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위지(河緯地)
[생졸년] 1412년(태종 12) ~ 1456년(세조 2) / 향년 44세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조선 단종 때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경상북도 선산군 출신이다. 본관은 진주(晉州)로 자(字)는 천장(天章)ᆞ중장(仲章), 호는 단계(丹溪), 적촌(赤村), 연풍(延風)으로, 아버지는 군수(郡守)를 지낸 하담(河澹)이고, 어머니는 지흥해군사(知興海郡事) 유면(兪勉)의 딸 인동유씨(仁同兪氏)이다. 증조부는 하윤(河胤), 할아버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하지백(河之伯)이고, 하위지 선생의 벼슬은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세종 때의 학자로 최만리, 정창손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였다.
단종(端宗,1441~1457 / 향년 16세)이 숙부 수양대군의 측근들에 의해 강압을 받아 양위하자, 선생을 비롯한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를 일컫는 말이다. 김질 등과 함께 세조 3부자를 타살하고 단종 복위를 거사했다가 회유 또는 실패를 예상한 성균관 사예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세조는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여 친히 국문을 하면서도 여러번 그에게 회유를 권고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박팽년가와 함께 후손이 유(有)한다. <끝>
계유정란 후 세조에 의해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처형된 후 그 사체는 찾지 못하고 이곳에 의관을 대신 묻고 단계 하위지묘로 지켜지고 있다
소재지 :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산 13-1
남효온(南孝溫)은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 六臣傳>에서 하위지의 인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그는 사람됨이 침착하고 조용했으며, 말이 적어 하는 말은 버릴 것이 없었다. 그리고 공손하고 예절이 밝아 대궐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렸고, 비가 와서 길바닥에 비록 물이 고였더라도 그 질펀한 길을 피하기 위해 금지된 길로 다니지 않았다.
또한, 세종이 양성한 인재가 문종 때에 이르러 한창 성했는데, 그 당시의 인물을 논할 때는 그를 높여 우두머리로 삼게 된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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