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침략도 부지기수로 당하였다. 우리가 문화를 전래해 준 일본한테 고루한 보수주의 사상과 내우외환으로 일제 식민지가 되어 굴욕의 한 시대를 보냈다. 해방과 더불어 이백년 역사의 미국 문명과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와 반도 강산에 다대한 영향을 끼쳤다.
1392년에 이 성계는 신돈을 요승으로 몰아 우왕을 중의 아들로 만든 유언비어로 고려 왕조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쿠테타를 일으켜 이씨 조선을 건국하였다. 이조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배함으로 사대주의 사상과 사색파벌을 조성하여 중상모략의 이조 오백년을 이루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종교인과 군인이 정권을 잡아 잘된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태종 방원은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형제들과 서모를 살해하고, 수양은 조카 단종을 독살하고,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죽이는 골육상쟁이었다. 사대 사화를 비롯하여 지학혈연을 위주로 연줄의 붕당정치인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이조 오백년이었다.
1443년에 세종대왕은 원과 사각형과 세모의 월리와 발음 형태와 오행의 순리를 이용해 세계 최고의 한글을 발명햇다. 해와 달과 오행성의 운행 관계를 측정한 칠정산 내의경으로 천문 지리를 발전시켰다. 자격루와 측우기를 만들고, 앙부일구란 해시계로 24절기와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며 과학의 루네상스를 서구보다 일세기나앞서서 부흥시켰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서인도를 발견했다. 황금을 개척하는 신천지 탐험이 유럽에 유행하였다. 종이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달하며, 서구는 루네상스 부흥으로 과학과 문예가 발달하는 와중에 새로운 탐험 시대가 열렸다. 과거 천년 동안에 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인물 백명중에서 인쇄술을 보급시킨 구텐베르크가 1위며, 다음이 뉴턴과 다윈과 루터와 세익스피어이다.
이조는 중종 반정이후 문정왕후와 정난정의 여인천하 시대로 소윤과 대윤의 혈연의 당파 싸움으로 인종을 독살하고, 명종시 문정대비가 20여년간 수렴첨정을 하며, 불교와 환관이 극성을 부리며 내정이 피폐화되어 임꺽정의 난을 초래했다. 선조는 퇴계의 동인과 율곡의 서인이 용호상박의 권력 쟁취와 성리학 논리로 인하여 고려말에 발명된 대포를 할용하지 못하고, 임진 왜란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하였다. 대마도 도주가 풍신수길의 침략을 예보하고, 신식무기 조총까지 헌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대비책을 당파 싸움으로 왈가왈부하다가 임진 왜란을 당하였다.
1592(임진)년 포르트칼 신부가 가져 온 조총을 모방한 일본의 풍신수길은 왜를 통일하고, 한 반도를 침략해 조총으로 백성의 반 이상을 살륙했다. 임진 왜란을 당하자, 용렬한 선조는 명으로 망명하려고 햇던 비렬함을 은닉하기 위하여 의병장 김 덕룡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이순신을 옥에 가두었다. 정유재란시 전사한 원균을 선조가 일등 공신으로 봉하며 이순신의 성웅화의 희생양이 되었다. 양 왜란을 당하고도 사대주의 사상과 사색당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명과 후금의 세력에서 실리적 중용 정책과 대동법을 편 현명한 광해군을 인조 반정으로 몰아 냈다. 멍청한 인조와 보수주의 친명 세력들은 반정 후 3년 뒤 후금한테 정묘호란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친서산에 지는 고성낙일 명의 척화만 주장하다가 청한테 병자 호란을 당하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세번이나 무릅을 꿇고 9번이나 머리를 땅에 쳐박는 수모를 당했다.
1592년 임진 왜란과 정유(1597)재란에 이어, 정묘(1627) 호란과 1636년 병자 호란의 대침략을 44년사이에 4번이나 당하며 삼천리 강산이 초토화되었다. 양대 전란으로 전 인구의 반 이상이 죽고, 전답은 황폐화되었다. 양 대란은 전답이 황폐화되며 국민 경제가 와해되며, 젅정과 군정과 환곡의 삼정이 문란하엿다.
1800년에 등극한 순조는 안동 김씨의 외척이 붕당 정치를 초월하여 세도 정치를 자행하면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도, 양반들은 동서남북과 노소로 갈라져 사색 당파 정쟁만 일삼으며, 가렴주구와 탐관오리가 성행하며,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 민란들이 도처에서 발생했다.
세도 정치의 매관매직으로 상민들이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되고, 전란시 노비들이 전공을 쌓아 해방되며 신분의 변화와 농공상업의 변화가 많았다. 산업 구조와 매관매지으로 인해 양 전란전에 17프로에 불과하던 양반 계층이 고종시대에는 70퍼센트가 양반으로 변해 조선 말기에는 세금을 낼 상민들이 없어 국고가 고갈되었다.
1814년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차를 발명하며 말의 힘으로 수송되던 수단이 기차로 대체되고, 범선이 기선으로 발전하며 나라간의 교역 시간을 단축시켰다. 1861(신유)년 링컨 대통령이 남북 전쟁을 일으켜, 미 합중국을 강화하엿다. 양키는 프랑스가 침범했던 강화도를 1871년에 다시 침범한 신미양요를 일으켰다. 1870년대는 전화와 백열등과 축음기와 무성영화의 전기 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발명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한 격변의 시대였다. 일본은 명치 유신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병인과 신미 양요는 우물안 개구리인 대원군의 쇄국정책만 강화시켰다. 갑신(1884)년 개화파의 정변으로 민씨 일파가 득세하며, 언더우드가 서양 의술과 개신교를 들어왔다. 이가 왕조는 여인 천하의 당파 싸움만 일삼고, 여인들의 치마 속으로 돈을 주고 산 매관매직의 양반들이 우후죽순처럼 양산되엇다. 민비 일파는 관직을 팔아 전 백성의 태반이 양반 계급으로 변하며, 탐관오리와 가렴주구가 설치며 국고는 텅텅 비어 가며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색파벌의 당파는 보수와 개혁으로 갈리며, 1882년 임오군란을 일으키고,
갑오(1894)년에 가렴주구와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이 동학의 주도아래 동학 민중 운동을 일으켰다. 사대주의 근성의 조정 대신들은 오랑케와 로스케와 쪽바리들을 금수강산에 초대하여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러시아를 근친하는 민비를 살해한 을미 사변과 아관파천을 우왕좌왕하며, 북당남과의 농락당한 멍청한 고종이 1897(정유)년에 일본의 허수아비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취힘하였다. 고종은 7년도 안되어 1905년 을사보호 조약을 체결당하고 말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한테 1910년 경술 국치를 당하며 일제국주의에 합방되었고, 36년간 압박과 치욕의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 반도는 1232(임진)년고려가 몽고한테 침략당하고, 1592(임진)년 왜한테 당하고, 360년 후 임진년에 중공군과 로스캐한테 침략당했다. 한 반도는 931번의 침략을 오랑캐와 로스캐와 양키와 쪽바리한테 침범당한 역사를 기록하며, 몽진의 민족 양반문화를 창달했다.
전쟁은 파괴의 아버지이며,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인 스탠딩 섹스의 신[辛 立十]과 관계깊은 총의 나라 양키는 신사년 일본 가미가제한테 진주만을 공습당하고, 신묘년에 압록강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기습당하고, 신해년 베트남서 베트콩한테 당하고, 신미년에 아버지 부시대통령이 양키즘에 반대한 이락을 공략하며 신무기를 과시했다. 21세기 신사년에 미국 심장부 펜타곤과 세계 무역센타 트윈 타워가 공격당한 911테러 긴급전화를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를 삼아,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아프칸을 조지고 이락을 부시는 침략을 자행하며 핵폐기물 우라늄 열화탄으로 지구 환경을 파괴했다.
자유당 시대(48-60년)
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을 맞아 좌우익이 좌충우돌하는 와중에, 이승만은 용호상박 삼 거물을 암살하고, 양키에 빌붙어 친미 허수아비 정권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총의 나라 아메리카를 일본은 쌀의 나라 미[米]국이라 부른 것을 아름다운 미[美]국으로 미화시켜 사대주의를 조성했다. 1950(경인)년에 북한의 금(金) 일성이 목 십팔자 이(李)통을 극하여 남침하였다. 몽진의 도사 이통과 오랄 섹스의 성모는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여 국민을 적지에 가둔채 양반들만 피난가는 바람에 사백만명의 동포들이 죽는 동족상쟁이었다. 몽진의 피난중에도 사사오입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재취임하고, 양키의 잉여 농산물과 구호품으로 호구지책을 연명했다. 반민 특의법을 제정하고, 칠천명의 친일파들을 처단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지도층으로 군림하며 민족 정신을 훼손시켰다. 친일파 군경과 조폭 청년단의 야인시대로 권력을 보수하고, 개신 엘리트들로 교육과 문화를 창달시켰다. 60년 삼일오 부정 선거를 자행하고, 4월 학생 의거로 권좌에서 하야해, 화와이로 망명했다.
3공 유신시대(61-79년)
61년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통은 친일파답게 정오를 일본과 통일시켜 12시 반으로 변경했다. 파월용사 봉급의 90퍼센트를 챙겨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수출 지상주의를 앞장세워 일본 폐기물 처리산업 중화학공업을 한반도에 육성하는 대기업 위주 성장을 주도했다. 72년 남북 공동선언으로 각기 독재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8월 사채를 동결하고, 시월 유신 선포로 철권통치를 감행했다. 저임금 장시간 근로와 고금리 고인플레로 고도 성장을 도모하고, 파월 용사의 피와 공단 여공들의 눈물과 중동 사막의 노무자들의 땀을 희생양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장미빛 공화국을 건설했다. 79(기미)년 핵이 무궁화 꽃을 피운 김재규와 안하무인 차지철의 이전투구에 휘말린 시비육사태로 십팔년 독재는 종지부를 찍었다.
5공 철통 시대(80-87년)
79년 시비시비사태로 무소불위의 보안사와 정보부를 장악하고, 경신년 군화로 광주사태를 유발시켯다. 오리무중의 미궁으로 삼김을 박살내며 정권을 장악했다. 백주에 설치는 백설공주와 영자의 큰 손이딱지 어음으로 개판을 치고, 명성 부동산 투기와 영동 사채파동의 장명동 3대 대형 금융사태로 누란지세였다. 세계 2차 오일 쇼크로 폭등했던 유가가 급락하며,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삼저현상으로 국가의 풍전등화는 모면했으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십년 이상 후퇴시킨 깡통 땡전이었다. 87년에 유월 시민 항쟁으로 일해궁의 수렴첨정이 일장춘몽이 되고, 청남대의 남가일몽도 백담사의 도로무공이엇다.
6공 물의 나라(88-92년)
87년 육이구 선언과 정보 공작과 견원지간 양김의 이전투구로 전통의 바톤을 이어받아 옥좌에 앉아 군사정권을 계승하였다. 보통 아구통으로 수서게이트와 페놀 낙동강 파문을 일으키며, 재벌들과 겹사돈으로 황금성을 구축헸다. 해외 여행과 부동산 취득 자유화로 외화가 해외로 물 새기 시작했다. 주식 투기를 농민과 서민에 맛보여 시비시비 부양책으로 깡통구좌를 만들어 빚쟁이로 전락시켰다. 양김과 삼당 야합으로 지역 감정의 골만 남기고,임신년 거산에 대권을 넘김으로 30년 군사문화를 종식했다.
문민 시대(92-97년)
92년 영삼은 3당 야합으로 견원지간 대중을 제치고 한 발 먼저 대망의 권좌에 등극했다. 노통과 전통을 역사 바로 세우기로 구금하고, 후광은 감불생심의 철통 하나회를 과감하게 박살냈다. 군사 문화의 잔재 졸속공사가 구포 열차 전복사고, 목포 비행기 추락, 격포 여객선 침몰의 육해공 대형사고와 부실공사의 유산 성수대교 붕괴, 마포 가스폭발, 반포 삼풍 백화점 붕괴의 연속 대형 사고로 얼룩진 문민정부였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도, 부자유친 현철의 대도무문 한보와 기아가 부도나고 말앗다. 세계화를 추구하며 종금사를 난립시켜, SK 증권과 대생과 금융사들이 jp 모건의 다이아몬드 펀드와 프로피트 맥시멈 펀드의 천방지축으로 농간당하여, 동남아 태국 바트화와 인니 루피화 폭락으로 핫머니 헤치펀드와 환투기 스와프로 인하여 외환이 고갈되어 환란의 IMF 사태를 유발시킨 김통이었다.
국민 정부(98-02년)
97년에 중원의 개 종필과 호남의 신 후광이 합종연횡하여 두 십팔자를 식언 다반사로 묵살시키며 칠전팔기의 감투를 쟁취했다. 청산유수의 언변으로 딸라와 금모으기 운동을 선동하며 누란지세를 극보했다. 할레루야 기도원과 햇불 선교원의 대생의 십팔자 형자가 옷 로비 파문을 일으켰다. 이호와 정승의 오대 게이트 벤처 파장을 일파만파시켰다. 대우와 대생을 침몰시키고, 빅딜로 하이닉스 공룡을 만들고,알짜 기업을 홰외에 매각하며 내수진작만 조장하는 신용카드만 남발하여 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노벨상에 집착하여 노익장을 과시하지 못하고, 박쥐와 한옥의 원광의 노갑이 설치는 노망만 부렸다. 대중과 정일의 양김이 당나귀 황태잘를 추락시키는 근원이었다. 전임 골통들의 과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명한 대통이 못되고, 유유상종의 전통을 답습하여 두 아들을 영창에 보내고, 임기 말에 대구 지하철 방화 대참사로 마감하엿다. 서호 엠케이파가 설치며 휘호아래 후광을 발휘하던 김통이 기진맥진하여 동교동으로 회귀하며, 삼십년의 삼김시대의 막을 내리면서 유구무언의 김빠진 김통이었다.
임오(02)년 대선시 월드컵의 붉은 악마들의 함성과 여중생 압사 추모 촛불 행렬과 노사모의 노란 물결이 기존 수구파 한나라당과 재계와 족벌 언론 조중동의 강력한 힘을 제치고 개혁 세력이 120년 전의 임오군란과 반대 현상으로 승리 했다. 갑신년 총선에서 패배가 예상되는 보수주의 정치꾼들이 다수의 협잡배들이 쿠데타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는 갑신 정변을 일으켰다. 헌법재판소와 415 총선에서 보수주의 수구파들의 기대와 달리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국민들이 힘을 합쳐 이 나라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역사란 통치자와 나라간의 전쟁과 종교의 사회적 대사건을 후세 역사학자들이 승자의 입장과 시각과 관점에서 기술한 이야기다. 역사가 신화나 설화처럼 미화되고 왜곡되면 국민의 가치관이 호도되어 시시비비의 지혜가 상실되어 정의가 사라진다. 한국의 역사가 일부 소인배 역사가들의 농간에 의해 왜곡됨으로 인해 친일파들이 현재까지 득세하고, 군사 독재에 기생했던 엘리트들이 정계와 관계를 장악하여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를 자행함으로 국가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첫댓글 기가 막힌 역사군요.. 근데요... 너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교 있는 것 같아요.. 다시한번 바라보시면.. 대단한 민족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을 텐데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