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 것은 로또 복권을 시행하면서부터이다. 우리의 명배우 송강호의 빛나는 연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무명의 서민들이었던 1등 당첨자들의 인생역전이 충분히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 나도 한 번 인생역전을 이루어보자. 그러나 돈만 있다고 인생역전이 이루어질까? 거기서부터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하고, 수십 억 혹은 수백 억 원의 재산이 갑자기 생긴다는 것은 분명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제공해줄 것이다.
[역전에 산다]는 로또 복권 당첨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늘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인생에 가정법 IF를 대입해서 풀어나간 유쾌한 코믹 드라마이다. 만약 그때 내가 이랬더라면? 이런 가정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지금의 나태하고 권태로운 일상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증권회사 영업사원 강승완(김승우 분)은 파산 직전이다. 어릴 적에는 골프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잘나가지 못하는 증권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투자금을 더 유치하기 위해 돈 많은 유한마담 비위를 맞추느라고 함께 춤도 추고 갈비집에도 가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참한 결말뿐이다. 조폭 마강성(이문식 분)의 투자금을 부도난 회사에 집어넣었다가 다 날린 뒤 죽을만큼 얻어터진다. 보험 수여자가 마강성으로 되어 있는 생명보험에 강제로 가입한 뒤, 그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자신과 똑같이 생긴 노란 머리의 남자를 본 후 터널 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분명히 변한 것은 없지만, 광화문 네 거리는 공원으로 변해 있고 길거리의 대형 광고판에는 웃는 얼굴의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다. 꼬마들도 자신의 이름 강승완을 다 알고 있고 사람들은 사인을 해달라고 귀찮게 한다. 더구나 이미 결혼까지 한 그에게는 한지영(하지원 분)이라는 예쁜 아내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고 자신은 어린시절 포기한 골프를 계속 치고 있으며 세계 대회에서 여러번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 이렇게 뒤바뀐 세계 속에서 강승완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영화는 보여준다. 물론 그런 해프닝들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시킨다. 골프 천재 강승완은 바람둥이여서 친구 애인과 밀회를 즐기고 있고,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결혼을 했어야 이혼을 하지]라는 강승완은 혼잣말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웃음을 선사할 이유가 있다. 이전의 세계에서 증권회사 부장은 택시기사가 되어 있고, 조폭은 의사로 변해 있으며, 친구의 여자는 내 정부가 되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전 세계로 돌아가겠는가, 아니면 지금 이 세계를 즐기겠는가?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매일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든가, 실수로 애인의 아버지를 살해한 주인공이, 그 직전 세계로 다시 돌아가서 자신의 실수를 고쳐보려는 가정법 영화들이 할리우드에는 있었지만, [역전에 산다]는 국내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만약 이렇게 삶이 변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을 던지고 삶을 성찰하는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 박용운 감독의 접근 방법은 거칠고 섬세하지 않으며, 이야기에 무리수가 있고 허점도 있어 보이지만, [역전에 산다]의 가장 큰 미덕은 뚝심 있게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거칠기는 하지만 주제의 핵심을 놓치는 법이 없으며, 또 박세리나 최경주 이후 국내에서도 대중적으로 상식이 된 골프 경기를 처음으로 영화 속에 도입해서 호기심과 친근감을 제공하는 것도 [역전에 산다]의 소재적 장점이다.
[라이터를 켜라]에서 처음으로 흥행의 맛을 본 김승우가 그 연장선상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으며, 호러퀸에서 [색즉시공]의 성공으로 흥행퀸으로 등극한 하지원의 연기도 무리가 없다. 그녀가 코미디뿐만이 아니라 멜로의 주인공의 가능성까지도 [역전에 산다]는 보여 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문점은 남는다. 내러티브의 허점 때문이다. 왜 강승완은 이전 세계로 돌아가려 하는가? 물론 우리가 대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조금 더 치밀하게, 감정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관객들에게 제시했어야만 했다. 또 인생이 역전되는 통로를 알고 있는 비밀의 여자에 대한 처리도 미흡하다. [역전에 산다]는 크고 작은 흠에도 불구하고, 인생 역전 된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이 최대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