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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회 시하늘 시낭송회가 19일 오후 7시30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삼성화재빌딩 지하 1층 카페 스타지오에서 열린다. 지난해 첫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를 펴낸 류인서 시인, 최근 첫시집 '피아노악어'를 출간한 서영처 시인을 초청했다. 류 시인은 2001년 계간 '시와 시학', 서 시인은 2003년 계간 '문학판'을 통해 등단했다. 회비 1만원. (053)247-4700
제116회 詩하늘 시 낭송회-류인서, 서영처 시인 편-에 회원님을 초대합니다.
초여름의 문턱에서 참신한 여류 시인 두 분을 모시고 여러분과 만나고자 합니다. 116회째 詩하늘 시 낭송회는 ‘사물의 속내 구석구석을 오래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그 어떤 사물의 존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시들로 가득 찬 첫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 2005)를 상재한 류인서 시인(시와시학)과 ‘음악적인 사유를 통해 삶과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첫 시집 『피아노 악어』(열림원, 2006)를 상재한 서영처 시인(문학판)과 함께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를 싱싱한 시로 수놓으려 합니다. 탄탄한 시의 힘을 가진 두 여류 시인의 시를 감상하면서 격려도 보내 주시고 시세계에 빠져봄도 바람직한 한때라 생각합니다.
이웃과 벗과 함께 오셔서 즐거운 나눔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때 : 2006년 5월 19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곳 :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빌딩 지하1층 카페 '스타지오'
-회비 : 10,000원(저녁, 음료수, 작은 시집 제공)
-주차 : 지하층 3시간 무료 주차
*류인서(柳璘徐) 시인 약력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남,
-2001년 계간 <시와시학>에 '꽃 진 자리'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창비, 2005.)
*서영처 시인 약력
-196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남
-경북대학교 음악과에서 바이올린 전공
-영남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함
-2003년 계간 <문학.판>에 '돌멩이엔 날개가 달려 있다>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함
-시집 - 『피아노악어』(열림원, 2006.)
*시편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톡 톡
-류인서
그 여자는 매니큐어 바르기를 좋아한다 올 터진 스타킹 갈라진 손톱 찢어진 나비날개 분홍빛 벌레구멍 솔기 끝 어디에든,
손가락 만한 매니큐어를 만지작거리며 그 여자는
금간 애인과의 사이를 어떻게 메울까 한동안 훌쩍거리다
고양이처럼 달랑 의자에 올라앉아 엄지발톱에 톡, 톡, 매니큐어를 바른다
그래, 톡 톡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겠다
톡톡, 메밀밭 메밀꽃이 하얗게 귀 트이는 소리
톡톡, 호박잎 위에서 배꼽달팽이 발가락 펴는 소리
톡톡톡, 등푸른 오이가 칼날 위를 뛰어가는 소리
톡톡, 끝여름밤 귀뚜라미망치로 휘어진 철길 두드리는 소리
톡톡, 글자 위를 기어가는 칠점무당벌레 오자탈자 골라내는 소리
톡톡, 소라고둥이 버얼건 폐선 밑바닥에 붙어 심해를 노크하는 소리
이제 울음 그쳤니?
톡톡, 구름이 눈썹창 여는 소리
상사화
-류인서
살 밖의 뼈가 어둡다고
달팽이는 저녁이슬 하나씩 깨물어 먹는다
살 밖의 뼈가 어둡다고
숲은 간이 싱싱한 어린 참나무를 찾고 있다
꽃대궁은 이미 뜨겁다
잎은 혼례에 늦는 신부를 데려오느라 아직 피지 않고 있다
살 밖의 뼈가 어둡다고
멀리 동구 밖 홰나무는 말울음 소리를 낸다
병(甁)
-류인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그들은 늘 그의 오른쪽에 앉는다
아내 투정도 아이의 까르륵 웃음도
여름날 뻐꾸기 울음소리도 빗소리도 모두
그의 오른쪽 귓바퀴에 앉는다, 소리에 관한 한
세상은 그에게
한바퀴로만 가는 수레다
출구 없는 소리의 갱도
어둠의 내벽이, 그의 들리는 귀와 들리지 않는 귀 사이에
그의 비밀은 사실, 들리지 않는 귀 속에 숨어있다
전기를 가둬두던 축전병처럼, 그의 왼쪽 귀는
몸에 묻어둔 소리저장고
길게 목을 뺀 말 모자를 푹 눌러쓴 말 눈을 뚱그렇게 뜬 말 반짝반짝 사금의 말 진흙의 말 잎과 뿌리의 말, 세상 온갖 소리를 삼킨 말들이, 말들의 그림자가 그의 병 속에 꼭꼭 쟁여져있다
그것들의 응집된 에너지를 품고 그의 병은
돌종처럼 단단해져간다
한 순간, 고요한 폭발음!
소용돌이치며 팽창하는 소리의 우주가 병 속에, 그의 귓속에 있다
거울 속의 벽화
-류인서
대합실 장의자에 걸터앉아 심야버스를 기다린다
왼쪽 벽면에 붙박인 거울을 본다
거울의 얼굴엔 마치 벽 속에서부터 시작된 듯한
뿌리깊은 가로금이 심어져 있다
푸른 칼자국을 받아 두 쪽으로 나누어진 물상들
잘못 이어붙인 사진처럼
하나같이 접점이 어긋나있다
그녀의 머리와 목은 어깨 위에 서로 비뚜름히 얹혀있다
곁에 앉은 남자의 인중 깊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멈춰선 톱니바퀴처럼 비끗 맞닿아있다
그 무방비한 표정 한 끝에 아슬하게 매달린 웃음을
훔쳐보던 내 눈빛이, 스윽
균열의 깊은 틈새로 날개꼬리를 감춘다
물병에 꽂힌 작약, 소스라치게 붉다
일그러진 둥근 시계판 위에서
분침과 시침이 포개 잡았던 손을 풀어버린다
이 모든, 아귀가 비틀린 사물들 뒤에서
아카시아 어둔 향기가 녹음의 휘장 속에 어렴풋 속을 보이고
그렇게 조금씩 제 각도를 비껴나고픈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의 초상이 벽 속에 있다
어둠의 단애
-류인서
저문다는 것, 날 저문다는 것은 마땅히 만상이 서서히 자신의 색을 지우며 서로의 속으로 스미는 일이라야 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의 그림자에 물들어 가는 일이라야 했다 그렇게 한 결로 풀어졌을 때, 흑암의 거대한 아궁이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야 했다
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 제 몫의 어둠을 족쇄처럼 차고앉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개울은 개울의 어둠을 아카시아는 아카시아의 어둠을 틀어안고 바윗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제 어둠의 단애 밖으로는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한 어둠을 손 잡아주는 다른 어두움의 손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나를 지나가는 월식
-류인서
사월에서 오월로 가는, 봄 이울 무렵의 백색 꽃무리
화아하게 부셔서 뉘 눈에다 감춰둘 순 없겠다
백철쭉 꽃무덤이 그러하고
뭉싯뭉싯 이팝꽃 조팝꽃이
아카시아 구름 꽃타래가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꽃빛 속에 숨어사는 저 궁극의 흰빛, 빛들의 혼융
복사 분홍빛이 어떻게 연분홍 들녘을 지나 파삭파삭
달의 해안을 찾아가는지
수국의 흰빛이 어떻게
엷푸른 하늘빛을 거치며 바래가는지
한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적 있다
타오르는 모든 형태의 불꽃들의 정수리에
날개처럼 떠오르는 빛의 심연
꽃들은 그렇게 순간순간 제 안의 색을 꺼내 여름 쪽으로
열매 쪽으로 건네주고
그렇게, 이울 무렵의 꽃빛은 일체의 흰빛 속으로 회귀한다
올올 바람의 무명 실타래에서 풀려 나와
한나절 계절의 이마를 밝히다 해의 늘어진 옷자락 안으로 감겨 들어가는
꽃빛 흰빛,
그립고 아쉬운 처음의 빛이다
카프카의 잠 속으로 들어간 바닷가재 한 마리
-류인서
백화점 지하매장에서 본 꽁꽁 묶인 바닷가재 한 마리
넓적한 접시에 담겨 내 침대 위에 놓여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어떻게 사람들은
이 딱딱한 등껍질을 열고 들어가 부드러운 잠의 속살을 파먹을 수가 있지
예리한 포크나 큼큼한 손가락으로?
기왕이면 백포도주도 한잔 곁들였으면 좋겠네, 잠꼬대하듯 느물대는 나는
이미 그것의 달큰한 속살을 꺼내먹는 중이다
접시 위엔 헐렁한 붉은 껍데기만 남았다
꽤 실속 있는 녀석이잖아 빈 몸통을 침낭 삼아 훌러덩, 뒤집어써도 좋겠군 어디 한 번...
내일 아침 그들은
각질로 된 등허리를 반듯하게 침대에 대고 누워있는, 활 모양의 딱딱한 마디들로 나뉜 기다란 복부를 가진, 수많은 다리를 쓸데없이 허우적거리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프카 변신에서 인용
천인국 정원
-류인서
보세요 저기, 검게 탄 천인국 꽃바닥을 정검돌처럼 밟고 가는 사람이 있네요
꽃을 피워 올리던 정원의 맷돌은 이미 멈췄어요 나뭇잎배엔 구월의 늦나비들도 모두 승선해 있어요 다시 폭풍이 몰아치면 저들은 날아오를 거예요
매서운 추위가 오기 전에 아직 닫히지 않은 공기의 구근들을 움으로 옮겨요 땅속 깊이 붉은 씨앗단지를 묻어요
천인국, 저 오래된 정원의 이야기꾼 그의 검게 탄 화로 곁으로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있네요
보세요, 꽃판 환한 천인국 거울을 해와 달처럼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이 있네요
오, 나의 태양
-서영처
활활 타는 아궁이지요 누군가 닥치는 대로 불쏘시개를 던져넣네요 높고 높은 탑 속, 실을 잣는 그레첸 물레에 다친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툭, 툭, 떨어지네요 그래도 끝없이 비단실을 풀어내는군요 숫 사자 한 마리 으르렁거리다 금세 암컷과 새끼들을 거느리고 내 눈꺼풀 속으로 뛰어드네요 맹수들, 더위에 지쳐 바다에 가도 갈기 나부끼며 몰려오네요 사는 게 전쟁이라고, 종일 화기를 뿜는 태양 세포 분열하는 태양이 케이블 선에 매달려 네거리 차도에도 우글우글 뜨고 지고 그럼요 산목숨들을 삼켜 그 힘으로 익어가는 무덤입니다 무덤이 삼킨 것들을 가지런히 답안으로 뱉아놓았군요 산자락 마다 볼록볼록한 음향판들,
낡은 책을 읽다
-서영처
아버지는 책과 노트를 마당귀로 끌어냈다 시루떡처럼 쌓였던 책들이 떡고물 먼지를 흘렸다 책무더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불길 속에서 활자들 타작마당의 콩처럼 튕겨나왔다 똘스또이와 키에르케골, 루터와 칼빈이 탔다 개기일식인양 불의 혀에 둘러싸여 웅크린 형체 書架는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고 아버지는 재를 흩어버리는 거다 그리곤 이름난 왕릉이나 산을 찾아 만 권의 생애를 감상하러 다니신다
번민도 회의도 타버리고 빈 책장만 남은 방 바랜 노트 몇 권 남겨져 있다 저 갈피 속 붉은 밑줄 여전히 출렁거릴텐데, 땡볕 아래 초라한 가묘를 손질하고 돌아와 아버지 단잠 드셨다 가벼워지는 몸, 검버섯 자욱한 얼굴, 입을 열어 드렁드렁 잠언을 낭송하고 계시다 선풍기 바람에 펼쳐진 낡은 아버지를 읽어본다
검은 밤
-서영처
검은 장의사들이 관을 메고 나타난다
이미 몸속에 제 묘비명을 새긴 자의 관을
그들은 뚜껑을 열고 주술을 건다
굴촉성인 영혼은 꿈틀거린다
만 가지 염료를 갈무리하느라 피아노는 검다
열 개의 흡반 달린 팔을 밀착시키고
연주자는 주문을 외워댄다 피아노는
그리핀처럼 포효하고
형형색색 뒤집어쓰는 그의 옷, 검다
무대는 발굴중인 위대한 왕의 무덤인지 모른다
순례자들 숨을 죽이고
피아니스트는 태양의 배를 타고 하늘을 건넌다
금관과 허리 드리개 부장품들이 발굴된다
순장되었던 삶들이 공중을 선회한다
검정은 마지막 헐떡임까지 삼켜버린 색
여음이 사라지려는 순간
우레 가운데 왕은 위엄을 드러낸다
제사장의 집전이 끝나도록
검은 밤의 음악회는 輓章보다 화려하다
피아노 악어
-서영처
혼자 지키는 집,
늪으로 변해 버린다
땀이 거머리처럼 머리 밑을 기어다니고
눅눅한 공기가 배밀이를 하며 들어온다
수초가 슬금슬금 살을 뚫고 자라난다
피아노 뚜껑을 연다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악어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
여든여덟 개의 면도날 이빨이 덥석 양팔을 문다
숨이 멎는다
입에선 토막 난 소리들의 악취
손가락은 악어새처럼 건반 위를 뛰어다녔는데
놈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다 내동댕이친다
물 깊이 물고내려가 소용돌이 일으킨다
수압에 못이긴 삶은 흐물거린다
대궁 아래 숨어있는 눈망울
나는 수초 사이 처박혀 한없이 불어 터진다
어디선가 웅성거림 들려오는데
핏물 흥건한 이 곳으로
물거품이 궤적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죽어라 헤엄치다 돌아본 늪엔
수련이 가득
구설수처럼 피어있다
黃道로 운명을 점쳤다
-서영처
바람은 긴 팔 원숭이 떼처럼 창틀에 매달려 휘파람 분다 들판엔 이어달리기 하는 전신주들 미닫이에 떨어지는 햇살의 분포를 문살은 막대그래프로 정확하게 그려낸다
나뭇가지들은 자라나 방문을 도배해버린다 아침상 받는 동안도 사그라지지 않던 추위의 정체가 저 뿔들이었다 뿔들은 미닫이를 틀어안고 슬픈 노래를 뜯는다
눈이 세상을 덮어버린다 행불자의 주검처럼 풍경은 흰 천 아래 뉘여진다 사라진 길을 더듬으며 트럭은 달려가고 모든 소리는 봉인된다 누구도 봉인을 열 수 없다
나는 열에 들떠 그림자의 기울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수 만 킬로미터의 長征에도 태양의 고도를 재며 돌아오는 연어처럼 어둠이 부풀린 배를 안고, 나는 옛집을 찾았다 흑점 인장 찍힌 산봉우리엔 오래도록 얼룩이 남았다
태양, 물 위의 연꽃들
-서영처
누각은 기러기나 오리의 날개처럼 세워진다 그 아래 내 안압을 팽창시키는 못이 있다 중얼중얼 물결 퍼지자 대궁은 움켜쥐었던 햇살 펼친다 꽃잎은 손가락이다 못의 근심이 밀어올린 태양, 망막을 찢으며 수면 구석구석 수런댄다
매표소 근처 바람개비 파는 여자, 장맛비 못 둑 넘치게 울어 눈이 벌겋다 생각난 듯 가슴 헤치고 돌아앉자 주린 젖먹이, 어미의 무덤 속으로 파고든다 아기 잇몸 뚫고 하얀 꽃잎 돋아난다 가쁜 숨들 어둠 삼키고 자맥질 치며 솟아오른다
불면
-서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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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석관을 열면 보인다 물과 공기로 키워진 육신이 흩어질까 아마포로 단단히 동여 놓았다 생전의 욕망을 제거하는 대신 거푸집은 송진이나 흙으로 채워진다
아프리카, 굶주린 아이들은 숯덩이 같다 뇌수와 장기를 제거한 듯 몸속은 비었다 어떤 고고학자도 거기 없다 고개가 땅에 닿자 독수리는 잰걸음으로 다가선다
내 스튜디오에는 가지런한 관 속에 현악기들이 팔을 모으고 섰다 ‘死者의 書’가 펼쳐진 보면대 종일 노래하느라 아가미에선 피가 번진다 공명하려면 속을 비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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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혓바닥 모래펄에 떨어진다
장롱 아래 전갈 한 마리 팔뚝으로 기어오르는
사막,
침 마르게 더듬어도 어눌한 말들
천공 돌 듯 초침은 열두 별자리를 운행한다
玄室엔 미라와 악기, 굶주린 아이들
비쩍 말라가는 팔을 긁으며 뒤척인다
허공에 매달려 붉게 건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