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과 영암에 터를 잡아주고 밤 늦게 올라왔다
비가 와 조용히 집에서 쉬고 있었다
대전 광암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잘 알고 있었으며 어려울 때 도움도 많이 받은 분인데
아무래도 산소를 잘못 이장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풍수를 배울 때 가르치던 교수가 잡았던 곳인데
푸석 바위 위에 모셨다고 한다
지금도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암석은 둘째 문제고 강력한 수맥이 있는
곳으로 느껴졌다
산소를 이장한지 2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빨리 다른 곳으로 이장하지 않으면 집안에 큰 우환이 온다 했다
언제 시간 나는대로 방문해 보고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지난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 당장 서대전 톨게이트에서 만나자고 한다
나도 빨리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전에서 만나서 논산쪽으로 가면서
연산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가게 되었다
연산 할머니 국밥집인데 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양도 많이 주었고 맛도 좋았다
국물맛이 개운하면서도 구수했다
순대 안에 선지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을 보니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손수 주방 안에서 고기를 담고 있었는데
손이 커서 넉넉하게 고기를 그릇에 담으셨다
할머니가 서서 일하시는 자리에는
중간정도 크기의 혈이 맺어 있었다
맛있게 먹고 나오며 가족들이 생각나서
만원짜리 두 개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이곳이 명당자리라 장사가 잘 된다고 하니
할머니는 기분이 좋았던지 덤이라며 듬뿍 준다
식사를 끝내고 산소에 올라가 보니
그런대로 형세는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암반수가 머리 중심부에 있었다
강력한 암반수 위에 모셔던 것이다
참으로 큰 일이었다
산소를 둘러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라온다
알고보니 이 산소의 아들과 딸이었다
오늘이 부친 제사날이며 모친이 너무 아파서
이곳에서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려고 온 것이란다
갑자기 찾아온 산소에서 가족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광암 선생은 가족들에게 잘못 이장해 준 것에 대해
교수를 대신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곳이 좋지 않은 곳이니 모친이 돌아가시면
다른 곳으로 모셔야 한다고 했다
나도 이 자리는 최고의 흉지라 이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분들은 2년의 짧은 시간인데도 이곳에 산소를 쓰고
좋은 일이 없다고 했다
산을 둘러 보았다
이곳에는 덕 쌓은 만큼의 자리가 없었다
작은 명당만이 못생긴 곳에 있는 산이었다
생기맥이 흐르는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터를 잡아주고 청주로 돌아왔는데
몇 시간이 지난 저녁 6시에 모친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터를 잡아 놓으니 수맥 위에 있던 부친이 이제는 안심하고
평생 사랑했던 부인을 모셔가신 것 같았다
그 분들은 덕을 무척 많이 쌓으신 분이셨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못 생긴 명당이지만
잘 생긴 생기맥보다는 좋은 명당이라
그곳을 권장해 볼 생각이었다
광암선생은 처음 잡았던 생기맥이 흐르는 곳에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여 더 이상 권장할 수가 없었다
일단 암반수에 있는 산소를 이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집안의 우환은 피하게 되었으니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가야곡까지 두번이나 찾아간 것은
고인들이 덕인라 도움을 주고 싶어서 였다
수맥에서 고통을 당했던 부친 입장에서 보면
내가 구세주였을 것이다
장지까지 조문 오신 아들 친구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가신 고인은 무척 좋으셨던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부친은 어떤 분이냐고 하니 법 없이도 사실 분이셨고
무척 잘 해주었던 기억이 남아있다고 한다
예측했던 대로 적덕을 많이 쌓으신 분이 분명했다
이번 일은 하늘이 주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었다
나는 종종 이와같이 일을 경험하곤 했다
자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을
거울 보듯 주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