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
유월 초 반딧불이 축제에 오라는 카톡을 봤다. 요즘 그런 개똥벌레가 있을까 했는데 어디 있는가 보다. 며칠 뒤 또 들어왔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란다. 마침 시내 모임에 들렀다가 가 봐야지 했는데 늦게 끝나 갈 수 없게 됐다. 곤한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가 볼까 생각하면서 까라졌다.
산딸기 딴다고 새벽마다 나가 일하다 보니 지쳐서 고되다. 가물어서 물통을 무겁게 들어다 밭 채소에까지 뿌려줘야 한다. 처음은 비싸 제값을 받다가 점점 낮아져서 헐값으로 팔려나간다. 사과나 자두는 굵어서 바구니가 이내 차지만 이는 자잘해서 따기도 힘겹고 붓지도 않는다. 그걸 싸게 파니 힘 빠진다.
보관도 안 된다. 냉장고에 넣으면 빛이 바래져서 맛도 덜하고 후줄근하다. 며칠 실온에 두면 뭉그러져 흐물거린다. 그날 팔거나 줘야 하니 바쁘다. 먹으려 했다가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된다. 하늘의 별처럼 오롱조롱 많이 매달려 따도 따도 끝이 없다. 새끼는 자꾸 쳐 해마다 늘어나 지천이다.
옆에 솟은 새순을 뽑아와 물가로 심으면 수분이 많아 튼실해져서 굵고 맛나며 물 주지 않아도 된다. 오뉴월 뙤약볕 더위에 옮기려니 그게 쉽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올해 마지막으로 물 줘 키우는 나무를 버려두고 물 있는 아래로 이사하려니 힘이 들어 밤엔 단숨에 잘 때가 있다. 몇 번 소변보느라 깼다 자곤 하는데 누우면 느닷없이 가물거리는 숯불처럼 사그라든다.
가족에게 오늘 밤 이기대공원 ‘큰고개쉼터’ 반딧불이를 보러 가자 권했다. 아들은 가자 하고 아내는 예전에 많이 봐서 꺼리는 눈치다. 요즘 그런 게 어디 있겠나이다. 한두 마리로 호들갑스러운 행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 이 도심에 그런 게 있을까 괜한 헛걸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할 수 없지 뭐. 윤 장로에게 간다고 했으니 혼자 들러봐야 한다. 해거름에 정자에 올라갔다. 기독 문인도 몇이 와서 해설을 들었다. 젊은 부모가 아이들을 안고 이끌며 보여 주기 위해 여럿 모였다. 남구청에 신청해서 직원과 함께 온 사람도 있었다. 깜깜해지자 숲으로 올랐다. 한두 마리가 휘휘 저으며 불빛을 내고 날자 신기한 듯 바라봤다.
풀밭에 반짝이는 것을 잡아 호박잎에 감싸고 놀던 어릴 때 일이 생각난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가 오늘 보고 있다. 정말 긴 세월 어렴풋이 휑하게 지났다. 은하수도 올려다본 지 아득히 오래여서 그러려니 보냈다. 오길 잘했지. 못 보고 지날 뻔했다. 가볍게 날아다니다가 어디라고 손바닥에도 내려앉는다.
습한데 알을 낳아 부화하여 유충에서 번데기, 성충으로 바뀌는데 근 일 년이나 걸린다. 애벌레는 8개월 넘게 여섯 번의 껍질 벗는 고달픈 과정을 거친다. 물 밖으로 나와 땅속에서 두 달 가까이 번데기 삶을 산다. 그러다가 밤하늘을 날며 빛없는 어두운 곳의 삶이 이어진다. 오염이 안 된 아주 맑고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고 살아간다. 부족한 먹이를 찾아 헤맨다. 그리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날 때 배 끝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깜박깜박 영롱한 형광(螢光)이다. 열흘 좀 넘게 반짝이다가 느닷없고 속절없이 사라지니 아쉬워라. 2천여 종이 있다. 한국에는 그중 8종이 있으며 부산은 3가지로 스스로 발광물질 루시페린을 발한단다. 이곳 이기대 장자산에는 파파리와 늦반딧불이가 있다. 곤충강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에 속한다.
더듬거리며 산길을 한참 오르니 오랜 묵무덤인 듯 좀 넓은 데가 있고 주위 곳곳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높이 안 날고 날다간 풀숲으로 가라앉길 잘한다. 웅성거리고 손으로 휘젓거나 반갑다며 야- 소리치니 놀랐는가 보다. 또 사진을 찍는다고 번쩍거리니 성가시다. 수군거리니 그것도 이곳에서는 크게 들린다. 조용히 하라 나지막하게 소리치는 것도 들리는가. 시끌벅적하다. 조심한다는 게 그 모양이다.
1센티 가까운 작은 벌레로 두 줄 불빛을 내는 게 수컷이고 한 줄은 암컷이다. 늦게 나타나는 좀 큰 늦반딧불이는 날개가 있는 것이 수컷이고 기어 다니는 게 암컷이다. 불빛을 꽤 길게 반짝거리며 날아다닌다. 카메라로 촬영하면 이쁘게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전국에서 이곳 반딧불이가 많고 잘 난다 소문나서 카메라맨이 여럿 모여들었다.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찍는다.
서로 만나려고 암수가 밝은 노란빛을 낸다. 열기 없는 것으로서 산소를 만나 화학반응으로 빛이 나타난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는 소나무와 편백나무숲을 좋아한다. 청정환경을 상징하는 곤충으로 예전처럼 밤하늘을 수놓도록 보호해 나갔으면 한다. 이들이 싫어하는 빛과 소음, 냄새를 멀리하고 그들만 웅성거리며 살도록 놔둬야 한다. 멀리서 조심스레 관찰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참아야 할 것이다.
애벌레 때는 달팽이와 다슬기를 먹고 살다가 빛나는 성충이 되어서는 입이 제대로 없어서 이슬만 핥아먹고 지나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 무주구천동에 반딧불이 행사가 있고 태종대에도 이기대에 이어 축제가 열린다. 몇 곳에 있지만 이곳이 가장 많이 날고 활발하다. 임란 때 진주 논개가 일본 군인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이곳도 기생 두 분이 왜군을 안고 바다에 투신했다 해서 붙여진 이기대(二妓臺)이다.
흔해 빠진 소똥 무더기의 쇠똥구리처럼 길에 깔린 개똥 같아서 개똥벌레라 이름했는데 요즘은 귀하다. 먹이 생물이 줄어들었고 수질오염, 농약 사용, 가로등, 차량 소음과 매연에다 강한 불빛이 반딧불이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오래도록 군사 보호구역으로 묶여있다가 얼마 전에 개방되어 도로가 뚫리고 해파랑길을 따라 드나듦이 잦다.
보러 오는 차량이 고개에 가득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희귀 곤충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친근한 정서곤충 문화곤충으로 알려져 자리 잡아간다. 달 뜨는 밤이나 비 오는 날은 날지 않는다. 개똥벌레 반딧불이 하다가 반디로 줄여 말한다.
첫댓글 어릴때 마당에 나가면 흔하게 볼수있었지만, 지금은 볼수가 없습니다.요즘 시골은 한적하기만해서 천적이 없으니 돌아왔을래나...하고 유심히 살펴도 돌아와주질 않아서 그리움이 되었습니다.손바닥이 올려놓고 살피면 까만색의 보잘것없는 곤충인데 어디서 그 신비한 빛이 발산되는지..
나비.매미.반딧불이...일상 접하던 것들이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시골가면 자주 살펴뵈야겠어요.혹시라도 그 반딧불이들이 그리움에 다시 돌아와있는지를..
성도님 반가워요.
모처럼 반디를 봐서 좋았습니다.
뱅글뱅글 돌던 게 솔솔 다닙디다.
신기했지만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옛추억이 생각나게 하는글 수고하셨습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좀처럼 보기귀한 친근한 곤충
아이들 때로 돌아오신 기분같은 느낌 아직도 소년이세요
오늘 내일 비 온다니 반갑습니다.
가물 때 힘듭니다.
농사 잘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