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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는 번성한 곳이었다. |
1) 광나루(廣津) 지금의 광진구에 위치한 광나루. 조선시대 서울에서 중랑천을 건너 이곳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넌 후 광주를 거쳐 남쪽 지방으로 왕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나루는 강원도와 남쪽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이다. 오늘날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으나 현재의 광진교가 놓여 있는 한강 북쪽이다. 광진은 처음에 중급의 나루였으나 곧 승격하여 태종 때에 별감이 배치될 만큼 요충지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 한강과 남한강 및 북한강 유역을 관리하면서 수운을 담당하고 있던 곳이 좌도수참(左道水站)이며, 좌도수참의 별감이 이곳 광나루에 상주하면서 한강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기찰하고, 한강의 조운을 관장하였다. 세종 때 삼밭나루가 개설되면서 광나루의 기능이 약화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송파나루가 번성하여 광나루 - 삼밭나루 - 송파나루 순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
2) 송파나루(松坡津) 석촌호수 부근에 위치했던 나루로서 조선초기부터 있었던 나루는 아니다. 조선후기 병자호란 이후부터 삼밭나루 대신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송파라는 이름은 당초에 광주군 동부면 선리(船離)에 있던 마을이었으나 인조 25년(1647) 장마로 인해 마을이 떠내려가는 피해를 당한 이후 마을 사람들이 지금의 석촌호수 일대로 자리를 옮겨와 살면서 나루를 만들고 송파라는 지명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나루는 삼밭나루를 대신하면서 광주·이천으로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과 경강상인의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송파장(松坡場)이 형성되었다. 이 시장은 한강 상류를 오르내리는 뱃길과 육로를 따라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올라오는 곡식과 목재·명주·솜·삼·과일 등 각종 토산물들이 집결되는 곳으로 늘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물건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장소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 광주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성에서 일부 상인들에게 특권을 준 이른바 금난전권(禁亂廛權)에 저촉되지 않고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지리적으로 도성과 가까우며 사방으로 통행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송파장이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송파장이 번성하였기 때문에 이 일대를 근거로 유행하던 민속놀이인 송파산대놀이가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이 나루에는 9척의 진선(津船)이 있어 통행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자료출처 : 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발간, 2001.10.>
[출처]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 <나루터>|작성자 아리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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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보 감사히 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