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서원 지난 6일 '사충신 향례' 봉행 후손과 부산·경남 유림 150여명 참석
제60회 현충일이던 지난 6일 삼방동 충혼탑에서는 현충일 추념행사가 열렸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을 기리는 행사였다.
이날, 동상동 송담서원에서는 또다른 '현충 행사'가 열렸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사충신'인 조선 최초의 의병장 송빈(宋賓·1542~1592), 이대형(李大亨·1543~1592),김득기(金得器·1549~1592), 류식(柳湜·1552~1592)(<김해뉴스> 2012년 5월 2일자 10면 보도)의 충절을 기리는 '송담서원 사충신 향례(享禮)'가 바로 그것이었다.
| | | ▲ 지난 6일 동상동 송담서원 '사충신 향례'에 참여한 유림들이 사충신의 충절을 기리며 절을 올리고 있다. |
송담서원(원장 허선)은 매년 음력 4월 20일이면 임진왜란 때 김해성을 지키다 충절한 사충신의 위패를 모셔놓고 사충신 향례를 봉행한다. 올해는 마침 현충일과 날짜가 겹쳐 향례의 의미가 더 컸다. 허선 원장은 "올해는 현충일에 향례를 봉행해 더욱 뜻이 깊다.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했던 이들의 충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사충신과 애국선열의 공을 다시 한 번 되새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송담서원은 사충신 향례 시작 30분 전인 오전 10시부터 부산, 창원, 함양, 진주 등에서 온 유림과 사충신의 후손들로 북적였다. 올해 참석자는 150여 명에 이르렀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경수 경남도당위원장도 이날 행사를 참관했다.
유림들은 유건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서원에 들어서기 앞서 '시도기(時到記·어떤 장소에 간 시간 등을 적는 기록)'에 자신의 성명과 관향, 자 등을 적었다. 서원에 들어선 뒤에는 어른들에게 큰절로 안부를 여쭸다.
"임진왜란 때 김해성을 지키다 순국하신 사충신의 충절을 추모하는 향례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선 원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30분 사충신 향례가 시작됐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향례를 관장하는 제관의 이름을 적고 각 집사들의 역할을 분정(分定·임무를 나누는 것)했다. 올해 향례의 초헌관은 조경용 김해향교 전 전교, 아헌관은 김효구 김해향교 전 전교, 종헌관은 노영칠 김해향교 수석장의가 맡았다. 향례를 진행하는 집례는 김동환 성균관유도회 장유지회장, 대축은 조희욱 김해향교 수석장의가 각각 담당했다.
| | | ▲ 집례를 맡은 김동환 성균관유도회 장유지회장이 향례를 관장하는 제관의 역할을 알리고 있다. |
집례는 각 제관의 분정을 창방(唱榜·결과를 밝히는 것)했다. 헌관, 제사, 유림 들은 알자(謁者) 이선규 성균관유도회 김해지부 총무의 인도에 따라 차례로 사충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표충사로 걸음을 옮겼다. 알자는 초헌관, 분헌관(제사 때 여러 신위(神位) 앞에 술을 붓는 분헌례(分獻禮)를 맡는 제관)과 각 집사를 안내하는 제관이다.
집례는 향례의 순서가 적힌 홀기(笏記)를 순서대로 읽어 나갔다. 알자가 초헌관을 제향 때 제관들이 손을 씻는 관세위( 洗位)로 안내했다. 초헌관은 술잔을 올리기 위해 손을 씻었다.
경찰이 하늘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예포에 이어 향례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됐다. 사충신이 의병장이라는 뜻을 기려 과거에는 포를 쏘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소 간소해져서 총을 쏜다. 항례는 향을 피우고 행사를 준비하는 전폐례(奠幣禮) ,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이 차례로 사충신의 제사상에 술을 따르는 헌작례(獻爵禮), 음복례(飮福禮)와 축문을 불태우는 망료례(望燎禮) 순서로 약 1시간 30분동안 진행됐다.
향례가 끝나자, 행사에 참석한 유림과 사충신의 후손들은 사충신의 충절에 대한 김해시민들의 무관심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송빈의 제13대 종손인 송유장(70) 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장은 곽재우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선 최초로 의병장이 탄생한 곳은 바로 김해다. 사충신은 사흘간 목숨을 바쳐 김해성을 지켰다. 이들의 나라를 위한 충심에 김해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균관유도회 김영근(69) 회장은 "사충신 향례는 조선 최초의 의병장 사충신을 기리는 아주 중요한 행사다. 이들이 왜군에 맞서 사흘을 버텨냈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굉장한 업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어 후손으로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임진왜란 첫 의병장 김해출신…아시나요? | | | | 예린>>부끄럽다. 김해 출신이면서, 그리고 명색이 김해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기자라면서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장이 김해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송담서원 사충신 향례 취재 때 처음 알았다. 설명을 들으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김해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사람들은 유림들과 사충신의 후손들 뿐이었다. 역사교과서에 사충신이 조선 최초의 의병이라고 기록되도록 만들기 위해 김해시, 시민들이 한 마음이 돼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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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예린 기자님의 생각에 전적을 공감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김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종종 보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적을'을 '전적으로'로 고쳐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