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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89년 10월 12일 화요공부방
□ 일원상서원문-서도안 교우님 강연
★ 나의 서원 : 나의 두개의 손과 두개의 눈을 천수관음에게 바치고 싶다.
대학교 다닐 때는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혼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큰가를 많이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나그네 -안도현
그대에게 가는 길이 세상에 있나 해서 길따라 나섰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없는 그리움이 나에게는 힘이되어 내 스스로 길이되어 그대에게 갑니다...
□ 질문과 답변
Q. 김도진 :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하셨는데 나는 내가 부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것인가?
A. 서도안 : "어리석은"-우리가 어리석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라 하신 말씀인 듯하다.
Q. 신천숙 : 일원의 위력에 대해서 정확히 해석해 달라.
A. 서도안 : 삼학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일원의 위력같다.
그래서 나아갈 때 나아갈 수 있고, 제반 사항을 보살펴서 실행한다.
또, 기도의 위력은 "내가 할 수 없는 부분들"을 기도를 통하여 얻는다.
★ 나의 경험 : 대학교 때 수련을 앞둔- 굉장히 중요한 날인데 개들이 밤에 주위에서 한 시간동안 짖었다.
법신불 사은님께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나를 당신이 쓰려고 하시는데 나를 제대로 된 완성품으로 갖고 싶으시면 주위를 조용하게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더니 개들이 소리를 멈추더라. 이것이 가장 최근에 느꼈던 기도의 위력이다.
Q. 서혜원 : 보통 탐진치심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 탐욕스러운 중생..이라고 하지 않고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하셨는지 궁금하다.
A. 서도안 : 별로 안궁금한데.. 탐욕스럽다고 하면 너무 심하니까 두리뭉실하게 말씀하신 것 아닌가? 크크크.... (웃음)
Q. 이제선 : "지극한 정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간단없다, 끊임없다 하는 것. 두가지 생각이 든다.
첫번째는 오늘과 내일 끊임없이 하는 것이 간단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비록 실제 생활에서 잘 하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이 있으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챙기게 되는 것이
간단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으로 내 생활을 합리화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힘이 될 때가 있다.
A. 서도안 :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 결정적인 순간이 있을 때, 그 사람의 평소 생활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때는 제선 교우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오늘 사실 굉장히 중요한 곳을 하는데 귀신같이 알고 오셨다.
오늘은, 일원상 서원문의 내용을 어떻게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냐.하는 부분을 공부하겠다.
◈ 지금까지의 내용
# 일원상서원문-내 참마음의 서원문이다.
#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나의 참 마음자리는,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입정처이다.
없지만 분명히 있어서 아는 것 무어라고 말할 것이냐. 독경할 때 걸림없는 심경이 된다.
# 유무초월의 생사문이요-생사문은 변화문이다, 조화문이다.
마음에 걸림과 번뇌가 있을 때 변하는 것이니, 고정된 생각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 참 나는 천지부모동포법률과 하나된 나. 사은의 전체와 하나된 나이다.
그래, 내가 비록 당연한 듯 살고 있지만 알고보면 사은의 은혜 속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 감사하고 은혜로운 마음이 생성된다.
#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 -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이 본래 성품자리에서는 무촌이다.
그런데 나타난 자리에서는 때로 제불 조사 범부 중생과 같은 마음을 쓸 때도 있지 않느냐.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일원상과 같은 본원으로서의 나의 존재이다.
그러고 나면 독경할 때 마음이 든든해진다.
#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 유상은 불변이요, 무상은 변하는 것이다.
#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 지금 현재도 존재하고 있고,
나는 영생하는 존재이다. 이 생만 보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 무상으로 보면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지금은 성겁기다.
그래서 만유가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기운이 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회에 진급해야겠다.
#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화하고 - 생로병사로 변화하는 만물에는 나도, 내 자식도 들어간다.
유정물은 다 생로병사한다. 변화한다는 뜻. 나도 생로병사한다는 사실을 대조해야 한다.
그랬을 때 현실에서 시간죽이기를 하지 않고, 바쁘고 적극적으로 살게 된다.
이것을 모를 때, 순간순간 무념하여 현실을 많이 버려버린다.
#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여기에서 사생은 결국 나이다. 독경할 때는 "나의 심신작용을 따라"이렇게 독경하셔야 한다.
# 육도로 변화를 시켜-천상 인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나의 심신작용이 현실 육도로 변화되게 된다. 내 마음에 따라 실지로 현실로 바뀌어버린다.
그래서 일기법 기재에도-심신작용의 처리를 기재하라 한다.
"시켜" -나와 법신불이 있다. 짓는 것은 내가 시키는 것, 받는것은 법신불이 시키는 것. 내가 시켜 짓는 것을 법신불이 변화시켜 주신다. 내가 사람 몸 받고 싶다고 다 사람 몸 받는 것은 아니다.
#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 똑같은 사람이라도, 복혜구족한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
★ 혹은 은생어해로 : 내가 힘들 때 대조한다.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이러한 고통이 언젠가 은혜로 변할 수 있다. 이 힘듬이 나의 법력을 쌓고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심신작용처리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경계를 통하여 ~~
★ 혹은 해생어은으로-잘된 일이 있을 때, 이것이 혹 해가 될 수 있음을 대조해야 한다.
여기에는 은생어은, 해생어해가 생략되어 있다(유무를 설명하는 부분이기 때문)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나라는 존재는 유상으로서도 나요, 무상으로서도 나다. 항상 불생불멸로서의 나요, 인과보응의 이치 속에서 변하는 나라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오늘 도안교우님이 발표하셨던 내용)
오늘 상당히 실질적이지요? ^^ 저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여기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나, 대종사님 포함
먼저 내가 들어간다. 우리 아들, 우리 어머니가 먼저가 아니다.
★ 그러면 대종사님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인가? 이런 신심없는 사람이 있나?^^
그러나 맞다.
대종사님 당대에 박창기(이공주 선생님 아들)이 출가를 하였다. 그런데 부잣집 아들이라, 집안일을 못하였다.
하루는 박창기 선생님이 외출 나갔다 오니, 대종사님이 허리를 숙이시고 직접 청소하고 계셨다.
박창기 선생님이 놀라 "아니, 부처님께서 어찌 손수 청소를 하십니까" 하니..
대종사님 "야, 나라고 복 안짓고 복받는다냐,"
대종사님은 서울역 대중화장실에 갔더니 변기에 똥이 묻어있어서 닦아가지고 오신 일도 있었다.
그분은 인과의 이치를 알기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쳐다봐주고 칭찬해 줄 때 하곤 하지요? 다는 아니고 딱 한 사람만...ㅋㅋㅋ
대종사님 - 과거 도인과 달라서 밥도 많이 드셨다. 누가 밥 조금 먹으면 "너 일안하려고 밥 조금 먹지?"하셨다.
★ 여래위도 공부심을 놓으면 그 때부터 바로 중생이라 하였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독경할 때 나는 "어리석은 제원이는"이렇게 독경한다.
여러분은 자존심이 있어서 이렇게 안 하시는가.
이 부분에서는 기독교 사상과 딱 맞다. 원죄설 -
미국에서 기독교인 40만명이 모여서 통성기도를 올린다.
내가 설사 "나의 본래 성품은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과거로부터 존재했던 나는 엄청난 업력을 지은 나이다. 그러므로 법당문을 열을 때는 "내가 경계 속에서 많이 무너졌지 않으냐" 하는 정말 참회의 마음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이 독경을 할 때도, '그래 실제로 나는 많은 죄업을 지은 중생이지 않느냐.'라는 참회의 심경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갸.그럴 때 법신불 사은님은 끊임없는 위력을 주신다.
본래는 심지무치 심지무비요, 원래 어리석지도 요란하지도 그르지도 않은 존재이지만, 현실 경계 속에서는 어리석을 때도 있지 않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공부인이라 하셨다. 그래서 여기에는 출가 재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종사님도 나도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참회의 심경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번 법회부터는 일원상 서원문 독경 소리가 짱짱하겠네요*^^* 독경 끝나고 나면 서원이 충만하겠네요*^^*
나는 한번씩 하다가 아까울 때가 많다. 무엇이 아깝느냐. 나는 이것 공부할 때, 돈 많이 쓰고 시간 많이 썼다. 그런데 그냥 가르쳐주려면 아까워죽겄어*^^*(가을이라 그럽니다 ㅋㅋㅋㅋㅋ)
#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 이 : 가까운 데 지칭. 이 법신불이란 "내 안에 있는 법신불"이다.
* 이 법신불= 나 =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참 나
* 체받는다 : 붓글씨 쓰는 것.
체본을 받는다. 법신불 일원상을 체본을 받는다.
이것을 어떻게 체받을까.
여러분들은 체 받아지시는가?
몰라서도 못 받고, 믿음이 없어서도 못 받는다.
그래서 체 받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받아라.모시는 마음으로 받들라는 것이다.
신앙의 대상 수행의 표본으로 체받는다.
체본을 보지 않고 스스로 쓰는 사람은 명필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법신불 일원상. 진리와 스승과 법과 스승을 체받는다.
예를 들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다고 생각해 보자. 텔레비전에 나오는 선행을 체받아서 열심히 하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새벽 네시에 일어나 10년간 좌선했다고 하여 그것을 체받는다고 하면, 다른 사람 원망과 자기 학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는다면, 이러한 상대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으라.
일원상을 체받지 못한 보통의 체받는 방법들은 거의 찌꺼기가 남는다. 조금 앞서는 것 같으면 무시하고, 못나는 것 같으면 학대하고..
★ 자기의 존재가 일원상임을 모르는 사람일 수록 더 대중문화에 현혹된다. 비틀즈의 존 덴버가 죽으니, 상당수가 따라 자살했다고 한다. 자기보다 존 덴버가 더 좋다는 뜻이다.
법신불 일원상과 나의 참 존재를 체받아야,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남편, 자식만 체받으려고 하나 결국 갈 때는 나혼자 가는 것이다. 그것을 빨리 알아야 한다.
절대에 바탕에 상대를 보고, 견문삼고 지자본위 삼으면 된다. 성리에 근간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걸림과 막힘이 없고, 뭔가 부딪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성리를 꿔서라도 보라는 것이다. 빨리 보는 것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요 믿음이다. 그것도 아닌 것이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어떤 사람의 좋은 면을 체받는 것이 아니라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으면,
선행은 하나의 표본이 된다.
하나하나의 사실은, 표준에 바탕한 표본이 된다.
표본과 표준은 다르다.
표준은 고정된 것이지만 표본은 하나의 모델로 삼을 뿐이다.
우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야 한다.
그래, 내가 지금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느냐, 아니면 내 분별심에 끌려서 그것을 체받느냐 점검해보라.
일원상- 일원상에서 우주 만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공경하지 않고 문열고 뻣뻣이 들어와서야 되겠는가.
#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나중에 삼학에서 자세하게 할 것이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 심지를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 수호란- 내수외호다.
(1) 내수 : 내 본래의 참 마음을 잘 지키는 것.
(2) 외호 : 밖의 외부경계에서 끌리지 않도록 한다. 외불방입 내불방출
왜 우리가 수호해야 하는가? - 수많은 경계에 빼앗기고 살고 있으므로. 그것을 잘 지키고 보호하자.
이것을 해결하는 길이 정기훈련 과목으로서는
* 정시 - 염불 좌선 등
* 동시 - 멈추는 것.
우리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외부 경계에 빼앗기고 사는 것을 원치 않고, 한가하고 편안한 마음을 원한다. 그것이 정신수양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계문을 지키는 것을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본래의 성품은 계문 지키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진리의 속성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왜 부담스러우냐. 길들여진 그것 때문에 속고 있다. 그러니 속지 말고, 잘 지켜내라.
◈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아는 것 (1) 근본지 _지각(智覺)
(2) 분별지 -지혜
원불교에서는 이치를 보아다가 일의 시비이해에 가져다 쓴다.
일의 시비이해는 상황마다 다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다 과학계통도 알고 싶어하면서, 근본지 즉 이치의 세계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또, 우리는 누구나 그 밝은 그 자리에 합일하고 싶어한다.
* 정시 - 의두 성리 정기일기 경전 강연 회화
* 동시 - 밝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
과거에 이무애 사무애라 하였다. 현대 시대에는 정신수양도 중요하지만, 사리 연구도 아주 중요하다.
◈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 "원만하게" 앞에 생략된 말 = "동정간" 이다.
동정간 원만하게 수호하고, 알고, 사용하라.
과거에는 정시에만 잘하는 것을 중요시하였으나. 이제는 동시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좌선 한 시간보다, 한경계 참는 것이 더 낫다 하였다. 대산종사님은 좌선 100시간보다 한경계 참는 것이 더 낫다 하였다.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 실천적인 힘을 누구나 원하고 있다. 그것을 사용하게 하는 것.
* 정시에는 상시일기 주의 조행
* 동시에는 무시선 계문 사은사요 실천이 되겠다.
대종경에는 "우리의 공부가 납도끼같은 공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나온다. 실지 경계에서 쓸모없이 오그라져버려서는 안된다. 그동안에는 정시의 공부를 강조하고 동시에 공부가 안 되었으나.
★ 원불교 공부를 잡은 양반은, 서원에 바탕하여, 동정간 삼대력을 끊임없이 양성하여, 사은사요를 실천하는 것이다.
# 지성(至誠)으로 하여
성자의 문패는 "지성"이라 쓰여졌다고 한다.
지성(至誠)을, 무간단심(無間斷心 : 간단이 없는 마음)이라 표현한다.
천지은에도, 지극히 정성한 도를 체받아서 만사를 이루려할 때에 시종이 여일한 도를 달성하라 하였다.
대종사님-전생에도 지으시고 오셨지만, 깨달은 전과 후에 정성이 끊이지 않으셨다.
★ 그러나 지성(至誠)은, 중생들 입장에서 볼 때, 마지막을 잘 해야 한다.
대산종사님은 칠전팔기, 오뚜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설사 아흔 아홉 번을 잘못했다 할지라도, 백번째 일어서버리면 되지 않느냐.
근기에 맞춘 법문, 사실적 법문 이십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진리는 존재하고 있고, 우리의 마음은 활용되고 있다.
언제 지성으로 해야 하는가.-관계없다. 생활속에서-
★ 특히 상시를 잘 잡은 사람이 대종사님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법회를 잘 나오는 사람이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었으나.
앞으로 상시응용주의사항을 잘 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첫번째가 "상시응용주의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교당에 오고보면"- 이것이 안되는 사람은.. 자타력 병진이 아니다. 자기 원천수를 개발한 사람이 아니라, 겨우 교당에 와서 주사맞고 가는 사람. (상시응용주의 사항이 안되면)
★ 뜻과 서원이 있으면, 고통을 문턱 넘듯이 넘을 수 있다.
유무와 환경을 초월해서.. 이렇게 서원이 중요하다.
#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아까, 육도에서의 진강급과 실질적인 자체 내부에서도 진강급이 있다 하였다.
원리편 38장-어떤 사람이 진급하는 어떤 사람이 강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말씀해 주셨다. 결국, 진급하는 사람은 신분의성이 있다는 뜻.
진급은, 자기의 노력에 의해서도 되지만, 자연도수에 따라서도 된다.
현재가 진급기이므로 진급이 쉽다. 나 자신이 조물주이다. 나를 만드는 조물주는 나이다.
#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 일원의 위력을 한번이라도 얻어보신 분 ? -아니신 분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사은의 위력 속에 살고 있다.
* 더 위력을 얻는 가장 큰 방법- 사사가 끊어지면 된다.
나는 실지체험이 너무나 많다.
"나다'하는 것이 있어서 상이나 욕심으로 하면 위력이 약하나
내 마음이 텅 비어서, 상과 욕심이 없이 공심으로 하면 위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천지여아 동일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위력 본 것은 안 시켜도 한다. 기도에 위력을 본 사람은, 기도 광고만 해도 온다.
우리가 살면서 욕심이 나타나면 위력이 끊어진다.
경계따라 욕심이 없어지면 또 위력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나는 기차표를 못 구한 적이 없다. 앞 사람들 다 없다 할지라도.
앞차 탈려다가 못 탔더니 사고가 났더라.
체성에 합한다.-일원자리에 합일해 버린다. 망념이 끊어져버리면 그런다.
분별 사량-분별 주착심이 공해져 버렸을 때. 그럴 때 천지여야 동일체이다. 그러니 아여천지 동심정이다.
* 위력을 얻는다-복이 있다-덕인
* 체성에 합함-지혜가 밝다-도인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어찌 둘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체성에 합함으로써 위력도 있어지고, 윈윈으로 된다.
# 서원함....
자신이 속으로 머금고 다짐하는 것.
독경할 때, "서원함~!"하셔야 한다. 그러니 독경이 끝나고 나면 마음이 생생해진다.
일원상진리는 마음이 생생약동하는 것이다.
◈ 여기까지 하고 정말 중요한 것.-반조의 세 가지
김법해 교우님이 내가 원음방송에서 일상 수행의 요법을 강의하며 내가 "좌선반조를 해야 한다"고 한 말을 듣고,
자성을 못 본 사람은 어떻게 반조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였다.
1. 자성반조
자성의 정혜계를 세운 사람은 자성반조한다.
아직 자성을 못 본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법해 말대로 계문을 지키는 것도 좋은 것이다.
2. 목적반조
그러나 내가 더 좋은 방법을 일러주겠다.
수험생이 수험 공부하기 싫을 때 목적을 반조한다.
우리 원불교인은 서원을 반조한다.
서원반조 = 목적반조
3. 은혜반조, 인과반조
4. 교법반조
이것들이 결국은 교법에 반조하는 것이다. 결국은 믿음에 반조하는 것.신심으로 반조한다.
이것이 함께 어우러져버리면 강력한 파괴력이 나온다.
본인의 서원이 서원같으면서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면 안되지요..^^
반조를 해 나가는 주체는 결국 나, 나의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공부 잘하자는 것이다.
대종사님 그러셨다.
앞으로 지혜가 열린 사람 중에서 이 일원상 서원문을 보고 탄복하고 감복하여 대성통곡할 사람이 나온다고 하셨다.
이 일원상 서원문으로 참으로 공부길을 잡아서 간다면 각자각자에게 복과 혜가 가득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질문과 답변
Q.서도안 : 사람 마음을 보면, 법신불이라는 밝은 마음도 타고나지만 동시에 경계에 끌리는 마음도 타고 나는 것 같다.
A.교무님 :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본래는 그렇지 않다. 본래는 내가 법신불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과거 수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경계가 습관이 되고 업력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법신불의 나이지만, 습관과 업력의 나이기도 하다.
내가 한번 경험하고 두번 경험하는 것이 습관과 업력으로 길들여진다.
습관과 업력은 대단하여, 어~하면서 끌려간다.
Q.노명인 :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라 하는데, 천성과 업의 차이는?
A.교무님 : 천성 (1) 성품 (2) 습관 (3) 환경
박효인 교우님 피아노 연주^^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반법회 교도님 참석 ^^
노영빈 교우님과 황은창 교우님 밝은 모습입니다. 반갑습니다.*^^*
첫댓글 법과 음악과 도반이 가득한 화요공부방 까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음악 참 좋죠? 사진은 명성 교우님께서 찍어 주셨답니다. 좋은 법문의 향기에 한껏 취해보세요.. 그 향기가 공부방의 추억(?)을 떠올리며 일상에서 매순간 자신을 곧추세우는 힘을 북돋아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서원함... 순명교우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의 향기가 저를 포근하게 하네용^^
사진이 안보이네요...<- 저우주임...
질문자중 노명인 아니고 노상희님이십니다.
와우 따끈따끈한 후기 감사감사!
너무 감사합니다. 혜원교우님 탐진치는 무명심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가리워서 탐진치가 나오지요. 치심은 탐심과 진심을 모두 포함하기도 한다고 했었지요.
서도안 교우님이 정말 준비를 잘해오셨었어요ㅡ
배성원 교우님 답변 명쾌해서 참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가리워서 탐진치. 치심은 탐심 진심 포함.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데는 강연을 꼭 듣는 수 밖에...편안한 강연...늦었지만 칭친하고 싶습니다 그 부드러움은 모두 본받아야 하는 태도였습니다...전달수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 도인들에게 합장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 그대로 엎드려 절하고픈 이유는? 부드러움입니다...
그 부드러움은...우리가 시급히 교육받아야 할 과제인것 같아요... 강연을 경청해보면...준비해온 공부를 반도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서도안교우는 그런 심리를 잘 알고 있는것 같아,반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