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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봄햇빛
문수선원에 올라가니 늘 앉는 자리에 작은 꽃병이 놓여있다. 화엄경강설23권이 얌전하게 놓여있고, ‘겨울햇빛처럼 그윽한 화엄일화’라고 쪽지도 놓여있다.
만발다 보살님의 선물이었다.
꽃향기가 나는 책상에서 따뜻한 햇빛을 등지고 화엄경강설 23권의 서문 ‘차라리 일체 세간의 고통을 낱낱이 다 받을지라도 언제나 여래를 친견할 것이며’ 하는 첫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숨에 읽고 숨을 크게 쉬었다. 올 한해 기도문처럼 곁에 두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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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을 기다리는 선원앞 작은 화단에서도 동백나무에는 동백꽃이 어김없이 피었다.
큰스님이 도착하시고, 법공양실에 먼저 들리셨다.
보현행원품 사경집이 나왔다고 알려주셨다.
“가져가서 살펴봐. 너무너무 좋은 책이야.”
마침 강원도 홍천에서 오신 비구니 스님이 법공양실에 계셨는데, 평소에 은사스님과 함께 오실 때는 차를 운전해서 오시지만 은사스님이 아프시거나 해서 혼자 오실 때는 버스를 타고 오신다고 했다.
“나는 홍천 못가봤다. 말만 들어봤지.”
큰스님은 스님이 살고 계신 절을 물어보셨다.
“절은 천축사입니다.”
“천축사, 천축이네?”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듯이 큰스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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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로 나와 햇빛 쪽을 걸으면서 큰스님은 “벌써 봄빛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날 법문 중에 육근의 창고를 말씀하시면서 계산도 정확하고 빠르게 지난해 봄빛과 올해 봄빛을 비교해서 저절로 금방 착착 데이터를 내놓는 몸의 창고에 대해서 설명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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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시다가 인사하시는 스님을 보고 큰스님은
“수염을 다 깍은 거야?” 하고 긴 수염을 짧게 깎고 오신 스님을 알아보셨다.
“깍고 왔습니다.”
“아유 잘했다 상 줘야겠다. 자알 했다. 정말 잘했어. 화엄경 공부하면서 공부한 효과야. 마음의 변화가 오고, 순하게 생긴 그대로 거기서 도를 찾아야지. 잘한 일이다.”
하고 말씀하신 다음
“사명대사처럼 하고 다닌다고 사명대사가 되나? 순하게, 생긴 대로 살아야지.”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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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공부시간 중간의 간식시간이 없어졌다. 작은 방에서 늘 조용히 움직이던 자원봉사 보살님들과는 인사만 나누곤 했지만, 익숙한 모습들이 보이지 않자 작은 방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스님들이 많이 오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오늘도 화엄경 강설을 점안하고 본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23권 서문을 모두 펴서 천천히 같이 읽도록 하겠다.
서문
차라리 일체 세간의 고통을 낱낱이 다 받을지라도 언제나 여래를 친견할 것이며, 반드시 여래의 자재하신 힘으로 살겠습니다.
차라리 가난하고 헐벗어서 추위에 떨더라도 항상 여래를 친견하여 그 지혜와 자비의 청정복덕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차라리 우연히 병을 얻어 백년을 신음하는 무서운 고통을 받더라도 여래를 친견하고 여래의 진리의 가르침 속에서 그 고통을 말끔히 잊고 살겠습니다.
차라리 유루복(有漏福)은 박덕(薄德)하여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이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없더라도 화엄경을 공부하는 무량대복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여래와 맺은 인연 공덕으로 일체 고통이 없고, 가난하지도 않고, 헐벗지도 않고, 추위에 떨지도 않고, 우연히 병을 얻는 일도 없고, 백년을 신음하는 무서운 고통도 없고, 입을 것은 넘쳐나고, 먹을 것도 풍족하고, 의지할 곳도 처처에 널려 있어서 일체 중생들과 이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행복하기를 서원합니다.
<도솔궁중게찬품>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집이 되리니
모든 괴로운 일을 면하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구호(救護)가 되리니
모든 번뇌에서 해탈케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귀의할 데가 되리니
모든 공포를 떠나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나아갈 곳이 되리니
일체 지혜에 이르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안락처가 되리니
마침내 편안한 곳을 얻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광명이 되리니
지혜의 빛을 얻어
어리석음의 어둠을 소멸하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횃불이 되리니
모든 무명의 암흑을 깨뜨리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등불이 되리니
끝까지 청정한 곳에 머물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길잡이가 되리니
그들을 진실한 법에 들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대도사(大導師)가 되리니
걸림 없는 큰 지혜를 주려는 연고이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여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이익 주며 구경에는
일체 지혜를 얻게 하느니라.
<십회향품1>
2015년 3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오늘 공양올린 강설집은 화엄경 제 23권으로, 도솔궁중게찬품과 십회향품의 일부분이 들어있다. 전통적으로 화엄경의 권수는 관리하기 쉽도록 양에 따라서 나눠졌기 때문에 품과는 관계없이 묶여있다. 십회향품의 양이 상당히 많다. 나는 이 십회향품을 읽으면서 ‘불교는 선근회향, 회향이라고 하는 두 글자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이 부분을 공부하며 내가 감동을 했던 것 같다. 불법에 대한 보살의 애착심 같은 것이 서문에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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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들어가기 전에 잠깐 만공회 팜플렛을 함께 보겠다.
BBS 불교방송에서 지금 몇 년 째 화엄산림을 촬영해서 방영하고 있어서 티비를 틀면 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화엄경이 기록되어 방영된다.
그런데 BBS에서 TV까지 같이 하다보니 운영도 운영이지만, 방송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건물로 어렵고 자체적인 건물을 더 지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연구 끝에 일만 만(萬)자 공덕 공(功)자를 쓰는 만공회라고 하는 후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달에 만원씩 공덕을 짓는 모임이다. 오늘 사장이 직접 와서 설명을 했다. 나는 만공회라고 해서 만공스님과 연관이 있는가 했더니 그렇지는 않고 BBS 불교방송을 이끌어갈 십만 분의 공덕주를 모신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BBS 방송국에 ARS를 한 번 누르고, BTN에 ARS를 한 번 누르는 것이다. 그러면 매일 아침 만원이 들어간다. 전화번호 누르기가 귀찮으니 아예 단축키가 있다. 예를 들어서 단축키 7번은 BBS고 8번은 BTN이다. 그래서 두 번 누르기만 하면 바로 연달아서 두 곳에 ARS로 5천원씩, 5천원씩 1만원을 보시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것은 내가 원력을 세운 일인데도 한달에 30번은 어림없고, 10번도 하기가 쉽지 않다. 10번 해봐야 10만원인데,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해야 하는데 때를 놓치거나 잊어버리기도 한다.그래서 간혹 낮에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가 하는 법문이 방영되는 시간에 ARS를 누르기도 한다.
그 시간에 ARS를 누르면 모금이 되는 만큼 나한테 포인트가 쌓인다고 한다.
어떤 스님의 법문은 거의 하루종일, 대여섯 시간씩 같은 내용이 재방송 되는 것을 보고, 내가 ‘왜 그러느냐’ 따지고 물었더니 그 스님이 강의하고 법문할 때 신도들이 ARS를 제일 많이 눌러서 그 스님 앞으로 포인트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그 스님이 화주를 한 셈이다. 방송국에서는 그렇게 계산을 한다.
아무튼 나도 그런 후원을 매일 직접하니까, 법문할 때마다 신도들에게도 권한다.
매일 그렇게 잊어버리지 않고 후원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매일 못해도 강의를 듣다가 생각나거든 한 번씩 ARS 후원을 하도록 하자고 곳곳에서 기회될 때마다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것은 또 그것대로의 후원이고, 이 만공회(萬功會)라고 하는 것도 여러분이 한 구좌씩 자동이체를 신청해서 한달에 만원씩 후원을 하길 바란다. 이 시대에 방송포교같이 중요한 것이 없다. 방송국이 이 시대 최고의 총림이라고 나는 표현한다.
아무리 큰 사찰에서 신도를 많이 모은다 한들 그렇게 많은 신도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방송은 전세계로 다 나간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같은 시간대에 수천 명, 수만 명이 방송을 동시에 볼 수가 있다. 또한 방송은 24시간 쉬지않고 돌아간다. 그런 총림이 어디 있는가. 이 시대에 방송매체라고 하는 참 신기한 총림이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포교에 우리가 손발 벗고 같이 도와야 한다.
이 만공회에 신청하셔서 방송이 잘 돌아가도록 동참하셨으면 좋겠다.
나는 마침 방송국 사장이 왔기에 500달분을 선납했다. 500개월이면 몇 년인가? 얼마를 내면 500개월일까? 나도 그것을 아느라고 한참 걸렸는데 아무튼 여러분들도 각자 인연되는 사찰에서 포교를 잘하고 계시지만 이러한 기회에 복 지을 기회가 되었으니 동참을 하시기 바란다. 도와줄 기회가 왔을 때 같이 손을 잡고 도우면 불교가 크게 발전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아까도 대만이야기가 나왔는데 대만에는 불교채널이 몇 개나 된다. 자재공덕회만 하더라도 두 개의 채널이 있는데 광고가 1초도 안나온다. 광고 방송이 1초도 안나오면서 2개의 채널을 동시에 다 방영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불교방송국도 있다.
대만에도 방송을 하려면, 우리와 똑같은 기술, 똑같은 인력, 똑같은 건물이 다 필요한데 어떻게 그렇게 광고없이 할 수가 있는가? 불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동참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농담삼아 ‘불교티비가 광고티비다. 광고보고 싶으면 불교 티비 틀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많은 광고가 나오는 것은 우리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런 사정들도 우리가 알고 애써 돕는 것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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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받은 화엄경 강설이 23권이고, 오늘 우리가 공부 할 차례도 또 23권으로 순서가 희한하게 잘 맞아 떨어졌다. 화엄경강설 책이 지금까지는 뒤따라 오다가 오늘부터 강의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오늘 23권에는 도솔천궁게찬품과 십회향품 일부분이 권수대로 고대로 같이 나가는데 회향같이 중요한 것이 없다. 회향이 중요하다. 그래서 만공회에 동참하자는 말씀도 더 드리게 되었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兜率宮中偈讚品 第二十四
一, 大衆雲集
1, 十方菩薩來集
爾時에 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萬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사 從萬佛刹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하야 來詣佛所하시니라
그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시방에 각각 한 대보살이 저마다 일만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 같은 보살들과 더불어 일만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 같은 국토 밖 여러 세계로부터 부처님 계신 데로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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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제 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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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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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의 순서는 제 24품째다. 앞에서는 한 품 내내 도솔천궁에 부처님이 올라가는 광경을 그렸다. 지난 달에 대만불자들과 같이 그 게송을 우리가 함께 합송을 하였는데 전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법회였다.
이제 부처님이 도솔궁전에 올라가니까, 동서남북사유상하 시방(東西南北四維上下十方)에서 몰려온 무수한 보살님들이 계셨는데 그 중에 각 대표가 노래 열 곡을 부른다.
게송이 열 개나 되는데, 동서남북 사유상하가 전부 열 곡씩해서 100곡이다. 100곡의 노래로써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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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집(大衆雲集): 대중들의 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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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찬탄한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세계, 부처님의 지혜, 부처님의 덕화를 찬탄하는 것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모르면서도 늘 가지고 쓰는 우리의 참마음, 참사람의 세계를 한껏 펼쳐서 노래부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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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보살래집(十方菩薩來集): 큰 보살들이 미진수 보살들과 함께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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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노래를 부르기 전에 대중래집이라. 시방보살이 와서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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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爾時)에 : 그때에
불신력고(佛神力故)로 : 부처님이 신력으로써
시방각유일대보살(十方各有一大菩薩)이: 시방에서 각각 한 대보살이 있는데 그 한 대보살은
일일각여만불찰미진수제보살(一一各與萬佛刹微塵數諸菩薩)로 : 각각 만불찰 미진수 보살과
구(俱)하사 : 더불어 함께 했다.
만불찰 미진수 보살을 전부 통솔하고 오는 리더가 있는데 그런 분들이 시방에 각각 한 분씩 다 있는 것이다. 한 사찰에 신도를 천 명만 거느리고 있어도 대단하다. 그런데 여기는 일만불찰미진수 보살을 한 보살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또
종만불찰미진수국토외제세계중(從萬佛刹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하야:만불찰미진수국토 모든 세계중으로부터
내예불소(來詣佛所)하시니라 :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왔다.
그 보살들이 누구냐?
2, 菩薩名
其名曰金剛幢菩薩과 堅固幢菩薩과 勇猛幢菩薩과 光明幢菩薩과 智幢菩薩과 寶幢菩薩과 精進幢菩薩과 離垢幢菩薩과 星宿幢菩薩과 法幢菩薩이니라
그 이름은 금강당(金剛幢)보살. 견고당(堅固幢)보살. 용맹당(勇猛幢)보살. 광명당(光明幢)보살. 지당(智幢)보살. 보당(寶幢)보살. 정진당(精進幢)보살. 이구당(離垢幢)보살. 성숙당(星宿幢)보살. 법당(法幢)보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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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명(菩薩名): 보살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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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왈금강당보살(其名曰金剛幢菩薩)과 : 그 이름은 가로되 금강당보살
견고당보살(堅固幢菩薩)과
용맹당보살(勇猛幢菩薩)과
광명당보살(光明幢菩薩)과
지당보살(智幢菩薩)과
보당보살(寶幢菩薩)과
정진당보살(精進幢菩薩)과
이구당보살(離垢幢菩薩)과
성숙당보살(星宿幢菩薩)과
법당보살(法幢菩薩)이니라
이 당(幢)자는 깃대, 깃발이라는 뜻이다. 2600년 전에 부처님 사회에서는 이렇게 큰 행사가 있을 때 으레 깃발이 세워진다. 지금도 그 전통은 계속 되고 있다. 올림픽이 열린다든지 심지어 야구게임이나 배구게임 등 무슨 행사를 해도 무조건 깃발부터 걸고 보는 것이다.
여기 범어사에도 행사를 할 때는 항상 깃발부터 올린다. 길가에도 깃발이 나부낀다.
깃대가 있고 또 거기에 번(幡)을 걸기도 하는데 여긴 그것을 전부 합해서 깃대 당(幢)자를 쓴다. 십회향품을 설하기 전에 그 서론으로서 당(幢)자가 든 보살을 등장시켰다고 하는 것도 이런 풍습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좋다.
3, 所從來國
所從來國은 謂妙寶世界와 妙樂世界와 妙銀世界와 妙金世界와 妙摩尼世界와 妙金剛世界와 妙波頭摩世界와 妙優癖世界와 妙栴檀世界와 妙香世界니라
그들이 떠나온 세계는 묘보(妙寶)세계. 묘락(妙樂)세계. 묘은(妙銀)세계. 묘금(妙金)세계. 묘마니(妙摩尼)세계. 묘금강(妙金剛)세계. 묘파두마(妙波頭摩)세계. 묘우발라(妙優癖)세계. 묘전단(妙栴檀)세계. 묘향(妙香)세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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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래국(所從來國): 보살들이 떠나온 세계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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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열 명의 보살은 어느 국토에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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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묘보세계(謂妙寶世界)와 : 이를테면 묘보세계
묘락세계(妙樂世界)와 : 묘락세계
묘은세계(妙銀世界)와 : 묘은세계
묘금세계(妙金世界)와
묘마니세계(妙摩尼世界)와
묘금강세계(妙金剛世界)와
묘파두마세계(妙波頭摩世界)와
묘우발라세계(妙優癖世界)와
묘전단세계(妙栴檀世界)와
묘향세계(妙香世界)니라: 이렇게 열 명의 보살이 각각 자기들이 살던 세계가 있다.
보살들이 온 세계를 소개했다.
4, 所事佛名
各於佛所에 淨修梵行하시니 所謂無盡幢佛과 風幢佛과 解脫幢佛과 威儀幢佛과 明相幢佛과 常幢佛과 最勝幢佛과 自在幢佛과 梵幢佛과 觀察幢佛이니라
각각 부처님 계신 데서 범행을 닦았으니, 이른바 무진당불(無盡幢佛). 풍당불(風幢佛). 해탈당불(解脫幢佛). 위의당불(威儀幢佛). 명상당불(明相幢佛). 상당불(常幢佛). 최승당불(最勝幢佛). 자재당불(自在幢佛). 범당불(梵幢佛). 관찰당불(觀察幢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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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불명(所事佛名): 수행한 곳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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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고 있던 부처님 이름은 무엇이냐, 한마디로 ‘너의 스승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부처님이다. 근본이 없는 보살은 아무소용이 없다. 그 보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가 스승이냐? 하고 스승을 밝히는 셈이다.
그래서 보살들이 모시는 바 부처님, 섬기는 바의 부처님 이름을 나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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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어불소(各於佛所)에 : 각각 부처님 처소에서
정수범행(淨修梵行)하시니: 범행을 청정하게 닦으시니
소위무진당불(所謂無盡幢佛)과 : 소위 무진당불
풍당불(風幢佛)과 : 풍당불, 보살의 이름도 당자가 있었고 부처님의 이름도 당자가 있다. 부처님과 보살들이 항렬은 같다.
해탈당불(解脫幢佛)과 : 해탈당 부처님
위의당불(威儀幢佛)과 : 위의당 부처님
명상당불(明相幢佛)과 : 명상당 부처님
상당불(常幢佛)과 : 상당부처님
최승당불(最勝幢佛)과 : 최승당부처님
자재당불(自在幢佛)과 : 자재당부처님
범당불(梵幢佛)과 : 범당부처님
관찰당불(觀察幢佛)이니라: 관찰당 부처님이다.
이렇게 열 분의 보살이 모신 열 분의 부처님이 나왔다. 보살은 열 곳의 세계에서 왔고 열 분의 부처님을 모신다. 보살들이 모두 근본이 있고 처소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이런 데서 엿볼 수 있다.
5, 菩薩衆坐
其諸菩薩이 至佛所已하야 頂禮佛足하고 以佛神力으로 卽化作妙寶藏師子之座하사대 寶網彌覆하야 周帀遍滿이어든 諸菩薩衆이 隨所來方하야 各於其上에 結跏趺坐하시니라
그 보살들이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서는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의 신력으로 묘보장(妙寶藏) 사자좌를 변화하여 만들었으니, 보배그물로 두루 덮어 사면에 가득하였으며, 모든 보살대중이 제각기 온 곳을 따라 사자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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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중좌(菩薩衆坐): 보살들이 사자좌에 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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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보살(其諸菩薩)이 : 그 모든 보살들이
지불소이(至佛所已)하야: 부처님 처소에 이른 뒤에
정례불족(頂禮佛足)하고
이불신력(以佛神力)으로
즉화작묘보장사자지좌(卽化作妙寶藏師子之座)하사대 :곧바로 묘보장사자좌를 변화하여 만들었다. 아주 아름다운 보석이 곳곳에 콱 박혀있는 사자좌다. 이를테면 법상인데 그런 것을 만들어서
보망미부(寶網彌覆)하야 :보배 그물이 위를 덮고
주잡변만(周帀遍滿)이어든: 꽉 차 있다.
누군 앉고 누군 서고 할 수가 없다. 그 많고 많은 보살들을 다 앉히려고 변화하여 만든 것이 가득하다. 그것도 뚱땅거리고 오래걸려 만든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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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살중(諸菩薩衆)이 : 모든 보살 대중이
수소래방(隨所來方)하야 : 각각 온 방향을 따라서
각어기상(各於其上)에 : 그 사자좌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시니라: 가부좌를 맺고 앉으시느니라.
화엄경은 무조건 돈오돈수다. 보석이 엄청 박혀있는 어마어마한 수백만억 사자좌를 만드는 데 순식간에 만든다. 그런 것이 그야말로 돈오돈수다.
내가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맞춘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두 달은 더 걸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화엄경은 공장에 맞추는 우리식과는 다르다. 한 마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비과학적이다, 순전히 허풍이다’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한마음의 도리는 이런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만드는 것이 이 글한 줄 읽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다. 마음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화엄경은 그 내면에 전부 마음의 이치가 깔려 있다. 마음의 이치를 깔고 모든 것을 펼쳐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는 말이 있다.
또 화엄경의 첫 구절인 ‘부처님이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하여 금강소성이더라. 그 땅은 견고해서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하는 말도 있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 가봐야 다이아몬드는 고사하고, 구리 하나 은하나 철 하나도 없이 척박한 흙모래 땅일 뿐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땅이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실제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입장에서의 진실이다. 그것이 또한 화엄경을 이해하는 한 열쇠다.
또 화엄경을 이해하는 열쇠는 소동파의 유명한 오도송이다.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가’‘산천초목 그대로가 천정법신 비로자나불이고 온갖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의 말씀이다’ 하는 것 또한 화엄경을 이해하는 좋은 열쇠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화엄경을 이해하면 풀리지 않는 내용이 없다.
결코 허풍이 아니다. ‘허풍도 참 세다’ 이런 소리를 더러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마음의 이치에서는 이보다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훨씬 더 하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
6, 菩薩衆放光
其身에 悉放百千億那由他阿僧祗淸淨光明하시니 此無量光이 皆從菩薩의 淸淨心寶와 離衆過惡한 大願所起라 顯示一切諸佛自在淸淨之法하며 以諸菩薩平等願力으로 能普救護一切衆生하시니 一切世間之所樂見이라 見者가 不虛하야 悉得調伏이러라
그 몸에서 다 백 천억 나유타 아승지의 청정한 광명을 놓으니, 이 한량없는 광명은 다 보살의 청정한 마음의 보배와 모든 허물이 없는 큰 원력으로 일어난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고 청정한 법을 나타내 보이며, 보살들의 평등한 원력으로 일체중생을 널리 구호하니, 모든 세간에서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보는 이는 헛되지 아니하여 모두 조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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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중방광(菩薩衆放光): 보살들이 광명을 놓아 중생을 이롭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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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신(其身)에 : 그 몸에
실방백천억나유타아승지청정광명(悉放百千億那由他阿僧祗淸淨光明)하시니 : 모두 다 백천억나유타아승지 청정광명을 놓으시니
차무량광(此無量光)이: 이 한량없는 광명이
개종보살(皆從菩薩)의 : 모두 보살들의
청정심보(淸淨心寶)와 : 청정한 마음 보배와
이중과악(離衆過惡)한 : 온갖 허물과 나쁜 것을 다 떠난
대원소기(大願所起)라 : 큰 원력으로 큰 서원으로써 일어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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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일체제불자재청정지법(顯示一切諸佛自在淸淨之法)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자재청정한 법을 나타내 보이며
이제보살평등원력(以諸菩薩平等願力)으로 :모든 보살의 평등한 원력으로써
능보구호일체중생(能普救護一切衆生)하시니 : 능히 일체 중생들을 구호하시니
일체세간지소락견(一切世間之所樂見)이라 : 일체 세간에서 전부 기쁜 마음으로, 아주 즐거워하는 환희심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더라. 보기만 하느냐?
견자(見者)가 : 그 광명을 보는 사람들은
불허(不虛)하야 : 다 헛되지 아니해서
실득조복(悉得調伏)이러라: 전부 조복을 얻게 되었다. 제도되고 교화를 받았다.
현실로써 상상해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무수한 보살들이 전부 광명을 발하고 그 광명을 보는 일체 세상 중생들은 그 빛을 보자마자 전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 마음에 준비가 그만치 되어 있으면 어디서든지 우리가 진실로 부처님을 보거나, 보살을 보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보살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의 광명을 본다. 그 광명은 지혜다. 지혜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이다. 진리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는데 헛될 까닭이 없다. 그런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7, 菩薩衆의 勝德讚歎
其菩薩衆이 悉已成就無量功德하시니 所謂遍遊一切諸佛國土호대 無所障碍하며 見無依止淸淨法身하며 以智慧身으로 現無量身하야 遍往十方하야 承事諸佛하며 入於諸佛無量無邊不可思議自在之法하며 住於無量一切智門하야 以智光明으로 善了諸法하며 於諸法中에 得無所畏하야 隨所演說하야 窮未來호대 辯才無盡하며 以大智慧로 開總持門하며 慧眼淸淨하야 入深法界하며 智慧境界가 無有邊際하며 究竟淸淨이 猶若虛空이러라
그 보살들은 한량없는 공덕을 이미 성취하였으니, 이른바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다니되 장애가 없으며, 의지한 데 없는 청정한 법신을 보았으며, 지혜몸으로 무량한 몸을 나타내어 시방으로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을 섬기며, 부처님들의 한량없고 그지없고 부사의한 자재한 법에 들어갔으며, 한량없는 온갖 지혜의 문에 머물러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법을 잘 알며, 모든 법 가운데서 두려움이 없게 되어 간 데마다 연설하매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변재가 다하지 아니하며, 큰 지혜로 다라니문을 열고, 지혜눈이 청정하여 깊은 법계에 들었고, 지혜의 경계가 없으며, 끝까지 청정하여 마치 허공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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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중(菩薩衆)의 승덕찬탄(勝德讚歎) : 보살들의 수승한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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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살중(其菩薩衆)이 : 그 보살대중들이
실이성취무량공덕(悉已成就無量功德)하시니 :다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셨으니, 누가 설법을 해도 주인은 누군가 하니 청중이다. 설법이 먹혀들어야 하는 맛도 난다. 부처님도 청중이 있어야 빛이 난다. 여기서도 보살들이 전부 청중이다.
지금 그 청중들의 수준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 법회의 청중 역시 중간에 오신 분들도 있지만 벌써 2008년부터 동참한 분들도 많다. 그전까지 다른 데서 공부한 것은 다 접어두고 감추더라도 2008년부터 공부한 것만 해도 충분히 자랑거리가 된다. 법화경, 임제록, 화엄경까지, 또 매달 나가는 화엄경강설도 있다. 이런 것이 그동안 우리가 쌓은 스펙이라고 할까, 쌓은 실력이다.
여기는 보살들이 무량공덕을 성취했다고 하였는데 그 무량공덕을 또 열 구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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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변유일체제불국토(所謂遍遊一切諸佛國土)호대:소위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두루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 아무 장애가 없다.
우리를 생각해봐도 일단 스님이 되면 어느 절에 가서도, 처음 간 절이라도 공양주 보고 밥 좀 달라고 할 수도 있고, 지객을 불러서 ‘나 오늘 여기 자고 갈테니 객실하나 내놔라’ 할 수도 있고, 뭣하면 ‘난 지금 빨리 가야되니 차비 좀 내놔라’ 할 수도 있다. 아무 장애가 없다. 우리가 일단 한 번 부처님 앞에 줄을 섰으면 그런 혜택들이 저절로 다 돌아온다. 보살들이 일체제불국토에 노니니까 장애가 있을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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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무의지청정법신(見無依止淸淨法身)하며 :의지가 없는 텅 빈 청정법신을 보았다. 만일 어디에 의지가 있다면 장애가 많다. 그런데 무의지청정법신을 보았다.
다음 세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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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신(以智慧身)으로 : 지혜몸으로써
현무량신(現無量身)하야 : 한량없는 몸을 나투어서
변왕시방(遍往十方)하야 : 시방세계를 두루두루 다 가서
승사제불(承事諸佛)하며 :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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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어제불무량무변불가사의자재지법(入於諸佛無量無邊不可思議自在之法)하며 : 또 네 번째는 모든 부처님의 무량무변한 불가사의 자재한 법에 다 들어갔다. 들어갔다고 하는 입(入)자가 화엄경에 많다. 그 속에 들어가서 그것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법당에 들어왔다고 한다면 법당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선가(禪家)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문지방에 걸쳐있다’ 또는 ‘문 밖에 있다’ 이런 표현들이 많다.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문밖에 있다. 또 ‘한 발은 문지방에 걸쳐놓고 있다’는 표현 등등. 그런데 이 들어가다고 하는 화엄경의 입(入)자의 뜻은 바로 불가사의하고 자재한 법에 내 몸이 동화가 되어, 하나가 되어있다는 의미로 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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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무량일체지문(住於無量一切智門)하야 : 다섯번째는 한량없는 일체지혜의 문에 머물러서
이지광명(以智光明)으로 : 지혜의 광명으로써
선요제법(善了諸法)하며 : 모든 법들을 다 잘 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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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법중(於諸法中)에 : 여섯 번째는 제법 가운데
득무소외(得無所畏)하야 : 두려워할 바가 없음을 얻어서
수소연설(隨所演說)하야 : 연설한 바를 따라서
궁미래제(窮未來際)호대 :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하되
변재무진(辯才無盡)하며 : 변재가 다함이 없다.
보살들의 수승한 덕을 찬탄하고 있다. 대단한 보살들이다. 그 하나만 하더라도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변재가 무진이다. 깨달은 바, 법이 속에 확실하게 있어야 변재가 무진하다. 이런 것이 쉽지가 않고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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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지혜(以大智慧)로 : 일곱 번째는 대지혜로써
개총지문(開總持門)하며 :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게 다 우리 마음자리다. 마음자리 하나 속에는 없는 것이 없이 꽉꽉 차 있다. 우리 마음이 전부 총지다. 그런데 그것을 열어 제치려면 대지혜가 있어야 된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중에 눈만해도 우리는 그동안 눈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는가. 눈 창고 속에 그동안 본 것들이 꽉꽉 차있다. 컴퓨터의 몇 기가 몇 천 기가 몇 만 기가 와는 비교가 안된다. 오늘 하루만 해도 눈으로 본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게 전부 다 차있고,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또 귀로 들어있는 것은 수십 년동안 얼마나 많은가. 필요할 때 얼른 안 떠올라서 그렇지 그것도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다만 워낙 많이 차 있어서 빨리 안 떠오를 뿐이다.
컴퓨터도 한 번씩 리셋을 해서 털어내야 필요한 서류가 빠른 시간에 착착 떠오른다.
사람 마음의 컴퓨터라고 하는 것은 한 번 본 것은 절대 삭제가 안된다. 한 번 들은 것도 절대 삭제가 안된다. 우리는 신기한 것을 가지고 있다.
코로 냄새 맡은 것도 절대 삭제가 안된다. 어디서 무슨 냄새를 맡았든지 무슨 향기를 맡았든지 전부 저장이 다 되어 있다. 혀로 맛본 건 말할 것도 없다. 전부 저장이 다 되어 있다. 혀의 창고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창고다. 수억만 기가로도 비교가 안된다.
육근중에 하나씩만 가지고도 다 그렇다.
몸으로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아 오늘은 날씨가 봄날씨 같기는 한데 아주 새초롬하게 차다’ 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감지해서 이 몸은 정확하게 다 기억하고 있다. 전부 다 이 몸뚱이 저장창고속에 다 저장이 되어 있다. 작년에 저장했던 것과도 탁 맞춰서 계산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른지 ‘아이고 오늘은 날씨가 어떻다’ 하는 비교를 저절로 금방 착착 하고, 데이터를 내놓는다. 참 신기하다.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또 어떤가.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또 어떤 사물을 봤을 때 거기에서 내 나름대로 생각을 지어가고 하는 생각의 창고는 또 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넓은 창고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창고다. 그런 것이 우리 육근의 창고다.
그래서 화엄경에는 특히 바다 해(海)자를 잘 쓴다. 그 창고가 하도 넓어서 바다와 같다는 것이다. 할 수 없어서 바다를 들어서 비유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리들 육근 창고의 넓이는 저 태평양 바다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스님들은 그냥 다 이해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이 총지다. 다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열어 제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대지혜가 필요하다. 대지혜로써 총지(總持)의 문을 열어제친다. 그러면 마음대로 활용하여 쓰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많이 공부해서 이 한문으로 된 글자를 다 알고 있는 것도 총지문을 열은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글자나 글 새기는 방법, 불교 용어 등등 지금까지 공부한 지혜를 가지고 이런 것을 다 열어제쳐서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이치다.
화엄경이 하도 양이 많아서 빨리 빨리 속도를 내서 설명하니 그렇지 화엄경 한구절 한구절에 이런 의미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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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청정(慧眼淸淨)하야 : 혜안이 청정해서
입심법계(入深法界)하며 : 깊은 법계 진리의 세계에 들어간다. 법계는 진리의 세계다. 심법계, 깊고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혜안이 청정해야 된다. 혜안이 청정하지 않고는 진리의 세계를 모른다. 우리는 진리 속에 묻혀서 한 순간도 진리를,법계를 떠나지 않고 살지만 혜안이 청정하지 못하니까 이치와 전혀 관계없이 여기에 가서 부딪치고 저기가서 넘어지고 취생몽사를 거듭하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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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경계(智慧境界)가 : 지혜경계가
무유변제(無有邊際)하며 : 변제가 없어
구경청정(究竟淸淨)이 : 구경청정이
유약허공(猶若虛空)이러라: 저 끝까지 청정하다. 끝까지 텅 비어 청정한 것이 마치 저 허공과 같다. 허공이 어디 끝이 있는가? 우리 마음을 제일 가깝게 표현한 것이 허공이다.
그런데 마음은 허공 가지고 표현하기에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능엄경에는 ‘공생대각중(空生大覺中) 여해일구발(如海一漚發) 유루미진국(有漏微塵國) 개의공소생(皆依空所生)이라
이 허공은 바다의 물거품이라면 우리 마음은 바다다. ’
이렇게 까지 표현하고 있다.
허공이 제 아무리 넓다 해도 우리 마음의 바다에 비교하면 물거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음에 제일 가까운 것은 그래도 허공이다. 화엄경의 한구절 한구절이 다 이렇다.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가장 높고 깊은 지혜에 이르러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8, 十方世界如然
如此世界兜率天宮에 諸菩薩衆이 如是來集하야 十方一切兜率天宮에 悉有如是名號菩薩이 而來集會하시니 所從來國과 諸佛名號도 亦皆同等하야 無有差別이러라
이 세계의 도솔타천궁에 보살대중이 이렇게 모여 오는 것처럼 시방의 모든 도솔타천궁에서도 이런 이름을 가진 보살들이 모여 왔는데, 그 떠나온 나라와 부처님의 명호가 꼭 같아서 차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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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여연(十方世界如然): 시방세계에서도 모두 한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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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있는 보살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시방에 있는 모든 보살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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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세계도솔천궁(如此世界兜率天宮)에
제보살중(諸菩薩衆)이: 모든 보살 대중들이
여시래집(如是來集)하야 : 이와 같이 와서 모인 것과 같이
시방일체도솔천궁(十方一切兜率天宮)에 : 시방일체 도솔천궁에도
실유여시명호보살(悉有如是名號菩薩)이 : 여기에 앞서 소개한 그 이름의 보살들, 그 이름을 가진 그 보살들이
이래집회(而來集會)하시니: 와서 다 모였다. 참 신기한 도리다. 이 사바세계에서 그렇게 했다면 다른 모든 시방세계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시간도 일분 일초 차이가 안 나고 똑같고, 이름도 차이가 안 나고 장소도 차이가 안 난다. 부처님의 이름도 차이가 안 난다. 일중일체 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이다. 우리 한 사람이 여기 앉아서 법문 듣는데 내 한 사람이 법문 듣는 것이 아니라 100조 세포가 다 같이 듣는 것이다. 나도 백조 세포 대중들을 거느린 대장이고 여러분들도 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다 백조 세포 대중들을 거느린 대장이다. 그래서 여기와서 공부하는 분은 백조세포가 다 같이 화엄경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화내면 100조 세포 대중들이 다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듣는 것도 동시에 듣는 것이지 내몸 발 끝에 있는 세포라고 해서 ‘너는 거리가 머니까 한 1초 뒤에 들어라’ 하는 것이 없다. 백조세포가 선후가 없이 똑같이 동시에 듣고 있다. 만약 거기에 선후가 있으면 우리 몸속에서 트러블이 일어나고 세포들이 서로 데모하며 야단법석일 것이다.
백조 대중들이 다 똑같이 듣는 것이고, 절을 하면 백조 세포가 똑같이 절하고, 울고 웃으면 백조대중이 똑같이 울고 똑같이 웃는다.
이런 이치는 화엄경에서 다반사이고 식은 죽 먹듯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것이 또 너무나도 과학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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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래국(所從來國)과 : 온 바의 국토와
제불명호(諸佛名號)도 : 모든 부처님 명호도
역개동등(亦皆同等)하야 : 모두모두 다 동등해서
무유차별(無有差別)이러라: 아무 차별이 없더라. 발끝에 있는 세포나 머리 끝에 있는 세포나 동시에 전부 똑같이 움직인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 시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또 다른 시방 일체 도솔천궁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것이 하나도 헛소리가 아니다. 똑같이 그대로 움직인다. 이것은 절대 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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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화엄의 향기에 싸여...고맙습니다 _()()()_
혜명화님의 글을 읽으면서 봄볕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_()()()_
오랜만에 함께 앉아서 조근조근 얘기하듯~~
예쁜 글 잘 읽고 갑니다..수고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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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동영상으로 듣고 보고 하다가, 그냥 읽어 가려니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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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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