게 된 것이다.
천외천관(天外天關)은 사십일 인이 삼 년 간 이룩한 장소이며, 지난
천 년 간 한 사람의 방문자도 없던 장소였다.
<여기 천년제일학(千年第一學)이 기록되어 있으며, 인연자만이 그것
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닌 채 강호로 돌아나가지는 못
할 것이다. 그 절기가 나타나는 찰나, 이곳은 함몰될 것이기 때문이
다. 절기가 외부로 나가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파
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인연자여!
그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백 년 세월 안에는 이 안의 천녀제
일학을 터득하지 못할 것이다! >
실로 오만한 글귀였다.
글은 천외천왕의 외부세계로 빠져나가기 직전에 적은 것이었다. 그는
제자 하나를 얻을 작정으로 외부로 나갔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
다. 그리고 천외천관은 사십절대좌의 주검과 더불어 지난 일천 년 내
내 정적을 지켜온 것이다.
석상 사십 개.
그것은 석상이 아니라 금강불괴로 죽은 사십무사의 주검이었다. 매우
묘한 표정들이다. 절대자적인 경지에 이르러 오만해 하기보다는 너
무나도 뼈저린 어떠한 감정의 노예가 된 듯한 표정들이었다.
대체 어떠한 한이 있기에, 그들은 천 년의 세월을 그러한 표정으로
버텨 왔단 말인가!
"나보다 오만한 분이시군, 훗훗?"
저벅저벅―.
좌옥린은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문득, 비(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벽 아래 세워져 있었으
며, 비석 둘레에는 한철삭(寒鐵索)으로 보이는 쇠사슬 조각이 널려
있었다.
비석에도 글이 적혀 있는데, 그 글귀야말로 이곳의 진정한 전설을 기
록하고 있었다.
< 그는…… 우리 사십영웅(四十英雄)을 배반하였다.
그는 우리들을 이용해 천외천관을 구축하였으며, 우리들이 항차 강호
를 어지럽힐지도 모른다는 구실을 아래, 우리들을 모조리 독살하고자
했다.
우리는 그를 존경한다. 그는 완전한 천재무사이며, 무공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룩하지 못할 성취를 이룩한 인물이기에……. 그러나 그는
무광(武狂)이며, 지극히 독선적인 인물로 자신과 필적할 만한 자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들을 모조리 제거할 작정으로 천외천관을
이룩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최후를 마칠 것이되 우리들의 한은 천 년을 이어나가
리라! >
너무나도 엄청난 글이었다. 천외천황이 적은 글과는 전혀 다른, 실로
처절한 원한을 담고 있었다.
"저들은…… 천외천황에 의해 제거되었단 말인가?"
좌옥린은 등판을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천외천황은 지극히 독선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십절대자가 천하를
종횡하며 혈풍을 일으킬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자 했다.
그는 천외천관을 지어 무림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자는 구실로 사십절
대자를 해저(海底)로 끌어내렸으며, 그들이 진공비기를 발휘하여 천
외천관을 구축하고 나서 탈진한 틈을 이용하여, 그들을 모조리 독살
해 버린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영광 뒤에 감추어진 천 년의 어두운 진실이었다.
< 그는 한 그루 대나무를 사랑하였으며, 항차 대지를 정복할 대야망
을 온화한 웃음 뒤에 감추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를 존경하였거늘,
그는 우리들을 철저히 배반하였던 것이다. 그는 우리들의 이상을 이
용하여 우리들을 제거한 것이다. >
"한 그루 대나무?"
좌옥린의 눈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 그는 천하정복의 야망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당대에서
는 그 꿈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최후의 힘을 발휘해, 그의
미간을 쪼개었다. 그가 비록 이곳을 나서기는 하였으되 그리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하를 장악 지배하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죽련(竹聯)이라 불
릴 것이니……. >
죽련!
창업비사가 밝혀지지 않은 악마들의 집단이다. 그런데, 그들의 뿌리
가 바로 천외천일 줄이야……
"그, 그렇군. 천 년 전의 천외천황이 시작한 천하정복이 바로 죽련에
의해 재현이 되는 것이로군. 이제야 그들의 뿌리를 알겠군. 으음,
철무옥의 무공이 대부를 오히려 능가하여 이상하다 여겼는데…… 그
가 바로 천외천황의 후예였군!"
좌옥린은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그는 문무쌍도(文武雙道)에 운명의 경쟁자들을 지니고 있었다. 무도
에서 경쟁자는 철무옥이었으며, 문도에서의 경쟁자는 사해무림의 백
무정이었다.
그들 가운데 더욱 뛰어난 자는 철무옥으로, 그는 대륙마검회를 한 입
에 삼킬 야심을 갖고 소년시절 대륙마검회에 투신했다. 그는 차츰차
츰 세력을 신장시켰으며, 죽련이라는 이름 아래 천하를 정복하기 시
작하였다. 한데, 죽련의 뿌리가 천 년 전의 거대방파, 천외천이었던
것이다.
< 그들은 성을 이룩할 것이며 그 성은 패천검성(覇天劍城)이라 불릴
것이다. 그 성의 설계도를 만든 사람은 우리 절대사십좌 가운데 기관
진학(機關陣學)의 절대자인 조화천옹(造化天翁)이다.
패천검성은 혈옥쌍혼(血玉雙魂)에 의해 수호될 것인데, 혈옥쌍혼의
부활방법을 창조할 사람은 의도제일인(醫道第一人) 천수신의(千手神
醫)이며, 그 또한 절대사십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천하를 정복할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지혜는 우리들의 지혜를
훔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이 악용될 경우 아무도 막지 못하리라
.
인연자여, 그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자 한다. 죽련을 격파해야 하
며, 죽련에 흡수가 된 사십절학(四十絶學)을 회수하여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우리들은 죽어 가고 있다. 우리들은 비급을 모조
리 빼앗겼다. 비급을 기록할 시간도 없으며, 안배를 남길 여력조차
없다. 결국 우리들은 지혜를 하나로 모았으며, 하나의 진세를 구축하
기로 결정하였다.
대군림진도(大君臨陣道).
어떠한 힘으로도 대군림진도를 격파할 수가 없다.
진세에는 절대사십좌의 최후심결(最後心訣)이 모조리 기록되어 있으
며, 그것은 선천벽력(先天霹靂) 사십결, 만겁번뇌(萬劫煩惱) 사십결,
군마혈무(群魔血舞) 사십결, 그리고 영세군림(永世君臨) 사십결의
총화이다.
그것을 얻는 자, 절대검호(絶代劍豪)가 된다!
그는 바로 우리들의 화신이며, 천하의 그 한 사람만이…… 죽련을 격
파할 수 있다. 죽련에 흡수된 사십종 절학은 그 하나의 절기 아래 모
조리 파괴될 것이며, 천외천황이 부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막지 못
할 것이다.
일컬어 군림무도(君臨武道)―.
그것은 초식이 아니며 내공도 아니다. 그것은 무인혼(武人魂)의 결정
이며 가장 위대한 지혜의 힘이다! >
처절한 사연이 기록되어 있을 뿐, 무공초식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남기고자 하는 것을 문자로 기록하였더라면 아마도 천 권의
서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비급을 작성할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였기에, 죽기 전 한 장
소로 모여서 대군림진도를 완성한 채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사십절대자의 한이 서려있는 천외천관!
이곳은 지난 천 년의 무림을 이룩해 온 신화의 대지라 할 수 있었다.
우르르릉― 우르르릉―!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있다.
지난 천 년 간의 적요가 깨지면서 사방 벽과 천장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좌옥린이 진세를 격파하며 들어온 탓에 진세가 흐트러졌
으며, 그로 인하여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휘리리리링― 휘리리링―!
강맹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무시무시한 물줄기가 갈라진
벽 틈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
좌옥린은 한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대군림진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으며, 그의 시선은 허공에 응
결되어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백지의 허무가 머물러 있었다. 그는 구태여 무엇을 깨
닫고자 하지 않았으며, 주위로부터 다가서고 있는 관념의 힘을 고스
란히 흡수하고자 할 뿐이었다.
그가 애써 지식을 발휘하여 일대의 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더라도 아무
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절정무사, 그의 뇌리에는 자신도 터득하지 못한 무공구결
이 수천 가지 이상 머물러 있다. 그는 번뇌대사정사의 전인이며 대륙
마황의 양아들이다.
그는 가히 대륙에서 가장 박학다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천외천전의 무공기반을 이해하고 있는지라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것을 공(空)으로 여
길 뿐이었다.
모두 살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환상이었으나 너무나도 또렷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사십 명의 절대자들, 그들은 지난 천 년 간 하나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으며, 천 년의 세월도 그들의 자세를 흩트리지 못하였다. 한데,
그들이 모조리 살아나서 춤사위를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날아오르고, 허공을 우회하며, 떨어져 내리고, 검을 떨쳐 내며, 검을
가슴에 안고 검을 허공에 날려보낸다.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였다.
콰르르르― 릉― 콰쾅― 쾅―!
사십 줄기의 힘이 좌옥린을 향해 덮쳐들기 시작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힘이여, 그 기세는 가히 오악(五嶽)을 일순 허물
어뜨려 버릴 듯했다.
"……!"
완전한 정지가 서서히 풀려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떨쳤으며,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곡선과 직선을
이룩하며 좌우수를 동시에 떨쳐내기 시작했다.
베어 나가는 것도 후리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느리고, 어찌 보면
빠르다.
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고, 선이 그어지기도 하였다. 점이 무수히 찍
히기도 하였으며, 무희들이 춤추며 흔들어대는 섬섬옥수처럼 유려하
게 흔들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광풍처럼 무시무시하게 떨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순간, 실로 미세한 힘이 소리도 내지 않고 허공으로 폭사되
어 나가기 시작했다.
허공에는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 빛은 백색에서부터 시작하여
녹색으로 황금색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실로 현란한 빛의 조화 가
운데 좌옥린의 몸은 치솟아 올랐다.
바로 그 순간,
쩌어어어― 억―!
대체 이럴 수가, 거벽의 천장이 도끼에 찍히는 통나무처럼 쩌억 갈라
지는 것이 아닌가!
콸콸콸!
노한 물줄기가 광장 바닥으로 뿜어져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좌옥린은
포효하는 소리 가운데 잠룡(潛龍)이 되어 승천해 오르고 있었다.
그는 물줄기 속으로 그대로 파고들었으며,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허
공으로 밀어내는 듯, 그의 몸뚱이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
고 있었다.
무(無), 광장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부러진 검이 널려 있고, 찢어진 옷자락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석
상처럼 머물러 있던 사십 인의 시신은 한 줌 먼지가 되어 스러져 버
린 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의 시신은 기(氣)로 화하였으며, 그것은 한 점 남김 없이 좌옥린
의 모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천세장한(千歲長恨) 격체전력(隔體傳力).
사십절대자가 남긴 최후의 안배, 그들은 천 년의 한을 풀기 위해 그
세월을 버텨 왔으며, 우연히 그들을 찾은 좌옥린의 몸 안으로 흡수되
어 버린 것이다.
그 구결을 남긴 사람은 천수신의(千手神醫) 악천휘(岳天輝), 그는 대
법을 시전하며 이러한 말을 남긴 바 있다.
― 세월의 힘은 위대하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소!
우리들은 한을 풀기 위해 역천(逆天)의 대법을 펼치는 것이되, 세월
이 우리들을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모두 스러져 버릴 것이
오. 하나, 세월이 우리들을 거두어들인다면 우리들의 한이 하나로 뭉
쳐, 하나의 절대검호(絶代劍豪)를 탄생시킬 것이오!
그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며, 우리들의 천 년 한은 그로 인해 마무리
지어질 것이오!
천 년의 세월은 공허하게 윤회하였으며, 한 마리 젊은 용의 방문과
더불어 그 사슬은 끊어져 버릴 것이다.
콰쾅― 쾅― 쾅―!
벽이 무너지고 지반이 갈라졌다.
천외천관은 사십절대자가 펼친 진세로써 천 년 간 바닷물의 힘을 물
리쳐 왔음에도, 실로 허무하게 붕괴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르르르― 릉― 콰쾅―!
대벽력성!
천 년의 성지는 그 순간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 * *
해일이다.
해저에서 기이한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마황군도 일대의 바닷물이
거칠게 울렁이기 시작했다.
노도로 밀어닥치는 거대한 물결, 그것은 만인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
했다.
어디 그뿐이랴, 바다에서 한 마리 용이 떠오르는 듯한 일이 벌어졌으
며, 그 순간 하늘은 한순간 황홀한 금빛으로 물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그 일을 두려운 일의 조짐으로 여겼는데, 마황군도 쪽에
서는 그 일이 대길조라고 공포를 했다.
아침부터 모든 것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무사들은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으며, 장검과 감산대도, 거치
도의 끝에 붉은 수술을 탐스럽게 매달았다.
거리마다 붉고 누런 깃발이 내걸렸으며, 두 가지 경축을 기념하기 위
한 모든 준비가 어김없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창맹(創盟)은 정오에 선포될 것이며, 저녁에 결혼식이 거행될 것이다
. 그리고 밤에 대결전이 선포될 것이며, 연안에 대기해 있는 삼천 척
의 거선이 수많은 무사들을 태우고 떠날 것이다.
마황군도는 하나의 무사왕국(武士王國)이었다.
현재 머물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반 정도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었
다. 내부사람들은 형식적으로 척발유성을 추종하고 있었으나, 사실
암중에 모든 것을 조종하는 사람은 사검마제 축융뢰였다.
혈천마독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축융뢰의 의중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박서생이 그의 장애였으나, 만박서생은 자
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으로 군사(軍師)의 지위를 내놓아야만 했기에,
그는 가히 일인천하(一人天下)를 구하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새벽에 오천여 무사들이 마황군도로 들어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마황
군도를 배척해 왔던 변황무림계의 인물들로서, 그들이 나타났다는 것
은 길조라 할 수 있었다.
뜨락 한가운데 척발유성의 만감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 그는 팔짱을 끼고 있었으며, 그의 뒤쪽에는 사검마제가 음침한 눈
빛을 던지며 뒤따르고 있었다.
사검마제는 가슴에 고검(古劍)을 안고 있는데, 고검의 표면에서 일어
나는 빛깔은 매우 신비로웠다.
그것은 중원 대장군가(大將軍家)의 성검(聖劍)으로, 사검마제는 피를
대가로 치러 가며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었다.
하여간 사검마제는 흥분하고 있었으며, 척발유성도 흥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으나, 겉으로 보면 의숙현질(義叔賢
桎) 사이로 더할 나위 없이 정답기만 했다.
"두렵소, 저으기……."
척발유성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그는 일각 후, 연무장으로 나갈 것이며 해외무림맹의 역사는 그때부
터 웅장하게 시작될 것이다.
"제독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원무림은 위에서 바닥까지
부패해 있는지라 변황의 용사들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오래
전에 중원에 들어간 팔천악마병(八千惡魔兵)이 우리들과 더불어 거검
(據劍)할 것이며……, 중원의 거두들은 유성이 떨러지듯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아오. 그러나 대륙마검회는 여전하며
백도는 풍운결맹을 꾸미었소. 그들의 존재를 버젓이 알면서 대세력
을 중토로 들여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여겨지오. 물론……
의숙이 모든 것을 철저히 조사한 후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나!"
"심려할 것 없습니다."
"아, 피가 두렵소. 그것은 사실이오!"
척발유성은 나름대로 영웅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혈관 가득 마혈이 흐르고 있으되, 그는 때를 헤아릴 줄 알며, 무엇보
다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외무사들이 그를 맹주로 추대
하는 이유도 바로 그에게 그러한 면모가 있기 때문이리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즐거운 일만 생각하십시오. 오늘 밤은 초야(初
夜)일 것입니다."
"선랑(仙娘)은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그녀는 해외무맹주를 자신의 남
편으로 삼겠다며 제발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한 마리 봉황이 오동나
무에 깃들 듯……, 천하제일인의 가인(佳人)이 해외무맹주의 품안으
로 날아들 것입니다. 물론 어두운 점이 엿보이기는 하나…… 심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화화, 그녀는 과분한 여인이지. 그녀가 나를 찾은 것이 이상하다 늘
여기고 있지. 그녀는 지적이며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어, 또한 기
품을 지니고 있어……. 나로서는 감히 그녀를 일개 여인으로 취급하
지 못할 정도이지!"
척발유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후후, 모두 가연(佳緣)입니다!"
사검대제가 그렇게 말할 때 척발유성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만들어
졌다.
"며칠 전까지는 만박이 나의 말상대가 되어주었는데……."
천외학우림을 이끌고 있는 만박서생, 그는 대폭발 이후 모든 지위에
서 물러났다. 그는 척발유성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은 채 매일 밤을
독주로 지새우고 있다. 천재가 하룻밤 사이 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그가 곁에 있다면 어떠한 말이라도 해줬을 텐데……."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아니네, 나는 그처럼 뛰어난 인물은 보지 못했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처세를 했었지. 그가 사라진다는 것은 나의 손실이
니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되살려야 하오. 그는 '친구를 내가 죽였다!
'라며 술을 거듭 마시고 있으니……, 대체 좌옥린(左玉鱗)이라는 자
가 누구이기에 그가 그의 죽음으로 인해 폐인이 되었단 말이오?"
"그 일에 대해서는 속하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검마제는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몹시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
으며 말을 이었다.
"좌옥린이라는 이름의 인물에 대해서는 속하도 아는 바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는?"
"그는 대장군가(大將軍家)의 후예이며……, 그의 문재(文才)는 과거
중원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습니다!"
"흠……."
"그는 몰락하였으며 완전한 폐인이 되어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박서생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대단히 미묘한 일입니다. 과거
그가 중원에 있을 때 좌옥린이라는 자를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
사검마제는 검을 꽈악 끌어안았다. 그가 안고 있는 것은 천하의 성검
이라 불릴 만했다.
척발유성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입을 떼었다.
"내일쯤 그를 찾아봐야겠소."
"……."
"그는 꼭 필요한 인물이오. 머지않아 천룡선단과 결전이 일어날 것이
니, 그때 그의 지혜가 잘 쓰일 것이오. 물론 그가 재능이 없는 인물
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를 물리치지 않을 것이오. 그와 나는…… 말이
통하는 친구니까!"
그가 어깨를 으쓱거릴 때,
'그는 지금쯤 죽었을 것이다, 후후…….'
사검마제의 눈에서는 살광이 쏟아져 나왔다.
척발유성은 그에게 있어 금으로 만든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제딴에는
변황을 위해 영웅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척발유성이되,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검마제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연회 가운데 너의 모든 측근은 가짜로 바뀌치기 당할 것이다.
후후, 네가 모르는 가운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첫댓글 굿,,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