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랜든이 1944년에 발표한 소설 〈애나와 시암의 왕〉을
할리우드의 월터 랭 감독이 1956년에 영화화한 작품.
율 브리너와 데버러 커가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며
율 브리너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줄거리>
안나는 시암(지금의 타이)의 왕 몽구트의 초청을 받고 런던에서 방콕으로 향한다.
왕의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칠 목적으로 교사로 부임한 것이다.
하지만 궁 밖에 집을 마련해주겠다던 애초 계약과 달리
왕은 궁 안에 기거할 것을 강제한다.
이 때문에 기분이 상한 안나는
사사건건 왕과 부딪히게 된다.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왕은
안나에게 자세를 낮출 것을 강요한다.
이에 회의를 느낀 안나는
시암을 떠날 생각을 하지만 왕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보고는 남기로 결정한다.
한편 왕은 그를 야만인으로 부르는 일부 세력이
서방국가에 연락을 취해 시암을 정복하라고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자신의 나라를 지킬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동양을 순방 중인 영국 대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시암으로 초청한다.
왕은 안나를 불러
자신의 부인과 자녀들에게 유럽식 예절을 가르칠 것을 요청하고
영국인이 좋아할 만한 공연도 준비하도록 한다.
성대한 파티와 공연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지만
영국 대사 중 한명이
예전에 안나를 마음에 품었던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왕은 심기가 불편하다.
게다가 미얀마 출신의 왕비가
고향 남자와 떠나고 싶다며
안나의 도움을 받았던 사실이 알려지자
불만을 품은 왕은 자신의 침소에서 칩거하기에 이른다.
1. 제작 배경
〈왕과 나〉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거대한 세트를 수놓은 이국적인 볼거리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1956년 당시의 할리우드는 제작상의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제작사와 극장을 함께 보유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독점법 소송으로
제작사들은 과거와 달리 더이상 안정적인 수익을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미국인들은 예전처럼 극장을 찾지 않았다.
할리우드는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조그만 브라운관 속의 흑백 영상을 이길 수 있는 영화의 무기는 다름 아닌
웅장한 스케일의 컬러 화면이었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1950년대 초반부터 경쟁적으로 초대형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왕과 나〉는 마거릿 랜든의 소설 〈애나와 시암의 왕〉을 영화화했지만
좀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건
1951년 3월29일에 초연된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다.
1952년 토니상까지 수상한 〈왕과 나〉는
당시 할리우드가 찾던 초대형 작품에 다름 아니었다.
시암의 거대 궁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볼거리는 눈을 현혹하기 안성맞춤이었고
진취적인 여성주인공의 등장은 당시 날로 신장하는 여권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거기에 뮤지컬 버전에 출연했던 율 브리너의 캐스팅과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까지,
거대한 시네마스코프 스크린에서 넘쳐나는 오락적 요소들로 인해 개봉 첫날부터
극장에는 〈왕과 나〉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2. 주제
출처 : 네이버영화
〈왕과 나〉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은
문화와 신분 차이로 인해 안나와 왕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런던에서 온 안나는
왕의 부인이 될 여자가 상품처럼 거래되는 광경이 불편하고 놀랍기만 하다.
반면 왕비와 자녀까지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는 시암의 왕은
자세를 낮추지 않을 뿐 아니라 의견이 다르다며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안나가 괘씸하기 그지없다.
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적극 활용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연출 기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과 나〉가 차이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남녀 사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끄는 주체가 여자라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안나는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서 아이를 키울 만큼 독립적인 여자다.
반면 시암의 왕은
67명의 아내 사이에 자식을 100명 넘게 두었을 만큼 여성 편력이 심하다.
하지만 왕은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군림하다보니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현저히 좁다.
서방국가로부터 정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매일같이 고심할 정도인데
안나는 조국인 영국과 시암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왕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신뢰를 얻은 안나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시암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결정하는 진취적인 여성상(象)을 제시한다.
3. 뮤지컬 음악
〈왕과 나〉는 로맨틱 드라마이기 이전에 뮤지컬이다.
이십세기 폭스의 로고가 나올 때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한
앨프리드 뉴먼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가장 먼저 흘러나오는 〈I Whistle a Happy〉는
낯선 땅 시암이 가까워오자 두려움을 느끼는 아들을 위해 엄마인 안나가 부르는 노래다.
휘파람을 부르면 그 즐거움 덕에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그처럼 〈왕과 나〉에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은
안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형국이다.
〈Hello Young Lovers〉는
안나가 사별한 전남편과의 젊었을 적 사랑을 회상하는 곡이며,
〈Getting To Know You〉는
영국 출신의 안나가 시암이 이제는 자신에게도 중요한 곳이 되었다며
왕비와 왕의 자녀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들을 모두 안나를 연기한 데버러 커가 부른 것은 아니다.
〈Getting To Know You〉 정도를 제외하면
노래를 부른 이들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리허설 촬영 중에는
마니 닉슨(〈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등에서 대역으로 노래를 불렀다)이
고용되어 옆에서 노래를 부르면 이에 맞춰 데버러 커가 입을 맞추는 식이었다.
데버러 커의 연기를 보는 시암 왕 역의 율 브리너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Shall We Dance?〉가 흐르는 장면에서
데버러 커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것 외에
자신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만이 컸던 율 브리너는 이십세기 폭스의 수뇌부를 설득한 끝에 한곡을 얻어냈다.
〈Is a Puzzlement〉라는 곡으로
시암의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좋은 정책을 고민한다는 왕의 고뇌가 반영된 노래다.
4. 동양 비하 논란
출처 : 네이버영화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극중 시암에 대한 몇몇 묘사로 〈왕과 나〉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소송감일 정도로 서구인이 상상하는
‘미개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숱하게 널려 있는 것이다.
왕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왕비들,
이 때문에 여자를 한없이 낮춰보는 왕의 거만한 시선,
거대한 거북이 등이 지구라고 착각하는 시암 사람들의 무지함과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구의 교육과 원조가 필요하다는 논리까지.
이런 묘사 때문에 타이에서는 왕실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게다가 율 브리너를 아시아인으로 분장시켜
시암 왕을 연기하도록 결정한 것과 달리 비중이 낮은 배역은
아시아인 배우를 캐스팅해 더욱 논란을 부추겼다.
이와는 별개로 〈왕과 나〉의 촬영 중에는 감독 월터 랭과 배우 율 브리너 사이에
불화가 끊이지를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 〈왕과 시암의 왕〉 뮤지컬 무대에도 참여했던 율 브리너는 수시로
월터 랭 감독의 연출에 개입했다. 일례로,
월터 랭 감독은 거대한 볼거리를 위해 시암 왕의 최후를 코끼리에 밟혀 죽는 것으로
연출하고 싶었지만 연극의 원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율 브리너의 고집으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주요 등장인물
안나 리어노어스(데버러 커) : 시암 왕의 초청으로 방콕으로 오게 된 영국 출신의 영어 교사. 여자를 낮춰보는 시암 왕의 처사에 반발하지만 점차 그를 이해하게 된다.
몽구트(율 브리너) : 시암의 왕. 타이에서는 ‘근대 과학과 기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시암의 국민들을 위해 고뇌하는 모습이 더욱 강조된다.
텁팁(리타 모레노) : 미얀마 왕실의 선물 형태로 시암의 왕에게 강제로 시집오게 된 여인. 안나의 도움을 얻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시암의 궁을 탈출했다가 잡히고 만다.
룬타(카를로스 리바스) : 텁팁을 시암 왕에게 데리고 오는 미얀마 왕실의 밀사이자 연인.
명장면 명대사
극중에는 ‘토마스 아저씨의 조그만 집’이라는 제목의 무대극이 등장한다.
이는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을 각색한 것이다.
시암을 방문한 영국 대사를 환영하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안나가 각색을 맡아 왕비들과 함께
꾸민 것이다.
이 무대극은 사악한 왕의 눈을 피해 여자 노예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시암 왕의 눈을 피해 룬타와 함께 궁을 탈출한 텁팁의 사연을 은유하기 위해
안나가 의도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 무대극이 진행되는 동안 룬타와 텁팁이 시암을 탈출하는 장면이 교차로 편집된다.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련정보
원작
마거릿 랜든의 소설 〈애나와 시암의 왕〉 (Anna and the King of Siam, 1944). 국내 미출간
수상
• 1957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율 브리너), 의상상-컬러 부문(아이린 샤라프),
음향상(찰턴 F. 포크너), 음악상-뮤지컬 부문(앨프리드 뉴먼, 켄 다비),
미술상-컬러 부문(라일 R. 휠러 등 4인)
• 1957년 골든글로브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데버러 커)
연관 영화
〈쉘 위 댄스〉(1996, 수오 마사유키) :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왕과 나〉의 〈Shall We Dance?〉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보고 모티브로 삼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
〈애나 앤드 킹〉(1999, 앤디 테넌트) : 앤디 테넌트 감독이 주윤발과 조디 포스터를 캐스팅해
만든 〈왕과 나〉의 리메이크영화.
〈남태평양〉(1958, 조슈아 로간) : 〈왕과 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자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슈타인 2세의 또 다른 대표작 〈남태평양〉을 영화화한 작품.
- 허남웅 '세계영화작품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