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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야크존 - 히말라야 트레킹 원문보기 글쓴이: 야크지기
day 7. 하누말라 BC - 하누말라 - 스네르체 - 파르필라 BC (8.29) |
라다크의 지형
라다크는 북인도의 잠무 카시미르 주의 동부에 속하며 북쪽과 서쪽은 파키스탄, 또 북쪽(신장)과 동쪽(티베트)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라다크도 네팔 무스탕과 마찬가지로 선사시대 혈거지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 잔스카르 여행에서는 특별히 동굴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위 지도에서 알 수 있듯 라다크는 티베트 극서 지방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대히말라야 산맥의 북쪽에 있는 티베트 고원과 같은 시기에 형성된 황량한 지형이다. 위도상으로로는 북위 32~34도 전후인데 34도는 우리나라 목포 근처의 위도에 해당한다. 평균고도가 3천 미터인 라다크의 중심 도시는 레(Leh)로 티베트의 수도 라사와 비슷한 고도인 3505m이다.
레 주변의 넓은 평원을 제외하면 라다크 전체에 수십 개의 봉우리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양이다.. 라다크 남서쪽 대히말라야에 있는 두 개의 7천 미터급 봉우리인 눈(Nun, 7135m)과 쿤(Kun, 7077m), 그리고 레 바로 아래 남쪽 스톡 산군에 10여 개의 6천 미터급 봉우리(일부는 레 북쪽)를 제외하면 대부분 5천 미터 중후반의 봉우리들이다.
라다크 지역은 크게 6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1. 인더스 계곡의 중부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 카시미르 주는 인도의 30개 주 중 가장 큰 주이면서 가장 북쪽에 있는 주다. 원래는 남한 면적의 87% 크기지만 1947년 파키스탄이 분리되어 독립한 이후 여러 번의 국경 충돌로 인하여 파키스탄과 중국의 점령지가 된 지역이 반 가까이 되어 지금은 남한 면적의 반 정도로 줄었다.
라다크 북쪽 시아첸 빙하지역에서는 1984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도 해발 6000m에 양측 군부대 캠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의 군인이 고산의 험악한 날씨와 산악전쟁의 자연적인 위험요소 때문에 죽었다. 1999년 카르길 전쟁 때는 핵전쟁의 위기까지 갔다. 몇 번의 전쟁 결과 현재의 경계선이 만들어고 지금도 잠무 카시미르 전체가 파키스탄, 중국과 군사적으로 민감한 대치상태에 있다. 따라서 라다크 지역 역시 군부대와 군용차량, 군인, 검문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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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째 얼굴이 붓는다. 4000m 이상에서는 낮은 기압 때문에 늘 있는 일이다. 어제 계곡물을 먹은 탓인지 배탈기가 있다. 역시 히말라야,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생수를 먹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캠프에 돌로 만든 화장실이 있어 멀리 갈 수고를 덜었다. 셋째 날 셍게라 BC를 제외하고 캠프장마다 화장실이 있다.
정로환을 긴급 투여했다. 내게는 정로환이 잘 맞는다. 지금까지 배탈에는 정로환 하나면 충분했다. 며칠 전 빔이 설사가 났다 해서 넉넉하게 5일분 주었다. 나중에 와따루가 설사로 고생한다고 하니 빔은 내가 준 정로환을 나누어주며 "효과 100%"라고 엄지를 치켜 세운다.
그러고 보니 최근 트레킹 때마다 감기약과 지사제는 나보다 스태프들이 더 애용하고 있다. 현지인이라고 반드시 트레커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신체가 적응되었다고 하나 허술한 입성으로 감기에 걸리고 고산병 때문에 고생하는 포터들을 많이 보았다.
출발부터 끝없는 오르막이다. 매일 오늘 올라가야 할 고개는 무엇인지 체크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래서 라다크 트레킹은 무스탕보다는 당연히 힘들다. 네팔의 다른 트레킹과는? 글쎄...4000m 이상을 걷는 일은 쿰부와 비교된다. 쿰부는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정이고 고개를 넘는 일은 잔스카르는 필수지만 쿰부는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는 쿰부보다 난이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날씨는 쿰부보다 온화하다. 그렇게 보면 서로 상쇄되는 면이 있어 비슷하다고 하겠다.
힘들게 천천히 올라 9시 40분에 하누말라(4700m)에 올랐다. 고개를 오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혹 다음에 잔스카르 어느 골짜기에 철천지 원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냥 용서해야겠다. 절친이 산다 해도 그 친구가 잔스카르에서 나오길 기다려야겠다' 그만큼 매일 넘는 고개는 원수와 절친을 다 포기할만큼 힘이 들었다.
그런데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온지 두 달이 되는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코스는 가고 싶지 않지만 다른 코스라면 갈 수 있지' 땀흘리며 두 발로 걷는 트레킹은 다른 여행과 달리 당시에는 그렇게 힘들어도 돌아와 몇 달 지나면 다시 그곳을 그리워 하게 된다. 차를 타고 관광지와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과는 근본적으로 반추의 느낌이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물론 웬만하면 다른 코스를 가겠지만 힘든 트레킹을 다시 하고 싶은 것은 변함이 없다. 라다크에는 트레킹 코스가 많다. 일단 마음이 그렇게 변했으므로 나중에 분명히 라다크 어느 계곡에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넘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마음은 가장 강력한 창조력을 가진 에너지이므로....
날씨가 흐리다. 흐린 날은 처음이다. 반대편에서 야크 몇 마리를 몰고 현지인들이 올라온다. 고개 건너편은 완만한 내리막 사면이다. 한 부부가 올라온다. 프랑스에서 왔다는데 영감님 나이가 64세라고 한다. 라다크는 서양의 젊은 사람은 물론 나이 많은 사람들도 많이 온다. 이 부부는 나중에 트레킹을 마치고 <베스트 라다크>에서 마련한 트레킹 완료 축하파티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영감님 이름은 엘런 르꼼(ALAIN LECOMTE, alecomte7@gmail.com)으로 10여 년 전부터 매년 잔스카르에 온다고 한다. 10년 동안 여러 라다크 트레킹은 물론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보았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부부가 함께 트레킹 피크인 스톡 캉그리(Stok Kangri, 6153m)까지 다녀왔다고 해서 놀랐다.
스톡 캉그리는 레에서 차를 타고 바로 가면 4박 5일, 마르카 밸리 트레킹을 하면서 가더라도 10일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비교적 쉬운 피크라고 하니 누구나 시도해 볼 만하다. 여기 비하면 네팔의 트레킹 피크는 접근이나 날씨, 난이도 등이 초보자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나같은 등반 초보자가 네팔에서 트레킹 피크 가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고 스톡 캉그리를 찜해 두었다. 내가 오를 수 있는 6천 미터급 봉우리는 오직 라다크에 있는 것 같다. 주영씨에 의하면 얼마 전 한 한국의 여성 배낭여행자도 가뿐하게 다녀왔다고 하니.
길은 계류 바닥으로 내려간다. 백산스님이 모처럼 다시 말을 타고 가다가 그리 오래지 않아 험한 계곡이 나와 말에서 내렸다. 가는 도중 아침에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독일 영감님이 물가에서 음식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10시 45분밖에 되지 않았으니 점심은 아닌 것 같고 '아점'인 것 같다. 음식은 티베트 참파다.
참파는 우리의 미숫가루와 같다. 우리도 가져간 미숫가루를 먹어보니 충분한 요기가 되었다. 옛날 개나리봇짐을 매고 여행하던 우리 조상들도 비상식량으로 미숫가루를 가지고 다녔다. 참파로 요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현지화가 되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생존력이 뛰어난 여행의 고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영감님은 나이가 73세라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앞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서양인이니 우리나이로 치면 한 살씩 더해야 한다. 말 한 마리만 고용해서 혼자 다르차까지 풀코스를 가는데 젊은 배낭여행자 못지 않은 배낭여행자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니 호불호를 가릴 수 없지만 아무튼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부러운 것은 그 나이에도 잔스카르 트레킹을 나섰다는 사실이다.
나홀로 트레킹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늘 현지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능하면 충분한 경비를 준비하여 많은 현지인들을 고용하려고 한다. 경비가 모자라면 굳이 최소의 경비로 가기보다는 경비를 1년 더 모아서 가는 편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내가 70대에도 캠핑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갈 수는 있다하더라도 가고싶을 지는 장단할 수 없다.
좁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스노우 브릿지(눈다리)가 몇 개 보인다. 아래로는 얼음이 녹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4000m 아래로 내려온 것 같은데 얼음이 녹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냇물 옆으로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라고 해야 관목 수준이지만 그런 나무라도 자란다는 것은 수목한계선인 3800m 아래로 내려왔다는 뜻이다.
그곳 냇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12시 30분이 다 되어 배가 고픈데 빔이 말을 끌고 아래로 먼저 내려가서 안보여 한참 불렀다. 제 딴엔 아래 스네르체에서 먹을 생각이었단다. 점심 먹고 내려가 보니 그곳은 낙하산식당 하나만 달랑 있는 곳이고 식당도 문을 닫았다.
스네르체를 지나면서 길은 깊은 계곡을 왼편에 두고 비탈길을 횡단한다. 그런데 계곡 절벽이 엄청나다. 완전한 수직 바위 절벽이다.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 <미션>에서 갑자기 이과수 폭포가 나타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대형화면에서 갑자기 웅장한 물소리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이과수 폭포의 장엄한 장면은 지금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이곳에서 잘못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지면 말 그대로 뼈도 추리기 힘들 것이다. 스네르체에서 말을 타고 앞서 가던 백산스님이 절벽을 만나자 말에서 내린다. 그냥 걷기도 무서운데 흔들리는 말을 타고 까마득한 절벽을 보며 가기란 더욱 무섭다. 사실은 길이 넓어 위험하지는 않다. 쓸데없는 상상이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맞은 편에서 말이 오고 있다. 무조건 위로 올라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걸었다. 나에게 이 절벽 길은 잔스카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남아 있다. 가이드북에는 '극적인 절벽'이라고 쓰여 있다. 문학가나 예술가라면 이 벼랑길을 걸으면 어떤 영감이 떠오를 것 같은데 나는 단지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말만 떠올랐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장사 경잠(長沙 景岑) 선사가 한 말이다. <전등록>에 보면 경잠 선사가 "높이가 백 척인 대나무 끝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진여라고 하지 않겠다. 백 척의 대나무 끝에서 걸어 나아가야 시방세계가 비로소 자기 몸이 되리라." 하였다. 과연 나는 오늘 이 백 척의 벼랑길에서 뛰어 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현실로 알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모두 꿈과 같고 거품과 같은 것이며(如夢幻泡影)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은 것(如露亦如電)으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이 들려오는데, 여전히 미로를 헤매는 중생은 이런 절벽길조차 두려워하고 있다니!
절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무지막지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멀리 캠프가 보인다. 캠프 뒤로 나 있는 파르필라로 오르는 길을 보니 어지럽다. 먼지가 많이 나는 길이다. 한 부부가 가이드를 앞세우고 올라온다. 남편은 일본인, 아내는 뉴질랜드인이다. 이 시간에 하누밀라를 넘기는 어렵다 스네르체에 캠프를 차려야 할 듯. 나중에 <lonely planet>을 보니 그런 일정으로 되어 있다(하누밀->파르필라->스네르체).
2시 40분 캠프에 도착했다. 스네르체에서 1시간 걸렸다. 이곳 고도가 3400m니 오늘 700m 올랐다가 1300m 내려왔다. 거친 강물이 흐르고 있다. 강 이름은 오마추(Oma Chu)로 라다크 말로 우유강이라는 뜻이란다. 쿰부에 있는 두드 코시와 같은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뿌연 물이긴 한데 두드 코시 같은 맑은 기운은 없고 그냥 뿌연 물이다. 오마추는 곧 잔스카르 강과 만난다.
이곳에서도 디블링으로 가는 길이 있다. 오마추 상류를 따라 오르면 디블링이 나오고 거기서 고개를 하나 넘어 칸지라 BC로 가면 길이 갈라진다. 북쪽 칸지라를 넘으면 라마유루로 가고 서쪽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랑둠(Rangdum, 4010m)으로 간다. 잔스카르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고대의 길이다.
오늘 여기서 묵어갈 사람들이 계속 도착한다. 대부분 물건을 실어 나르는 현지인 마부들이다. 와따루와 니꼴라는 여기서 묵지 않고 운행을 계속하여 파르필라를 넘어갔다. 모처럼 머리를 감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따뜻한 텐트에 누워 책을 읽었다. 열어둔 창으로 파르필라 오르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 |
하누말라 BC - 하누말라 - 스네르체 - 파르필라 BC
아침 7시 출발. 가이드 빔이 승마용 말을 끌고 오른다. 백산스님과 니꼴라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
조금 오르다 뒤를 돌아보다. 언덕 위에 찻집이 있고 그 너머 칸지라 BC로 가는 길이 보인다.
이 길은 어제 내려왔던 길과 지질학적으로 같은 토질이어서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이다. 왼편 뽀족바위를 주목하시라.
여기가 뾰족한 바위 있는 곳이다. 출발하여 여기까지 1시간 30분 걸렸다. 일단 휴식.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까마득한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다. 하나의 점이다.
와따루였다. 그 뒤로 말 캐러밴이 올라오고 있다. 산너머로 링쉐드가 보이고 우리가 횡단했던 산길이 뚜렸하다.
고개마루가 보인다.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는사이 와따루가 나를 추월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느긋하다.
고개 너머 풍경.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간식을 나누어 먹고 쉰 후 하산을 시작했다.
비탈길은 끝이 없을 것 같다. 힘들지는 않지만 별 특징없는 길이다.
반대편에서 가이드와 트레커 두 명이 오고 있다.
프랑스에서 온 이 부부는 라다크만 10년 넘게 다닌 베테랑이다.
나중에 트레킹을 마친 다음날 <베스트 라다크> 사무실이 있는 <밀라레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찬 파티를 열었다. 그곳에서 이 부부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못알아보았는데 영감님이 우리를 알아보았다. <밀라레빠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자거리와 시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 있는데 그곳에 묵는 사람들은 모두 라다크 마니아들이다. 처음 라다크에 오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왼편 사진과 오른편 사진은 이어져 있다. 주용씨가 정색을 하고 맞은편의(보이지 않는다) 알리 사장에게 우리의 트레킹 준비소홀을 힐책하고 있다. <베스트 라다크>에서 계속 <샤욕 여행사>를 오퍼레이터(운영사)로 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파티는 좋았다. 음식도 좋고 모인 사람들도 화기애애했다. 가져간 압축코인티슈를 컵에서 부풀려 하나씩 돌렸더니 모두들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모자 쓴 인도 아저씨는 오른쪽 사진 뒷모습의 독일 여성과 함께 이틀 후 초모리리에서 다시 만났다.
10시 40분 계류바닥에 도착.
잠시 말을 타고 가다. 맞은편에서 야크가 오고 있다.
74세의 백패커 독일 영감님이 아점으로 참파를 만들고 있다. 그 노익장에 두 손 들었다.
다시 험한 계곡으로 들어간다.
멀리 절벽과 길이 보이는 이 풍경은 잔스카르 풍경에서 빠질 수 없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스노우 브릿지. 우리보다 시기가 한 달 빨랐던 김만수님 사진을 보면 이 지역에서 여러 번 눈길을 통과한다.
수목한계선에 내려오다. 점심시간이 되어 물가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낙하산식당 하나 있는 스네르체. 여기서부터 스릴 넘치는 절벽길을 감상하며 간다. 길은 오른쪽으로 나 있다.
저기 돌아가는 길까지는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평범한 산길이다.
코너를 돌면 나오는 풍경. 여기를 지나면서 스페인에 있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길이라는 <왕의 오솔길>은 잊기로 했다.
말이 오길래 길 위로 올라갔는데 이 놈은 내가 무서웠던지 좋은 길을 버리고 아래 염소길로 내려갔다. 보는 내가 조마조마했다.
계속 말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마부는 제일 뒤에 온다. 줄레~
절벽길을 통과하는데 15분 걸렸다. 스틱이 있으니 어려움이 없다. 이런 길에 눈이 내리면 길이 끊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거의 다 지났다. 여기서부터는 여차하면 오른쪽으로 넘어질 수 있으니 행복하다(?).
가파른 먼지길 내리막이다.
우리 반대편에서 온 일본인 남편과 뉴질랜드 아내가 절벽길을 향해 오른다.
아래에서 본 절벽
캠프까지 아직 한참 더 남았다. 오마추 강이 보이고 내일 올라갈 파르필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진짜 걸작은 이곳에서 김만수님이 2010년 7월 28일 찍은 이 사진이다.
잔스카르로 향하는 오마추강 옆 캠프
간단하게 씻고 느긋한 오후를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