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뻐꾸기 울음을 들으면서 |
| |
녹음이 짙어지면서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 숲길에 서면 꿩 울음소리, 박새, 개개비,...그리고 뻐꾸기가 낮게 숲 위를 날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오늘 오전 남한산성 계곡 쪽에 잠시 들어갔다가 뻐꾸기가 날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몸 길이 약 35㎝. 몸 상반부는 잿빛, 배는 흰 바탕에 검은 가로줄무늬가 있고, 꼬리와 날개가 가늘고 길어서 날 때는 매 종류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뻐꾸기 암컷은 요즈음 알을 맡길만한 주변을 관찰하다가 양부모가 될 새가 산란을 시작하면 주인 알을 한 개 빼내고, 자기 알을 둥지 속에 몰래 하나 낳는다. 뻐꾸기 새끼는 주인집 새끼들보다 하루에서 사흘쯤, 앞서서 부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주인 새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둥지를 독점한 뒤, 양부모로부터 혼자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길러준 어미 새보다 다섯 곱은 더 자라버린 뻐꾸기 새끼가 몸집 작은 양부모에게 먹이를 조르는 모습은 상당히 희극적이다. 둥지를 나와서도 한 달은 더 먹이를 얻어먹다가 어느 날 저를 낳은 어미 새를 찾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린다. 이런 독특한 생태가 TV에서 방영되기도 해서, 배은망덕의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나기도 했고, 그 울음소리 때문에 옛날 민간 설화에서는 원한을 품고 죽은 넋이 뻐꾹새가 되어 날아다니며 슬피 운다는 전설들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렸을 적, 초여름 햇볕이 빡빡 깎은 머리통 위를 바늘 끝처럼 쪼아대는 한낮, 먹이를 입에 문 유난히 지저분한 머리털을 한 작은 어미 새를 발견했을 때의 콩콩 뛰던 심장 소리를 기억한다. 그것은 열에 아홉, 뻐꾸기나 두견새 새끼를 기르는 녀석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식성 좋은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가 먹이를 주는 순간 어미 새의 머리통까지 삼킬 듯 입 속에 집어넣어 새끼의 침이 어미 머리털에 묻어 그렇게 지저분해 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단한 새끼 새의 식욕을 채워주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초여름 땡볕 아래 메뚜기며 잠자리를 잡느라고 뛰어다니며 콧물 훌쩍이던 유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이제 시골에서도 새끼 새를 위해 벌레를 잡으러 다니는 사내아이들도 없을 것이다.
벌레 잡이에 지친 어느 석양, 개미집을 파 뒤집어 새하얀 개미 알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흘러내리던 땀조차 말라 얼굴에 소금기가 서그럭거리는데, 애써 꺼낸 개미 알 한 웅큼을 뻐꾸기 새끼는 한 입에 삼키고 다시 입을 벌리고 먹이를 조르는 것이다. 또다시 개미 알을 줍기 위해 개미집을 파 뒤집는 사이, 새까맣게 온 몸으로 기어올라 팔이며, 다리며, 고추 끝까지 물어뜯던 개미 떼들...그때 황혼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러나 제 새끼를 직접 기를 수 없는 어미가 더 서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접 제 새끼를 기를 수 없어 남의 집에 맡겨 놓고, 그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자식이 커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뻑국 뻑뻐꾹, 그렇게 울어 제 종족의 음성을 기억시키는 어미에게는 피를 토하는 더 깊은 설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