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베카 솔닛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창비, 2022)을 읽고
세상에는 남자들은 인정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실체적 진실이 존재한다. 여성에게, 약자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말해지지 않고, 묻히는 폭력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작가는 여전사가 되어 그런 상황을 낱낱이 예를 들어가며 분노를 토하고 있다. 반핵, 반전,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의 한 중심에서 활동한 작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 말을 할 수 있어도 들어주지 않는 일들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기억 속에는 뚜렷이 있다.
리베카 솔닛은 작가, 역사가, 활동가이며 ‘맨스플레인’ (어떤 사건이나 사물 따위에 대해 설명하는 남자. 주로 상대가 여성일 때 자신이 잘 아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잘난 체하며 설명하는 남자를 의미함) 현상을 비판하며 단숨에 동시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존재로 떠올랐고, 사적인 세계와 정치적 세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쓰기로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 작가소개에서
1961년생 리베카 솔닛은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내용들을 고백하며 세상에 부조리하게 자행되고 있는 남성적 시선과 폭력을 여성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여 강력하게 항거하고 있다. 이 책은 앞선 그의 책들의 분야인 역사책, 에세이, 칼럼집 들과는 다른 동시에 그 모두를 아우르는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자신의 10대부터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지금은 조금 좋은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도 밝히고 있지만, 자기 삶과 인생, 글쓰기 등을 정리한 듯한 내용이다. 자신이 읽었던 책과 글쓰기를 위한 자료 조사 등 그가 유명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폭력과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당당하게 외치는 작가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읽었다.
그 자신이 기꺼이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선봉에 서서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작가의 용기가 너무 멋져 더 크게 공감 가는 책이었다. 책을 읽게 된 계기,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순간, 글을 쓰는 마음 자세와 방법들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다. 글을 읽고 쓰면서 진실된 자신의 이야기들과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필요한 이야기들을 쓰려고 노력한 작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누구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단순하게 받아 적는 방식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행동가였고, 활동가였다. 문제가 있는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사람이다. 그곳에서 조사하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찾아 몇 날 며칠 도서관에 처박혀 방법을 찾아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에 더 공감이 가고 그의 글의 신뢰성이 확보되고 있다.
그가 읽은 수많은 책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선 그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과 글쓰기의 방법들, 그리고 그가 읽었던 책들 속에서 찾아낸 이론과 사유들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도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수많은 책을 읽은 것 같았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접하면서 다양한 변신의 이야기들을 듣고 놀랐었는데, 작가처럼 그 변신 속 인물은 여자였고, 희생자는 어김없이 여자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도 역시 여자들은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 여성과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집요한 폭력과 무차별적인 냉소는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던 것이다.
여성은 아예 남성에 종속되거나 없는 존재였던 아픈 역사를 넘어왔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에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폭력들이 많지만, 그런 것들과 성소수자들, 장애인 등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과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처음 읽었던 세계문학책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모가 선물해 준 『테스』였다. “여자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건네주셨던 책은 충격이었다. 영국이 배경인 것은 물론, 가난한 환경과 사랑, 처형까지의 슬픈 결말들이 대표적인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 그 자체였다. 테스가 너무 슬퍼서 울었고 결말을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131P에서)
“우리는 집을 책으로 채우는 것처럼 독서로 마음을 채운다. 책이라는 물체가 우리의 기억 속으로 들어와서 상상력의 장비가 되어준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독서로써 나만의 문헌을 구축했고, 세상이라는 지도에서 기준점이 되어줄 사실들을 모았고,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도구들을 얻었다.”
(142P에서)
“책을 읽을 때 나는 내가 아니었고, 그 비존재의 상태를 약물처럼 갈구하며 삼켰다. 그 상태일 때 나는 부재하는 목격자였다. 그 세계 속에 있지만 등장인물은 아닌 존재, 혹은 모든 단어이자 길이자 집이자 나쁜 징조이자 버려진 희망이었다. 책에 빠져 산 수천 시간, 수년 동안 나는 모든 사람이었고, 아무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모든 곳에 있었다. 나는 안개였고, 연무였고, 박무였다. 이야기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154P에서)
“글쓰기는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겪기 마련인 과정을 형식화한다. 목소리를 낼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 어떤 가치의 관심사와 우선순위가 자기 앞날과 자아를 형성하도록 만들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글을 쓰려면 내가 어떤 말투를 취할지, 어떤 표현을 쓸지, 재밌게 쓸지 심각하게 쓸지 둘 다 할지 등등을 정해야 한다.”
(277P에서)
“흔히들 작가의 목소리는 그 사람 혼자만의 것이라고 한다. 한 작가를 누구와도 다른 그 사람이라고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목소리다. 이것은 문체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고, 어투나 주제의 문제만도 아니다. 글쓴이의 개성과 원칙, 그의 유머와 진지함이 어디에 있는가, 그가 무엇을 믿는가, 왜 쓰는가, 누구와 무엇에 대해서 쓰는가,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의 문제다.”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깊이 와닿았다. 자신이 읽은 책에서 알게 된 내용들을 수도 없이 적고 있어서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고, 또 사유가 깊은지 자신의 주장에 알맞은 책과 구절을 가져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마치 자신의 삶과 문학을 정리하려는 듯 그 여정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중에서 읽은 책과 만난 사람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다. 표사를 쓴 “은유”작가는 “솔닛 최고의 저작이 될 것이다.”라고 적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