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눅13:32-33절에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유월절 양을 잡는 9시 곧 오후3시에 정확하게 주님께서 고개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므로(요19:30)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무교절을 지나 안식 후 첫날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입니다.
이튿날, 이튿날, 이튿날 곧 오늘 내일 모레라고 하신 3일 후를 말하는 겁니다.
3일 후에 하늘 길이 열려 그리스도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요14:6)이 되시는 날입니다.
요한복음 2장은 사흘 후 가나의 혼인 잔치(요2:1)와 그 뒤에 나오는
사흘 동안 일으키시리라는 성전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요2:19-20)
이와 같이 앞에 사건이 일어나고 뒤에 설명이 되는 건 요한복음의 패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한다는 의미는 우리 몸이 그리스도가 계시는 성전이 된다는 뜻이죠.
그 때부터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 전혀 다른 속성으로 변화되고 숙성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사흘 후의 그리스도를 좇지 않으면 평생 연자방아를 돌리는 것 같지요.
물이 포도주가 되듯 질의 변화는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3일만 다시 살아나셔서
그 피로 하늘 성소를 깨끗하게 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와 몸은 연합체인데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고전12:3)
이는 성령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개인의 구주로 모실 수 없단 말입니다.
중동지방에서 물 대신에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장에서 흡수되는 물 대신 위에서 바로 흡수되는 포도주를 마시는데
이 포도주는 기쁨도 함께 주기 때문에 잔칫상에 포도주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포도주처럼 스며들면 생명의 기쁨을 줍니다.
아주 신기하고 명랑한 기쁨이며 불안함이 전혀 없는 자신감이 솟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의 진수입니다.
연회장은 그 동네의 마스터(master) 곧 최고 어른입니다.
잔치를 주관하는 동네 어른인데 그 어른이 하는 말이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값있고 맛있는 포도주를 먼저 주고 나중에는 값없고 맛없는 것을
주는데 어떻게 이 집은 맛있는 포도주를 나중에 가져오느냐는 겁니다(요2:10)
이것이 바로 아담 안에 있는 인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의 차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몸 한 영이 된 그리스도인은 아담 안에서 난 옛 사람은
점점 낡아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으로 날마다 새로워져 가게 됩니다(고후4:16)
예수의 말씀과 함께 물이 아귀까지 찬 다음(요2:7) 변한 포도주는
처음 것과 전혀 다른 맛이듯 그리스도인의 맛이 변화되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맛 볼 수 없는 신령한 맛을 그리스도인들이 뿜어내야 합니다.
물이 말씀을 만나 포도주로 변화되었듯이 ‘호 로고스’ 곧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면 다 변합니다. 왜? 그 분과 결합(하나)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영원한 동거이지 잠깐 마주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바라볼 때마다 기억을 되살려야지만
3일 후에 보좌로 올라가며 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그의 제자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그의 몸이 된 교회입니다.
만약 말씀을 교훈과 윤리와 도덕으로 행동지침 정도로 여기면
존재의 맛이 변하는 복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건 율법이지 은혜와 진리가 아니죠.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 그의 영과 생명이
우리 영 속으로 스며들어 심령 속에서 평강과 기쁨과 간증과 노래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맛입니다.
물을 아귀까지 채우라는 예수의 말씀과 하인들의 행함이 합쳐지고
떠다주라는 말씀을 그대로 이행할 때에 그 순간 물이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의 질이나 또 떠다주는 하인들의 열심보다
물을 채우라, 떠다 주라는 주님의 말씀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를 테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 편에 던지니(요21:6)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른편에 의미를 많이 두는 걸 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거기에 오심과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내리면서 오른 편 왼 편 앞과 뒤에 그물을 내리지 않았을 리가 없지요.
따라서 오른 편이란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심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임재의식과 말씀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일 후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영과 생명이 되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은 생명으로, 생명은 평강으로, 평강은 기쁨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되는 과정이 바로 우리 몸이 성전화 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몸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고전3:16)이라고 하면서 변화가 없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해 진리의 성령에 의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성전기능이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물론 오랜 세월 동안 고난의 떡과 환난의 잔을 마시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익혀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수 있는 은혜와 진리의 영적인 원리를 반복 학습하므로
몸이 성전이 되어 드디어 질이 변하는 그 기능과 역할을 발휘하게 되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부활과 생명이신 주님께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