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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영산강 고분군은 독자적인 세력의 증거일 수 있죠
마르치 추천 0 조회 522 10.03.03 03:19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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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3.03 18:47

    첫댓글 주구토광묘는 처음에 일본에서 발견되서 전방후원분과 관련이 깊다고 해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내에서도 주구토광묘는 상당히 많이 확인되어 일본->한국으로의 전파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처럼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 맞다고 보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토광묘 계열은 원삼국시대의 묘제로 해석합니다. 뭐 마한계로 봐도 무방하겠죠. 그리고 이 주구토광묘에서 석곽묘(횡혈식)로의 변화과정 혹은 변화시기를 두고 백제의 영역확장 혹은 백제 중앙정부의 지방세력에 대한 지배방식의 차이점과 연결시켜 이해하곤 합니다. 이번에 제 후배가 이 주제로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면 재밌는 부분이 많더군요. 또한 마르치님이 위에서

  • 10.03.03 18:50

    잠깐 헤깔리신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김성호 선생님은 비류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라고 말한 게 아닙니다. 비류가 자살하지 않고 실은 충남 아산 일대에서 따로 비류백제를 세우고 온조는 한강 일대에서 온조백제를 세웠다고 하신 거지요.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실제 비류가 언제 죽고 십제가 언제 비류측 세력을 합병해서 백제가 되었는지 정확한 연도가 안 나와있는데, 이는 후대의 일은 건국기사에 압축해서 집어넣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홍산문화에서 확인된 묘제는 전방후원분과 닮았다고 보기는 좀 그럴 것 같습니다. 양측간의 연결고리가

  • 10.03.03 18:52

    미약한 듯 합니다. 그냥 원형적석묘 정도로 보는 것이 어떨런지...물론 북한에서는 적석묘->적석총을 전방후원분과 연결시켜 이해한 논고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직접 확인은 못 했습니다만...뭐 그것 말고는 전반적으로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특히 '왜'라는 존재를 굳이 일본 열도에 국한해서 이해할 필요도 없으며, 그 '왜'의 민족성이 당시 한반도의 정치체를 구성하는 민족과 다르다고 보는 것도 고고학적으로, 문헌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고 완전히 한국사에서 떨어져 나간 이후에가 진정한 일본사의 시작이 아닐까~하는 것이 제 생각이라서...뭐 암튼 지나가다가 몇자 적었습니다. ^^

  • 10.03.03 20:34

    괜히 麗輝님을 번거럽게 한 것같아 약간 죄송스럽네요..^^..하지만 그래도 많은 공감이 되는 시원스러운 답변이라 개인적으로 찜찜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된것 같습니다.여태껏 왜라는 존재를 일본섬에 국한하여 가두어 버린 본인의 인식은 아무래도 일제에 대한 거부감으로 편협적인 시각으로 일본을 인식하기 때문인가 합니다.....암튼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

  • 10.03.03 22:30

    아닙니다. 번거롭다뇨? 오히려 제가 이 글을 늦게 봐서 그간 전혀 신경을 못 써서 죄송합니다. 물론 저도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논고를 쓸 정도의 공부를 한 것은 아니기에 자신있게 말씀 못 드리지만 그냥 제 사견을 몇자 적었을 뿐입니다. 그마저도 시원스러운 답변이라 하시니 제가 더 감사드리죠. ^^

  • 작성자 10.03.04 14:51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1985년에 읽었던 기억으로 말하다보니 헷갈렸네요. 다시 잠깐 찾아보니 비류는 자살하지 않고 공주에 도읍해 비류백제를 세웠다는 내용이네요. 이 비류백제가 서기 397년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멸망당했고, 일본열도로 쫓겨가 망명정권을 세운 게 천왕국가 일본의 기원이라는 내용이네요.
    그러나 저는 비류가 처음부터 일본과 한반도 서남부(전남 및 경남 남해안 일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국가를 세웠고(중심지는 일본), 광개토대왕비에 등장하는 왜가 바로 이들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 10.03.06 15:36

    김성호 선생님은 그 비류백제의 성장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담로제도다~라 하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전체적인 틀은 그에 동의하고 있지만 고고자료로서 이를 직결시켜 해석하려니 어렵네요. 그리고 전방후원형 적석묘에 대한 것은 몰랐던 부분인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작성자 10.03.04 14:51

    백제와 왜는 같은 핏줄이라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무척 궁금한데 고건 상상 불가능이네요.

    우하량 제2지점 4호분의 경우 중국의 유명한 홍산문화 전문가 곽대순이 쓴 <東北文化與幽燕文明>이라는 책 190쪽을 보니 '전방후원형'이라고 했더군요. 이 책에 따르면 다른 몇개 고분들에서도 원통형 도기를 묘 주위에 빙둘러 배열했고, 묘를 보호하는 제방 구실을 한 것으로 추정하더군요. 그래서 한번 하니와와 연결시켜 봤습니다. 단 우하량 묘와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시기가 거의 3000년 이상 차이가 나서 직접 연결시키는 무리이죠.

  • 10.03.26 00:10

    글을 보고 놀랬다가 댓글보다 놀라움이 가라앉는 군요 ㅎㅎㅎ

  • 10.03.26 00:13

    위에 제시한 몇몇 신문글들은 2003년의 글들이군요. 박천수선생의 논고를 참고하시길. 아울러 국립문화재연구서의 영산강유역의 고대문화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김낙중선생의 박사논고를 참고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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