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저에게는 항상 같이 어울려 다니는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중 L군이라는 친구는 꽤 부유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은 집안 형편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친구의 생일이 찾아오면 다른 친구들은 그저 마음만으로 축하의 표시를 하여야 했지만,
L군은 항상 값비싼 생일선물을 해 주고는 했습니다...
'야광 삼각팬티'로요....
당시 팬티 가격이 만원이 넘었기때문에 저희들은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저희로서는 참 쓸데없는 선물이면서도 고마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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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L군의 생일날이 다가오면서 시작됩니다.
각자 쓸데없이 비싼 팬티를 선물받은 저를 포함한 4명은, L군의 생일때 빈손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각자가 팬티 하나씩 사줄 형편은 안되고,
그렇다고 4명이 돈을 모아서 팬티 하나 달랑 사주는 건 정말 없어보였습니다.
4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돈]을 모아봐야 몇푼 되지 않으니 4명의 [정성]을 모은 선물을 해주면 감동할거다' 였습니다.
그래애서!!!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 주기로 했습니다!!!
남자 넷이서 거친 손으로 힘들게 학 천마리를 접어준다면 틀림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로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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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 1명당 250마리의 목표량을 접기 위해 집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학교 수업시간에도 책상밑으로 몰래 접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학접기는....생각보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모두가 후회스러웠지만 L군의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접고 또 접었습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 L군에게 학 접는 걸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자기한테 줄 선물인줄은 모르고 L군도 열심히 접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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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군생일까지 이틀이 남았을 때!! 우리들은 결국!!!!
천마리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600선에서 끝내자고 서로 잘 합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습니다.
학 600마리를 담아줄 예쁜 병을 사러 팬시점에 갔더니, 무슨 병이 8천원이나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학 600마리는 600원 밖에 안 했는데요...
안되겠다..병을 사는건 무리다..좋은 방법이 없을까...우리는 또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친구가 기막힌 말을 내뱉았습니다
"우리 집에 소주 빈 병 많은데"
캬아~ 그거다!!
우리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소주 빈병 4개를 가져와 각자가 접은 학을 우겨넣었습니다..
뭐, 소주병이 투명하지 않아서 안에 종이학이 들어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우린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모양 빠지길래 피자박스 묶을 때 쓰는 끈으로 병에 리본도 달아주었습니다.
'피자O' 로고가 새겨진 리본을 매달은 우리 소주병을 보고 있자니 참.....'허접하다'.....-_-;;
이건 좀 아니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또 기막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주 네 병을 마치 와인병처럼 박스에 담아서 스티로폼도 채워넣고 포장해서 갖다주자!!'
그리고는 길에서 주운 라면 박스를 가져와 병 네개를 가지런히 잘 배치하고,
역시 길에서 주운 냉장고 포장용 스티로폼을 벅벅 갈아서 채워넣었습니다.
"완벽해~~!!"
다같이 고생했던 친구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생일날이 다가오기만 조마조마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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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D-day..
저는 하루동안 보관했던 '학 600마리가 든 소주 4병에다가 스티로폼이 채워진 라면박스'를 학교로 들고 갔습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교문에서 검문도 했지만 생일선물이라며 당당히 말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네 명이 모여 함께 박스 한 귀퉁이씩 들고 친구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건넨 순간..
아주 잠깐 썩은 표정을 띄었지만 그래도 고맙다고 화답해주었던 L군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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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일 그 다음날...
우리는 L군에게서 정말 충격적인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L군은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너희가 준 생일 선물...내 방에 잘 놔뒀는데.....엄마가 폐품인줄 알고 오늘 새벽에 버렸단다"
ㅠ_ㅠ 그때의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L군은 지금도 그 일을 미안해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