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말린스의 1루수 겸 좌익수 로건 모리슨은 아버지 톰 모리슨이 자신의 경기를 보려고 뉴욕의 시티필드를 찾았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늘 곁에서 지도하고 격려하며 자신을 야구 선수로 만들어줬던 아버지. 그런데 아버지 톰은 올 초에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암이 너무 퍼져서 수술도 못 할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톰은 아들 로건이 메이저리그 타석에 서는 순간을 보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이나 사경을 헤맸지만 약물과 방사선 치료로 버티던 아버지는 마침내 마이너에서 뛰던 로건이 7월 말 빅리그에 승격됐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부상으로 결원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말린스의 일정을 보면서 아버지는 뉴욕으로의 마지막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절대 비행기 여행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루이지애나 주에 살던 아버지는 그래서 기차를 탔습니다. 무려 29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아들의 경기를 보러 뉴욕으로 갔습니다.
결국 감동의 야구장에서의 조우가 이루어졌고, 이 부자의 스토리는 많은 팬과 일반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초 결국 아버지는 5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아들 로건은 아버지를 기리면 야구 캠프를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치유를 위한 로모 캠프(LoMo Camp for a Cure).' 로건은 아버지를 기리면서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해서 영전에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야구 캠프를 생각해냈습니다.
가족 중에 암투병으로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을 모아서 야구의 기술을 전수하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봉사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말린스 팀에서도 전폭 지원을 약속했고, 동료 스타들도 대거 야구 캠프 참가를 약속했습니다.
로건은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암으로 고통받은 가족의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항상 내 곁에서 야구를 가르쳐주시고 늘 함께 하셨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주고 싶다. 우리는 즐겁게 야구를 하지만 또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운다. 고통받은 아이들과 그런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23세의 로건 모리슨은 내년 시즌 말린스 주전 자리를 다툴 후보입니다.
아래는 예전에 쓴 모리슨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들 로건을 향한 29시간의 여행
기사입력 2010-08-31 09:52 |최종수정 2010-09-01 06:40
드래프트 22라운드에 뽑힌 무명의 로건 모리슨은 기대 이상의 빠른 성장으로 플로리다 말린스의 주전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 |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라면 은퇴한 강속구 투수 로저 클레멘스의 위증혐의 기소와 차세대 에이스 스트라스버그의 팔꿈치 수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한 소식들이 미국 스포츠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다른 뉴스도 있습니다. USA 투데이나 뉴욕 포스트 등에서 앞다퉈 다루고 있는 무명의 신인 로건 모리슨과 그의 아버지 톰 모리슨의 이야기입니다.
로건 모리슨은 1987년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한 2005년에 플로리다 말린스가 22라운드에 드래프트한 아주 평범한 무명의 프로야구 지망생에 불과했습니다.
일단 프로를 포기하고 지역의 작은 2년제 대학에 진학한 그가 신입생으로 4할3푼6리에 9홈런 45타점을 기록했을 때도 알아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대학 하부리그의 시원치 않은 팀에서 그저 반짝하는 정도로 여겼습니다. 출루율이 .532에 OPS가 1.275나 됐지만 듣도 보도 못한 메이플우즈 시립대학 야구팀에서의 성적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알버트 푸홀스를 배출한 학교이니 아예 무명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1년 후 말린스의 루키 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2년째인 2007년 싱글A에서 128경기를 뛰며 2할6푼7리에 24홈런, 2루타 22개, 86타점, 71득점으로 눈길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올스타에도 뽑혔습니다.
2008년에는 하이 싱글A에서 3할3푼2리에 13홈런 74타점, 2루타 38개를 때리며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의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 출루율, 최다 안타도 1위였습니다.
말린스와 야구계도 ‘무명 모리슨의 반란’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더블A로 승격한 모리슨은 오른쪽 엄지가 부러져 고생하기도 했지만 올해 트리플A까지 순항했습니다. 미국 마이너 올스타에 뽑혀 퓨처스 게임에도 출전했습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어느새 모리슨을 말린스 산하 유망주 2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빅리그 진출 기회를 높이기 위해 그는 1루수는 물론 좌익수 훈련을 병행하기 시작했고, 트리플A에서도 3할4리를 기록하며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파워 있는 좌타자에 수비도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선수로 착실히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7일 크리스 코프란의 부상으로 빅리그 로스터에 공백이 생기자 말린스는 로건 모리슨을 불렀습니다.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고, 샌프란시스코 원정에 합류한 그는 곧바로 그날 선발 출전해 빅리그 첫 안타도 기록했습니다.
모리슨은 그 후에도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습니다. 첫 4경기 연속 안타를 쳤고, 좌익수 수비도 악착같이 했습니다. 첫 20경기에서 17번이나 안타를 쳐냈고, 3할이 넘는 타율을 유지했습니다.
도저히 그를 라인업에서 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활약이었고 3안타를 치고도 한 번 아웃당하면 분해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투혼을 불살랐습니다.
그저 22세 루키의 빅리그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여겼던 그의 투혼은 그러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톰 모리슨 씨(51)의 뉴욕 여행 일정까지는 빅리그에 반드시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 부자의 극적인 상봉은 지난 주 뉴욕 메츠의 시티필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원정팀 더그아웃에 힘겹게 앉아 있던 톰 모리슨은 눈에 띄게 수척했지만 너무도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나긴 여행 끝에 아들이 빅리그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눈앞에서 처음 본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폐암 말기 환자입니다.
몸에 이상을 느낀 톰 모리슨이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4월.
그런데 청전병력의 검사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폐암 4기로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병명을 받은 그가 의사에게 물어본 첫 질문은 과연 자신이 아들의 첫 메이저리그 안타를 볼 수 있을 만큼 살 수 있을 지였습니다. 그러나 답은 의사도 톰 모리슨도, 아들 로건 모리슨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로건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건은 암투병 중인 아버지가 지켜본 지난 주 메츠와 3연전에서 12타수 6안타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 |
그 후 아버지는 두 번이나 사경을 헤맸습니다.
수술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약물과 방사선 치료로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에 7월 말 아들 로건이 빅리그에 승격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버지는 곧바로 의사에게 아들의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비행기를 타서는 안 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아들의 경기를 보면서 아버지는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이지애나 주에 살고 있는 아버지 톰은 우선 몸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아니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운을 차리자 8월 말에 뉴욕에서 열리는 말린스와 메츠의 3연전을 관전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외동아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차를 탔습니다. 29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톰 모리슨은 뉴욕에 도착했고, 시티필드에서 아들 로건을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긴장했을까요.
로건은 아버지가 좌측 관중석에서 지켜본 그날 경기에서 5타수 1안타에 그쳤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톰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아들 로건이 안타를 치고나간 후에 관중석에 앉아있던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동안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외모와 성격까지 꼭 빼닮았던 로건이 2루 베이스를 밟고는 감격의 눈길을 아버지에게 맘껏 보냈습니다.
더욱 의미 있던 다음날 경기에서 로건은 3루타 포함해 5타수 3안타의 맹타를 기록했습니다. 좌측 관중석에는 아버지 톰을 비롯해 가족, 친지 20여명이 모여 열광하며 로건을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친지들은 모여 로건의 스물세 번째 생일 파티를 열었습니다. 야구는 아버지와 아들 뿐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지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과연 아버지가 아들의 또 다른 생일 파티에 함께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의 경기를 다시 관중석에서 관전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로건은 한 순간, 한 타석이 너무도 소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켜본 메츠와의 3연전에서 로건은 12타수 6안타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내년 시즌에는 1년 기차 승차권을 구입할 것입니다. 아무 때나 가고 싶으면, 미국 어느 곳으로든 아들의 경기가 열리는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버지 톰 모리슨의 여행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톰 모리슨의 행복한 여행이 가능한 한 오래 계속되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양천구로 이사오면서 아내는 아이의 태권도를 끊었다. 계속 다니게 하지 그러냐 하니까 야구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나는 지금 리틀야구팀을 알아보고 있다. 축구를 겁나게 좋아하는 녀석을 어떻게 구슬릴지 머리 굴리고 있다. 아는가 ? 훗날 오솔찬 (아들내미) 이를 잠실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연호하며 "저녀석이 내 아들이라고 " 자랑스럽게 외쳐볼날 있지마란법도 없으리.
내가 그 말 할라했더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