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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교향곡(2)
열일곱 살 요셉에게 운명이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칭찬만 받던 이 요셉이 갑자기 노예신세가 돼 버렸습니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에요. 우리도 그리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들 옷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형들 제발 나를 팔지만 말아 주세요. 내 다시는 이런 옷도 안 입고 다니고, 꿈도 안 꿀 테니까 제발 팔지만 말아 주세요.”
하나하나 붙잡고 매달렸겠지요? 그런데 형들이 매정하게 뿌리쳤습니다.
“네가 없으면 우리가 다리 뻗고 자고, 밥을 먹어도 체중이 늘 것이다. 가거라. 이놈아!”
매정하게 뿌리쳤을 거예요. 그래서 겉옷은 벗겨지고 손발 꽁꽁 묶인 채 낙타 등에 얹혀져가지고 먼 애굽 나라로 가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목이 쉬도록 아버지를 불렀겠지요? 그런데 들리나요? 이틀 길이나 떨어졌는데요.
그렇게 형들이 요셉을 팔아놓고는 요셉이 입고 다니는 옷을 찢었습니다. 양 한 마리 죽여가지고 그 옷에 피를 이리저리 묻혔어요. 그리고나서 아버지한테 가서 한다는 말이
“우리가 오다 보니까 길에서 이 옷을 주웠는데 혹시 이것 요셉 옷이 아닙니까?”
“아! 내가 심부름을 보냈는데 큰 짐승을 만나 찢겨 죽었구나!”
“아버지, 거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가 남아있습니다.”
어떤 말이 아버지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때 형들이 조금 후회를 했겠지요. 그런데 이미 요셉은 가버렸지요. 어디로 갔는지 보시겠습니다. 39장 1절, 6절입니다.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창 39:1~6)
요셉이 이제는 손발 꽁꽁 묶여서 애굽으로 가는 여행길 동안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수많은 생각이 오갔겠지요.
‘이제는 절대로 혼자다.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구나. 그럼 내 어찌 사나? 이제 우리 할아버지 아브라함 이삭의 하나님을 그분께 내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
아주 중요한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누구 집에 팔렸는가? 그 당시 이집트 국방부 장관 집에 팔렸어요. 종이 많지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사람들 앞에서도 신용을 얻겠습니까? 얻고 말고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성실한데요….
가끔 집사람이 저에게 집 좀 청소 좀 해달라고 그래요. 제가 경상도 사람이거든요.
“내가 왜 그런 걸 해?”
제가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목까지 그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을 못해요. 제가 앞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거든요.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제가 싫다는 말을 못해요. 그래도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해서 안 한다는 소리는 못하고 “하지 뭐” 그러고는 슬슬 슬슬 보이는 데만 하지요. 안 했다는 소리는 안 들으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생각해 보십시다. 보이는 데고 안 보이는 데고 쓸고 닦고 했을 거예요. 왜냐? 하나님이 나를 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그 집 주인이 가만 보니까, 이렇게 믿음직하고 이렇게 정이 가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종을 못 봤어요. 그래서 요셉에게 그 가정에 있는 모든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맡겨 버립니다.
잠언 16장 7절 봅시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그 사람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바르면 그 원수라도 그를 인정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시여, 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럴까 그런 생각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바르고 진실하면 내 원수라도 ‘저 사람만은 믿을 만합니다.’ 그렇게 인정한다니까요.
창세기 39장으로 돌아갑시다. 요셉이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니까 하나님이 그를 성공하게 하지 않습니까? 그 당시 이집트의 국방부 장관의 가정 총무라는 것은 정말 큰 지위입니다. 흔치 않은 거예요 그런데 또 한 번 운명이 장난을 칩니다. 요셉의 용모가 어떻다고요? 잘났다 그겁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다. 그 자기 주인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는 거예요. 입장 난처하지요. 그래서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나한테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집 주인이 나한테 나를 믿고 모든 가정 일을 맡겼는데 내가 어찌 주인을 배반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설사 아무리 남몰래 눈을 피해서 관계를 맺는다 할지라도 하늘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그래도 말을 안 듣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창세기 39장 10절~14절을 봅시다.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13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창 39:10~14)
한 날은 마나님이 들어오라고 해서 요셉이 들어갔더니 집에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여주인이 요셉을 잡고 늘어지죠. 그래서 요셉이 빠져 나왔는데 겉옷이 그 여자 손에 남았지요. 그리고 나니까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종놈이 나를 지금 욕보이려고 했다고, 옷이 증거물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보디발이 궁궐에서 퇴청했을 때, 그 이야기를 하니까 남편이 노발대발하겠죠? 그래서 요셉을 어디다 집어 넣었습니까? 가장 큰 죄인 반역자들을 집어넣는 감옥에 집어넣었어요.
그러면 제가 한 가지 묻지요. 그 주인이 말입니다. 자기 집사람이 하는 말을 믿었겠습니까, 안 믿었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셉의 성실성을 잘 아는 주인은 안방마님의 말을 안 믿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안 믿었는데 왜 감옥에 넣어요? 그러나 만약에 안 믿는데도 요셉을 가만 내버려두면 누가 이상한 사람 되겠습니까? 자기 부인이 그렇죠. 자기 집안 체면 문제입니다. 안 믿지만 감옥에 집어넣어버렸어요.
창세기 39장 19절, 23절 보십시다.
19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 39:19~23)
이정도 되면 저는 완전히 낙심하고 실망해서, 아예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 내가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신실하고 성실했는데 왜 또 내가 그런 쓰라린 고통을 당하느냐!”
원망할 만하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저 같으면 “하나님 내가 죽는 게 좋겠습니다.” 이 정도면 요셉의 운명은 끝장난 거 아닌가요?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이 돼 버린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그 요셉이 그렇게 정직하고 진실하고 그 친구하는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엉큼한 구석이 있었다니 참말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요셉이 그렇구먼…. 쯧쯧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럼 요셉은 이미 끝장난 거예요. 그럼 요셉이
“내가 절대로 결백하다는 걸 내가 보여주지.”
하며 자살을 했습니까? 그렇게 자기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희한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도 감옥에 들어가서도 태연한 것입니다.
“이것도 뭐 내가 마셔야된다면 마시지. 쓰디쓴 잔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죄가 없단 걸 아시면 언젠가 세상도 알 날이 오겠지.”
그렇게 감옥에서 내가 남을 도와줄 수 없나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간수가 보니깐 이런 죄수를 처음 보겠죠.
“참말로 희한한 죄수가 왔구나.”
한 동안 지켜보니 하도 믿음직하니깐 감옥 열쇠를 요셉에게 맡겨 버리죠.
이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될 때든지 혹은 잘 안 될 때든지, 내 가는 길이 어렵든지 순조롭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바로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떤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를 믿으면 만사가 다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건강해진다. 뭔가 잘 안되면 하나님께 벌 받아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 좀 보십쇼. 요셉처럼 그렇게 신실하고 성실한 사람도 이렇게 참말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에게도 시련이 올 수가 있다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점이 뭔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그런 시련의 때에 낙심과 절망 속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리죠? 그것이 병이 되도록까지 눈물과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지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그래요.
저는요, 우리 안식일 교인들 청년들에게 직장을 잡는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남의 밑에 들어가서 월급쟁이 하는 것보다 차라리 길바닥에 놓고 채소 파는 것이 낫다.”
그 말입니다. 월급쟁이라는 것은 월급이 딱 정해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우리 장인어른이 부산 00교회에서 목회하실 때, 청년들이 70명 정도 됐는데 실업을 해서 직장 찾아온 청년들이 많았어요. 교회가 빡빡했데요. 그 청년들이 얼른 직장 못 잡으니까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답니다. 안식일 때문에 직장 못 잡아요. 그래서 교회에서 빈대 붙어서 살다시피 하다가, 하나 둘씩 리어카를 사서 토마토를 팔고 채소를 팔고 이런 밑천을 넣어서 하기 시작하더래요. 그러니 내가 하는 사업이니깐 내 마음대로 토요일은 안가면 되죠. 그리고 안식일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청소하고 노래하고. 그렇게 한 10년 쯤 되니깐 다 큰 사업체에 큰 가게에 주인들이 돼 있더라 그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처음 얼마 동안 딱 보시다가 복을 쏟아 붓는 거죠.
그렇게 요셉이 말 그대로 감옥에서 썩고 있는데, 그 감옥에 누가 들어왔느냐 하면…. 창세기 40장 1절~5절 보십시다.
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굽는 자가 그 주 애굽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4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수일이라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창 40:1~5)
그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에 누가 왔느냐면 황제의 술책임자와 음식 책임자가 왔습니다. 높은 사람입니까? 아주 높아요. 왜냐하면 그 당시엔 왕을 독살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제일 신임하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는데 뭘 잘못했는지 감옥에 왔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들어가 보니까 얼굴이 어둡지요.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지금 꿈을 꾸었는데 참 그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는 꿈인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꿈 하면 요셉이 좀 할 말이 있는 사람 아니에요?
“그래서 뭡니까? 꿈 해몽은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그래서 술책임자가 자기 꿈을 말합니다.
“내가 꿈에 보니 포도송이 좋은 것이 3개가 있고, 내 손에 옛날에 쓰던 황제의 술잔이 있더라.”
“그것 참 좋은 꿈입니다. 왜냐면 3일 후에 다시 옛날 그 자리에 올라갈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음식 책임자도 이야기하지요.
“내가 떡 3광주리를 이고 가는데 새가 와서 먹어버리더라.”
이 말을 들은 요셉이 입을 닫아버립니다. 이렇든 저렇든 부탁하니 해몽을 해줘야죠.
“아주 불길합니다.”
“뭔데요?”
“3일 후에 사형되겠는데요? 그리고 당신의 시체는 들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해봉을 듣고 재수 없다 생각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3일 후에 그대로 됐단 말이에요. 새가 뜯어먹죠. 요셉이 술책임자가 감옥에서 나갈 때 부탁했습니다.
“혹시 황제 옆에 갈 기회가 있으시거든 내 억울한 사정 좀 이야기해주시요. 난 여기 올만큼 죄인이 아닙니다.”
“내 얘기 드리지요.”
그러면서 나갔지만 이 사람이 감옥에서 나와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친구만나고, 가족들 만나고 하다가 요셉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또 세월이 2년 흘러갑니다. 창세기 41장 1절~5절 보십시다.
1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수가에 섰는데 2보니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수가에 섰더니 4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찐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창 41:1~5)
이제 만 2년 후에 누가 꿈을 꾸느냐면 황제가 꿈을 꿉니다. 황제가 꿈에 강가에 서있는데 아주 좋은 소 일곱 마리가 풀을 먹고 있어요. “참, 그 소가 좋구나.” 보고 있는데 삐쩍 마른 소 일곱 마리가 나와서 살찐 소 일곱 마리를 먹어버려요. 깜짝 놀랐죠.
비몽사몽간에 또 잠이 들었는데 또 다른 꿈을 꾸죠. 이번에는 아주 충실한 이삭이 일곱 개가 나왔는데 그 뒤에 아무 알맹이도 없는 일곱 개가 나와서 충실한 이삭을 먹어버려요. 의미가 있는 꿈입니까?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황제가 애굽 전국에 있는 똑똑한 점쟁이를 불러 모았습니다. 당시에 박사들이지요. 내용이 뭐냐고 물어도 아무도 해몽을 못해요. 그때에 이 술책임자가 그 소문을 듣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누구 생각이 납니까?
“아, 내가 그 사람을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니 참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황제 앞에 가서는
“황제여, 해몽을 기가막히게 잘 하는 사람을 내가 압니다.”
“어디 있느냐?”
“감옥에 있습니다.”
“그럼 빨리 불러 올려야지.”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 목욕도 하고 옷 갈아입고 면도하고 드디어 누구 앞에 섰습니까? 황제 앞에 섰어요.
창세기 41장 14절~16절을 보시겠습니다.
14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 리이다 (창 41:14-16)
황제가 보니깐 참 청년이 잘 생겼죠? 그때가 애굽에 온지 13년만입니다. 서른 살 때예요.
“자네가 꿈 해석을 그리 잘 하는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아무튼,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는데….”
“황제여, 그 꿈은 두 가지이지만 내용은 하나입니다.”
“뭔데?”
“앞으로 이 이집트와 주변나라에 큰 풍년이 7년 연속으로 들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7년 동안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 흉년이 올 것입니다.”
꼭 들어맞았죠? 정확하지요? 황제가 묻지요.
“그럼 어찌해야 되느냐?”
“황제여, 이집트 전국 큰 창고를 지어서 풍년에 남은 곡식들 을 모두 저장해 놓으시고, 또 다른 나라에서 곡식들을 싼 값에 사들여서 비축을 하십시오.”
이 계획이 좋습니까? 황제가 듣기에 너무나 좋아요. 그래서 어찌 하는가 보십시오. 창세기 41장 37절~41절입니다.
37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창 41:37-41)
드디어 애굽에서 요셉이 뭐가 됩니까? 총리가 됩니다.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 운명을 하나님 손에 맡기니까 이렇게 그 운명을 영광스럽게 만드십니까? 그럼요. 그렇게 하고말고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운명을 하나님 손에 맡기기를 주저하지요? “내 한번밖에 못 사는 인생을 괜히 하나님 손에 맡겼다가 망가지면 어떻게 하나?”
여러분들 보십시오.
우리 자신이 지금껏 내 운명을 가지고 이리저리 끌고 와봤지만 남은 게 무엇인가요? 병들고 늙고 한숨이고 결국은 죽는 것 아닙니까? 내가 내 운명을 가지고 이리저리 해봐도 안 된다니까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것도 일찍 맡기면 일찍 맡길수록 좋지요.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된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하나님의 덕분입니다.
또 누구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합니까? 그 보디발의 부인이지요. 자기를 억울하게 누명 씌워서 감옥에 들어가게 한 그 여자한테 고맙다고 인사해야 합니까? 인사하러 사과 한 상자쯤 사서 찾아가야 합니다.
“당신이 나를 누명 뒤집어 씌어가지고 감옥에 안 집어넣었으면 아직 나는 당신집의 총무나 하고 있을 걸, 당신 덕분에 내가 애굽의 총리가 됐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해야 되겠습니까? 또 형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되요?
“형들이 나를 안 팔았으면 애굽 촌구석에서 양이나 한 마리 두 마리 세고 있을 걸, 자기 잘난 줄이나 알고. 고마워요 형님들….”
그렇죠? 우리는 지금 내 앞에 닥친 이 일이, 앞으로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모릅니다. 내가 지금 닥친 이 일이 고통이고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좋은 일이 될지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죠. 반대로 참말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내게는 오히려 화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운명을 좋든 나쁘든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래서 과연 요셉이 말한 대로 7년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는 계속 풍년 일 줄 알고 흥청망청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만 차곡차곡 저장을 했지요. 드디어 큰 흉년이 왔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어요. 주변 나라에서 사람들이 다 이집트로 양식 사러 왔는데, 누구도 양식 사러 왔겠습니까? 요셉의 형들도 왔지요.
어느 날 요셉이 일하면서 소문 듣고 보니까, 저 히브리 땅에서 열 명 청년이 왔다는 소문이 들려요. 가만 들어보니깐 누구 같아요? 자기 형들 같으니까 데리고 와보라 그랬겠지요? 형들이 들어가 총리 앞에서 절해야 됩니까? 절해야 되지요. 딱 보니깐 형들이지요. 자기한테 절을 하는 형들을 보니 요셉이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옛날에, 그 어릴 때 꿈이 생각나겠지요? 그 참 희한하구나. 그 꿈이 이렇게 이루어지다니….
“자네들 어디서 왔나?”
“우리는 이스라엘 땅에서 왔습니다.”
“너 형제 10명이냐?”
“원래는 12명인데….”
“그런데 왜 10명이냐?”
“하나는 어찌어찌하다가 없어졌고 막내는 집에 있습니다.”
“너 아버지 잘 있냐?”
“잘 있습니다.”
눈물이 나올라 그러죠? 요셉이 얼른 화장실에 가서 울고는 또 씻고 모르는 척하고 물었지요.
“참말로 너 막내 동생이 집에 있느냐?”
요셉이 알고 싶은 게 뭐에요? 자기하고 어머니가 같은 동생, ‘그 동생도 형들이 죽인 것이 아닐까? ’그 말입니다. 안 보이거든요.
“참말로 너희 동생 집에 있냐? 너희들 첩자가 아니냐?”
“아닙니다. 집에 있습니다.”
“첩자가 아니라면, 가서 그 동생을 데리고 오너라.” 나중에
“누가 가서 안 데려오면 너희는 모두 여기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요셉이 통역을 세워서 말을 했거든요. 그래서 요셉이 이스라엘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았죠. 그러니깐 자기들끼리 자기네 나라 말로 요셉 앞에서 이렇게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그것 봐라. 그때 내가 동생, 열한 번째 동생 팔지 말자 안 했나? 우리가 그래서 지금 이렇게 벌 받는 거다.”
자기들끼리 그래요. 요셉이 가만 보니깐 옛날에 서로 싸우고 다투던 형들이 이젠 아니에요. 다 회개하고 딴 사람이 돼있어요. 세월이 사람을 만듭니다. 그렇죠? 열 한명이 그렇게 몹시도 싸우고 다투고 질투하더니만 이제는 세월이 참 그들을 회개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니 ‘누가 남고 나머지는 동생을 데리고 와야 한다.’ 하니, 지금은 서로 ‘내가 인질로 남겠다.’ ‘아니다, 내가 인질로 남겠다.’ 서로 그러고 있죠. ‘내가 인질로 남겠다.’
그때 요셉이 형들 얼굴을 들고 히브리 말로,
“당신들 나를 똑똑히 한번 보시오.”
깜짝 놀라서 떡 보니까 누구에요? 동생입니다. ‘어이쿠,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요셉이 속 좁은 사람이 아닙니다.
창세기 45장 5절 보십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5)
“형님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 말이죠?
“우리를 이 기근의 때에 우리 가족들을 다 살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나를 여기 지금 보내신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시여,
여러분들 가족들이, 친척들이 다 예수님을 압니까? 예수님이 곧 이 땅으로 오실 것을 아십니까? 뉴스타트 건강 원칙을 아십니까? 만약 모르신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미리 이곳으로 보내셨을 수도 있습니다. 병이 들게 하셔서요. 그렇게 될 줄 누가 압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남께서 “내 가족들을, 내 친척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냥은 못 올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그냥은 안 올 것 같으니까, 종으로 팔리게 해가지고, 암이 걸리게 해가지고, 당뇨를 걸리게 해가지고 여기 오게 했는지 누가 압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형님들, 가서 아버지한테 가서 말하시오. 내가 여기 총리입니다. 우리 식구들 다 여기로 데리고 오십시오. 앞으로 5년 더 기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백성이 애굽으로 들어간 거 아니겠습니까? 원래부터 종살이하려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도 죽고 요셉을 아는 사람들도 다 죽고 난후에, 애굽 사람들이 딱 보니까 엉뚱한 민족이 자기들 속에 번창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종으로 만들어버렸죠. 그렇게 종으로 몇 년간 합니까? 400년 동안요. 그렇게 하다가 드디어 누가 태어나요? 모세가 태어납니다. 그래서 모세가 인도해서 그들이 애굽에서 탈출해 오는데 그 이야기가 창세기 다음에 있는 출애굽기 이야기입니다. “애굽에서 나온다.” 그 뜻이지요.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그겁니다. 사람이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이 운명입니다. 운명입니다. 가장 변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이라는 운명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지만 우리 운명을 하나님은 바꾸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우리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길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이 망설이지 마시고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심으로 가장 복된 장래가 보장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비록 요셉은 팔려갔지만, 여전히 살아계셔서 지금 이 시대에도 운명을 맡기는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도 요셉처럼 우리가 꼬꾸라지든지, 엎어지든지, 혹은 진흙구덩이에 빠지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용사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 하나님,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끌고 왔지만 사실상 우리 그렇게 영광스럽고 피어나지 못한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이제라도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오니, 하나님 받아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여주시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되고 좋은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여기에 뜻하지 않게 다 계획에 없이 어느 날 병을 짊어져서 여기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중에 여기 오게 된 것이 가족들이나 친척들을 구원할 수 있는 대표자로서 여기 온 것이 될지 누가 압니까?
우리 하나님,
여기 계신 분들이 어쨌거나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남은 생애가 되게 하여 주시고 담대히 내가 내 운명을 개척할 것이 아니라 담대히 우리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