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장
엄니 꽃 — 추석날의 풀 한 망
추석이 다가오면
내 마음에는 먼저 둥근 보름달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은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살아가지만,
내 어린 시절의 추수감사절은 추석이었다.
한 해 농사의 수고를 거두고
멀리 객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우리 집에도 객지에 나가 있던 형들이 돌아왔고,
동네 골목에도 서울이며 타지에 나가 살던 형들과 누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마을이
추석만 되면 갑자기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집집마다 송편을 빚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밤이 되면 더 좋았다.
둥근 보름달이 마을을 환하게 비추면
동네 사람들은 달빛 아래 모여 강강술래를 했고,
한쪽에는 임시로 마련한 모래판에서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추석은
그야말로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날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내 어린 시절 어느 추석날은
조금 달랐다.
추석 아침,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오늘 아침에는 쉬고, 오후에 논둑에 나가서 소 먹일 깔을 피워 오너라.”
우리 고향 전라도에서는
소에게 먹일 풀을 ‘깔’이라고 불렀다.
낮에는 소를 논두렁이나 산에 풀어놓으면
제 스스로 풀을 뜯어 먹었지만,
저녁에는 외양간에 넣어야 하니 먹일 풀을 따로 베어 와야 했다.
작은 망 하나와 낫을 들고
논두렁과 강가를 돌아다니며
소가 좋아하는 풀을 골라 베어 망을 가득 채우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날 나는 속으로 꾀를 하나 냈다.
‘어차피 오늘 해야 할 일인데 아침에 해버리면 되지 않을까?’
오후가 되면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객지에서 돌아온 형들과 누나들도 만나고 싶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추석날의 들뜬 마을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낫과 망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직 햇살도 제대로 퍼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논두렁에는 밤새 내려앉은 이슬이 맺혀 있었고,
풀잎을 헤치며 걸을 때마다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강가의 풀잎들도 이슬을 머금고 반짝였다.
나는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았다.
낫으로 풀을 베고 또 베었다.
망이 차오를수록 내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이것만 다 채우면 오후에는 자유다.’
마침내 망 가득 풀을 베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 마음은 벌써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조금은 자랑스럽게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니, 소 먹일 깔 다 베어 왔어라우,
오후에는 친구들이랑 놀다 올게요.”
나는 당연히 어머니께서 칭찬하실 줄 알았다.
“잘했다. 일찍 해놓으니 얼마나 좋으냐. 가서 친구들이랑 놀다 오너라.”
아마 그런 말씀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가 언제 아침에 소깔을 베어 오라고 했냐?
오후에 베어 오라고 했제.”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피워 왔으니까 됐잖아요.”
어린 마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호하셨다.
“오후에 가서 다시 베어 와라.”
내 마음은 이미 친구들과 함께
추석 하늘 높이 푸른 창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에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아침에 이미 한 망 가득 베어 왔는데
왜 또 가야 하는지 억울했다.
하필이면 추석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서울에서 온 형들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후가 되자
또다시 낫과 망을 들고 강가로 향해야 했다.
멀리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래판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고,
마을 여기저기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왜 나만 이래야 하나.’
어린 마음에는 서운함도 있었고,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머니 말씀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나는 영산강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다시 풀을 베었다.
낫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왜 어머니께서
아침에 이미 해놓은 일을 오후에 다시 시키셨는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나는 그날의 어머니 말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내게 가르치려 하신 것은
풀 한 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느냐만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는 것.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놓았으니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편의대로 약속을 바꾸는 것과
맡겨진 일을 제대로 따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께서 일을 시키시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듣지 않았다.
언제 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마음속으로 챙겼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하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처음 배운 삶의 규율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와 살아보니
사람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가정에도 질서가 있고,
학교에도 규칙이 있고,
군대에도 규율이 있고,
직장에도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더 좋은 방법 같아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내 생각만이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기본을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어머니에게서 먼저 배웠던 셈이다.
어머니는 내 앞에 앉혀 놓고
인생을 길게 설명하신 적이 없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런 말씀도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저 삶으로 보여 주셨고,
때로는 어린 아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면서까지
스스로 깨닫게 하셨다.
그날 추석 오후,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강가에서 풀을 베던 어린아이는 몰랐다.
자기가 베고 있는 것이
소에게 먹일 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풀잎 사이에서
나는 약속을 배웠고,
책임을 배웠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지금에야 알 것 같다.
어머니는 내 손에 낫 하나를 쥐여 주셨지만,
정작 내 가슴에 쥐여 주신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나침반 하나였다.
추석 보름달이 뜨면
나는 가끔 그날의 강가를 떠올린다.
이슬에 젖은 논두렁,
풀 냄새 묻은 작은 망,
멀리서 들려오던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나를 다시 강가로 보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때는 야속했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그립다.
세상에는 말로 가르치는 스승이 있고,
책으로 가르치는 스승도 있다.
그러나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스승은
삶으로 가르치신 어머니였다.
그날 내가 베어 온 풀은
그날 저녁 소가 다 먹어 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내 마음속에 심어 놓으신 가르침은
긴 세월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추석 보름달이 다시 떠오르듯
그 가르침도 내 삶의 어느 길목에서
조용히 다시 떠오른다.
그것이 어머니가 내게 남겨 주신 꽃,
세월이 흘러도 시들지 않는
또 한 송이의 엄니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