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3코스(14.6km): 온평포구에서 표선까지!
제주올레 3코스는 장장 20.9km에 걸친 중산간 길과 바다 해변을 따라 걷는 바당길(바다길)이 모두 망라된 긴 코스라 전체 올레길 중 가장 긴 코스중 하나이다. 그리고 볼거리가 별로 없어 지루하고 매우 힘든 코스가 될 수 있어 올레꾼들에게 매우 인기 없는 코스이기도 하다. 오늘 이 코스를 종주하면서 올레꾼을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이 3코스는 2개의 코스로 나뉘는데, 중산간길은 3-A코스에 있고 3-B코스는 처음부터 끝가지 바다해변길이다. 아무래도 제주 올레의 특징은 산간보다는 바닷길의 아름다움에 포인트가 있으므로 난 3-B코스를 선택하여 종주한다. 3-B코스에는 최근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바다목장> 길이 열린다. 물빛 바다와 풀빛 초장이 푸르게 어우러진 넓은 평야 초지에 엄청난 량의 감귤껍질을 초원에 깔아 비행기에서 내려다 봐도 온천지가 노란색으로 채색될 정도의 장관을 연출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제주에서만 접할 수 있는 바당올레길이다. 올레3코스에서 나는 B코스를 택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A코스를 버림에 다소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A코스에 있는 <김영갑갤러리>와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갑은 제주를 너무 사랑하여 제주에 터를 잡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이다. 이 <김영갑갤러리>는 김영갑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지인들이 주변의 폐교를 인수해 한해 한해 조성해 왔다고 하는데 아주 멋지고 짠한 감성적인 갤러리이다. 특히 주 소재로 쓰인 이 부근의 용눈이오름의 오름선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동안 넋을 잃게 한다. 하지만 오늘은 나는 B코스로 간다. 그것이 바닷길이기 때 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제주에 바다를 보러 왔지 산을 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3-B코스의 시작은 온평포구(성산읍 온평리 1001-6)이고 종점은 표선 해비치해변(표선면 표선리 44-9)이다. 특히 표선은 나의 큰 사위의 고향인데다 지금 3천평의 귤밭까지 있어 나로서는 더욱 친근감이 가는 지역이다. 온평포구에 모하비 차량을 주차하고 올레길을 시작한다. 오늘은 큰딸 강규희와 큰 손자 강준우가 따라 왔다. 손자는 이제 초등1학년으로 내가 봐도 대단한 놈이다. 지난 여름에는 빗속을 뚫고 한라산 등반도 같이 한 아이로 오늘은 같이 종주할 각오로 덤빈다. 날씨가 크게 춥지는 않지만 낮 기온이 5도 정도로 유지되고 있어 많이 쌀쌀한 편이다. 게다가 방한모를 챙기지 않아 머리 부분이 써늘하여 기분이 영 좋은 것은 아니다. 어제밤에 2시간 반 정도 자고 나왔으니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다. 온평포구에서 종주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A코스와 B코스가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고 난 바당길인 B코스로 나아간다.
온평포구를 지나 바다를 보며 해변길을 걷다가 올레길은 갑자기 차도를 버리고 해변으로 들어가라고 이정표와 리본들이 안내한다. 그리고는 해변 너덜겅으로 된 바위더미로 올레길은 한동안 계속된다. 잘못하면 발을 삐끗하여 발목을 삘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올레길은 바당길과 차도를 왔다갔다 하게 만들더니 곧 이어 신산리 환해장성으로 안내한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것인지 예사롭지 않게 제법 커다란 바위들로 해변 바람막이 담장을 쳐 놓은 곳이 바로 환해장성이다. 그리고 조금 지나니 농개가 나온다. 농개는 농어가 들어오는 바닷길목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단다. 이곳 입구에서 투망으로 농어를 잡았다고 하고 지금도 낚시가 잘 된다고 한다. 올레길 중에서 이 지역이 사람들이 뜸하여 고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갈매기와 학, 두루미같이 생긴 새들이 유난히 해변에 많은 걸 보니 먹이가 되는 고기들이 많이 있나보다. 가다가 문득 바다를 쳐다보니 바로 앞에 커다란 광어가 물 밑에 배를 깔고 있다. 저건 조금 깊은데 사는 고기인데 여기까지 오다니 고기가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3-B코스는 주로 바당올레(바닷가 올레길)인데 여기저기 바닷가에 광어양식장이 설치되어 있고 수산냉동공장 같은 것이 바닷가에 끊임없이 늘어서 있다. 아무래도 여기가 땅값이 싸다보니 저런 시설들이 많이 들어선 모양이다. 이제 곧 이 지역에 제주2공항이 들어선다니 이런 모습들도 모두 바뀔 공산이 크다. 줄지어 서 있는 공장들이 해보수산, 제다수산, 한마음수산 등으로 이름 하니 여기가 어류양식장인지 수산물냉동공장인지 분간이 안 된다. 여튼 기계소리, 물소리 등 시끄럽기 그지없고 시꺼먼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나가는 우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좀 지나면 신천목장이 나온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던 곳인데. 제주도의 독특한 점 중 한 가지는 모든 밭에 돌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는 점이다. 아마 소나 말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쌓은 것 같은데 저 많은 돌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제주도에는 담장 없는 집은 많지만 돌담 없는 밭과 무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신산포구와 주어동포구를 지나 한참을 걸어 신풍포구에 도착한다. 여기가 바로 A코스와 B코스가 다시 합쳐지는 지점이다. 해변길인 B코스에 비해 A코스는 중산간길을 거치고 김영갑갤러리를 지나 이곳 해변에서 다시 B코스와 합쳐진다.
신풍포구가 있는 신풍리와 신천목장이 있는 신천리 바닷가에는 약 10만평 규모의 잔디밭같은 넓은 초원이 있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예전에는 '신천마장'이라 불리는 마을 공동 말 방목장이었고 지금은 사유지로 소를 방목하여 키우는 목장이다. 물빛 바다와 풀빛 초장이 어우러진 목장의 풍경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어 매우 색다른 풍경이다. 신풍리에서는 매년 제주의 전통 축제인 '어멍아방잔치'가 열리는데, 얼마전 TV에서 공중촬영으로 이 거대한 <바다목장>을 소개한 모양인데 그때 하늘에서 본 황금빛의 거대목장이 바로 이곳이다. 그 황금빛은 이 거대한 목장에 깔아놓은 귤껍질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름 하여 <바다목장올레>는 바닷가에 목장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이 너른 들판에 소와 말이 마음껏 뛰노는 모습은 꼭 외국에 온 것 같다. 하긴 지금까지 봐 왔던 해변가 주택들도 스패니쉬 풍으로 꼭 미국서부 San-Diego에서 봤던 주택들 같았다. 계속되는 바다목장 길을 따라 걷고 또 걷고 또 걷는다. 바람은 차고 머리는 식어 오고 하여 여름모자지만 꺼내 쓴다. 조금 더 가다보면 바닷가를 바로 지나고 <배고픈 다리>가 나온다. 이름이 재미있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다. 하지만 올레길에 그 많던 편의점과 상점들은 오늘은 보지를 못한다. 그래서 배가 더 고프다.
이제 저 멀리 표선해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기까지 가면 3코스는 끝인데 육안으로는 보이지만 실제로 걸어가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걸음은 위대하다. 옛날 혼자서 백두대간 종주할 때 느꼈던 생각이다. 걸음보를 측정하니 2만보가 되어가고 발이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초교1년인 손자는 잘도 따라온다. 우리 한걸음이 저 애는 두 걸음 이상이지 싶은데 대단하다는 생각에 쟤도 날 닮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레휴게쉼터와 숨비아일랜드를 지나 소금막해변에 이른다. 여기는 표선 하천리이다. 이 근처 마을에 큰딸 아이의 귤농장이 위치한다. 그곳에 별장도 잘 지어 놓아 내가 제주에 오면 지인들이 찿아 와서 즐겨 이용하는 별장이다. 그 별장에 벌써 경주고 간부들, 경주 쟈르당밴드, 위덕대학원 졸업여행반, 서울 무학초등교 동기들 등이 이용한 적이 있다. 이제 표선해변이 다가온다. 날은 어두워지고 다리는 점점 힘들어 진다. 내가 보기에 표선해변은 매우 특이한 해변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넓은 백사장을 가진 해변이 있을까? 그러니 해변전체의 해발이 거의 같다는 얘기이다. 백사장이 쑥 들어간 형세인데 그 넓이는 수만평에 이른다. 그야말로 어린아이들이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해수욕장이다. 이름 하여 <표선해비치해변>이다. 길이 0.8km, 넓이 8만평에 이르는 너른 백사장으로, 썰물 때에는 커다란 원형 백사장인데, 밀물 때에는 바닷물이 둥그렇게 들어오면서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주 아름답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백사장은 원래 깊은 바다였고 동쪽의 남초곶은 큰 숲이었는데 설문대할망이 하룻밤 새 남초곶의 나무를 다 베어서 바다를 메워 이 백사장이 생겼다고 한다. 해변에는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남국의 열대해변을 연상하게 만드는 경치를 선사한다. 우리는 해변을 빙 둘러 당케포구로 나아간다. 여기에 제주에서 유명한 <당케올레국수>집이 있는데 이 국수집 앞에서 제주올레 3코스는 끝을 맺는다. 이 당케올레국수에는 아주 맛있는 보말칼국수가 있어 한 번씩 즐기러 온다. 오늘도 먹으려 하니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제주올레 3코스는 거리상으로는 1코스보다 짧은데 걸음보를 측정하니 더 멀었다. 그러니 다리가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며칠 뒤 올레 4코스를 하고 11코스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