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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종착역 15 (2019 사토 아이코)
15 권말 부록: 글쓰기 인생과 이상적인 죽음
(95세 부인공론 2019년 8월 27일호/9월 10일호)
대담자: 하시다스가코(*橋田壽賀子1925~ 2021 NHK 인기연속극 "오싱" 등의 각본가)
● 1 삶과 죽음에 대하여
15-1 죽을 때 고통스러운 건 당연한 일
하시다 : 처음 뵌 것은 아마 드라마 상(賞)의 전형위원으로서---.
사토 : 그것은 논픽션의 상 심사 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편집부주·1980~99년에 공모된 '요미우리 휴먼·다큐 대상'. 수상 작품은 드라마화가 약속되어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함께한 게 인연이었네요.
하시다 : 이후로 계속 뵙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친밀하게 수다를 떨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토 : 하시다 씨가 올해 들어 주간지에 실려 있던 글을 잘 읽었어요. 호화 여객선 여행 중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과 안락사에 대한 기사였습니다만.
하시다 : 아, 안락사에 대해선 그전부터 언급하고 있었어요. 죽는 것은 전혀 무섭지 않지만, 어떻게 죽는가가 무섭운 것이라고.
사토 : 하지만 그 글을 보니, 매우 낙천적으로 쓰여 있었어요. 인품을 알 수 있었고, 재미있었어요.
하시다 : 세계 일주 선박 여행 중에 많은 하혈을 해 버려 가장 가까운 나라의 병원에서 계속 수혈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그만하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해서 그런지 안 들어주더라고요. 결국 일본의 의사 선생님이 와주셔서 비행기로 이송이 되었습니다. 마취 주사를 맞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 병원 침대 위. (웃음)
사토 : 그 정도 되면 나 같으면 신경이 곤두서서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하시다 : 저도 질렸어요. 하지만 비행기에서 마취를 한 후에는 통증이 없어지고 기억도 전혀 없었어요. 그 때는 그런 몽룡한 좋은 기분 속에 그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웃음)
사토 : 아니, 하시다씨는 건강이 좋아 보여 쉽게 죽을 것 같지 않아요. (웃음)
하시다 : 일본의 병원에서 검사를 했더니, 하혈의 원인은 과식으로 인한 탈장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치료했더니 나았어요. 사토 씨는 건강하게지내고 계시죠?
사토 : 부정맥 등은 있어요. 재작년 일에 무리를 하여 피로가 쌓여 작년에는 계속 보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시다 : 나도 부정맥으로 매달 검사받고 있어요. 안락사하고 싶다면서 왜 매달 검사하냐고 모두에게 비아냥을 당하면서(웃음). 지금도 봐요, 협심증약을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사토 : 어머, 정말이군요.
하시다 : 10년간 가지고 다녀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사토 : 안락사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발작이 일어났을 때 그대로 죽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시다: 아니, 고통스러운 건 싫으니까요.
사토 : 저는요, 죽을 때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편안하게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간병인에게는 그렇게 보여도 죽어가는 몸은 어떨지 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각오를 하고 있어요. 현실에순응하여 한순간만 참으면 마침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버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시다 : 심장이 한순간에 멈춰 주면 좋겠는데. 고통이 지속될까 봐 두려워요. 지난 번에 죽을 뻔했을 때도 힘들었고.
사토 : 하시다 씨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다'고 쓰셨지요. 하지만 저는 그건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안락사도 나름 남에게폐는 끼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시다 : 무엇보다 마지막에 오래 들어누서 기저귀를 갈게 하는 등의 폐를 끼치는 게 싫어서요.
사토 : 그건 싫지만, 어쩔 수 없는일이죠. 감사하게 생각하고 폐를 끼치는 수밖에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은 서로 폐를 끼치며 사는 거지요. 나 같은 경우는 제멋대로의 인간이라서 더욱 그렇게 생각됩니다.
하시다 : 그렇다면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고 생을 마감고 싶어지군요. 지금까지 충분히 글도 써왔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으니 여한이 없어요. 지금 안락사 시켜준다고 하면 '감사합니다'예요. (웃음)
15-2 아흔이 넘으면 어떤 소망을 가질까 궁금해요
사토 : 하시다 씨는 호화 여객선 여행이라든가, 즐거운 일이 있으셨죠?
하시다 : 네.
사토 : 진수성찬도 좋아합니까?
하시다 : 맛있는 것은 먹고 싶어요.
사토 : 그럼, 아직 죽을 수 없어요. 여러 가지 욕망이 없어져야 죽을 수 있어요. 저처럼 나이가 들면서 욕망이 없어지면 뭘 해도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세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승사자가 마중을 오지 않아요.
하시다 : 아, 저도 지금 당장 죽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만 죽을 때 아픈 게 무서워서. 그러니까 죽을 때는 안락사로.
사토 : 확실히 죽을 때는 편안하게 죽고 싶은 법이지요. 그런데 그게 언젤까? 지금은 아직 죽고 싶지는 않겠죠?
하시다: 제 발로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일주일에 세 번 트레이닝도 가고 있고. 모순투성이라고 들릴지 모르지만요.
사토: 죽고 싶어질 때가 오지 않도록 오지 않도록 하면서 안락사를 꿈꾸고 있어요? 공주님이 언젠가 왕자님이 데리러 오기를 꿈꾸듯이.
하시다 : 죽는 날까지는 건강하고 싶다는 것 뿐이지요. 계속 건강하다가 한순간에 죽고 싶다고 하면 좀 사치스러운 생각일까요?
사토 : 그건 사치에요(웃음).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것은 하느님만이 알겠죠.
하시다: 그럼, 예를 들어, 90살을 넘기게 되면 "이렇게 되었을 때는 죽고 싶다"고 하는 소망을 적어두는 건 어떨까요? 유언은 아니지만 "아프지 않게 죽게 해주세요" 이렇게 적어 놓는 겁니다.
사토 : '아프다'는 표현이 좀 독특하군요. 하시다 씨는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우선 그런 일을 맡아 줄 의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내일 죽게 해주세요" 라고 부탁해도 내일이 되면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오늘은 어제 한 말을 취소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장난치지 말라고 야단맞을 겁니다. (웃음)
하시다 : 이 소망은 계속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남에게 몸뒤척임을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면, 그 시점에서 죽게 해 주었으면 해요. 그래서 지금부터 그렇게 해줄의사를 회유하여 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웃음)
사토 : 그런 의사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 같군요.
하시다: 의사들 사이에서 "그사람한테는 가까이가지 마라. 죽여 달라고 조를 테니까"라는 말이 돌겠죠.
사토 : 하시다 씨의 마음을 이해해 줄 정도로 매우 깊은 애정의 소유자이든지, 아니면 냉혹한 합리주의자가 아니면 못 해 주겠죠. 그러니까 우선 헌신적인 의사의 연인이 되어야 겠네요.
하시다 : 연인 따위 질색입니다. 먼저 간 남편만으로 충분히 지겨웠어니까요.
15-3 사후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토 : 사후의 세계라, 재미있는 명제군요. 왠지 만담 진행 같은 기분이네요. 그런데 하시다 씨는 사후의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시다 : 저는 전혀 사후의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죽으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토 씨는 "저승에서의 전화" 라는 책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이 믾다고 저도 생각하거든요. 지인 중에 이상한 체질인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알 리도 없는 죽은 내 지인의 이름을 말하며 "지금 그가 당신 곁에 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토 : 그럼 하시다 씨도 육체가 없어져도 영혼이 남는다는 것은 인정하시는 거군요?
하시다 : 음. 집에 있는데 죽은 남편의 기척을 느낄 때는 있어요. 2층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아, 지금 아랫층에 그가 있구나" 하고. 하지만 그건 분명 추억이겠죠.
사토: 그럼 윤회 환생이라는 것은?
하시다 :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안녕. 그걸로 끝.
사토 : 저는 40년 정도 전에 홋카이도에 지은 별장에서 여러 가지 심령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사람이 죽은 후의 일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 경험들 때문에 영능자를 찾아다니거나 심령에 관한 책을 읽거나 해서 도달한 것이 '죽음은 무(無)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으로 제 나름대로 공부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 뿐, 이것이 진실이니까 믿으라고는, 하시다 씨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요. 경험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시다 :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생각하고 듣겠습니다.
사토 :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 소설가) 씨가 생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사토 군, 너는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서 "있을 것 같아요"라고 내가 말했더니, "그럼 네가 먼저 죽었다면 어땠는지 알려주러 와. 내가 먼저 죽으면 유령이 되어 전하러 오겠다'고 말했어요. "엔도씨의 유령 따위는 오지 않아도 돼!" 라고 대답하기도 했는데, 몇 년 후에 엔도씨가 돌아가 버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영능자 에하라 히로유키(*江原啓之1964~ 작가) 씨와 통화하고 있을 때, 에하라 씨의 눈에는 내가 있는 방에 엔도 씨의 모습이 보여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토 군, 사후의 세계는 있었어. 대체로 네가 말했던 것과 같은 세계가" 라고. 엔도 씨는 약속을 지켜 보고하러 와 주었던 것입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나에게는 영능이 없기 때문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에하라씨는 마음 속으로 영혼의 대화를 주고받았겠지요.
하시다 : 그렇군요, 재미있네요. 저도 죽은 남편이 지금도 왠지 지켜주고 있다는 건 느끼거든요. 60세에 돌아가셔서 30년 동안 계속 엉덩이를 때리며 '글을 쓰라'고 하는 것 같은... 그러니까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사토 : 하시다 씨가 걱정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영혼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15-4 "천국에 가기" 위해 떨쳐 버려야 할 것들
하시다: 그럼 죽은 후에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사토: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는, 영능자에 따라 각각 다른 의견이 있지만, 계속 구전되고 있는 하나의 사고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은 육체와 영혼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어 죽으면 육체는 재가 되지만 영혼은 남아 3차원의 이 세상에서 4차원의 세계로 간다는 것입니다. 영혼에는 살아 있을 때의 파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파동이 높느냐 낮느냐에 따라 4차원 세계에서의 행선지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파동이 높으면 영혼은 높은 영혼의 세계로 간다는 것입니다.
하시다: 높은 영혼의세계란 무엇입니까?
사토 : 4차원 세계라는 것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유현계(幽現界), 유계(幽界), 영계(霊界)로 종(縱)으로 나누어져 있어, 우선 죽으면 가는 것이 유현계이고 그 위에 유계, 영계가 있고, 더 위에는 신계(神界)가 있다고 해요. 영혼이 가지고 있는 파동에 의해 영계로 올라가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언제까지나 유계에 머물러 있는 영혼도 있으며 유계 밑에는 지옥도 있다고 해요.
하시다: 나는 지옥에 갈 것 같아요. (웃음) 지금까지 전혀 좋은 일을 해오지 않았으니까.
사토 : 자살한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신이 주신 목숨을 제멋대로 끊은 거니까.
하시다 : 무서워요.
사토: 무섭지요. (웃음)
하시다 : 그럼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토 : 알기 쉽게 말하자면, 원망이나 앙심 그리고 물질적인 욕망이라든가, 강한 집착이나 정념(情念) 같은 것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 건 영혼의 파동을 낮추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한 마음가짐이라고 하네요. 나는 화를 잘 내서 위험할지도 몰라요. (웃음)
하시다 : 제 정념은 남아 있지 않아요. 원망하는 사람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요. 사후에 남는 것은 모두 하시다 문화재단에 기부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뒤끝도 없어요. 만약 이것이 유산 상속으로 이어져 옥신각신하게 된다면 편안히 죽을 수도 없게 될 터이니까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러기 위한 준비도 하여 두고 있습니다.
사토 : 그래서 하시다 씨는 좋겠습니다. 죽음을 맞이하기에 이상적인 마음의 상태인 거죠. 거기에 가면 소설가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 소설은 정념이 없으면 쓸 수 없으니까요.
하시다 : 재미있군요. 듣다 보니 사후의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어요.
사토 : 그래요, 하시다 씨는 정말 악의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천국에 가실 겁니다.
하시다 : 글쎄요. 두고 보세요. "마침내 그 사람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어" 라고 말씀하실 때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 II 작가 될 때까지
15-5 의사가 염분섭취를 줄이하라고 하지만
하시다 : 사토 씨는 친구가 많으시지요.
사토 : 이제 다 죽었어요. 예를 들어, 나카야마 아이코(*中山あい子 소설가 1923~2000)는 정말 친했기 때문에, 지금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이것을 이야기하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같이 웃는 친구들이 정말 이젠 없어요.
하시다 : 그렇군요. 저는 그런 친구는 원래 없어요.
사토: 외롭지는 않습니까?
하시다 : 전혀 외롭지 않아요. 계속 좁은 업무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신경을 써왔으니까. 친구가 없는 게 오히려 좋았어요. 지금은 일은 줄이고 있고, 1년에 한 번 세계 일주 여행의 배를 타는데, 배 위에서는 혼자 있어도 친구가 생기는 거예요.
사토 : 저는 편협해서인지 처음 만난 사람과 그렇게 친해질 수는 없어요.
하시다 : 선상에서의 교제는 재미있어요. 부담감 없는 교제니까요.
사토 : 마음을 모르면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까?
하시다 : 아니, 마음을 모르니까 더 재미있어요. 마음을 알고 있으면 더 신경 쓰이지요.
사토 : 어머, 나와 하시다 씨는 전혀 반대군요.
하시다 : 사토 씨는 따님과 손자와 함께 살고 계시지요.
사토 : 2세대 주택에서 위와 아래로 나누어져 있어 함께 살고 있지는 않아요.
하시다: 취사 같은 건?
사토 : 제가 스스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시다 : 와, 대단하십니다. 나는 아예 안 해요. 남편이 있는 동안은 세 끼를 제대로 만들었지만, 혼자가 된 지금은 절대로 하기 싫어서 가사도우미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사토 : 저는 요리 하는 것을 비교적 좋아해요. 하루 종일 글만 쓰다보니.
하시다 : 아, 그래서 기분 전환으로 요리를 하시는군요.
사토: 그렇습니다. 요리는 창의적인 면이 있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나는 구미가 까다로워서 내 식성세 맞추어 만들고 있어요. 하시다 씨는 가사도우미에게 식사 취향에 대해 요구 사항을 전하고 계십니까?
하시다 : 아무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식단표가 건강을 위해서 염분이 적은 내용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사토 : 제 경우엔 염분을 적게 하라고 의사가 말하고 있지만,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시다 : 저도 직접 소금을 뿌리기도 합니다(웃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토 : 영양제 같은 것도 먹지 않고, 심장과 혈압약만 먹어요.. 혈압은 아침 저녁으로 체크하여
그래프를 만들어서 의사에게 가져가야 해요.
하시다 : 저도 재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143이었습니다.
사토 : 제 경우는 143은 보통이고 오늘 같은 경우는 160이었어요.
하시다 : 저는 그렇게 높아 본 적은 없었어요(웃음). 하지만 높을 때가 더 건강한 것 같아요.
사토 : 그래요. 낮으면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하시다 씨는 혼자 살고 있습니까?
하시다 : 네. 지금은 1년에 한 편 정도 작품을 쓰고 있는데, 가사도우미만은 인건비를 아끼지 않고 다섯 분을 교대로 오게 하고 있습니다. 오전에만 와서 집안일이나 취사의 도움받고, 오후부터는 저 혼자 TV를 보거나 일을 합니다.
사토 : 혼자 있을 때 전화가 울리거나 택배가 오거나 할 터인데...
하시다 : 택배는 오전 중, 가정부가 있는 동안을 지정해 두고 오후에는 전화가 울려도 거의 받지 않아요.
사토 : 제 경우는 전화가 울리면 달려서 받거든요.
하시다: 네엣 !
사토 : 울리고 있다는 것은 용무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걸 무시할 수가 없어요. 가정부가 받아도 결국 나한테 가져오기때문에 처음부터 내가 받는 게 빨라요.
하시다: 저 같은 경우는 가끔 받아도 모르는 사람이면 (목소리 톤을 바꾸어) "죄송합니다. 지금 외출 중입니다" 라고 합니다.(웃음)
15-6 각본 쓰는 게 소설 쓰는 것보다 편한가요?
사토 :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하시다 씨가 나의 유머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가 걸작이었죠. 하지만 창작이 아니고 원작이 있는 것을 각색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하시다 : 글쎄요, 드라마가 실패하면 각본가의 책임이고 성공하면 원작의 힘이라고들 해요. 그 다음은 배우이고.
사토 : 글쎄요? 저는 드라마의 성공은 각본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배우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각본으로 정해지는 거 아닐까요?
하시다 : 잘 안 되면 각색이 안 좋은 탓이라고들 하더라고요. 각색작업은 마뜩찮은 일이지요. (웃음) 하지만 소설을 쓰는 것보다는 편해서 좋아요.
사토: 편한가요? 소설이라면 지문(*地の文설명문)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각본은 설명을 하지 않고 보는 사람이 스스로 알게 해야 하잖아요! 게다가 드라마는 시간의 제약도 있고요.
하시다 : 그런 건 별로 어렵지 않아요. 대충 잘라내거나 붙이면 돼요.
사토: 어떻게 해서든 이 부분은 잘리지 않게 하고 싶다는 곳이 있을 때는?
하시다 : 그런 곳은 남기고 다른 곳을 잘라달라고 부탁 해요. 많이 적어놓으면 제작진이 필요 없는 곳을 지워주니까요. (웃음)
사토: 여러 사람의 힘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거니까. 자기 혼자 열심히 하는 소설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하시다 : 각본과 소설은 하는 일이 달라요. 각본은 여러 사람과 관계되어 제약이 많은 가운데 자신을 조금씩 드러내는 일이니까요. 어떤 때는 "당신들 알아서 하세요!" 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방송 된 후에 폄하의 말을 들으면 좀 힘들기도 하지요.
사토 :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못마땅한 때는 없었습니까?
하시다 : 그런 적은 없었어요.
사토: 그래요?
하시다 : 사람마다 개성이 있는 연기를 해서 보는 사람들이 재밌있어 해요. 같은 대사라도 배우마다 표현이 전혀 달라요. 연속극 '오신'은 고바야시 아야코(*小林綾子 배우 1972~)가 아니었으면 안 될 뻔 됐어요. 연속극 '살아가는 세상에는 괴물뿐' 에서도 배우에 따라 다른 것이 재미있어요. 소설이었다면 그렇게 안되죠.
사토 : 어느 쪽인가 하면, 소설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 같은 부분이 있어요. 독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쓴다는 작가도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하시다: TV 촬영 현장은 오랫동안 남자들 판이어서 불편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싸워온 것이 모두 밑거름이 되어 지금까지 드라마를 쓸 수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아무에게도 원망하지 않아요. (웃음)
15-7 전쟁 중 남자가 없었던 때는 혼자 힘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사토 : 하시다 씨는 살아오면서 아둥바둥 어려웠던 적은 별로 없었겠지요? 남자한테 배신당했다든가, 인간관계의 갈등 등으로...
하시다 : 네에, 그런건 없었어요. 남자는 남편밖에 모를 정도이고, 사랑도 해본 적이 없고.
사토 : 그런데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쓰셨군요.
하시다: 그건... 상상력의 힘입니다.
사토 : 역시 상상력이군요. 나는 글쓰기라는 것은 희로애락의 여러 가지 체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드라마를 쓸 수 있다는 게 대단합니다.
하시다 : 연애물은 그다지 쓰지 않습니다.
사토 : "인간모습(人間模様)"은 쓰고 계시잖아요.
하시다: 그건 시어머니도 있었고, 주부로서 제대로 남편을 내조하고 있었으니까 가능했습니다. 글쓰는데 가장 참고가 된 것은 "히토토기(한때)" 라는 신문의 독자투서였어요. 그게 굉장히 공부가 됐어요.
사토: 글쓰기를 좋아하셨어요?
하시다 : 글쎄요...차츰 좋아졌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돈이 목적이었어요. 당시 부모님과 의절해 있었기 때문에요.
사토: 왜 의절했어요?
하시다 : 여대를 나왔더니 정해 놓은 사위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의 연구소 조수와 결혼하라는 것이었어요. 그게 싫어서 와세다대에 들어가서 다시 대학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의절하고 자립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토 : 어머, 그랬어요.
하시다 : 원래 여대에 가는 것도 반대하시다가 오사카의 전문학교에 가라고 하는 것을 뿌리쳤어요. 전시 중에는 학교에라도 가지 않으면 징용되었지요.
사토 : 그래요, 저도 첫 결혼은 징용 때문에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시다 : 당시엔 대부분 그랬죠. 그런데 저가 다니던 여대가 결국 폐쇄되고 징용으로 오사카 해군 경리부라는 곳으로 가서 특공대 가는 사람의 명부만 쓰고 있었어요. 이 사람 결국 죽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불쌍했어요. 본토 결전이 되면, 목숨은 모두 나라의 것이라 하여 죽을 게 뻔했죠. 미군이 상륙해 오면 단노우라(*壇ノ浦: 1185년 지금의 下関인 단노우라 전투에서 平家가 源氏에게 패한 해안)의 헤이케(平家)처럼, 나도 바다에 몸을 던지고 죽게 되는 줄 알았어요.
사토 : 어디였을까, 낭떠러지에서 여자가 바다로 뛰어드는 사진이 신문에 나온 거 기억 안 나세요?
하시다 : 그건 사이판이에요. 뛰어들어 떨어지고 있는 것을 찍은 거죠.
사토: 음, 떨어지는 것을. 미군이 오니까 자결한 거잖아요. 여자들이.
하시다 : 정말 놀랐어요.
사토: 그때 아버지(*佐藤紅緑 작가1874~1949)가 오늘 신문은 보지 말라고 했어요. 젊은 제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랬대요. 본다고 별로 충격받을 내가 아닌데. (웃음)
하시다 : 아하. 전쟁 중에는 정말 남자가 없었고 여자들은 필사적이었어요. 그래서 자립하여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좋았을 수도 있었겠어요. 그 때문에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5-8 "시집가는 것보다 글쓰기가 낫지 않았을까?"
사토 : 꽤 젊었을 때부터 하시다 씨의 이름을 듣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계속 순조롭게 일의 의뢰가 오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하시다 : 순조롭지는 않았어요. 3년 정도는 일이 없어서 소녀소설을 쓰며 생계를 유지학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름이 나게 된 건 서른여섯 살 무렵. 그때까지는 필사의 노력을 했어요. 그러다 41세에 결혼해서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어져서야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오신'은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토 : 저는 25세 때부터 나오키상을 받은 45세 때까지 오랫동안 팔리지도 않는 소설을 써왔어요.
하시다 : 소설은 힘들어서 나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사토 : 저의 경우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첫 남편이 군대에서 모르핀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일 솜씨도 없이 빈둥대는 딸이 돌아온 것을 어머니는 매우 걱정하셨어요. 당시에는 전쟁 미망인이 많이 있었지만, 여성은 바느질이라든가 차도라든가, 신부수업 등으로 익힌 솜씨 등을 잘 살려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하시다 : 그때는 그랬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건 서툴러서 엄두도 못냈습니다.
사토 : 저도요.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때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아이코는 협조성이 없기 때문에 재혼도 할 수 없고, 직장에 나간다고 해도 일주일도 못 가서 그만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게 협조성이 없는 아버지도 글쓰기라면 혼자 할 수 있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했어요.
하시다 : 어머님이 혜안을 가졌셨군요.
사토 : 게다가 아버지가 생전에 '아이코는 글재주가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시집살이에서의 투정이나 시어머니 험담을 재미있게 편지에 써서 보낸 것을 읽은 아버지가, 아이코는 시집가는 것보다 작가가 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라고.
하시다 : 아, 쓰는 재능은 아버님으로부터 물러받은 DNA군요.
사토 :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밖에 없는 인간은 그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이 되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장점이 없는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는 있었다. 다급해지면 뜻밖의 힘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시다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사적으로 쓰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사토 : 하지만, 저는 정말 처음에는 문학이 뭔지도 몰랐어요. 세계 문학을 탐독하다 창작 동인 잡지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두 번째 남편이 될 사람한테서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하시다 : 그랬습니까? 그래서 재혼도 하셨군요.
사토 : 문학적으로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본질적인 것까지 생각하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자만심이 강하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결국 망하게 된 거예요.
하시다: 사토 씨의 '고난이 끝나니 날은 저물고'는 남편의 빚을 진 경험을 바탕으로 쓰셨죠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 작품은 못 쓰셨겠죠.
사토 : 억울한 심정 때문에 잘 말하지 않지만, 그 사람 덕분에 프로가 될 수 있었다는 고마움은 있어요. 빚을 대신 갚을 때도 그 생각을 해요. 당시에는 아직 나오키상은 받기 전이었지만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올라 있었고, 작가로서 이대로 나아가면 되겠다는 데까지는 도달했어요. 그 사람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5-9 궁핍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글을 써 오셨군요
하시다 : 어려운 시대였지만 정말 잘 버티며 살아 왔다고 생각해요. 전쟁 속에서 궁핍한 세월을 버텨냈고, 책이 팔리지 않는 시기를 이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나이만은 못 이기겠네요.
사토 : 하시다 씨는 저보다 나이가 어리기(*두살) 때문에 모를 지도 모릅니다만 아흔다섯을 넘어보세요. 정말이지, 힘도 나지 않고, 머리가 부글부글해집니다. 옛날 같으면 하루나 이틀이면 그럭저럭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원고지를 앞에 두고도 생각이 뜨오르지 않거든요.
하시다 :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업무관계자로부터 생일 축하를 많이 받거나 하면, "역시, 글을 쓰야만 해" 라는 각오가 생겨 1년에 한 편은 쓰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사토 :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오늘은 그것을 써야겠다든가, 오늘은 누군과와 용무가 있다든가, 일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굉장히 좋은 기분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하시다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을 하게되면 즐겁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지요. 저는 마감이 없는 인생을 오랫동안 고대했지만, 역시 마감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네요. 하지만 그것이 활기의 근원이라고 하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토 : 결국 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이군요.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하고 싶은 거죠. 그런 일을 하게되어 그걸 평생의 소일거리로 만들 수 있었어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시다 : 네. 저도 글을 쓴다는 것이 더욱더 좋아졌으니까요. 행복해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거죠.
사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일생을 마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요? 설령 아무리 고통스러은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95세 부인공론 1919년 8월 27일호/9월 10일호)
※ 하시다 스가코: 1925년 경성부(현재의 한국 서울) 태생. 아홉 살에 오사카부로 귀환. 쇼치쿠
(*松竹 연예관계회사) 근무를 거쳐 1959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약. '오신' '카스가노츠보네'
(*春日局: 1600년대의 인물 徳川家光の乳母)
'세상은 도깨비뿐' 등 수많은 히트 드라마를 만들었다. 2015년, 문화 유공자로 선정. 근저에 「안락사로 죽게 해주세요」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