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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을 명나라 홍무제라 떠들어 대는 현 중국공산당...
정작, 진정한 최초의 한족왕조란 명나라(明) 역사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명나라 적장자들이라는게...뭐 그리 모르는게 많은지...
대만 무협지 작가들이 만든 명교와...
장무기와 주원장과의 일화같은 류가...은근슬쩍 명사(明史)로 둔갑돼기까지 한는 지경이다.
불상타.
그래 내가 좀 도와 줄까 한다.
주원장이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고...그의 동생을 황태자비로 삼았느니 뭐니의 개 잡 소설...
왕보보(王保保)가... 확곽첩목아(쿠쿠티무르)이고...그가 최후까지 주원장에 맞서 잘 싸웠기에 어쩌고...
그러면서도...그의 생몰연대도 정확히 모른다...?
중국애들 무협지류인 명사(明史)들엔...
확곽첩목아(쿠쿠티무르)의 사망연도는...1375년이다.
그런데 고려사 보면...그 명사에선 죽었단 확곽티무르에게...고려왕은 계속 조공을 하고...매달린다.
확곽첩목아가 뭔 예수님이신가...?
1년간 다시 부활하셨다...!!
이러니 짱께들의 명나라와 주원장 역사는 ...
아직도 미완성의 ...테벳 서남아에서 이동한 토왜들의 희망사항이 반영됀 짜맞추기 무협지란 얘기다.
그렇다고 명나라는 없고...중앙아와 중원이 온통 다~~~~ 고려,조선이라 할 수도 없다.
그것도 우리의 바램사항에 기인한 오바같다.
고려사 내내...
같은 시기의 원나라사 내내...
원나라 기황후와...고려 공민왕은...애타게 확곽첩목아에게 아부를 한다.
하남왕(河南王)이자...북원황조의 명예 승상직이란다.
당대는 몽골제국이 확곽티무르의 나라나 마찬가지였단 것이다.
중국 무협지류 명나라 역사엔...
주원장의 장수 서달이...북원의 카라코름까지 파괴하고...바이칼까지 올라같다 꼴갑인데...
어느 무협지엔...북경까지 빼앗고...사막에서 전투해 왕보보에게 처참하게 패했다가...
다시 무공을 닦어서...서달이 승리하고...개 무협지를 쓰는데...
왕보보(확곽첩목아)는 끝내 주원장에 항복치 않고 버티다 죽었다는데...
그의 여동생을 주원장의 며느리로 거뒀다나 뭐라나...아주 훈훈한 개 막장소설이 명사(明史)라고 나돈다.
내 보기엔 개소리다.
원나라역사엔...
서달의 20만 홍건적 식인종집단이 몽혼약(뻔하다?)들 처먹고 치고 올라갔다가... 사막에서 개박살난다.
그후 서달의 권위는 떨어지고...
주원장이 주특기인 배신으로 독살해 홍건당의 최후 두목이 돼는게 고작이다.
해 봐야 티벳과 서남아 오지 라마교도(명교) 식인종 도둑떼 애들 두목일 뿐인 주원장이가...
구한말기 급자기 명태조로 둔갑함은...
현 중원에 겨 들어온 짱께공산당애들은...
원체 그쪽 애들이 태평천국 난때 양이들에 엎혀 겨 들어온 애들이기 때문이다.
상식으로 생각해 보자...
하남왕(河南王)...
황하 남부를 총 관장하는 원나라 왕이자...당대 몽골의 최고군사력 보유자가 쿠쿠티무르(확곽첩목아)다.
그 황하를 그냥 현재의 황하라 처도...
하북의 홍건적 거의 전부의 병력이 고려로 겨 들어와...사람을 잡아 처먹고 난동을 부리다...
고려군에 완전 소탕당해...몇백명만 살아 겨 도망간게 역사다.
주원장은 남경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놀구기신다...
고려에 겨 들어온 식인종 홍건적 중...주원수(朱元帥)란 새끼가 주원장(朱元章)늠의 정체다...
한자가 그리 중요치도 않다.
평장사니...백호장이니...그때 유행하던 송나라나 고려 벼슬이름을 카피한 거다...왜놈들도 마찬가지다.
평,장...자가 많이 나온다.
주원장(주원수)는...
고려 개경으로 겨 들어와 사람 잡아 처먹고 지랄하다가...
이성계등 원나라 쌍성총관 장수들과 고려의 연합군에 개 박살나고...갸오갸오 도망친 몇 백명 중 하나가 주원장늠인 것이다.
주력들이 다 죽어서 지가 두목에 오르는 것이지...지가 대단해 오른것도 아닌 늠이다.
하도 이상하게 생겨...사람이 아닌줄 알고 고려군이 주살치 않았을 수도 있다.
또는, 원래 고려 머슴출신이라...고려말로 자긴 그냥 끌려온 포로라 둘러대고 살아 도망쳤을 수도 있다.
이미 다 짓뭉갠 식인종 사이비교도늠들이 뭐가 무서워...
그 천박하고 무식한 주원장이에게 고려 공민왕이 조공하고 복종했다고...?
그 막강 원나라에도 개기던 고려 공민왕이...
자기가 개박살낸 사이비교 도적 패잔병늠에게 아양을 떨고 친명정책을 했겠나...미치지 않고는...?
하남(河南)이라는건...당대 타클라마칸 타림하를 기준한 것일 것이고...
홍건적이란 애들은...페르시아에 기원한 명교(조르아스터교 유사한교)..즉, 현재의 라마교 유사한 종교를 믿던..
티벳 오지에 산재한 원조 왜노(倭奴)족들로...위그루족의 하나인 놈들이다...
지금 위그루는 투르크 혼혈이라 사람같이 보이고...
현 테벳인들도 그들은 아니다.
종교만 유사했던 놈들로...
죄다 중원으로 구한말때 겨 들어와 티벳은 오히려 동이족 피난민들이 다시 들어간 형국이다.
엄밀히 보면...
태평천국의 홍수전 일파도 이 종교의 일파인데...
오히려 그 유사종파인 홍건적(식인종)애들인 천지회 계통의 배신으로 소탕됀 것이다.
그래, 지들 무협지대로...
왕보보(확곽첩목아)가...지들 무협지대로 기적적으로 주원장에 졌다고 치자...
그 옆의 차가타이한국을 흡수한 투륵룩티무르가의 모굴리스탄은 구경만 했겠나...?
그 기회에 몽골대칸자리를 빼앗아 버리지...?
투륵룩티무르가를 농락했다던 중앙아의 정복왕 티무르는?
이 좋은 몽골대칸에 오를 그 절호의 기회를 그저 모른척 했다...?
말도 않돼는 개 무협지가 주원장 명태조 역사인 것이다.
주원장은 죽었다 깨나도... 원나라는 커녕...
그 속국인 고려도 이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깨진 사이비교 식인종들의 두목일 뿐이다.
그럼,진짜 명나라와 명태조는 누가 가장 유력할까...?
투글룩 티무르가 사망한(1355년?)이후...
모굴리스탄 왕가의 족보가 20여년간 비어있고 없다...?
확곽첩목아가 몽골의 패자로 군림할 때다.
아미르 티무르도...그 때문에...중원과 전 몽골의 대칸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고...
난 그걸 이성계라 의심한다.
주원장의 홍건당은...
이성계나 고려왕들이...
서남부 지역에서 원나라 기황후 군벌이 흔들리게..이이제이식으로... 슬며시 이용만 한 애들이고...
결정적으로 서달이 사막(타클라마칸?)에서...확곽티무르(원조명태조?)에게 개박살나곤...
몽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원 고향인 티벳오지나 인도...동남아오지에서나
숨어서 설치던 라마교(명교)도적떼 두목...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다.
당대 원나라 기황후 진영과 고려는...
서로 앞다투어 확곽첩목아에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던게 역사에 나온다.
기황후진영은...몽골사 내내 하남왕을 애타게 찾는다.
결국 라이벌인 발안티무르(이성계 할아비와 동명이인,바얀티무르란 공민왕의 몽골이름과도 발음이 같은)...
대칸 계승권ㄸ문에 일어난 반란군 베이르트티무르(발안첩목아)가 몽골 전통피가 아닌... 기황후진영을 치는데...
이게 1366년 경으로...이때 기황후세력이 하라호름으로 도망치는 것이지...
주원장이 뭐...? 웃끼는 무협지다.
이때 확곽티무르가 발안티무르군을 누르고...기황후세력을 살려주긴 하는데...
기황후세력은 대도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하라호름에 있으며...대도(연경)엔 확곽티무르가 머무르고 있다.
연경(燕京)은 전통족인 천자의 자린데...
거기에 확곽티무르가 앉아 있고...정작,황태자 아유시르다리는...북원에 찌그러져 북원황제에 오른다.
대원(大元)이 아니라 북원(北元)이라...자기 영역을 인정한거다.
고로, 실질적인 중원몽골의 대칸은 확곽티무르였던 것이며...
공민왕과 그 아들...북원의 기황후세력...이 모두가 그의 눈치만 보던게 당대 중원의 판세였다.
그리고...
기황후의 라이벌였단 발안첩목아(勃顔帖木兒)...
한자만 다르지...공민왕의 몽골이름 바얀티무르(伯顔帖木兒)..발음이 똑같다.
동명이인이라기 보기엔 유사점이 너무 많다.
확곽첩목아에게 진압당해 목이 달아났단 말도 있고...어느 사서엔...
기황후 진영에서 보낸 자객들에게 발안첩목아가 제거됀다는데...
공민왕도 비슷하고...그 자객들 명단이 약간 닮았다.
머리아프니 차츰 조사해야 할 사항이다.
하남왕(河南王)...확곽첩목아...연구 대상이다....
왕보보(王保保)는 좀 다른인물인듯 하다.
모굴리스탄왕가의 역사가 끈어졌다 이어지는 것도...1년 차이는 나나...확곽첩목아 집권 전과 ..그의 사후부터다.
투글룩티무르 사망후...확곽첩목아가 몽골의 제일 군권자이며...그가 죽고 모굴왕가가 이어진걸 보면...
뭔가 통한다.
일단, 기록부터 보시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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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케 테무르( 扩廓帖木尔; 擴廓帖木爾; ? ~ 1375년)는 원나라와 북원의 장군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몽골 황자의 딸이고, 그의 아버지는 중국인으로 성이 왕씨였다. 원래 이름은 왕보보(王保保)였지만 원나라에 의해 코케 테무르라는 몽골식 이름을 얻었다. 가장 잘 알려진 몽골 장군 중의 하나이다.
원래 그는 허난성에서 살았으며, 차간 테무르의 조카이다. 차간 테무르는 산둥성에서 홍건적의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는데, 1362년에 사망했다. 코케 테무르는 삼촌의 자리를 물려받아 산둥에서 홍건적의 반란을 진압했다.
코케 테무르는 황태자의 파벌에 서서 볼라드 테무르를 중심으로 한 반황태자 파벌과 대립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적하기 위해 타이위안에 근거지를 틀었다.
1364년 볼라드 테무르는 다통에서 대도로 진군하여 황제 휘하의 중앙정부를 장악하였다. 그러자 태자 아유시리다르는 타이위안으로 달아나 코케 테무르의 지지를 구하였다. 코케 테무르는 대도를 공격했고, 1365년 볼라드 테무르는 측근들에게 배반을 당하고 코케 테무르에 의해 사살되었다.
코케 테무르는 황태자를 복위시키고 보답으로 해남왕과 비서실의 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내전은 주원장이 남중국에서 권력을 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코케 테무르는 원나라 군대에게 반원 반란군에 대한 공격을 명했지만, 그를 초창기부터 따르던 중국인 장교를 포함한 장교단에 의해 배반을 당했다. 그리고 아유시리다르도 그를 저버렸으나 황제 혜종에 의해 정치 군사적인 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 번의 중요한 패배 후에 그는 허난과 타이위안을 명나라에 잃고 간쑤성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1368년, 원나라는 중국에서 물러나고 북원으로 전락한다.
1370년 혜종 토곤 테무르가 사망하고 아유르시리다르는 몽골고원의 카라코룸에서 황좌를 계승했다. 코케 테무르는 새로운 북원 황제의 세력에 참여해서 황제의 호위를 수행하였다. 1372년, 그가 이끄는 북원군은 사막에서 서달(徐達)이 이끄는 명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명군이 2만 명 정도 피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쑤성에서 다시 서달과 대적할 때 북원군은 심하게 몰려서 고비 사막으로 달아나야 했다.
코케 테무르는 북원군을 거느리고 다시 중국으로 진군하였고, 북원의 영향력을 산시성(山西省)까지 팽창시켰다. 그러나 그는 1375년 사망하고 말았고, 1378년에는 황제 아유르시리다르도 사망하였다. 그들의 죽음 이후에 북원은 급격히 힘을 잃었고, 중국 진출을 단념해야 했다.
왕보보가 그리 막강한 인물였다면...
확곽첩목아란 인물에게 조공하면서...그가 왕보보란 한어 이름의 한인이란 구절이 차고 넘쳤을텐데...
유일하게 밑의 한 구절만 나옴은 ...왕보보는 확곽첩목아가 아니란 반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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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영웅을 부린 도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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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 신우 2년(1376), 대명 홍무 9년 |
중간생략.....
○ 북원이 병부 상서 발가첩목아(孛哥帖木兒) 등을 보내어 왔는데, 우승상 확확첩목아(擴廓帖木兒)가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지난해에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전왕이 아들이 없다.' 라고 하여 조정에서 생각하기를, '너희 나라가 오래 임금이 없으면 반드시 위란이 올 것이라.' 하여, 너의 친족에서 선택하여 가서 제사를 잇게 하려고 조서를 받든 사신이 이미 출발하였는데, 그곳에서는 길을 막았다. 이때를 당하여 조정에서는 새 임금을 세울 계책이 없거나 문죄의 군사를 일으키지 못한 것이 아니다. 군사가 한 번 임하면 옥과 돌이 모두 불타는 일이 없지 못할 것을 특별히 염려해서, 탈탈불화(脫脫不花)를 잠깐 요서(遼西)에 머물게 하고 군사 한 명과 말 한 필도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또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 왕에게 아들 모니노(牟尼奴)가 있어서 국인이 추대하여 정무를 통솔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데, 왕의 아들이 비록 국민의 복종을 받는다 하더라도 조정의 명령은 있지 않았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데는 반드시 믿는 곳이 있어야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너의 전왕이 지난해에 우리 황제께서 북쪽으로 옮기셨기 때문에 필시 잠깐 동안 주구(朱寇 명 태조를 가리킴)에게 미끼를 주어서 나라 안을 편안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이 가까이 있고, 또 옛 임금(원 나라 황제)의 의리가 중하며, 구생(舅甥)간의 은혜가 두터우니, 배반을 할 수가 있는가. 왕자(王子)는 생각을 고쳐서 상국의 명령에 응하여, 군사를 가다듬고 말을 먹여서 함께 앞뒤로 호응하여 적을 견제하는 형세를 이루어 우리 국가의 중흥의 대업을 돕게 하라." 하였다. 나하추가 우승(右丞) 구주(九住)를 보내어 우리의 사신 문천식(文天式)을 돌려보냈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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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전폐왕 우 2년(명 태조 홍무 9, 1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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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 신우 2년(1376), 대명 홍무 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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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의 곽구주가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 그의 이름은 영석이다.〔送河南郭九疇使還 名永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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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명책을 결정할 전후의 고려가...
주원장이에게 조공한게 전혀 나오질 않고...
주원장 개국시기에...계속 확곽첩목이에게만 조공을 하고 있다.
기황후도 그에게만 매달리고 있다.
확곽첩목아...
그가 진정한 명태조일 것이다.
주원장의 명나라...?
티벳오지와 서남아 오지에 있던...
사람을 인신공양하던...원조왜(倭)들이자...현재와는 좀 다른...원조 위그루 왜(倭)들인...
라마교 비슷한 명교(明敎) 식인종 두목들의 집단일 뿐이다.
이들의 후예가...
유사종파인 홍수전의 상제회를 배신하고 상제회를 학살한 상군(湘軍)들이며...천지회며...흑룡회며...야쿠자며...
손문,모택동등의 신해혁명 세력이며...메이지 왜놈들이며...중국공산당인 것이다.
그러기에 지들조상들의 최초 왕조인...
티벳&서남아 사이비교 식인종집단 출신 홍건적이... 명나라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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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 15년(1366), 원 지정 26년 |
김제안(金齊顔)이 연경(燕京)에서 단기로 하남으로 달려가서 국서를 올리고, 이어서 자신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대왕(大王)의 충의(忠義)는 천하에 알려졌는데, 우리 임금께서 대왕과 함께 동과 서에서 서로 힘을 합하여 참란(僭亂)을 평정하고 원 나라 제실을 양쪽에서 돕고자 합니다." 하니, 하남왕이 크게 기뻐하여 위에 아뢰어 제안에게 중의대부중서병부낭중 첨서하남강북등처 행추밀원사(中議大夫中書兵部郞中簽書河南江北等處行樞密院事) 를 제수하였다. 이때에 와서 영석과 함께 오니, 왕이 대언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신돈이 제안이 자기를 사사로이 만나지 않았다고 이를 저지시켰으므로, 내서사인(內書舍人)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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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공민왕 15년(원 순제 지정 26, 1366) |
위의 고려,조선실록을 보면...
명나라가 개국하기 전후...공민왕은 주원장이 아니라...그 적인 확곽티무르에게 연신 연줄을 댑니다.
김제안이란 사람이...조공을 가지고 같다 돌아오지 않으니...눌러 앉은지 알고 삐져서...토지 몰수하고 날리를 치다가...
확곽첨목아의 조서를 가지고 돌아오니...특진을 시킬 정도입니다.
김제안의 족보엔...유일하게 확곽첨목아에게 조공길 튼게...자랑으로 나올 정도입니다.
기황후세력은...공민왕이 확곽첩목아와 거래를 못 트게 방해까지 합니다.
확곽첩목아에게 인정받으려...난리를 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가 취한 친명정책의 대상은 누구이겠습니까...?
숙제입니다.
답은 이미 정해진거나 마찬가지입니다...ㅡ. .ㅡ
또또...예의 그...
고려,조선이 무조건 황제국이고 확곽첩목아는...그 정벌의 맞은 사역인이다...?
그건 우리의 깜찍한 희망사항일 뿐이 아닐까여...?
중원까지만 먹어도 과분하지 않을까요...?
세계 다 먹을려고...입으로만 세계 천자국 돼느니...진짜의 진실을 찾고 싶지들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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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양념처럼 중간 중간에 "비속어"가 띄는데, 가능하면 사용치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한 가지 의문 사항이 있는데, 도대체 <위키백과>는 누가 편집하는 것인지, 혹시 아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위키백과를 진실인냥 믿고 있는데, 실제 위키백과를 보면, 현재의 역사통설을 벗어나는 일이 없거든요. 결국 현재의 역사통설은 이 행성 안에서 통일되게 조선사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증거가 되는데, 이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궐한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위키백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신지 하는 것입니다. 조선사의 왜곡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위에 나오지 않습니까...
만드는 거라고...새롭고 신빙성 있는 설이면 첨가하거나 삭제하며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여...
주원장의 삼류무협지같은 명나라 역사도 그런 식으로 은근슬쩍 정사가 돼는 이치입니다.
위키백과식 무협지식 명나라역사엔 이미 죽은..확곽첩목아가...
우리 고전번역원 한국 역사서에선 1년 더 부활한다는 이 기적을 보여드린 겁니다.
궐한님...너무 오버하지지 마삼.젊은세대 열받아여.
참고는 하겠삼.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내 아름다운 지중해 조선 만드십시오...전 중원조선 회복에 힘써 보겠습니다.
매일 그늠의 중궈 조선주 타령이신데...
내 얘기는 걔들의 동북공정이 맞단게 아니고...걔들 지배계급이 원체 중원애들이 아니란 말인데...
남의 글을 읽었는지 말았는지...매일 꼭같은 홍건교도들 같은 주문만 외우십니다.
왜 여기에 진보꼴통 정치얘기는 변소깐 휴지마냥 꼭 등장허시는지여...?
역사의 기록이란 <항상 승리한 세력에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고, 구왕조의 몰랄원인은 그들 스스로에 있으며, 혁명을 한 자는 하늘의 뜻을 따랐다>라는 미사려구를 기본적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시키는 명분으로 늘 <하늘의 뜻>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현 대륙에서 "주원장'은 "거지출신'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가계의 불명확함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이며, "한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모든 것을 "정치적 계산"으로 몰아 넣고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는 명분때문에 사정당국이 칼을 대는데, 그렇다면 검찰등의 사정당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방치했다는 이유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국민들의 공복이란 말을 무색케 하는 아주 나쁜 버릇입니다. "전 대통령"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됐던 한 시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써, 국가를 대표했던 분인데......물론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던 분인 것은 확실한 것이나, 갑자기 법석을 떠는 것을 보면,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이겠지요.
보통 사화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3세대 정도가 흘러가 버리면, 과거와 단절될 수 있다고 합니다.(지속적인 똑같은 교육을 받지 않는 한). 풍속, 예의등도 에외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획기적인 인구증가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먹고 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합니다. 이때는 예의범절이나 도덕같은 잣대를 뛰어넘어 버리지요. 대륙의 땅은 천지개벽이 일어난 후, 국지적인 변형만 있었을 뿐, 그 땅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많은 국민들은 이곳 저곳에서 수없이 모여들어 오늘날의 중국이 되었고, 그 많은 인구는 먹고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남쪽과 서남방으로부터 올라온 지배층들은 옛 것을 단절시키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려,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고,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들 만을 남겨놓았습니다. 이미 몇 세대가 흘렀습니다. 언어와 도덕적인 가장 중요한 것들 마져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변화시켜 버렸습니다. 땅은 그대로이나 인위적인 것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원장은 주씨들 족보에 없습니다. 다만 주자는 있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주원장은가짜입니다. 내가 아는 주씨 형님한테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