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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공석 신부] 세례와 하느님 자비 선포
지금여기 강론대 (주님 세례 축일) 마태 3, 13-17. 이사 42, 1-4, 6-7.
서공석 | editr@catholicnews.co.kr
그때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 강으로 오시어 요한에게 나타나셨다. 그러나 요한은 그분을 만류하며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당신이 제게 오시다니요?” 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지금 이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그제서야 요한은 그분 (뜻)대로 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즉시 물에서 올라오시니 마침 하늘이 열리고 또한 보시니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리어 당신 위에 왔다. 그리고 마침 하늘에서 소리가 울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 (마태 3,13-17)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알립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요구하고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 주기를 사양합니다.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보도합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예수님보다 세례를 준 요한을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위험이 있어, 복음서들은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각각 장치들을 합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살아 있으며 세례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복음서가 예수님은 세례를 요구하고, 요한은 사양하는 것 같이 보도하는 것도 그런 장치의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말합니다. 이 때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소리가 들려왔다고도 말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노래한 시편 2장에서 가져 온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표현은 오늘의 제1독서에서 우리가 들은 이사야서, 야훼의 종에 대한 노래에서 가져왔습니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이 구절에서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기대하던 구원자이지만, 이사야서가 노래한 고통당하는 야훼의 종과 같이, 하느님을 알리다가 고통당하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 팔레스티나에는 다양한 세례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세례자 요한의 것입니다. 그 시대 세례 운동가들은 흐르는 물에 사람의 몸을 잠기게 하여 죄를 씻는, 일종의 정화(淨化) 의례를 행하였습니다. 그 운동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혹은 성전에 정해진 제물봉헌을 하지 못하여, 죄인이 된 사람들에게 죄를 씻어주며, 그들을 죄의식에서 해방시키는 의례였습니다.
요한이 행한 세례는 다른 세례운동가들이 하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다른 세례 운동가들의 세례는 필요에 따라 몇 번이라도, 죄를 씻어주는 정화 의례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사람이 회개할 것을 약속하면서 일생에 단 한 번 받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일찍이 요한의 세례운동에 가담하셨습니다.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게로 이어지는 이 회개 운동은 그 시대 유대교가 가르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대교는 율법준수와 성전의 제물봉헌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지키고 바칠 것을 요구하면서 그 시대 유대교는 이스라엘 신앙의 근본인,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잊어버렸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면서 심판하실 하느님을 상기시켰습니다. 후에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가르쳤지만, 그 하느님은 심판자가 아니라, 자비하신 아버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자비를 사람이 실천하며 살아서 아버지의 뜻을 땅에서 이루는 그분의 자녀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요한의 세례운동은 율법과 제물봉헌에 충실하지 못하여, 죄인이 된 사람들에게 회개하면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그와 더불어 요한은 유대교가 지닌 민족적 배타성을 배제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은 이 돌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다.”(루가 3, 9)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내세워 타민족 앞에 우월감을 갖는 관행을 비판하는 말입니다. 타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우월감은 그 민족 안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우월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유대교는 율사와 사제들의 권위를 과장하면서 하느님이 자비하시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 운동에 일시 가담하였다가 후에 독자적인 길을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요구하던 바를 더 발전시켜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과 같이 물로 씻는 의례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의 죄를 직접 용서하는 실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마르 2, 17)고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절대화하여 강요하던 안식일 계명에 대해서도 가히 혁명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다.”(마르 2,27). 유대교는 질병을 인간 죄에 대한 벌이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면서 병고가 하느님이 주신 벌이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주었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을 ‘세례’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루가 12,50), 혹은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마르 10,38) 등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세례라 불렀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깨달음과 실천은 그분을 죽음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요한이 세례로써 사람들에게 일으킨 운동은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실천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분이 요한의 세례 운동에 가담하면서 그것이 요구하던 바를 당신의 삶으로 실천하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우리 죄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당신의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효도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듯이, 하느님을 믿는 것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실천에 충실하였습니다. 그 실천들이 그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었기에, 그분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우리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일이 하느님의 것이었기에 그분은 하느님 안에 살아계신다는 부활 신앙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세례는 예수님의 실천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입문 의례입니다. 결혼식이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의례이듯이,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을 시작하겠다는 의례입니다. 세상은 용서하지 않고,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은 용서하고 살리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차별하고, 높은 자와 낮은 자를 차별합니다. 그리고 높은 자와 가진 자 편에 서는 것이 현명하다고 세상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갖지 못한 자와 낮은 자도 행복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가난한 이와 우는 이도 행복해야 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서 사는 신앙인은 그것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대가가 십자가로 돌아오더라도 신앙인은 하느님을 희망하면서 그것을 감수합니다.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스스로 실천하며 아버지의 일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실 것을 빕니다.
서공석 신부 (요한 세례자)
성서함께읽기2강 세례 이야기(세례요한의 세례와 예수)
허정섭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bbs/3691
◎ 읽을 말씀 : 루가 3장 1-22절
◎ 더 읽을 말씀 : 마태 3장 1-17절, 마가 1장 1-13절,6장 14-29절,
요한 1장 19-39절
1. 세례라는 단어의 뜻
세례는 그 의미와 그 형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모든 교파들이 다 시행한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으나 세례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세례(βαπτω)가 호머의 오딧세이에서 “~안에 살짝 담그다” 혹은 “~아래 잠기다”로 사용. 고대 파피루스에는 염색된 것을 나타낼 때 사용. 그 강조형의 형태는 히포크라테스, 플라톤, 그 이후 제자들에게 “담그다”로 사용. 헬레니즘 문화에서는 “목욕하다. 씻다”라는 의미로 사용. 70인역에서는 세례라는 용어가 2열왕 5장 14절에서는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몸을 씻는 장면에서 사용되었고 사사기에서는 “두려움, 놀램” 등의 비유적 의미로 사용. 또한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성전제사에 봉사하기 전에 “씻음”(출애 29,4: 40,12)에서와 하느님께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전쟁과 그 씻음에 대한 예언에서 사용.(에제 16,4) 신약에서도 세례라는 용어는 형태의 다양성을 드러내면서 “살짝 담그다, 잠깐 담그다” 혹은 “잠기다, 가라앉히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배가 가라앉다.” 라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2. 세례의 배경(세례의 기원)
① 할례의식
할례는 고대로부터 널리 행해지던 관습으로 히브리인들만의 의식은 아니었다. 바벨론과 앗시리아를 제외한 이집트, 대부분의 셈족들에게 할례가 행해졌다. 히브리인들은 생후 8일된 남자아이들에게 이 의식을 베풀었다. 이러한 할례의식은 선택된 백성의 공동체 가입과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에 계약의 참여라는 의미를 갖는다. 할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공동체에 연합하고 가입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구약의 할례는 두 가지의 기능을 갖는데 그 하나는 구원을 위한 희생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언약의 표시이다. 이러한 할례는 배타적인 것이 아닌 개방되어 이방인도 이스라엘 언약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② 정결의식
- 이방종교의 정결의식
인류의 종교사는 시대마다 종교적 청결을 위하여 물을 사용하여 씻는 예법은 일찍부터 행해졌다. 이전부터 물은 종교적 정화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형태는 대상에게 물을 뿌리거나 퍼부었으며 또는 물에 담그거나 씻음으로 그리고 물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으로 시행되었다.
- 구약에서의 정결의식
물로 씻어서 정결케 하는 의식은 이방종교들에서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마다 성결하게 하기 위해 부정한 것들을 피하며 제거하는 여러 가지 의식적 청결과 씻음(목욕재계)의 의식을 갖고 있었다.
③ 유대교 개종자의 세례
BCE 1세기 경 고대 유대교에서는 남자 개종자들에게 세 가지 필수적인 의무를 부여하여 실시하였다. 할례, 세례, 희생제사였다. 할례와 희생제사는 구약성서로부터 유래했으며 세례 형태는 탈무드에서 볼 수 있다. 랍비들은 개종자들에게 세례를 행하기 전에 그 동기의 신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유대교 특유의 계명들을 문답식으로 간단하게 가르쳤다. 그 후 수세자는 회당의 대표를 포함한 증인앞에서 혼자 흐르는 물 속에 전신을 담구었다.
④ 에세네파의 세례
BCE 2세기 경 팔레스틴의 에쎄네파는 그들 나름대로 특이한 경건의식의 씻음을 시행하고 있었고 쿰란 사회의 수도원이나 지역사회의 본부에서 있었던 고고학의 발굴은 세례시 사용한 물탱크가 발견되었으며 사해 두루마리에서도 “목욕물이 효력을 내려면 그들이 참회와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3. 세례요한에 대해서
① 세례요한의 삶과 선포 그리고 죽음
세례요한의 출신에 대해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누가의 기록인 1장 5절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부모는 사제가문이었으며 특히 그의 아버지는 즈가리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는 아비야 조에 속하는 사제 중의 한사람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성전체제는 개개의 사제조의 우두머리들은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면서 성전안에서나 도시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를 차지하였다. 반면 대다수의 사제들은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밖의 마을에서 살았다. 그들은 소위 24개의 당직반으로 편성되어 각 조 마다 일주일씩 봉직하였다. 일주일이 지나면 다음 당직반과 교체하여 돌아갔다. (여기서 누가는 분명 8절에서 즈가리야가 사제 직분을 이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정황상 즈가리야는 하층에 속하는 일반 제사장 계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사제의 생활은 경제적, 지위적 특권이 주어지지 않아 그 생활은 오히려 민중들과 가까웠다. 이런 배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세례요한이 당시의 귀족적, 특권적인 사제집단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자명한 현상이었다.
세례요한의 모습은 에쎄네파 에쎄네파는 종말이 임박했다는 기대하에 당시 부패했던 성전 제도의 모순을 피해 속세로부터 분리되어 광야에서 생활하던 일종의 묵시적이 공동체로 이들은 율법적, 금욕주의적인 동시에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던 완벽을 추구하는 공동체였다.
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의 생활 양식도 역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양자 사이에 실제적인 유대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차이점들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세례요한이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 성질은 에쎄네파와 같은 공동체의 사람들을 거룩한 무리의 공동체로서 다른 백성들과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공동체는 단지 온 이스라엘 백성, 회개한 아브라함의 자녀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에쎄네파가 매일 계속되는 정결례를 행하는 배타적인 공동체였던 반면 세례요한의 세례의식은 모두에게 요구되는 회개의 마지막 행위로서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 유일회적인 의식이었다.
복음서는 세례요한을 준비하는 자로 혹은 예비자로 묘사한다. 세례요한의 특징적인 사역 중에서 주된 사역중의 하나는 예언자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었다. 구약적인 배경에서 볼 때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주된 사역이다. 세례요한의 모습은 백성의 죄를 책망하고 강력히 회개를 촉구했는데 이런 면에서 당시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구약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참된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막11:32) 그는 종말이 임박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임박한 종말 앞에서 자신의 정화됨으로 만족하지 않고 일반대중들을 함께 준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임박한 종말의 성격을 배경으로 심판과 이 심판의 주권자인 뒤에 오시는 이에 대한 선포와 이에 대처하기 위한 회개의 촉구가 그 주된 틀을 이루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똑같이 회개의 촉구로서 세례요한의 사역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회개에로의 촉구는 다가올 심판에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심판과 회개의 촉구의 선포는 구원에로의 안전성을 전혀 기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눅3:8-9) 따라서 유대인은 하느님 앞에서의 모든 종교적 특권은 부인되며 유대인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하느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식으로 세례요한의 심판 선포는 다급하고 절박함으로 모든 유대민족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누가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윤리적 회개를 외치는 설교자의 위치를 넘어서 구체적인 현실문제에 대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추상적인 도덕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자기 만족을 위해 배고픈 민중들의 밥상을 가로채고 있는 자들을 향해 경고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사역과 선포는 예언자 전통의 의식적 재현이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선한 사람이고 의를 전하는 설교자였으며 그의 설교를 듣고 고취된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으며 세례요한의 설교로 모여든 군중들의 자극하여 소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것을 두려워한 헤롯은 그를 감금하고 처형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세례요한이 지니고 있었던 대중적인 힘이 헤롯의 권력에 대항하여 반란세력으로 불거질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 이르게 되자 결국 세례요한을 반로마적 정치범으로 처형했던 것이다.
② 세례요한의 세례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씻는 행위는 유대교 안에서 매우 흔했다. 특히 세례요한의 배경이 되는 에쎄네파에서는 매우 세밀한 정결례의 규정을 만들어서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반복적이고 의식적인것이었다. 반면 세례요한의 세례는 일회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주는 개종세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세례요한의 세례의 대상은 주로 유대인이었다.
세례요한의 세례 목적은 무엇인가? 우선 그 시대적 분위기가 종말론적 배경이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세례는 특별히 급하게 다가올 심판을 바라보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심판을 면하기 위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 곧 속히 죄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세례, 죄를 용서받는 정화의식의 의미였다.
- 세례요한 세례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첫째로 율법의 정결의식들은 사람을 그의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키는 정제 행위들이었다면 세례요한의 세례는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준비의 과정이었다는 것과, 둘째 레위기적인 부정한 사람은 요단강가의 나아만 장군 같이 스스로 행동하지만 요한에게 왔던 회개자들은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는 점, 셋째 율법적인 의식들은 단순히 레위기적인 부정으로부터 씻는 것이지만 요한의 세례는 도덕적 정결의 상징이며 동시에 보증이었다. 네째 세례요한의 세례는 당시 팽배한 국수적인 민족우월에 따른 유대인들에 대한 방향전환이었으며 당시의 성전중심체제와 지배이데올로기에 따른 방향전환이었다. 결과적으로 세례요한의 세례는 즉흥적이거나 일시적인 이방세례에서 차용한 것이나 혹은 유대인의 정결의식을 그대로 도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로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종말론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회개한 사람들에게 용서받은 확신을 심어주며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생생한 경험으로서의 세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세례운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1세기 팔레스틴의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종교적 모순의 극복과 사회적 모순의 갱신을 위한 운동이었다. 즉 세례요한 의 세례와 그의 외침은 당시 유대사회의 사회적 분위기가 운동을 일으키게 된 주된 원인이었다. 당시 죄씻음의 유일한 방법은 희생제사를 지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가능하였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희생제사와 예루살렘 방문이라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죄를 사하는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렵고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물로 세례를 주어 죄를 용서받는 획기적이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정결케 되고 죄를 사하는 것이 반복적으로 희생제사에 의해 이루어지던 당시의 관습 속에서 그는 유일회적인 방법으로 그것도 거창한 제물이 아닌 물로써 모든 죄의 용서를 구하였고 모든 민중들이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길에 동참,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제귀족들에 대한 도전이자 성전 이데올로기를 파기하는 다분히 개혁적이며 혁명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즉 성전 중심의 구원적 요소를 무효화함으로써 성전체제 하에서 지배층들의 존재의 의미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세례요한과 예수 운동의 동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세례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와 그의 운동에 대한 적대자들 역시 성전체제와 계급체제의 주된 수혜자들과 그 체제를 옹호하는 종교적 권위자와 사제 귀족들이었다. 세례요한이 자신이 세례를 베풀 때에 세례를 받으러 나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며 적대시했던 것처럼(마3:7) 예수 역시 그의 공생에 기간동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충돌한다.
5. 본문읽기)
* 각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 수세 장면을 서로 비교하면서 읽어봅시다.
* 서로 다른점을 찾아보세요. 특히 예수와 세례요한의 관계를 중심하여 생각해 봅시다.
* 세례요한과 예수가 다른점이 있을까요?
- 공간의 문제 : 광야와 갈릴리
- 회개요청의 의미 : 심판의 임박성(미래성)과 구원의 현재성(구원의 축제성, 기쁨의 소식)
- 주체와 객체 : 민중들은 단지 객체적 존재와 민중들은 운동의 주체
- 세례의 유무 : 물로 주는 세례와 세례라는 상징의 무의미
6. 세례요한과 예수의 세례 그리고 세례의 의미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세례요한의 세례는 당시에 팽배했던 성전지배체제에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종교적 메커니즘에 의해 죄인으로 재생산되는 고리를 끊어버렸다. 또한 하느님나라를 준비하고 하느님의 심판 도래에 대한 독점적인 사제들의 특권의식 나아가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을 과감히 비판하며 유일회적이며 개방적인 세례를 통해 하느님나라를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를 통해 다시금 창조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예수는 세례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과는 달리 선포 혹은 말로써 죄를 용서하고 심판의 임박한 도래할 미래에 대해 구원의 기쁨과 축제의 소식을 선포하였다.
- 예수의 세례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또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대리적 수난을 예기하는 세례이다.(예수 수세장면에서 들리는 하늘의 음성) 그가 물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것은(마르코) 그의 죽음으로 장사된 것과 다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 세례의 행위는 예수와 함께 묻혀 장사되고 그의 부활을 따라 함께 일어난다. 따라서 예수와 함께 묻힘은 죄의 용서를 의미하고 무덤 가운데서 나타남은 새 생명 가운데서 일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
- 세례의 행위는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세례는 하느님나라를 위해 힘쓰는 자녀가 되기 위한 표시이다.
- 세례는 연합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의 차별성이 아닌 동등성, 평등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갈라 3,27-29)
-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의 참여, 윤리적이면서도 실제적이며 영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인 전적인, 전인적인 참여이며 따라서 세례를 받는 자는 하느님나라의 확장을 현재화하고 실현시키는 의미를 갖는다.(바울이 바라본 세례의 상징적 의미. 로마 6,3-7)
- 세례의 역할은 인간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은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7. 나가며...
세례를 받았던 때를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세례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설교자여, 먼저 회개하라!
[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5
그 무렵에 요한 세례자가 나타나 유다 사막에서 선포하여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했다. 이 사람을 두고 이사야 예언자를 시켜 말씀하셨다. “사막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고 그분의 길을 고르게 하라.”
그런데 요한은 낙타 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그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양식은 메뚜기와 산꿀이었다. 그때 예루살렘과 유다 전체와 요르단 부근 전체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의 세례 때문에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독사의 족속들이여,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당신들에게 누가 일러주었습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시오. 여러분끼리 ‘우리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모신다’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마십시오. 사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하느님은 이 돌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바야흐로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나는 회개시키려고 여러분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강하십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당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당신 밀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마태 3,1-12)
예수 유년기에서 30여 년 건너 예수가 공식 등장하는 30대 초반 시점에 대한 이야기다. 예수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은 성서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12살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람들과 토론하는 장면이 루카 복음에 나오긴 한다(루카 2,41-52).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저서 <나자렛 예수> 서문에서 7페이지에 걸쳐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논하고 있다. (루카 복음을 해설할 때 다루기로 하겠다.)
예수의 유년기 성장, 교육, 교우관계, 청년기 사생활 등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 시절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과 관계없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예수의 그 시절에 대한 각종 소설이 등장했다. 예수가 인도에서 공부했다는 소설도 있었다. 추측은 자유지만 그 타당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30대 초반에 예수는 세상에 비로소 등장한 셈이다. 당시 평균 수명과 결혼 연령을 고려할 때 요즘 한국에서 50대 연령대에 예수는 공식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는 청년 시절에 세상에 나타났다거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수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다는 설교가 요즘도 드물지 않다. 성서를 잘 모르는 탓에 생기는 실수다.
그런데 예수의 활동에 앞서 먼저 세례자 요한이 소개된다. 예수 운동이 세례자 요한 운동과 공통점이 많다는 뜻이다. 예수는 한때 세례자 요한 동아리에 속했다고 보인다. 예수는 그 문하생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그와 결별하고 독자적 운동을 시작한다. 예수와 세례자 요한은 그후 각자 운동을 계속한다.
세례자 요한 사후에 그 제자들은 예수와 관계없이 계속 활약한 듯하다. 예수 사후 예수 제자들과 요한 제자들은 경쟁 관계의 활동을 한 것 같다. 예수 제자들에게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고뇌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12 제자 중 몇 사람은 예수에게 오기 전 요한의 제자들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이미 예수가 알던 사람들이겠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 무리에서 사람을 빼내온 셈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예비한 역할로 그리스도교는 해석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어울리는지 논란의 대상이다.
“그 무렵에”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유일한 단어로서 메시아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뜻으로 이해된다(70인역, 예레 38,29). 세례자 요한은 예루살렘이나 성전에서 보이지 않고 사막에서 등장한다. ‘사막’은 단순한 장소 제시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신학적 입장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하늘나라”는 마태오에게 독특한 단어로서 회개의 근거이자 목표이다. 유다교에도 하느님 나라 대신 하늘나라 개념은 있었다. 유다교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삼가는 탓에 하느님 나라로 부르지 않고 하늘나라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아무리 하느님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호칭한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유다인들의 진지한 경외감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 하느님이 그리스도교에선 인플레 상태이고 유다교에선 디플레 상태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유다인들의 그런 부담을 마태오는 느끼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의 옷과 음식은 은둔자의 모습이다. 낙타 털옷은 가난한 사람들의 복장이다. 왕이 입던 옷과 대조적인 옷으로 예언자의 옷이다(즈카 13,4). 가죽 띠는 사막에 사는 베두인에게 흔한 모습이다. 가죽 띠는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직전에 나타난다는 엘리야로 표현하려는 마태오의 의도가 담긴 언급이다.
당시 유다교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 지배체제 아래 활동공간을 찾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요즘 쓰이는 정치적 분류를 빌리면, 유다교 좌파에 독립운동계 제로데파, 유다교 우파는 로마에 적극 협조하던 사두가이파가 위치해 있었다. 그 사이에 은둔파 에세느파, 중도노선 바리사이파가 있다. 사두가이나 바리사이에 가난한 사람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사두가이에서 갈라진 에세느파에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던 유다교 운동으로 사실상 제로데가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유다교 운동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호를 거의 개방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예수 당시 통계는 없지만, 유다인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추측된다.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정복했을 때(기원전 586년) 유다인 중 90%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세례자 요한 운동은 주로 세 가지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첫째, 반(反)유다교적 운동으로 해석되었다. “유다 사막”을 세상의 사막에서 사는 이방인 구원의 암시로 여기고, 유다교 율법과 제례의 폐지라고 해설했다(히뽈리트). 둘째, 오늘날에도 널리 퍼져있는 ‘세상에서 떠남’이라는 은둔적 해설(그레고리오 대교황)도 사막의 의미와 거리가 한참 멀다. 테르툴리아누스 이래 세례자 요한은 독신자로 규정되어 버렸다. 그가 독신이었는지 여부를 우리는 알 수 없는데 말이다. 셋째, 수도자 생활을 반대해온 개신교는 세례자 요한의 옷과 음식 등 금욕주의가 못마땅하였고, 반대로 가톨릭은 수도회 운동의 근거로 세례자 요한을 긍정적으로 주목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수도원 운동과 아무 관계없었으니, 둘 다 의아한 주장이다. 위 세 가지 관점 모두 세례자 요한 운동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세례자 요한의 운동은 어떤 주목할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가 가담했을까. 첫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권력에 대한 저항. 유다인은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유다교 본산으로 여겼다. 세례자 요한은 수도권 중심의 종교권력에 반대하여 사막에서 깃발을 내걸었다. 로마 제국에 협조하는 예루살렘 종교권력층에게서 하느님을 찾을 수 없다는 선언이다. 사두가이파와 적대적인 입장이 나타난다. 둘째, 모든 유다인을 초대한 그 개방성.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입회 가능했던 바리사이나 에세느파와 다르다. 셋째, 자기 개혁에서 종교운동의 시작을 선포함. 로마에 대한 무력투쟁을 우선한 제로데파와 다르다. 저항정신, 개방성, 자기 개혁이 세례자 요한 운동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된다.
오늘 이야기 후반부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늘 그리스도교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설교는 왜 그리 설득력이 적을까.
첫째, 성서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설교자 자신의 소감을 전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성서 지식이 낮고 명예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에 그런 설교가 생긴다. 설교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둘째, 설교자 대부분이 개혁 대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이 남에게 설교하는 모양이니 그 설교가 공감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죄 많은 사람들, 즉 권력자와 부자들에게 너그러움을 전하고, 반면에 소시민 신자들에게 가혹한 심판을 전하기 때문이다. 죄의 경중을 구분하지 못하는 설교는 부당하게 여겨진다.
넷째, 개인의 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만 사회악과 구조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정치적 처신이 정의롭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설교는 부당하게 여겨진다.
다섯째, 예수의 핵심 주제인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란 주제가 설교에서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설교자 자신이 가난하게 살지 않는 탓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설교자의 삶이 흐트러져 있고 성서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설교가 무의미하게 들리는 것이다. 남에게 설교하려는 자는 먼저 스스로 회개할 일이다. 설교를 먼저 자기 자신에게 하시라.
김근수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