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지는 2002년 결성된 포스트 락 밴드이다. 유정목(기타) 류호건(기타) 윤정식(베이스) 유성목(드럼)으로 이루어진 프렌지는 2008년 쌈지싸운드 페스티벌에서 숨은 고수로 선정되어 쌈싸페 최초로 보컬 없는 팀으로써 공연했고, 2009년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서기도 했다.
전형적인 포스트 락 음악의 전개를 따르는 듯 하면서도 강약 조절에서의 의외성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프렌지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다. 공연 도중 끊임없이 이펙터를 조절하고, 드럼 스틱과 말렛, 브러쉬를 계속 번갈아 쓰는 실험적 사운드와 부유하는 리듬은 영락없는 포스트 락 밴드의 그것이다. 지난 7월 10일, 흥미로운 포스트록 밴드 프렌지의 1집 발매 기념 단독공연을 찾아갔다.
클럽 가득 관객들과 함께한 공연
프렌지. Frenzy. 광란, 열광이란 뜻이다. 이름 때문일까. 스탠딩을 기대하며 들어선 클럽 쌤에는 의외로 작은 의자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공연 중 기타의 유정목이 '지금까지 연주했던 대규모 공연들…… 쌈싸페, 지산 페스티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객이 오셨다'라고 감격하며 멘트할 만큼 작은 클럽은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공연 시작 전부터 모든 좌석에 관객이 가득 찼고, 그러고도 자리가 부족해서 많은 이들이 공연장 곳곳에 서서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만큼 이들의 첫 앨범과 라이브 무대를 기다리던 팬들이 많았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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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적인 오프닝 공연을 보여준 안본브릴
마이스페이스로 프렌지 멤버들과 친분을 쌓았다는 외국인밴드 안본브릴이 공연을 열었다. 기타를 중심으로 한 강하고 힘있는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공연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돋보였다. 이들은 약간 어눌하지만 분명한 말투로 '감사합니다', '프렌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오프닝 공연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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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주부전>에 맞춰 토끼 가면을 쓰고 간을 붙인 모습!
세팅시간이 끝나고 본공연을 위한 스크린이 열리자 프렌지 멤버들이 서 있었다. 가운데에 선 유정목은 긴장했는지 연신 맥주를 홀짝였다. 류호건의 기타와 베이스가 먼저 연주를 시작하고, 곧이어 드럼과 유정목의 기타가 합류하며 첫 번째 곡 <Lilly>가 울려퍼졌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차분히 연주를 해 나갔다. 그러나 곡에는 몽환적이면서도 사람을 들뜨게 하는 리듬이 내재되어 있어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이어 연주한 <별주부전>에서는 멤버들이 각자 토끼, 거북이 가면을 쓰고 가슴에 간 그림을 붙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들은 익살스런 모습을 하고도 끝까지 진지하게 곡을 연주하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경쾌한 리듬의 <런던 대공황> 초반부에서는 드럼 속주가 도드라졌다. '마이크로 비트'라 불리는 유성목의 드럼은 공연 내내 돋보이는 요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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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를 가까이 하고 소근대듯 노래한 전자양
유정목이 기타 리프를 걸어놓고 프렌지 멤버들이 무대를 떠나자, 게스트 전자양이 등장했다. 공연이 거의 2년만이라 긴장된다는 전자양은 <검은 봉지>, <아스피린 소년>등 지난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들려주었다. 전자양은 프렌지 1집에서 프로듀싱 믹싱을 담당하면서 '사실상 앨범을 같이 만들었다'고 소개되었다. 통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감미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전자양. 그의 공연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나 보다. 관객석에서 '공연 좀 자주 해요'라는 외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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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하는 밤>을 연주하며 샤우팅하는 기타 유정목
프렌지가 다시 등장하고 앨범에 나뉘어 수록된 <소멸하는 밤> part 1, 2를 연결해 연주했다. 강한 드럼 리듬으로 시작하는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조명이 모두 꺼지면서 '소멸하는 밤' 이미지를 나타냈다. 멤버들이 악기 파트를 바꾸어 베이스 윤정식이 보컬로 등장한 카피곡을 연주했고, 그후 <Apollo 11>과 <Icarus>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눈을 감고 조용히 몸을 흔들며 공연을 즐겼다. 유정목은 '1집 밴드라 곡이 다 떨어지면 할 게 없다'고 쑥쓰럽게 말하며 1집에 실리지 않은 신곡 <Adaptation>을 소개했고, 신곡 연주 이후 마지막 곡 <Sundance>까지 끝나자 '곡이 다 떨어져서' 공연은 앵콜 없이 마무리됐다.
프렌지, 이들의 가능성
보통의 포스트락 밴드들은 '강'과 '약' 사이에 공백을 둠으로써 '강'의 반전효과를 강하게 한다. 그러나 프렌지는 굳이 인위적인 공백을 두지 않더라도 곡을 효과적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이들의 음악에는 보컬이 없지만, 서사적인 곡 구성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한 공연 중간에 '다음 앨범은 댄스 밴드로 가려고요'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프렌지의 음악에는 그루브한 리듬이 잠재돼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프렌지는 보컬 없는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공연이 끝날 때 유정목은 '이 이후 공연이 별로 없어요. 클럽에서 안 불러 주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의 성황으로 보아, 그리고 그들의 실력과 잠재력으로 보아, 프렌지는 그들 밴드 이름처럼 리스너들을 '열광'하게 하며 힘찬 행보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