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낙동칠현의 발자취 사망정에 올라

[풍경소리52]

 <팔공시론>사망정(四望亭)에 올라서

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달성 위천 삼거리에서 고령 방향으로 긴 다리 위를 달리다 보면 모래벌이 아름다운 넓은 낙동강을 만나게 되는데, 강을 건너면 길 오른쪽 언덕에 정자 하나를 또한 만날 수 있다. 강가에 있으니 또 하나의 강정(江亭)이라 할 수 있는데 언덕 이름이 `멍드미’라 `강정멍드미’ 또는 `멍드미강정’이라고도 불리는 사망정(四望亭)이다.

사망정의 지금 주소는 경북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 다리 입구이지만 강을 중심으로 이웃 고을의 선비들이 깊이 교류한 흔적이 이곳 사망정 마당에 설치되어 있다. 광산이씨(光山李氏) 육일헌(六一軒) 선생 집안 소유인 이 정자는 뒤에 높은 언덕이 있는데도 사면이 다 보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보기 드문 명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정자 뒤로는 무덤도 많고 선인을 기리는 비석도 많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낙강칠현(洛江七賢)’을 기리는 비석은 우리 지방 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병풍 형태로 세워진 비석에는 이곳에서 만난 일곱 분의 선비들이 남긴 시(詩)가 새겨져 있다.

그러니까 1589년 5월, 일곱 분의 이 지방 선비들이 낙동강 개산포(開山浦)에서 멍드미 사망정(四望亭)에 이르는 강 위를 선유(船遊)하면서 `만경창파욕모천(萬頃滄波欲暮天)’이라는 시구에서 한 글자씩 맡아 각기 오음절구(五音絶句) 또는 칠음절구(七音絶句)로 시 한 수(首)씩을 읊어 그 날의 흥취와 정황(情況)을 흡족하게 표현한 것이다.

칠현(七賢)을 출생지별 연령순으로 보면 고령(高靈)의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송암(松菴) 김면(金沔),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 등 네 분과, 성주(星州)의 한강(寒崗) 정구(鄭逑), 현풍(玄風)의 대암(大庵) 박성(朴惺), 인동(仁同)의 청휘당(晴暉堂) 이승(李承) 선생 등 모두 일곱 분이다.

이 일곱 분은 병세동성(竝世同省)으로 가까운 이웃에서 함께 생장하면서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학문을 익히고 굳은 의지를 길러 각각 인품과 문명(文名)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중년 이후에는 도의지교(道義之交)로서 높은 지향(志向)을 같이하게 됨에 따라 이처럼 뜻 깊은 계합(契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 중에서 현풍 출신의 박성(朴惺) 선생은 `暮’ 자를 운(韻)으로 오언절구를 남겼다.
승회우연성(勝會偶然成) 좋은 모임이 우연히 이루어져서/ 우복지자우(又復之子遇) 또 다시 여러 군자 반가이 만났네.// 청담철금회(淸談徹襟懷) 청담을 나누니 회포가 풀리고/ 편주임연소(扁舟任沿?) 조각배는 물결 따라 오르내리는데// 경음동량표(輕陰動?飇) 가벼운 그늘에 서늘한 바람 불어오니/ 막수강일모(莫愁江日暮) 이 강에 해저문다 근심치 마오//

이 일곱 편의 시는 당시에는 물론이고 그 뒷날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그것은 이 시들이 일대(一代)의 의표(儀表)로 숭앙 받던 일곱 분이 아름다운 이 지방의 풍치 속에서 동성창화(同聲唱和)한 풍류운치(風流韻致)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곱 분 중에는 3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직접 전장으로 뛰어든 이도 있고, 백성들의 곤궁함을 규휼하기 위해 헌신봉공 하였으며, 계속 학문에 정진하여 도학(道學)으로 백세의 유현(儒賢)이 된 분도 있다.

우리 고장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문풍(文風)이 내려왔고, 이를 바탕으로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의로운 가치 실현에 앞장선 참다운 선비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태인심이 갈수록 혼효(混淆)해 지면서 젊은 세대들의 관심 밖에서 선인의 왕적(往蹟)이 쓸쓸히 묻혀 지는 형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세워진 사망정의 `낙강칠현시비(洛江七賢詩碑)’는 매우 의미 깊은 사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이 칠현의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 요망된다.

  입력시간 : 2011-09-20 19:4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