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의령 자굴산(897m)
기름진 산세 따라 노니는 즐거움
논두렁가의 찬 웅덩이가 웅얼거린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뒷발을 쭉쭉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봄기운을 느꼈는지, 아낙 둘이 싱글벙글 웃음을 주고받으며 종종걸음을 친다. 길섶은 해쑥을 밀어 올리려고 언 땅을 녹이며 흠뻑 젖는다. 참새 수십 마리가 땅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말참견을 하듯 조잘댄다.
작은 소용돌이를 지나 산으로 들어선다. 햇살이 배낭처럼 등에 착 달라붙는다. 목덜미가 따스하더니 장딴지까지 온기가 돈다. 움츠렸던 어깨가 쭉 펴지고 뻣뻣하던 발걸음도 가뿐하다. 햇살은 빈 나뭇가지에도 내려앉아 주검 같은 나무를 덥힌다. 잠시 기대 선 나뭇등걸에 붉은 수액이 도는 듯하다.
느긋하게 질매재를 지나던 길이 차츰 가팔라진다. 발바닥에 닿는 길의 촉감은 부드럽고 차지다. 길옆 나무 사이에는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도 좋을 듯하다. 산기운이 듬뿍 들어 씨알이 굵고 때깔도 고운 놈을 양껏 캘 수 있을 것 같다. 가파름은 이 기름진 산세 속에 숨어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뒤꿈치며 허벅지 등 몸 뒤로 쏠리는 안간힘이 그 가파름을 알아본다.
주능선(614봉)에 올라서니 억새가 키를 훌쩍 넘어선다. 지난날 방화선을 닦았던 흔적이다. 억새는 관리가 어려운 틈을 타 임도보다 넓은 방화선을 차지했다. 방화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막았고 등산로도 지웠다. 억새에 밀려난 등산로는 방화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새 자리를 찾았다.
억새를 따라 걷는다. 긴 겨울에 부대끼다 한풀 꺾이는 누런 대궁 속에서 찬바람이 인다. 오는 봄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다. 코끝이 시리고 양 볼이 아리다. 배낭에 든 장갑을 꺼내기 싫어 두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겨울을 견딘 것들은 지금쯤 몹시 지친 상태다. 다들 봄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누가 오는 봄을 시샘하는 것일까.
능선은 완만하게 오르내린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완만해지더니, 마침내 오르내림의 끈을 내려놓고 공터처럼 편편해진다. 걷기가 수월하고 시야까지 드넓게 열리니, 두 눈에 가득 차는 세상을 몽땅 가진 듯 여유가 생긴다. 멀리 지리산과 황매산도 부르면 뛰어올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정상 밑 헬기장은 헬기가 내려앉는 것만큼이나 떠들썩하다. 수십 명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신다. 낯선 산악회가 시산제를 지내고 나눠주는 팥떡이 푸짐하다. 떡을 들고 있으니, 술을 몇 잔 얻어 마신 것처럼 흥이 난다. 이 순간 헬기장은 꽃샘추위를 잊은 잔칫집 같다. 활짝 핀 꽃처럼 노랗고 붉은 등산복이 그 분위기를 더한다.
정상은 터가 넓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선다. 모르는 이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는 걸 보니 너나없이 막 움 트는 새싹처럼 들떠 보인다. 안개가 낀 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주위가 희뿌연 탓에, 봄이 어디쯤 왔는지 헷갈리지만 사람들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건 분명하다.
하산길에 밧줄이 두어 개 걸려 있다. 가파른 길 사이로 바위가 하나 둘 일어선다. 바위는 산허리에 뿌리를 내리고 절벽이 된 것도 있으나 산등성이에 올려놓은 장식품처럼 띄엄띄엄 놓여 있는 것도 많다. 바위 위에 또 바위가 올라타고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여성의 음부를 빼닮은 금지샘 앞에는 신선바위가 불끈 일어선다. 아찔하다.
절터샘물을 한 모금 마신다. 박하 맛 같은 싸한 뒷맛이 개운하다. 절터샘을 지나자 길이 옆에 있는 산줄기를 휘감고 돈다. 올라갈 때 햇살을 등에 지고 갔다면 내려갈 때는 품에 안고 걷는다. 종일 해가 드는 양지바른 산을 걸으니 알 것 같다. 꽃샘추위는 누군가 봄을 시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봄이, 땅을 뚫고 일어서는 새싹과 나뭇가지를 박차고 나오는 나뭇잎을 싹싹하게 단련시키는 것임을. 세상이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고 단단히 일러주는 것임을.
*산행길잡이
자광사 팻말-(5분)-자광사-(20분)-질매재-(40분)-614봉-(20분)-달분재-(50분)-정상-(15분)-바람덤-(5분)-절터샘-(50분)-내조마을
자광사 팻말이 가리키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양천교를 건넌다. 곧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굽이도는 포장길을 따라 마을 끝에 있는 기와집(담양정씨재실) 돌담을 돌아가면 자광사가 나온다. 자광사에서 왼쪽으로 돌아간다. 절 뒤쪽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가면 이내 등산로와 연결된다. 20분이면 질매재까지 갈 수 있다. 질매재에서는 왼쪽 길로 올라간다. 10분쯤 가면 갈림길인데, 펑퍼짐한 무덤이 있는 왼쪽(직진)길로 간다. 꽤 가파른 길을 30분쯤 더 올라가면 614봉이다. 614봉에서는 샛길을 버리고 직진한다. 20분쯤 가면 내조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달분재다.
달분재에서도 계속 직진한다. 배틀바위를 지나면서 길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중봉 왼쪽 옆구리로 돌아간다. 달분재에서 중봉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중봉 밑에서 직진한다. 10분쯤 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 뒤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내조마을, 절터샘 쪽으로 내려간다. 곧 돌담 같은 산성터가 나오고 그 앞은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간다. 밧줄이 두어 곳 달려 있으나 조금만 신경쓰면 된다. 15분 정도면 금지샘 갈림길을 지나 바람덤까지 갈 수 있다. 바람덤에서 왼쪽 석문을 지나 5분쯤 내려가면 절터샘이다. 금지샘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절터샘에서 내조마을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길 상태가 좋다.
*교통
부산서부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타고 칠곡정류장에서 내린다. 1시간50분쯤 걸리고 요금은 6,700원이다. 칠곡정류장에서 합천 쪽으로 간다. 칠곡초등학교를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1013번 지방도인 오른쪽 길로 간다. 20분쯤 가면 도로변에 자광사 팻말이 서있다.
의령정류장(요금 5,900원)에서 내리면 천곡행 군내버스를 타고 들머리(양촌)까지 갈 수 있다. 1일 2회(10:10, 13:00) 있다. 10분쯤 걸리고 요금은 1,050원이다. 날머리인 내조마을에서 의령정류장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14:40, 18:30에 있다. 칠곡정류장에서 부산행 버스가 15:40, 16:40, 17:20, 18:20, 19:40에 있다. 의령정류장을 경유한다.
승용차는 남해고속국도 군북요금소로 나가 79번 국도를 타고 의령으로 간다. 의령에서 20번 국도로 갈아타고 합천 /쪽으로 가다가 칠곡에서 1013번 지방도를 탄다. 내조마을에 대형주차장이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칠곡에 염소불고기를 하는 자굴산산장식당(055-572-3860), 청국장, 대구뽈찜을 하는 양산박(572-1323)이 있다. 의령에 의령모텔(573-7567)이 있다.
*볼거리
충의사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망우당 곽재우(1552~1617)와 그 휘하 17명의 무명 의병들을 기리는 사당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5월초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지점인 의령군 지정면 기강전투에서 왜선 열네 척을 물리쳤다. 그밖에도 정암진, 현풍, 창녕, 영산, 화왕산 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경내에는 제향을 드리는 사당과 보물 제671호로 지정된 곽재우의 장검, 마구, 돌벼루, 화초문 백자 팔각대첩, 사자철인, 갓끈 등을 전시하는 기념관이 있다. 사당 앞뜰에는 조사된 것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모과나무(경남기념물 제83호)가 있다.
글쓴이:박미림
참조:자굴산
참조:자굴산2
참조:자굴산~한우산 코스가이드
참조:자굴산~한우산~산성산 철쭉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