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춘장 수필 이진연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한갓 벌레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이 일은 사실 일 일상에서도 간혹 일어난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삶과 내면은 인간이라기보다 추한 괴물이나 더러운 벌레보다 못 한 경우를 종종 발견 할 수 있다. 우리 삶의 주변에는 괴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먼저 우리의 악습과 한계상황이 괴물이다. 자신의 단점을 뻔히 알면서도 엄정한 결단을 엄정한 내리지 못하고, 삶의 태도를 바꾸지 못할 때 우리는 가장 무서운 괴물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되다 괴물을 키운 것은 바로우리 자신이다.
처음엔 귀엽고 재미있어서, 조금 더 지나면 측은하고 불쌍해서, 나중엔 겁이 나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방임하다 보면 결국 도저히 감당 할 없는 불가사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타인들이 간혹 괴물로 돌변 할 때 가있다. 원래 인간(人間)은 ‘사람 인(人)’자에 ‘사이간(間)’자를 써서 사람사이서 소통하며 사는 법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사정을 살피고, 각자의 맡은 역할들을 통해 함께 어울려져 살 때야 비로소 인간적으로 산 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이들은 유기적인 소통이 없어 항상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이아니라 그 괴물은 처음엔 은 처음엔 작은 밥알을 주워 먹다가 씹어 먹고 나중에는 그릇을 나중엔 공동체의 모든 분위기를 집어삼키고 만다. 이들에 대해서는 마냥 좋은 마음과 이해심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고집스레 자존심을 꺾지 않은 이들에게 단호하고 다급한 뭔가가 필요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에게는 더 이상 일고의 가치가 없다. 그 때부터는 대화와 말보다는 말 보다는 온 몸이 느끼도록 해주는 수밖에 없다. 말귀 안 통하는 짐승은 때리고 부려야 말을 듣듯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고통을 느끼고 상처를 받도록 해주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