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구약성서와 유대교 이야기(3)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나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모리인을 서방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성서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이동했다. 동쪽에서 서북쪽으로,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다. 우르 제3왕조의 붕괴가 서쪽에서 온 셈족의 침입 때문이라면, 족장들이 서쪽으로 이동한 것과 셈족의 침입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해 일본 성서 고고학계의 권위자인 쓰무라 도시오(津村俊夫)는 “당시(기원전 2000년경) 아모리인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이미 정착해 있었고, 빈번히 서쪽에서 동쪽으로,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에블라 왕국의 문서가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미 기원전 2400년에 수립되어 있던 이 북메소포타미아의 셈족 왕국은 아카드 왕국보다 이르며, 앞서 언급한 마리는 물론, 수메르의 각 도시국가, 이집트와도 널리 교역을 벌인 사실이 발굴된 문서에서 확인됐다. 에블라어는 아람어에 가까운 가나안어의 일종이다. 어쨌든 ‘아브라함의 시대’에 앞서 남부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문화와는 별도로 북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커다란 셈 계열 문화가 이미 정착해 있었다는 뜻이다. 또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기원전 1900년대 말경 우르를 출발했다는 <구약성서> 내용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구약성서>의 ‘칼데아의 우르’가 과연 남메소포타미아의 우르를 지칭하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성서가 일부러 ‘칼데아의’라고 명기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텐데, 만약 그 유명한 수메르의 우르라고 한다면 일부러 ‘칼데아의 우르’라고 성서에 명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칼데아의 칼디(Kaldi)라는 단어는 카세디(Kasedi)라고 할 수도 있다. 원래 L과 S는 호환성이 있다. 칼디는 카세디가 아니었을까.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들 중 한 명인 케셋(창세기 22:22)처럼 칼데아의 우르는 남메소포타미아의 우르가 아니라 또다른 우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우르 북방설을 주장하는 미국의 성서 고고학자 사이러스 고든이 있다. 그는 일찍이 우르 북방설을 주창하며 히타이트 왕국 문서에 나오는 우라(Ura)를 우르로 해석했다. 히타이트는 기원전 2000년 초 발칸에서 소아시아를 침공, 당시 이집트와 패권을 다툴 정도로 기원전 15~12세기에 가장 번창한 왕국이다.
이 문서는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 하투사스에서 우가리트로 보낸 우가리트 문서(기원전 15~14세기)로, 이 안에 당시 국제적인 상업 활동 내용, 즉 ‘우라 상인’의 활약상이 언급돼 있다. 하지만 이 우라가 어디쯤인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하란 부근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북부 지역을 이르는 ‘아람 나하라임’(창세기 24:10) 주변일 것이라고 고든은 추정한다.
하지만 이 학설의 결정적 함정은 이 문서가 기원전 15~14세기 것이라는 데 있다. 즉 아브라함의 이야기와는 연대가 맞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성서에 따르면 데라는 아들 아브라함과 함께 우르를 출발했지만, 다른 두 자식 중 하나인 하란은 우르에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아들인 나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나홀은 우르에 머물렀다고 해석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베필을 찾기 위해 하란에 있는 형제 나홀에게 사람을 보내, 결국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얻었다.
“어느새 나홀이 하란으로 이동했느냐?”는 질문이 남는데 이에 대한 대답은 명쾌했다. “처음부터 나홀은 하란에 머물렀고, 우르에는 가지 않았다.”
이로써 궁금증은 풀렸다. 원래 아브라함의 선조는 하란 부근에 정착해 살았으며 이곳에서 가나안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손자 야곱도 마찬가지로 하란으로 떠났고, 나홀의 가계에서 아내를 얻었다. 그들은 <구약성서>의 하란, 또는 그 지역을 지칭하는 아람 나하라임에 집착했다. 그렇다면 하란이야말로 그들 일가의 고향이 아니었을가.
아브라함의 출생지 하란을 가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하란을 여행하고 싶었던 나느 ㄴ2002년 9월에야 북시리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나의 계획은 이라크 국경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북시리아의 라카에서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발리크 강을 따라 북상, 지금은 터키령이 된 하란에 도달하는 일정이었다. 이 루트는 (만약 아브라함 일행이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동했다고 한다면) 아브라함 일행이 지나갔다고 예상되는 길이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일찍 출발해 대유적 팔미라에서 하룻밤 묵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이라크 국경 마을 아부케말에 도착, 그곳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에서 마리, 두라유로포스 유적을 둘러보며 유프라테스 강가의 알라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오전 발리크 강을 따라 터키 국경의 텔아비브에 예정대로 도착했다.
시리아 측 국경은 별 문제 없이 통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터키 측 입국 수속은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2시부터라고 했다. 한 시간 이상 기다린 뒤 드디어 터키로 들어서려고 할 때 승용차 입국은 곤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십 년간 시리아에서 생활한 친구가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담당자는 “이곳(국경 검문소)은 자동차 출입 허가를 취급하는 검문소가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하란을 눈앞에 두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2003년 9월 나는 다시 하란을 여행할 계획을 세웠다. 하란과 그 배우의 마을 산리우르파에서 가까운 네루트 산을 둘러보는 여행사의 터키 여행 패키지였다. 이번 여행은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끝인 다야르바키르나 마르딘을 방문할 뿐 아니라 홍수 때 노아가 닻을 내렸다는 아라라트 산과 아르메니아 국경의 대유적지 아니 등도 둘러볼 수 있는 일정이었다.
이렇게 나는 꿈에도 그리던 하란 유적에 설 수 있었다. 하란은 무너져 가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에 문이 몇 개 있었고, 그곳을 통과하니 내부가 매우 넓었다. 그 중심에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마르완 2세가 8세기에 세웠다는 울루 카미(대사원)의 직사각형 모양 첨탑이 서 있었다. 인근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니 황폐한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적안에는 북시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토를 굳힌 둥근 모자 형태의 주거지가 벌집처럼 모여 있고, 현지 주민들이 지금도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인근에 대상(隊商, Caravan)의 숙영지로 사용되었던 성벽이 남아 있었고, 그 아래부분에는 히타이트 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었다.
하란은 아카드어로 ‘길’이란 뜻으로 아브라함의 형제인 하란과 혼동하기 쉽지만 어원이 다르다. 즉 하란은 지중해와 티그리스 강 계곡을 지나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거나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 지대와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연결하는 교역의 십자로 역할을 해왔다.
<구약성서>에서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예루살렘 신전의 붕괴를 예언한 예언자 에제키엘이 레바논의 페니키아 도시국가인 티루스(지금의 티레)의 멸망을 예언한 일이 있었다(에제키엘서 26~27). 여기서 하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하란)은 너(티루스)와 거래를 하고, 호화로운 의복과 보라색 옷, 아름답게 짠 천, 화려한 카펫, 단단히 짠 끈으로 나와 거래를 했다”고 돼 있다. 당시 하란의 인구는 약 1만 명. 그 주변의 반유목민들은 양모와 짐승의 가죽, 고기, 우유 등 생산물을 도기, 보석, 장식품, 직물 등과 교환했기 때문에 이 마을 시장은 매우 번성했다. 또 하란에는 우르와 마찬가지로 달의 신을 숭배하는 대신전이 있어, 이곳을 방문하려는 순례자로 언제나 붐볐다고 한다.
아브라함 일행은 이 하란의 외곽 지역에서 양과 산양 등의 가축을 기르며 생활하지 않았을까. 하란 시 경계선에서 서쪽 바깥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야곱의 우물이라고 전해지는 우물이 있다. 이 우물에서 이삭의 신부를 찾아 가나안에서 온 아브라함의 하인이 나홀의 손녀딸 리브가와 만났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 사회에는 아브라함(이브라힘)이 이 근처에서 태어났다는 전설도 있다. 하란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산리우르파라는 마을에 커다란 바위산이 있는데, 이 동굴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시리아의 영주 님로드는 어느 날 밤 자신이 왕위에서 물러나는 꿈을 꾸었는데 님로드의 꿈 이야기를 들은 사제는 그해에 태어난 아이를 모두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고, 왕은 사제가 권하는 대로 그해에 태어난 모두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고, 왕은 사제가 권하는 대로 그해에 태어난 모든 갓난 아이를 찾아 죽일 것을 명령했다. 아브라함의 어미는 이를 피하기 위해 7년간 어린 아브라함과 동굴에 숨어 지냈다고 전해진다.
또 아브라함은 사라와 결혼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연못 부근에서 살며 이삭과 이스마엘을 낳았다. 아브라함 일행은 이후 산리우르파에서 하란으로 이동했으며, 하란에서 히자즈(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서부)로 여행을 떠났다.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산리우르파의 동굴은 모스크(Kalil-ur Rahman)안에 있으며, 사원 뒤편인 북쪽에는 바위산에 있고, 남쪽 정원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았다. 아브라함의 가르침을 믿은 님로드의 딸이 화형에 처했을 때 불은 물이 되고, 불을 붙일 땔깜은 물고기로 변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