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좀 해야지!
밤 12시,
뭐가 그리 아쉬워서 하루를 끝내지 못하고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 걸까. 무슨 불안으로 세상에서 도태될까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탐할까. 얼마나 중요한 말들이 오간다고 SNS와 메시지를 수시로 확인하며 붙들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보상한다고 누워 쇼츠로 멍을 때리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엄지손가락 하나뿐인데 내 뇌는 화면 속 모습처럼 온갖 것을 경험하는 듯 속고 있다. 소화도 하지 못할 정보들이 넘쳐나는데도 뇌는 아직 부족하다며 자꾸 뭔가를 채워 넣으라 한다. 제대로 살지 못한 하루의 헛헛함을 채우려는 것일까? 잡다한 것들로 폭식하듯 채운 후 현타와 함께 자괴감이 밀려온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오래전 자취하던 때 혼자 있는 집에서 보지도 않을 티브이를 틀어놓곤 했다. 적적함이 싫었던 것 같다. 핸드폰을 무심결에 사용하는 것이 티브이를 틀어놓던 버릇과 비슷할까? 20대 중반 사회 초년 시절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사 후 이직하기 전까지 불과 한달의 기간 일을 놓고 있었는데, 그 시간 내내 불안, 초조 안달복달했다. 지나고 나서 좀 놀 걸 후회했지만 해고 이후의 불확실성 앞에 난 무력했다. 정말 벼랑으로 몰린 느낌이었다. 어쩌면 쉬는 방법을 몰라서일지도 모른다. 쉬는 것을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을뿐더러, 정의조차 내리기 쉽지 않다. 지금도 잠시 잠깐의 시간이 나면 뭐라도 해야 할 듯한 마음에 불안하다. 잠시라도 멈추고 휴식하면 좋으련만 무엇 때문에 생긴 관성인지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진짜 쉬는 방법을 모른다. 눈과 손이 핸드폰을 놓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핸드폰을 놓지않고 탐색하다 보면 내가 방금 뭘 봤는지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무슨 목적으로 핸드폰을 켰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요한 하리의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의 책 제목 그대로다. 알람이 뜨고 메세지가 오는 시간에는 무엇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뭐라도 하려고 하면 이것도 해야겠고, 저것도 해야겠고 우왕좌왕하다 시간만 보낸다. 글쓰기와 같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려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새벽에나 가능하다. 이젠 그마저도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니 침범되고 있다. 애들이 나보다 늦게 잠드니.
세상은 우리에게 좀 더 많은 것을 해내라고 독촉하는 것 같다. 좀 더 일하라 하고, 좀 더 공부하라 하고, 좀 더 먹으라 하고, 좀 더 건강하라 하고, 좀 더 높아지라 하고, 끝도 없다. 늘 쫓기며 끊임없이 과잉의 정보를 찾고 또 받아들이고,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도 현실의 능력을 갖추지 못해 효능감을 얻을 출구를 찾기 때문이 아닌가. 이미 오염된 물속의 물고기는 그 안을 벗어날 수 없듯,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안고 가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더욱 침범하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뭐라도 좀 해야지!!!
얼마 전 노워리 기자단에서 <도둑맞은 집중력> 책을 읽고 함께 나눔을 하며 극복의 방법을 이야기했다. 운동, 악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덕분이었을까? 모임 후 지난 2년간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은 피아노 뚜껑을 열었고, 구석에 박혀있는 뽀얗게 먼지 앉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떠올렸다. 남은 인생 첼로를 동반자 삼아 배우고 연주하겠다고 당근을 통해 악기를 모셔 왔었는데, 딱 2주만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며 연습하곤 다시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시간을 채웠다. 물론 아주 피곤했고 쉬어야 했겠지만 나 자신에게 너무나 불성실했다. 피아노를 열어 낡고 낡은 초급 연습곡 악보를 펼쳐 연주해 봤다. 오호, 나쁘지 않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뿐만 아니라 약 2주 전부터 조금씩 운동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밤사이 일어난 뉴스를 보는 대신 무조건 집 근처 경의선 숲길로 나가고, 자기 전에도 쇼츠를 보는 대신 둘째 딸아이와 함께 경의선 숲길로 나간다. 이 집에 이사 온 지가 벌써 8년인데 운동을 목적으로 나간 건 처음이다. 둘째도 운동과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는 터였다. 나는 딱 15분만 걷고 싶은데 이 녀석은 공덕역 근처인 집에서 출발하여 경의선 숲길을 따라 홍대까지 갈 기세다. 전에 가족들이 함께 그리 걸었던 것을 기억한 것이다. 주말 오후 연남동이나 홍대입구역까지 걸어가 물건도 구경하고 사람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힘든 줄 모르고 다시 집까지 걸어 오곤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11시 언저리 이 밤중에 더 걷는 건 무리. 엄마는 15분만 생각했다, 무릎 아프다, 발바닥 아프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읍소를 하고 동의를 얻어 중간에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아침에는 혼자 15분, 저녁에는 둘째와 15분. 그것도 운동이라고 오랜만에 숨이 차는 경험을 하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주던 공허한 보상 대신 뿌듯함이 채워지고 있다.
사실 이 일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일이고 전환점이다. 십수 년 전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만성염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운동은 멀리하고 매일 누워 쉬려고만 했었다. 핸드폰은 큰 범인 중 하나다. 매일 골골대다, 최근에는 더욱 징징이가 되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나를 소개할 때 ‘저는 용징징입니다.’라며 농담하기도 했다. 그렇게 8년을 지켜본 고래이야기 활동가들은(내가 활동하고 있는 작은도서관) 더 이상 안 된다며, 용징징 운동시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회의 시간에 회의는 하지 않고 남산까지 걸어 다녀오고, 밤에 같이 걷자고 나오라 하고, 내가 도서관을 지켜야 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기도 하며 노력했지만 꼼짝하지 않던 내가 드디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Amazing!! 이 변화가 나의 오랜 습관이 되길.
첫댓글 마지막 문장 뭐예요, 샘~~~😆 화이팅임돠!
오~ 긍정적인 변화 좋네요~^^
몸과 정신 건강 둘 다 좋아지겠어요!👍
맞아요. 샘!!
저도 '뭐라도 좀 해야지' 마음으로 산책 결심했어요.
우리 산책 계속 하면서
그 "뭐"를 구체적으로 더 찾아나가 보자구요 ^^
응원합니다^^
아니 우리 멋진 은중쌤이 용징징이라니...! ㅋㅋㅋㅋ
용산의 용징징 쌤 안녕하세요? 고양의 안징징 인사드려요!
작은 변화가 가져올 큰 결과, 함께 기대해봅니다.
은중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