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8- 여의도/ 김기원
날갯짓하는 한 마리 벌의
속삭임에도 설레며 털어놓는
들꽃
한 마리 호랑나비의 춤사위에도
가녀린 눈길 속으로 삼키고 마는
억새
어느 날 통통 덮어쓴 채 건너와서
뿌리내려 하나되는 꽃 피워내리는
방망이
한 마리 고추잠자리의 날개빛에
노랗게 물들고 얼룩져 밀어닥치는
너른 둔치
- 월간 <현대시학> 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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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지역의 면적을 언급할 때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듣는다. 장소의 넓이를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된다는 건 알겠는데 어째서 여의도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도심에서 그만큼 편평한 땅덩어리가 별로 없고 많은 사람들이 어림짐작이지만 그 크기의 감을 잡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비교를 통해 단순수치만의 제공보다는 개괄로나마 그 크기를 짐작하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 '여의도 면적'이란 게 뚜렷한 기준치가 없이 각각 제 입맛대로 갖다 붙여져 도무지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부처마다 다르고 같은 부처라도 발표하는 사안에 따라 또 달라진다. 행정구역상 여의도동 전체일 때가 있고, 수십 년 전 한강개발 이전 여의도 면적일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되레 헛갈리고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여의도는 오랫동안 들꽃과 억새들의 천국이었고 개발 전에는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었던 ‘비무장지대’나 다름 없는 땅이었다. 그런 곳이 70년대 이후의 본격적 개발에 힘입어 지금의 모습으로 크게 탈바꿈하였다. 국회의사당, 방송국, 63빌딩, 증권거래소, 전경련회관, 순복음교회, 종합안보전시관 등 이 나라의 상징적인 기관과 건물들이 줄을 이어 들어섰다.
금융 중심지역으로 서울의 맨하탄이라 흔히 불리지만 무엇보다 여의도는 우리나라 정치의 1번지이다. 국회의사당에서는 ‘방망이’로 상징되는 의사봉이 각종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하나 되는 꽃 피워’내려는 이상향의 실현을 위해 의원님들은 불철주야 바쁜 일과를 보내신다. 내일모레면 ‘정치인생’의 명암이 엇갈리면서 몇은 이곳으로 또 입성할 것이다.
여의도는 우리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소음과 스트레스 발생원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그 배출량을 줄이고 완화하기 위해 몇 년 전 일부 여의도 광장의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여의도공원이 들어선 것은 아주 잘 한 일이다. 봄날 한때의 윤중로만 갖고는 턱없이 부족한 정서적 환경이다.
그 옛날 별 쓸모없는 이 땅을 두고 ‘너나 가져라’ 했다고 해서 붙여진 ‘너섬’의 ‘너른 둔치’가 한강의 기적에 이어 다시 한 번 참의미로 ‘한강 르네상스’의 중심이 되길 기대한다.
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