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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우리는 지방 행정을 이끌어나갈 우리의 대표를 선출했고 우리가 직접 선출하지는 못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지각 변동이 다가오고 있다. 오는 7월, 다섯 명의 대법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다. 대법관은 불과 13명의 법관이 국가의 최종적인 의사를 결정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교체되는 대법관 수는 모두 열두 자리.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인 가운데 단 한 명을 빼고 전원이 바뀌는 셈이다. 이번 인사를 끝내면 2009년 2월까지는 임기만료로 퇴임하는 대법관이 없기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지금 추천 경쟁이 뜨겁다.
지난달 17일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 공고가 나가자마자 어떤 시민단체는 자신들이 추천하는 인사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명단을 공개하는 경우, 대상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대법원 내규를 고려하여 조심스레 추천인 명부를 작성한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같은 단체는 그들의 자신감이 부러울 따름이다. 좋은 대법관을 뽑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민주사회의 시민과 시민단체가 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자신의 구체적 이해(利害) 관계를 가장 잘 구현시켜 줄 특정인을 대법관으로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향후 대법관들도 자신을 추천해준 단체에 마음의 빚을 느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일부 시민단체가 추천 명단을 공개한 것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강조해 왔다. 실제로 그가 지난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 대법관 3명 가운데 2명은 소위 진보성향의 인물이다. 사법부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법원이 당면한 문제는 그 크기가 작지 않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다양화를 앞세운 ‘코드 인선’이다. 여권 일각과 시민단체는 “이번에 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퍼뜨린다. 이러한 주장이 대법원 안에 ‘정치적 동지’를 심어 놓고, 입맛대로 재판하자는 말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려주기 바란다.
둘째, ‘구성의 다양화’라는 구호로 위장한 ‘무능인선’이다. 이용훈 원장 출범 이후 대법원의 사건 처리 능력이 두드러지게 퇴보했다는 사실은 통계가 증명한다. 국민에게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법률적 쟁점을 둘러싼 논의 때문이 아니라, 법관들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나태에 기인한 적체와 지연 때문에 육체적·정신적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이는 진보성향의 법률가들이 법조인으로서 일류라는 가정하에 성립하는 구호다.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무능한 법률가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칠 여지가 농후하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그가 지니기에는 너무 큰 것을 갖게 되면 재난을 당하게 된다. 마치 너무도 작은 배에 너무도 큰 돛을 단다든지 너무도 작은 영혼에 너무 큰 권력을 쥐어주게 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완전히 전복(顚覆)될 수밖에 없다.”라고 논파했다.
대법관 추천에 있어서 구성의 다양화는 충분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지만 가치에 있어서도 우선순위가 있다. 무엇을 희생하더라도 다양성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전제다. 배가 뒤집히면 승무원이든 승객이든 함께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은 바다에 빠진다. 무능한 선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함께 조난당할 국민이야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토마스 베케트는 헨리 2세 궁정의 행정 관료로서, 군대의 군인으로서 자신의 직분에 항상 충실했지만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후에는 국왕의 부당한 압력에 저항했다. 종교계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임명해 준 국왕에게 불복하며 불꽃처럼 살다 간 토마스 베케트 같은 존재를 이 시대에도 기다려본다.
첫댓글 이 시대를 생각하는 생각하는 글들을 올려 보겠습니다ㅏ..!~~
수고가 많소이다...사무국장 힘..힘..힘...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