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감리교회
홍천감리교회는 1906년 무스(J. R. Mouse) 선교사에 의해 창립되었다. 구한말 정치적으로 혼란기였
던 당시 군수 김영진과 상의하고 홍천읍 진리에 초가 한 채를 구입하여 지역사회 인사 9명과 함께
광성의숙과 교회를 세웠다. 이렇게 세워진 홍천감리교회는 단순 선교 차원을 넘어 군민 계몽과 함
께 후일에는 항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한다.
의병 봉기 때 창립 당시의 예배당이 소실되었으므로 교회를 이전하고, 광성의숙을 광성학교(홍천초
등학교 전신)로 승격시켜 신문화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아 홍천감리교회
는 큰 위기에 직면하는데, 결국 일본 관헌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보통학교에 교사까지 넘겨주고
진리(津里)로 교회를 이전하였다.
삼일운동 이후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당시 홍종용 목사는 신장대리(新場臺里)에 대지 807
평을 매입하여 석조 양옥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목조로 부속 건물을 건축했는데, 매도시 여
전도사가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도내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정숙여학교를 개설하여 그 교
사로 사용하였다. 정숙여학교 개설로 홍천지역 여성교육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일제말 무렵 폐교당
하는 시련을 겪었다. 정숙여학교가 개교된 지 6년이 지난 후에는 유아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27년 유아교육기관인 홍천유치원을 개원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한글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을 고취시키고자 했으나 일제에 의해 한글교육을 실시하던 홍천유치원이 폐원되는 아픔을 겪게 된
다. 그때 폐원됐던 홍천유치원은 1954년에 도지사의 인가를 얻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0년 6ㆍ25전쟁 당시 석조 예배당이 소실되자 미군의 자재 원조와 육군의 도움으로 교육관(목조
와 양옥 64평)을 건축하고, 육군 3군단의 자재 원조로 예배당(53평)을 건축하였다. 그리고 1980년
에 현재의 성전을 신축하였고, 2000년에는 교육관(지하 1층, 지상 6층, 연건평 590평)을 완공했으
며, 2006년 5월에는 창립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