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당서에 기록된 멸망 직전(AD 600년 경)의 고구려 영토 고찰
1) AD 945년에 완성된 구당서의 고구려 영토 내용은 멸망 직전인 AD600년 경의 고구려 영토를 설명한 것이다
고구려 평양성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에 이르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면 백제에 이른다고 했으니
고구려 위치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가 될 수 없다
-. 한반도 북부나 만주에서 동쪽 바다인 동해를 건너면 신라가 일본열도에 있게되고
-. 한반도 북부 남쪽에는 바다가 없으며, 만주 요동에서 바다인 요동만을 건너면 백제가 서해바다가 되니
고구려 영토는 하북성 북부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라
고구려 평양성인 진황도시에서 동쪽으로 바다는 요하를 가르키고, 남쪽으로 바다는 형수시의 부양하를 카르킨다
따라서 남북 2천리는 형수시에서 적봉시 옹우특기(翁牛特旗) 서요하 지류인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까지의 거리가
826 km이니 대략 2천리다
동서 3천 1백리는 만주 요하에서 산서성 대동시 서쪽의 황하까지 거리가 1143 km이니 대략 3천 1백리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멸망 직전인 AD 600년 경의 고구려 영토는 하북성 진황도시 평양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하북성 형수시에서 내몽고 자치주 적봉시까지 이고
동서로는 만주 요하에서 산서성 대동시 서쪽의 황하까지가 고구려 영토로 추정된다
※주) 사마천 사기의 해(海, 바다)의 집해(集解)에서 "서광이 말하기를 바다 해(海)자는 한편으로는
하(河, 강)의 의미로 사용한다(司馬遷 史記 : 徐廣曰 海一作河)고 했으니
고대 중국인들은 큰강이나 큰호수를 바다라고 했다
☞ 『 구당서(舊唐書) 동이열전(東夷列傳) 「고구려(高句麗)」 』
고(구)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했다. 동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면 백제에 이른다.
(고구려 영토 크기는) 동서로는 3천 1백리이고, 남북으로는 2천리이다.
[원문] 高麗 者, 其國都於平壤城. 東渡海至於新羅, 南渡海至于百濟. 東西三千一百里, 南北二千里.
2) 삼국사기에서 유리왕 시절 선비가 화친하지 않고 고구려를 자주 노략질하였기에 BC 9년에 부분노의 계책으로
항복을 받아서 선비를 고구려의 속국으로 삼았다
하북성의 고구려(부여) 서쪽에 선비가 있으니 선비는 산서성 대동시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하북성 북경 지역에는 유리왕과 관계된 유리하 유리묘 등의 지명이 남아 있으니
고구려 유리왕 시대의 국내성은 하북성 북경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