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 많은 서적과 자료들을 참고하여 이글을 쓴다 .
역사는 백제가 BC18년에 온조가 국가를 세우고 678년후인 서기660년에 31대 의자왕때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한 나라라고 적고있다.
나는 조금 다르게 분류하고싶다.
BC18년에 온조가 세운 나라는 한성백제이고 493년후인 서기475년 21대 개로왕때 고구려 장수왕에게 멸망하였고 475년 22대 문주왕 부터538년성왕15년 까지 63년간은 일본 야마토 백제이며, 538년부터 663년 32대 부여풍이 지금의 예산 임진성에서 흑치상지의 배신으로 멸망할때까지의 125년간은 국호가 남부여이다.
내가 주장하고싶은 백제는 한성백제이고 설령 웅진백제와 사비백제를 다합친다 해도 185년 밖에 되지않는다
(내가 알기로 국내 어느학자도 이렇게 주장하는이는 없을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무령왕과 야마토 백제에 대한 애기를 해보겠다
장황 하고 황당한 내용이 있을수도 있으며, 학계의 정설은 아닐것이다.
한성백제(이후 백제라함)의 최강성기는 13대 근초고왕이다.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371년 평양성 전투에서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16대 고국원왕을 살해하였다.
그후 백제는 고구려의 보복 침공에 시달리다가 백제21대 개로왕은 신라와 혼인 동맹을 맺게된다.
신라 이찬의 딸을 개로왕의 후궁으로 맞아드리고 신라는 후궁의 남동생 문주를 딸려 보낸다.
(우리의 역사서는 문주를 개로왕의 동생이라고 하는곳도있고 개로의 아들이라고 하는곳도 있으나 개로왕의 아들들은 장수왕에게 잡혀 아차산에서 모두 참수되었다)
개로왕의 동생은 곤지이다
서기461년 집권과정에서 공을세운 곤지에게 개로왕은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후궁(신라에서온 후궁은 아닌듯)을 하사하고 왜로 건너가 왕이되라하고 만일 후궁이 아들을 낳으면 백제로 보내라고 하였다.
곤지는 후궁을 배에태워 왜로 가던중 후궁에게 산기가 있자 배에 싣고가던 돌을 깔고 앉아 옥문을 막아 출산을 지연 시키다가 어쩔수없이 후쿠오카 20여리(일본거리로는 2리)앞에있는 가당도(가카라시마)에 정박하여 아이를 낳게하니 그가 곳 무령왕이다.
이름은 사마이며 지금도 일본 최고 존칭으로 불리는 이름이다.(욘사마등)
나는 2018년에 북규슈 요부코항에서 한30분 배를타고 가카라시마 오비아포에서 백제무령왕 사마 탄생지라는 비석과 무령왕을 목욕시켰다는 마르지않는 옹달샘을 보고 온적이 있는데 가카라시마에서는 매년 무령왕 탄생 축하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단다,
2020년엔가 공주 지역구 의원인 정진석의원이 참석했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곤지는 사마 이외에 후궁에게서 3명의 아들을 더 두었는데 무령왕의 동모 이부 형제들이 되느것이다.
곤지는 야마토 지역의 왕이 되지는 못하였으나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마 나이 15세되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3만의 군대로 백제를 침공하니 신라계처남인 문주는 신라로 원병을 청하러 가고 원병을 이끌고 돌아왔을때는 개로왕과 가족신하들은 모두 잡혀 아차산에서 참수를 당하였고 패잔병을 수습한 문주가 남하하여 온조의 형인 비류계가 터를 잡고 있던 웅진으로 천도를 하여 22대왕위에 올랐으나 지역 호족들의 저항을 받게되었고 왜에있던 곤자가 어린 둘째 아들을 데리고 귀국하여 문주와 함께 호족들과 세력다툼을 하다가 2년만에 병조를 맞고있던 호족 해구에게 살해당하고 문주의 아들 삼근왕이 23대 왕위에 올랐으나 2년을 못버티고 살해 당했으며, 곤지를 따라 귀국했던 둘째아들 마대(맛동)가 24대 동성왕에 오르게 되는데 우리 역사의 가장 큰 오류중에 하나가 서동 설화이다.
우리 역사의 서동은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이라고 적고있으나 그보다 2갑자(120년) 앞선 동성왕이 서동이다. 그의 이름 조차도 맛동(마동.마대)이고 일본에도 이무렵에 서동설화와 같은 내용의 마니노장자설화가 생겼고 그때지은 사찰이 아직도 있으며, 백제 왕의 신라와 국혼은 개로왕때와 동성왕때 두번 있었던것을 보아도 서동설화의 주인공은 동성왕이다.
동성왕은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따라귀국해서 불안한 정세속에 익산군 금마면에 살았는데 그지역은 지금도 마 재배로 유명한곳이며 훗날 동성왕이 미륵사를 짖는등 천도 계획을 세우다가 웅진 호족세력인 백가에게 살해를 당하게된다.
불안한 정세속에 22년을 집권하던 동생 동성왕이 살해됬다는 소식에 일본 야마토지역을 다스리던 사마가 급히 귀국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40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백제 25대 무령왕이다.
무령왕이 백제로 넘어올때 자신의 세력을 아들인 순타태자에게 맞기고 왔는데 그때 왜의 25대 천황 무열천황이 사람의 가죽을 벗기거나 삶아 먹는 등의 폭정을 저지르므로 무령왕 7년에 무령왕이 직접 왜로 건너가서 25대 무열 천황을 제거하고 자신의 둘째동생 이자 곤지의 3째아들 계최 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니 이이가 일본 26대 천황인 계최천황이다.
계최천황은 아버지 곤지를 천황의 반열에 올리고 아스카 대신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도 곤지는 아스카대신으로 일본내 최고 반열의 신으로 모셔지고있다.
내가 웅진 백제를 야마토백제라고 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무령왕에 대한 얘기는 이정도 해두고 다음 얘기는 틈날때 더 해보겠다
** 위 내용들은 대부분 나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년대등에 차이가 있을수있습니다**
---칠지도 얘기를 하다가 이니씨 부탁으로 여기까지 흘러왔네요---
2022년 9월18일(일) 지 덕 영 씀
아래사진은 한성백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칠지도 재현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