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는 부르심의 종교입니다. 주향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놀라운 축복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허무합니까?..... 구름이 흘러가듯 흘러가면 그만인데,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영원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우리를 하나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주님 오늘도 거룩한 주일 나를 불러 주셔서 예배드리게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부르심이 이처럼 놀랍고 귀합니다.
가끔 1박 2일을 보는데 작년 뭔가 좀 부족하게 보인 연예인 김종민이가 연예인 대상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종민이를 좋아하는데 왜 종민이를 좋아하는가 하면 6-7명 멤버 중에 뒤치락거리는 다 종민이가 다하더라구요 게임을 할 때도 언제나 벌칙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 종민인데 한결 같이 웃는 모습으로 벌칙을 해 갑니다. 아직 대상을 받을 만한 그릇이 못되는데 워낙 성실하게 1박 2일 처음부터 고정 멤버로 착살하게 해왔기에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상 시상식 때 “김종민” 하고 마지막 대상을 부르는데 “종민이가 놀래가지고 어리 둥절하며 몸들 봐를 몰라하더라구요 그래 주변 동료연예인들이 꽃다발을 갔다 주고 축하해주고 날 리가 났습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합니다.
성도여러분!! 성경 창세기 시작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그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담입니다. 그런데 아담이란 이름을 누구 지었을 까요? 성경을 보면 아담이 동물 이름을 다 지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담 자신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지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그렇지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아담이란 붉은 것 동시에 흙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빛갈이 붉기 때문에 아담이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갖습니다.
어찌됐든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을 직접 부르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최초로 부르심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담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죄인인 아담을 찾으실 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갈대아 우르에에서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아, 부르시고 야곱아, 모세야, 사무엘아, 성전을 찾아와 기도하던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 선생님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위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사명을 위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위해 부르셨는데 이 부르심은 놀랍게도 창세 전에 이미 작정하시고, 나를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도록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곧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 이미 하나님이 나를 첫 번째로 부르셨습니다. 이런 부르심이 구원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또 하나의 부르심은 하나님이 나를 소명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소명자로의 부르심은 구원받은 자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자로 살아가는 것이 소명자로써 부르심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받는 부르심의 소명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본문 말씀도 하나님께서 어느 날 예레미야를 부르셨는데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에레미야는 원래 제사장가문의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세습적으로 대물림이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예레미야를 하나님은 너는 제사장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지금 나라의 흥망성쇠가 너무나 위태로우니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설 것을 나가서 외치라고 선지자사역을 맡기시겠다는 겁니다.
예레미야1장 시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활동했던 시기가 언제인가하면 유대나라가 거의 멸망직전에 놓여있는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 왕 때 사역한 선지자입니다. 일명 그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만큼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죄악으로 얼룩한 나라의 위기를 보며 눈물을 강처럼 흘러 보낸 선지자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부르심의 책임감을 느끼며 사역했지만 예레미야도 처음 부르실 때는 하나님 말씀 앞에 바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선지자로 부르실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저는 말 할 줄 알지 못하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 19살 정도라고 예측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어린 나이이기에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그릇이 부족하기에 하나님앞에서 아이라며 안 된다고 뒤로 물러 섰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예레미야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소명을 주실 때 자신의 무능과 죄 성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아버지 잘 보셨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구를 뽑겠나이까?”라고 말한 사람은 매우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무능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 자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다.
출애굽기 4장 13절에서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했고, 이사야 6장 5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5장 8절에서 베드로도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그런 걸 모르고 부르시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의 입술이 부정하고, 내가 아이이며, 죄인이다’라는 걸 모르고 부르시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거절해 보신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설교시간에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만 어릴 때 우리는 목포에서 어머님을 따라 남편이 없고 과부인 여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와 사는 복지관인 영생원이라는 곳에서 산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족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배우고 예배를 늘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배는 드리지만 잘 알지 못해요 그런데 저를 어떻게 보셨는지 영생원의 총무 일을 보는 분이 외국에서 추천이 들어왔는데 신학교를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저를 외국에 가라는 겁니다. 어찌 보면 유학이지요 이때 만해도 어린 저에게는 솔직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정말 몰랐습니다. 이런 축복의 길을 저는 안된다고 거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약 제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보세요 이렇게 저렇게 저를 다듬고 돌고 돌아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28살 때 신학교에 늦게 입학하게 된 것을 보면 그때 갖으면 좋았을 걸!! 그런 생각을 뒤늦게 해본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절한다고 해서 거절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생명의 씨앗인 세포로 만들기 전에부터 알았다고 하니 이런 하나님의 계획 프로젝트 앞에 어찌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예레미야를 사용하기위해 이미 나 라는 존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것을 성도여러분!! 어떻게 받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감동이 오지 않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를 이 새상에 보내시기 전에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니요 이것은 예레미야에게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다가와 말씀하신다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생일축하로 문자를 보냅니다. 오늘도 민규가 태어난 생일인데 제가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들 민규야! 하나님께서 할 일 많은 이 세상에 뜻이 있으셔서 오늘 태어나게 하셨네 먼 이국땅에서 6개월동안 건강주셔서 열심히 봉사하고 집에 왔으니 올해도 건강하고 꿈을 비젼을 붙잡고 열심히 믿음으로 핫팅하자!!
오늘 주일아침 문자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생일 때 보낸 공통된 문자는 뜻이 있으셔서 오늘 태어나게 하셨다는 문자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태어나게 하시고 민규를 부르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언제부터 교회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언제부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교회 나오시는지 한달 되셨습니까? 어떤 분은 모태신앙이라고도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우리교회 나오겠다고 전화한 젊은 청년을 직장에서 만났습니다. 이 친구가 교회에 지대한 관심이 있고 문자를 보내면 꼭 정성껏 목사님 감사합니다. 문자가 오고해서 관심가지고 소통을 했는데 직장 때문에 아침에 힘들어 주일날 교회를 나오지 못합니다. 지난 주에도 문자오기를 목사님 제가 태어나서 처음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교회 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구나 좋은 시간 되렴 그리고 지난 주 직장으로 심방을 갔더니 혜창아! 여자친구만나 좋은 시간됐니 물어보니까 이 친구가 여자친구가 모태 신앙이예요 그러면서 좋다고 웃는 거예요
우리가 누구를 통해서든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이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십니까? 이 엄청난 하나님 부르심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계획속에 있는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셨는데 나는 말하지 못하는 아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는 예레미야를 보시고 그래 하기 싫으면 그대 그만 두어라 하시고 다른 사람을 택하실까요?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되는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한마디로 강권하십니다.
7-8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너는 아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명령하든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예레미야 앞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강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절대로 물러서서 사람들을 비유 맞추는 방법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즉석에서 바로 실천하기 위해 능력을 행하시든지 어떤 한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그런다고해서 하나님께서 일주일 동안 금식하시고 준비한 또 다른 어떤 계획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사람을 부르실 때는 창세전부터 준비된 프로젝트를 비로소 비밀의 상자를 여시고 준비된 백서를 꺼내셔서 많은 사람 중에 예레미야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을 가지시고 일하시는데 예레미야가 거부 한다고 하나님께서 물러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는 일을 대강 보내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창3:15에서부터 오실 메시야를 예고하시고 감추어진 비밀 메시야를 오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창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보여주신 예언입니다.
그래서 메시야 예수그리스도 오심이 넘 귀하기에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꼭꼭 숨기시고 또 숨기시고 신 구약 중간사 400동안 침묵 속에서도 숨기시고 비로소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것도 동정녀 탄생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3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실을 대충 계획 하실 수 있겠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은 어느 누구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일은 잘못되면 뜨더 고치고 보수하면 됩니다. 나라가 잘못 가면 헌법을 고치자며 개헌의 소리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은 창세전부터 세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가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렇게 사도바울을 통해 말했습니다.
딤후1: 9절.....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오늘 나에게 있을 때 그 부르심앞에 우리는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부르신 자를 무책임하게 그냥 두시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사용하실까요?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을 보세요 어떤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십니까? 8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여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예레미야를 향해 어떤 영적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 예레미야야!! 네가 말을 못한다면 괜찮아 그져 너는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이다.“
너는 백성들에게 가서 부르짖고 외치기만 하라 내가 함께 하마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말라 성도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나 혼자가 아님을 믿으십니까?
남극탐험대 대장, 그 유명한 베어드 대장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탐험대 대장으로 남극 꼭지점까지 횡단을 하는데 캠프를 치고 그가 가는 길에 이제 꼭지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갔다가 강풍에 길을 잃었습니다. 무전기도 얼어붙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야 되는데 ‘이제 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이 얼어붙고 방향도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이제 여기서 내가 얼어 죽는구나 하는 그 순간 그 마음 가운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 할렐루야. 임마누엘이라는 그 단어가 딱 튀어 올라오면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가 자기가 왔던 길을 잘 살펴보고 다시 돌아서 그냥 한 치도 앞이 안 보이는 눈보라 속을 그냥 걸어갔더니 거기에 베이스캠프가 있었어요. 할렐루야.
우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때때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내가 혼자인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본인의 절망이 깊어져서 이제 난 끝났구나, 난 혼자구나, 이렇게 살아 무엇 하나. 그래서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사랑의 주님이 우리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절대로 뒤로 물러가지 마세요........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의 은혜로 붙들어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설교 전에 불렀던 440장은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함께 가려네 예수함께 아니가면 낙 없고 예수님과 동행하면 겁 없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함께 가려네...♭♪ 할렐루야!! 그런데 말씀을 보면 볼수록 가슴으로 말씀을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말로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과 예레미야가 함께 하심을 실제적으로 접촉하며 말 못한 부분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9절 말씀을 시청각으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가지고 예레미야 입에 되시며 말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9절.....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표준새번역... 주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저는 늘 부족하다는 모습으로 강단에 서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고 설교하지만 잘될까 아직 부족한데 어떻때는 강단에 올라와서도 이 부분이 부족한데 하면서 설교원고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강단에 서서 원고를 보는 중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때는 필링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마치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내 입으로 말씀하시는구나 이런 경험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꼭 목사에게만 그러겠습니까? 우리 앞에 모든 일이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지체가 다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직접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손가락이 내 발을 만져 주시고
다윗을 보세요 그는 양치는 목동으로 늘 가지고 있는 것은 물매와 물메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골리앗 이마에 정통으로 맞겠습니까?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늘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홍해 바다를 향하여 무슨 마술을 부렸습니까? 그래서 홍해가 갈라졌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사용하기위해 절대로 말 잘하는 사람을 붙여주지를 않았습니다. 좋은 대변인을 옆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예레미야 입을 대셨습니다....
성도여러분!! 내개 있는 것으로 주님이 사용하심을 믿습니까?....... 새로운 것을 위해 구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에게 있는 것을 사용하시고자 접촉하시고 직접 만져 주시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창세전부터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을 치밀한 계획속에서 지금도 이세대속에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확신하며 자심감을 가지고 내게 있는 것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붙잡히신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