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풍경
김동원
스물아홉 겨울과 초봄 사이, 나는 등산가의 안내를 받아 울릉도 도동 루트를 타고 성인봉(聖人峯 986,7m)을 올랐다. 흰 눈이 쌓여 있었지만, 날씨가 맑아 산 능선을 오르면서 뒤쪽을 쳐다보니,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흰빛에 반사된 겨울 바다가 환상적이었다. 산 정상에서 본 폭설에 덮인 나리분지와 계곡마다 바다로 이어진 울릉도는, 물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유토피아 같았다. 그리고 삼십삼 년이 흐른 갑신년 가을 백천(白川) 서상언 수묵 화가의 초대로 섬 일주를 여행하였다. 울릉도는 ‘바다의 소금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옳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높은 파도를 몰고 와 바위 너머 산 능선에 물보라를 뿌렸다. 섬은 온통 타악기에 맞춰 춤추는 무희처럼 보였다. 4박 5일간의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예술 대담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공부였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백천과 나는 갑판 위에 앉아, 항구에 도착하기 전까지 동 · 서양의 명화들과 명시들에 대한 화론과 시론을 펼쳤다. 사동항은 활기찬 신항구로 절벽 위에는 경비행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석봉(石峯)이 바라다보이는 ‘울릉 천국’ 앞쪽에 여장을 풀었다. 마을 뒤쪽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쳐진 열두 봉오리는 장관이었다. 굽이굽이 동백 숲을 돌아 찾아간 절벽 위의 대풍감 정경은 비경이었다. 바다와 맞닿은 수십 리 펼쳐진 해안선 주상절리는, 입이 딱 벌어졌다. 넘실대는 파도와 푸른 하늘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무어라 형언할 길 없는 시정(詩情)과 영감(靈感)이 벅차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도 쓴 적이 없는 시를 쓰리라 바다에 맹세했다. 울릉도 섬 일주는 태초의 한 폭 아름다운 수묵화 위를 달리는 듯했다. 코스모스 리조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본 송곳봉(452m) 해안 절벽은, 가히 불후의 명시였다. 나리분지에서 타고 흘러 내려온 계곡 폭포는 꺾여 수직으로 떨어졌다. 붉은 저녁노을과 순간순간 변하는 바다 색조는, 모든 존재의 소멸인 동시에 생성이었다. 백천이 왜, ‘하늘이 그에게 준 소명을 받들어, 점(點)을 찍고 선(線)을 치다 죽겠다’고 화가로서 천명하였는지를, 그의 화론을 들으면서 긴히 요해(了解) 되었다. 그에게 섬 스케치는, 법고(法古)에서 창신(創新)에 이르는 수묵의 고행, 고행의 수묵화였다. 관음도, 삼선암, 석포 일출 · 일몰전망대, 코끼리 바위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북면 현포리와 서면 태하리 고갯길 팔각정 앞에서, 우연히 만난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 경남 통영 출생)의「울릉도」(시집『울릉도』, 1948, 행문사) 시비는 저리도 반가웠다.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유치환,「울릉도」전문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는 감회에 젖어 소리 높여「울릉도」를 읊었다. 수미상관의 이 시는 청마의 남성적 기질이 그대로 행간에 드러난다. 만주에서 돌아와 1945년 광복 좌우 혼란 속에서 조국의 위태로운 사직(社稷)을 걱정하며 쓴 시이다. “절박한 애국적 충정이 동해의 고도인 울릉도를 빌어 토로”(문덕수)하고 있다. 지식인의 고뇌와 당대 현실을 “애달픈 국토의 막내” 울릉도에 깊이 감정이입 하였다. 종결형 어미 “~갈거나”에서 보이듯, 화자의 심리상태는 관념적이자 낭만적이다. 벗어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의 한계를 직시한다.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만들어진 “국토의 막내” 울릉도는, 활유법의 백미이다. “사념”은 “쉴 새 없이 풍랑 따라 / 밀리어 오는” 급박한 어조에 실려, 참담한 역사의식을 표출한다. 백천과 나는 믹스 커피를 마시며, 청마의 바다를 음미하였다. 그리고 대표시「행복」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가에게 ‘사랑’과 ‘이별’은 언제나 제일의 주제이다. 연시(戀詩)는 애틋한 가슴을 통해 서로를 공유하고 사유한다.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의 충돌 속에서 ‘비밀의 창’을 엿보게 한다. 연정을 쫓다 사랑에 갇힌 열렬한 사모의 불길은, 세기의 로맨스가 되었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행복」전문
처음 내가『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83, 중앙출판공사) 를 읽은 것은, 스물둘이었다. 뒤표지에 실린「행복」을 읊자마자, 내 붉은 심장은 ‘사랑의 불길’로 휘감겼다. 그 밤부터 나는 정운(丁芸)과 청마(靑馬)의 러브스토리에 빠져 포로가 된다. 둘의 로맨스는 운명적이었으며,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갈증과 애증의 불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갈구하였다. 청마가 정운(이영도 시인, 1916∼1976 청도 출생) 에게 바친 20년간 오천 여통의 열렬한 구애의 편지는, 세계 시사(詩史) 속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죄와 윤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과 상상을 뛰어넘는 초월적 사랑의 승화였다. 이백 여통의 서간을 정운 여사가 추려 출간(1967년 초간본)하였다. 이 책은 “청마의 인간사이자 애정사이며, 나아가 청마 문학”(최계락)의 절정이다. 1945년 해방되던 그해 여름, 청마(당시 37세)는 고향인 통영여중의 국어 교사로, 가을엔 정운(당시 29세)이 가사 교사로 부임해 왔다. 청마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고, 정운은 젊은 미망인이었다. 단아하고 고운 정운에게 청마는 첫눈에 연모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청마 문학의 정수였던, 그 당시 정운에게 보낸 연서는 6·25 때 불타버렸다. 피란을 거치면서 청마와 정운의 사랑의 목마름은, 둘을 ‘순수한’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로 승화된다. 책 서문에 실린 청마의 정운에 대한 애절한「그리움」의 시는 절창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 ”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정운에 대한 청마의 뜨거운 사랑이 절규처럼 들린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시인은 날마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앞에”서 정운에게 연서를 띄웠다.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행복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진정한 행복의 가치가 있나 보다. ‘너’를 향한 ‘순결한 사랑’을「행복」은 수미상관을 통해 울림을 극대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승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은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청마에게 사랑은 구원의 길이자, 영혼을 정화하는 구도에 비견된다. 1953년『문예』에 발표된「행복」은, 한 남성이 어떻게 한 여성을 사랑하다 가야 하는지를 읊은, 이 시대 편지 문학의 마지막 보물이다.「행복」은 밀물과 썰물로 한없이 주고받는, 바다와 섬의 끝없는 사랑의 밀어에 비견된다. “어느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던, 그 귀한 정운의 어룽진 가슴 속에, 청마는 아편처럼 황홀한 시어를 붉게 적셔 시로 새겼다. 내가 이 시를 소개하는 까닭은, 마음의 문을 닫고 외롭게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작은「행복」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청마는 일생 동양적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 생명 의지’를 노래 하였다.「깃발」,「바위」,「생명의 서」,「일월」등에서 보인 거친 호흡과 급박한 운율, 남성적 어조는 격정적이다. 1967년 2월 13일, 밤 9시 30분 부산 좌천동 도로 길에서, 명신 여객 소속 버스 84호에 치여 불귀가 된 청마 유치환. 그를 떠나보내고 쓴 정운의 애절한 조시(弔詩)「탑」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