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운암요산회> 30차 정기산행지는 연례 행사대로 경주 함월산(609m)이다. 운암의 정기산행일은 매달 세째주 일요일이지만 11월만은 예외로 첫째주에 실시한다. 테마가 단풍산행이기 때문이다.
함월산은 경주에서 강대춘(강산), 박광태(마당바우), 故 이종률씨 등이 개척한 산으로 그 이전에는 산의 개념을 갖추지 못한 산이었다. 오래 전에 우리는 기림사를 U자로 둘러싸고 있는 산의 주 능선 중에 십자표지석을 발견하고 그 곳(570m)을 정상으로 판단했지만 능선을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 주 능선에 약간 뒤로 밀린 곳에 또 다른 봉우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올랐다. 그 곳의 높이는 609m....우리들은 이 봉우리가 주 능선에서 약간 비켜섰지만 이 곳도 함월산이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곳을 정상으로 정하고 지금까지 연례행사로 가을에 함월산을 찾고 있다. 더우기 수년전에 운명을 달리한 산사나이 故 이종률씨의 추모비까지 함월산 정상에 모셔놓아 우리들에게는 더더욱 의미있는 산이 되었다. 우리는 이 깊은 가을에 단풍을 보러 함월산으로 들어간다. 올해는 날씨가 많이 가물어 단풍이 썩 좋지 않다고 하지만 어쨌든 계절은 가을이고 가을이면 우리는 함월에 들어간다.
이번 함월산행의 들머리는 황룡곡으로 정한다. 경주에서 가장 골이 깊다는 황룡곡. 우리는 보문 지나 추령재 직전의 사시목에서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길로 승용차 4대를 몰고 황룡곡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황용사 지나 좀 더 들어가면 드디어 차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길이 나온다. 우리들의 산행은 거기에서 출발이다.
마지막 작은 다리에서 왼편으로 계곡으로 들어가니 이제 본격적으로 황룡곡으로 들어간다. 산행의 시작이다.
황룡곡 흐르는 물에 카메라를 대어본다. 물은 맑기만 하다. 이 위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그야말로 청정물 그 자체이다.
깊이 들어갈 수록 계곡은 깊이를 더해 더 운치가 있다. 줄줄이 흩어져 나아가는 운암인들.
우리는 거의 1시간을 이런 계곡으로 계속 들어간다. 우리는 황룡곡을 계속 타다가 함월산 정상 밑에서 바로 함월을 올려 칠 생각이다.
산행 중 웃고 있는 콩콩이님을 순간 포착한다. 그녀는 포항 사람으로 경주고등학교 수학교사이다.
황룡곡은 자꾸 깊어만 가고...........강규희 약사와 최진영, 그리고 그 뒤에 조기현 시인이 따른다. 셋 다 운암 산행에는 초행이다. 詩作 실력이 보통이 아닌 조 시인의 머리에는 멋들어진 시상이 떠오를만도 한데......
계류에 흐르는 여러 색깔의 낙옆들. 황룡곡의 가을날은 아름답기만 하다.
황룡곡이 크게 하나로 흐르다가 제법 큰 지류가 두개로 갈라지는 곳인 합수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능선으로 올라탄다.
약간 패인 지역에는 습기가 심한지 억새밭도 보이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함월산으로 오른다. 곧 정상 609m봉에 이를 것이다.
드디어 함월산 정상인 609봉. 함월산은 기림사를 둘러싼 기나긴 U자 능선으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봉우리가 많다. 그래서 어디가 정상인지 아직도 왈가왈부다. 저마다 다 정상을 다르게 얘기하지만........내가 생각할 때 이 609봉이 정상이다. 이 근처 산 전체를 함월산이라고 하니 그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정상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예전에 유명산들도 산 한 가운데 봉우리를 정상으로 하다가 이제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정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 예로 내연산도 삼지봉에서 향로봉으로 정상이 바뀌었고 매화산도 매화산정에서 남산제일봉으로 정상이 바뀌었다. 지리산 기나긴 주능선의 한가운데 있는 영신봉(낙남정맥 시작점)이 정상이 아니라 가장 동쪽에 치우쳐 있지만 가장 놓은 천왕봉(1,915m)이 정상인 것도 그 이유이다.
함월산 정상에서 바라다 본 황룡곡. 우리는 저 끝에서 계곡을 따라 이까지 쳐 올라온 것이다. 아름다운 황룡곡, 경주가 자랑하는 계곡이다.
함월산정에 모신 故 이종률씨의 추모비. 오랜 산친구였던 이종률씨가 2005년 여름에 뇌출혈로 사망을 하자 내가 인천에서 주문하여 이곳에 모신 추모비이다. 추모글도 내가 썼는데 내용은 고사하고 그저 옛생각에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 그는 우리와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처음 만났는데 워낙 바위를 잘 타서 바로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뒤로 그는 변하지 않고 우리와 늘 같이 산에 갔다. 그는 너무나 어렵게 살다가 겨우 결혼을 하여 아기를 낳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는 생전에 함월산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그 인연으로 여기에 추모비를 모신 것이다. 우리가 가을에 함월에 오니 1년에 한번 꼴로 제를 올리는 셈이다. 안타까운 종률이!
그를 아는 사람들이 술을 따르고 포를 놓아 간략하게 제를 올린다.
이제 우리는 함월산에서 도통골로 하산을 시도한다. 도통골은 기림사 방향으로 나 있는데, 중간에 우리가 먹거리 행사를 하는 운암터가 있기도 하다. 오늘도 여전히 그곳에서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사실 조용히 산을 타고 있지만 2사람은 40여kg, 2사람은 30여kg를 짊어지고 가고 있다. 한마디로 식당차이다. 물론 게스트들은 빈손으로 가고 있다. 아직 손님들은 우리들이 준비한 먹거리들을 잘 모르고 있다.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왔지? 라고 생각하겠지. 자! 기대하시라!
하산길에 몸을 돌려 촬영해 보니 공교롭게도 오늘 처음 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가득 담긴다. 경주고 박진렬 선생, 소나무, 조기현 시인, 그리고 음주산행(조주호)이다.
드디어 도착한 운암터. 여기는 우리들의 라스베가스이다. 가물어 물은 적지만 여전히 버들치가 놀고 있고 가을의 운치가 물씬 풍긴다.
자! 이제 시작! 백합조개, 모시조개, 키조개, 왕꼬막, 석하, 가리비.........갖가지 조개가 송산의 가방에서 나오고 왕새우가 쏟아진다.
내 배낭을 열어보니 전어, 왕새우, 바다장어가 나온다. 막 쏟아부어 구워댄다. 자! 구워라! 먹어라!
드디어 축제 시작! 민물매운탕까지 등장하여 우리들의 코와 혀를 마비시킨다.
태공님과 발바리반장님이 공들여 준비한 민물매운탕. 태공님이 맑은 물에서 큰 붕어를 잡아오고 발바리반장님이 산에서 직접 채취한 고사리, 산나물, 제피가루 등을 넣고 끓인 민물매운탕. 너무나 맛이 있어 매운탕 매니아인 조기현 시인은 탄복을 한다.
드디어 술과 붕어매운탕, 가리비에 취한 조기현 시인이 멋진 시를 한바탕 낭송한다. 중간에 뭐라 그러더라? 내 기억에...........'무엇을 해야할 지를 모를 때가, 바로 그 무엇을 해야 할 때이다'............조 시인은 이번 산행이 괜찮다라고 생각할까? 그는 원래 자연주의자이다.
처음 나온 소나무님은 점점 더 실력을 발휘해 전어를 노릿노릿하게 멋지게 구워낸다. 옛말에 '집 나간 며느리도 전어 철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고 했던가? 전어가 과연 그렇게 맛 있던가? 기름끼가 많아 회로 먹을 때 고소하기는 하다.
먹거리를 즐기는 것은 여성들도 마찬가지. 야외 플레이를 너무나 즐기는 최진영양, 운암의 일꾼 단미, 그의 친구 미송.......그리고 팔뚝만 나온 사람은 아무래도 나 같다.
내 딸 규희는 물에서 손으로 버들치를 잡았는데.............
네비회장님의 가을을 쳐다보시는 눈길이 세월을 느끼게 한다. 그는 소시민적이지만 속이 넓은 회장님다운 분이다.
도통골에 있던 도통마을터에 도착하는 운암인들. 지금도 집터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감나무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농사 짓다 버려놓은 밭도 있다.
단미는 자연 속에서는 더욱 빛이 난다. 그러나 그녀는 은행 앞에서는 얼굴이 어두워진다.
드디어 부부출마가 된 태공님과 발반장님. 발반장님은 올해 산행에서 한번도 빠지지 않은 열렬회원인데 늦게 7월에 가입한 태공님 왈 "나도 한번도 안 빠졌다!"..................그런데 뒤에 단미는 뭐하고 있지?
단풍이 썩 좋지않은 올해도 단풍이 있기는 하다.
드디어 2년전 그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그 당시 멤버였던 별꽃, 향나무, 라일락, 본부장, 진산 등이 보면 감회가 새롭겠지. 세월이 변해도 나는 여전히 11월이면 함월에 있다.
기림폭포 앞에 선 노장들. 엄청나게 가물어도 기림폭에는 물이 있다. 그만큼 계곡이 깊다는 말이다.
기림폭 맑은 물에 손을 담그는 고교동창생.........촬영을 하자 뒤돌아 본다. 한 사람을 사진을 의식하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뒷모습을 의식한다. 한 사람은 외적이고 한 사람은 내적인 셈이다.
드디어 도착한 함월산 기림사. 이곳의 공식적인 주소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호암리(虎岩里) 함월산(含月山)이다.
기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산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하다가 원효(元曉)가 확장, 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1863년(철종 14) 본사(本寺)와 요사(寮舍) 113칸이 불타 없어졌다.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宋廷和)의 혜시(惠施)로 중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다행히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 《부호장선생안(府戶長先生案)》 등의 중요한 문적(文籍)과 근세조선 역대 왕의 어필(御筆) 등이 병화(兵火)를 입지 않고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 목탑지(木塔址), 3층석탑, 오백나한상(지방유형문화재 214) 등이 있고, 보물로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 833호),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호), 삼신불(三神佛:보물 958호), 복장유물(보물 959호) 등이 있다.
기림사 정문을 나서서 어느 식당에서 동동주로 꽝! 표정들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별 맛은 없지만 가을의 동동주와 도토리묵이다. 함월이여! 이종률이여! 내년에나 다시 볼꺼나! 내년에는 또 다른 귀인들을 모시고 다시 올께. 난 늘 가을에 여기 있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