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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데서 쓴 것을 퍼 왔음-
알마티 문화공연을 보고 - 능금의 예술적 형상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종교란 걸 모른다"(Heiler)고 단언할 수 있다면 우리문화만 아는 사람은 문화를 모른다고 장담할 수 있겠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만'의 문화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만'이란 조사는 어디든 가급적 안 쓰는 것이 좋다. 'only'는 미덕이 아니라 악덕에 가깝다. 다른 문화 혹은 새로운 문화를 체험한다는 것은, 특히 그 체험이 강렬하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제 알마티 문화의 밤은 그런 의미에서 강도 높은 체험이었다. 이 체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데 후마나도 일조했고 후마나 회장님도 등장한 행사였기에 여기에 그 감상을 몇 자 적어 볼까한다.
Almaty.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내 의식 속에 얼핏 떠오른 것은 종교적인 함의(connotation)였다. Almighty(전능)란 단어가 곧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젯밤 계명아트센터에서 거행된 알마티 공연에 가지 않았다면 나의 이 잘못된 관념은 내내 수정되지 않고 작동했을 것이다. 알마티란 사과(Алма)와 아버지(Ата)의 합성어로 '사과의 아버지'란 뜻이라고 한다. 사과라면 전능과는 개미 뒷다리만큼도 관련이 없는 말 아닌가! 물론 일찍이 사과가 전능자와 인간 사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창세기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전혀 무관하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알마티 그리고 사과의 아버지. 이렇게 되면 알마티가 한국의 도시 중에 특별히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구가 대한민국의 사과도시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아닌가. 동산의료원 뒤쪽 언덕에는 1900년에 한국에 처음 들어온 (현대적 의미의) 사과의 2대 손孫이 대구 사과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1900년에 처음 들어온 사과의 2대손 (이 능금나무 바로 옆 제일교회에 권 모목사가 시무하고 있지만 그의 무심이 하늘을 찔러 아직 얼굴도 못봤다.)
그러나 기후의 변화로 인해(온난화) 사과의 도시 대구의 실상은 점차 변하고 있는 모양이다. 비슷한 이유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알마티도 현재는 사과와 그리 관련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과 배경 이미지 속에 사과가 부각된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역사 속에 오랫동안 쌓은 사과의 정기가 쉬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알마티의 예술단이 계명아트센터 무대 위에 쏟아놓은 공연문화는 정말이지 흥겹고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은 땅이라 그랬겠지만 공연단은 2시간 동안에 걸쳐 엄청난 레퍼토리를 돌려댔다. 어떤 공연이든 중간 휴식 없이 2시간 이어진다면 지루함에 어깨 한 두 번 뒤틀지 않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2시간은 고개 한번 돌리기 어려운 압도된 시간이었다. 우려 반 호기심 반으로 데려온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조카조차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알마티 예술단은 전통 적인 것에서부터 요즘 유행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긴박한 레퍼토리로 남녀노소를 막론, 관객들의 심신을 압도했다. 그 내용이 아우르는 시간과 공간은 넓고도 장대했다. 장르만 봐도 노래․춤․오페라․연극․패션 쇼 등, 말 그대로 예술의 총체적 재현이었다. 핵심 장르인 음악의 경우에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율에서 타오르는 불의 열정과 끝없는 평원을 치달리는 말 같은 템포에 이르기까지 숨 돌릴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알마티 예술단은 자기 문화 자랑하겠다고 자기 것만 들고 오지 않았다. 한국말과 한국을 열심히 배워왔다. 그러니까 한국의 민요와 가요는 물론 고전무용까지 공부해 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한국공부가 단순히 모방에 그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나의 살던 고향>의 경우,이 노래를 저렇게도 부를 수 있다는 데 귀를 의심해야했다. 처음에 전제했던 것처럼 다른 문화를 안다는 것은 우리 문화를 재인식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더 나아가 알마티 음악단은 서양 음악까지 두루 섭렵해 왔는데, <오 솔레미오>나 <축배의 노래>는 그 볼륨이나 완성도가 이태리 본토에서 온거나 다를 바 없었다. 일찍이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가무에 능한 동이족이라고 했다는데, 중아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역시 가무예술에 탁월한 민족이었던 모양이다. 의상의 색채가 흰색이 주도적이라는 점도 한국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전통 악기를 매개로 한 가무의 박력이나 유쾌함이었는데, 그것은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무장무애無障無礙의 통쾌함이었다. 이점 부드럽고 서정적인 우리의 닫힌 전통과 좀 구별되지 않나 싶다.
사실 카자흐스탄 사람들, 의식하고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모습부터 한국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연갈색 피부라는 배이스는 사실 한국과 같은 뿌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한국어 통역을 한 여자 사회자의 억양이나 발음도 그리 이국적이지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카자흐스탄 여인들, 어찌 그리 예쁜지. 공연 끝나고 남녀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알마티 여자들 너무 예쁘다는 것이었다. 나도 꼴에 누구 못지않게 눈은 높은 편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상은 도토리처럼 작고 앙증스러운데 피부는 잘 익은 사과처럼 조밀하고 탄력이 있고... 예술 공연단이라는 리스트에 예쁜 여자 몇 명 들어있는 거야 그리 놀라울 게 없지만 3-40명의 출연진 전부가 일급 미인이라는 사실은 알마티라는 토양을 의심하게 했다. 역시 사과 때문인가? 대구미인을 사과미인라고 하듯이.
이 자리가 성을 말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지만 여인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최소한 전통 속의 카자흐스탄 여자들은 모두 모자를 쓴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한국 여자들도 수건이나 텍스틸 종류의 모자 같은 것을 쓴 적이 있지만 권위와 품위를 드러내는 관冠 종류의 모자, 그것도 하늘을 찌르는 고딕식 모자를 쓴 경우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컨텍스트에 등장하는 카자흐스탄 여자들은 모두 존엄과 품위를 함의하는 근사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점, 카자흐스탄 여인들의 여권이 머리라는 게 가채 정도로 미를 표현하는 대상에 머문 조선 여인들보다 훨씬 앞서가지 않았나, 추측하게 했다. 최소한 나는 카자흐스탄 여인들의 모자에서 남자들에 버금가는 '다른 성'의 존엄을 느꼈다. 말하자면 내면적이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한 조선여인들에 비해 카자흐스탄 여인들은 외향적이고 역동적인 박력의 미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긴 유목문화에서 연유한 활동성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알마티의 공연단이 2시간 동안 보여준 문화의 내역과 방식은, 내가 Almaty를 Almighty로 오해한 것이 우연만은 아니었지 않나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능금의 능력이 거의 전능에 가까울만치 확장되고 심화되어 있었다. 통섭되지 않는 장르가 없었고 아우르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 결국 카자흐스탄의 독특한 예술은 역석적으로 훌륭한 특수성이란 게 얼마나 보편적인 감동을 주는가를 증거했다. 새삼스레 한국문화를 고민하게 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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