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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함월사 우룡 스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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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경계가 나타나면 반드시 물어 점검받아라 (지난 호에 이어) 이런 세계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룬 세계에서는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신통이 생기게 되는데 종점까지 가는 중간에 벌어진 장난에 떨어지면 신체를 망칩니다. 그럴 때 그 중간에 일어난 세계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중간에도 이런 걸 체험하게 된다, 완전히 체험해 버리면 완전히 부처 다 된 것 같고, 옛날 도인스님들이 전부 이럴 것이다, 라는 착각이 벌어지니까 중간 과정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 공부 성취하기 전 중간에 그런 장난과정이 벌어지니까 절대 속으면 안 되고 집착해서도 안 된다, 그런 소리를 내가 굉장히 강조하지요. 그런데 그런 경계는 화두를 하든지 주력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다 체험하는 겁니다. 스님들이 모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체험을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만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체험을 못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다 체험을 하는 거니까, 한 가지 하다가 혹 장난에 휘말리는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화두를 하던 기도를 하던 주력을 하던 염불을 하던 마음공부 하다보면 모두가 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거의 그런 장난에 다 걸려서 휘말리고 흔들리게 됩니다.
●스님 그러면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지요? 신도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줘도 병통(病痛)을 만들고, 이야기 안 해주다가 멋대로 공부를 하다보면 당신들이 힘이 들고 망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미리 부탁드리는데, 이게 결국은 당신들의 공부를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관세음보살” 부르라고 해놓고 불러나가다 보면 이런 고비도 있을 수가 있고, 이런 장난이 올 수도 있으니 흔들리지 말아라, 하면 이게 하나로 똘똘 뭉쳐 가야 하는데 무의식 속에 병통이 자꾸 공부를 둔하게 만들고, 진취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브레이크가 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 해줄 수도 없고…. 그러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는 가까이 있으면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질문을 하면 모르겠는데…. 이게 그렇게 못하면 공부가 옆길로 가게 됩니다.
혼자 공부하다 잘못된 사례 그래서 옛 노스님들이 공부할 때는 선지식을 가까이 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하셨는데, 참 좋은 말씀인데도 젊은 분들은 어떻든 혼자 가서 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걸로 착각을 해
버리거든요. 혼자 공부한다는 스님 한 분이 간혹 왔다 갔다 했어요. 중간에 보니까 안하무인이에요. 어른도 몰라보고 상하도 몰라보고 남녀 구분이 없이 마구 말을 놔서 하고, 당신이 최고인양 그렇게 하고 다녔어요. 한번은 비가 출출 오는 날 우비도 없이 비를 맞으면서 우리 절에 왔어요. 그래가지고 무슨 소리 몇 마디하고 그러는데 여비 조금 챙겨주면서 우비나 쓰고 다니지 꼴이 이게 뭐냐 그러니까 “뭣이 젖는데?” 그럽디다. “다 젖었잖아”하니 웃으면서 갔어요. 그런데 그 뒤에 얼마 후에 왔는데 정신이 이상해가지고 왔어요. 나는 학성선원 2층 방에 있고 밑에서 아이들이 객스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해서 그래 객실에 모시고 저녁공양 하셨는가 물어보고 준비를 해드려라 했어요. 조금 있으니까 아이들이 “노스님! 이상해요. 한복판에 의자를 갖다 놓고 방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간혹 가다가 할을 하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그럼니다.” 그래서 내려갔지요. 그 스님이에요. “왜 이래?” 그러니 헤헤 웃으면서 “귀신이 버글버글해요. 천도해야 되기 때문에….”하더군요. 그래도 내 앞에서는 할은 안 합디다. “법문을 해도 알아들을 사람에게 해야지 법문이 되는가. 이런 데서는 담배피고 그러면 안 돼”그러니 “여관에 가서 잘 테니까 돈을 달라”고 그래요. 그래 “돈 줄 테니 여관에서 자”하고는 여관비를 줬어요. 그랬더니 다시 가더라구요. 그런데 대문 밖으로 나서면서 담배를 피워요. 그래 “담배는 왜 피워?” 그러니까 “속이 메스껍고 귀신들이 우굴우굴 해서 더럽고 그래서 담배를 핀다”해요.
그러면서 귀신을 쫓는다며 담배를 피우고 동전을 던지고 침을 뱉으면서 몇 걸음 가서 할을 하고, 또 몇 걸음 가면서 할을 하고, 그래서 내가 짐작하기를 혼자서 공부를 하다가 저렇게 망쳤구나, 저 사람을 어떻게 누가 바로잡을까,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 수가 없는데, 하고는 잊어버린 사건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혼자서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을 안 하고 요새는 보면 비구스님이든 비구니스님이든 어쨌든 혼자 절을 만들든지 굴을 만들어서 혼자 가서 혼자 하면 공부를 가장 잘 하는 걸로 착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은 분들이 공부 길을 그르칠 수 있다는 걱정도 되고, 그런 자리에 가서 게을러서 엉뚱한 데로 빠지면 중노릇도 아니고, 자기는 공부 잘 한다고 하지만, 엉뚱한 쪽으로 가버리는 수가 많다는 생각이 근래는 많이 듭니다. ●어쨌든 그런 착각이나 정신 이상으로 가는 것도 수행 과정에 어떤 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걸 잘못 받아들이면 깨쳤구나, 도인이 됐구나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군요. 그러니 혼자서 공부하면 굉장히 위험하니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공부하라. 이런 말씀이시군요. 공부하다가 도중에 어떤 경계를 보게 되는데 그걸 긍정해서 받아들이면 완전히 일시적으로 가 버리거든요. 어쨌든 공부하는 이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꾸지람을 받으며 곁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바른 법인데 혼자서 다 해 버리거든요. 마을에 거사님들이 애를 쓰다가 어떤 걸 느끼면 ‘아! 좋은 현상, 좋은 경지를 느꼈다. 체험했다’고 긍정으로 받아들이면 잘못된 쪽으로 가버리고 스님도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공부를 할 때는 자주 물을 것, 자주 물으면서 화두든지 기도든지 많이 하신 분 곁에 있으면서 자주 묻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런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부정하고 계속 나아가 화두가 타파될 때까지 계속 나아가야 하겠네요.
공부했다는 것을 경험해서 하다보면 아무 것도 없어졌다 이거예요.
마음공부 중 한 경계인 무기공(無記空)의 교훈 ●화두가 안 들리고요? 없어져 버렸다 이거예요. 그런 걸 무기(無記) 쪽으로 빠진다 그렇게 봐야 되겠지요. 애써서 하다보면 분명히 화두가 해결이 된 것은 아닌데 화두도 아무 것도 없어져 버렸고, 편안하게 아무 것도 없고, 생각도 움직임도 아무 것도 없이 앉아 있게 된다, 그렇게 되거든요. 그건 주로 무기(無記) 쪽으로 빠졌다고 봐야 될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당신이 공부를 바로 한 것처럼 그런데, 무기(無記)라는 것이 참 편안하거든요. 무기(無記)란 내 몸을 잊어버리고 시간, 공간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무기(無記)가 얼마나 무서운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지요. 중국 당나라 무종(武宗) 때입니다. 무종이 처음에 불교에 신심을 가지고 있다가 점차 불법을 파괴시키고 스님을 강제로 마을로 보내고 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계기가 어떤 공부하다가 잘못한 분 때문이에요. 중국이 안 가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중국 가보면 주로 산도 없고 허허벌판이니까 벽돌문화가 발달될 수밖에 없었고, 건축을 해도 목재가 없어요. 지금은 서안이죠, 당나라 장안 근처에 조그마한 산이 있었는데 장안 시내 사람들이 집을 만들 때 자꾸 그 산의 흙을 퍼다 건축에도 쓰고 도로도 만들고 했다는 거예요. 산을 파 들어가 보니까 높이도 몇 십 미터 되고 둘레도 몇 십 ㎞가 되는 산을 자꾸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파 들어가 보니까 마침내 산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이 깊은 속에 어떤 스님이 앉아 있더라는 거예요. 그 흙더미 속에…. 그러니까 이 스님 앉아 있는 바깥은 유리벽 같은 것이 생겨서 그 안에 스님이 앉아 있다 이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호기심에 깨우려고 하는데 깨지지도 않고, 그래 강제로 스님을 흔들어서 깨우니까 스님이 깨어났다는 거예요. “언제부터 여기에 있습니까?” “내가 길을 가다가 잠시 앉을 때에는 여기가 평지였고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수백년 수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티끌이 쌓이고 흙이 쌓여서 산이 되도록 당신은 그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그 경지에 빠져 있었다는 거예요. 이게 무기공(無記空)에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죽지도 않고 그 몸 유지하면서 모든 것을 다 모르고 넘어가 버리니까 그런 세계가 무기(無記)다 이거지요. 그래서 그 스님을 밖으로 모셨습니다. 또 당나라 무종도 환희심을 내고 정진을 잘하신 분이라 해서 궁에 모시고 대접을 했는데 궁녀들이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궁 안에서 여자를 관계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누구하고 관계를 했냐고 족치니까 스님하고 관계가 있었다고 했데요. 그러니까 수백년 수천년을 정진했다고 하는 중이 저 상태인데 몇 십년 공부했다는 중이 무슨 영험이 있느냐, 불교라고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이래서 그 무기공에 빠져 있던 스님의 잘못 때문에 불법사태가 벌어졌다 이겁니다. 무기(無記)라고 하는 세계가 그렇게 편안해요. 체험해 보면…. 그런데 화두든 염불이든 하다가 보면 아무 것도 없어져요. 망각의 세계지요. 나도 잊어버리고 시간, 공간, 환경 다 잊어버리고 편안하긴 한없이 편안한 세계예요. 그런 것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망상을 피우고 있을지언정 무기(無記)에는 떨어지지 말아라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스님도 그런 분이 계시고 재가자도 그런 분이 계시는데 공부하다 보면 편안하기만 하고 화두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진 상태에서 시간이 언제 넘어가는지 모르는 차원에 가면 공부 잘 된다고 착각하고…. 그런 분들이 스님도 계시니 재가자는 더 말할 것 없이 있어요. 위험한 고비인데 그럴 때마다 가까이에 스님들에게 가서 자꾸 질문을 하고 문의를 드리고 꾸지람을 들으면서 공부를 해야 되는데 멋대로 하다 보면 착각의 세계에 빠져버립니다. 그런 것도 결국 공부하는데 커다란 방해가 되는데 염불을 하시든 주력을 하시든 화두를 하시든 똑같아요. 공부 방해 경험하는 것은 똑같아요. 그 이후 스님의 공부 ● 스님! 갑장사에서 금봉스님한테 잡히셔서 거기에서 “너는 미쳤다, 미쳤다. 버려라, 깨어나라” 야단맞고, 거기에서 100일 가까이 계시다가 착각에서 깨어나셨던 겁니까? 그 이후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후는 전부 다 버렸지요. ● 그 자체도…. 예, 그러니까 그때에 내가 어른들에게 질문을 안 드리고 혼자 자꾸 하다보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옆에 사람들이 남자, 여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헤까닥 했다”는 소리를 하고 그렇게 하니 그때 전부다 버려 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중간에 공부가 완전히 중단이 되고 잘못된 거지요. 그 때 어른들께 질문을 드리고 공부 길을 잡아서 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때 전부 다 버렸어요. 화두든 주력이든 전부 버렸어요. 그 잘못이 지금 나이에 … ● 그 이후 어디로 가신 거예요? ● 갑장사에서 다시 해인사로요. ● 그러면서 강원에서 다시 경을 보시고 하셨던 거군요. ● 그러셨군요. 강원 이후에 선방으로 들어가셨고요 ? 지내도 언제나 그게 병이 되데요. 다라니하고 염불에 집중해서 공부를 하다가 조금 체험을 하고 하니까 선방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 지난날 공부할 때 체험한 경계가 안 나타나니까 자꾸 답답하면서 그쪽이 옳은 일이 아니냐, 이런 망상도 있었어요. 그 때는 완전히 앞도 뒤도 없이 화두 쪽으로 몰두해야 되는데 내가 그런 선지식을 찾아가지 않았고, 어른들에게 질문을 안 드렸으니까, 어른들도 나를 몰라주시고 그러면서 내 공부가 중간에 완전히 흐트러진 그런 세계로 가버린 거지요. 구미 금강사 철우스님의 식광(識光) 이야기
● 당시 스님께서 질문 안 드린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그 경계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말씀을 드리고 향상했어야 되는데 그만 내가 버리면서 관심을 안 갖고 살다보니까 잘못된 거지요. 그런데 그 중간에 90년대 초인가 80년대 말인가 구미 금강사 철우 노스님이란 분이 계셨는데요. 노스님은 밀양 표충사 어른인데 16살부터 정진을 하시면서 그때부터 묵언하시고 선지식이셨어요. 지금 구미 금강사 그 자리에 절이 있고 거기에 노스님의 부도도 있고 그 스님의 문중들이 거기에 삽니다. 철우 노스님께서 여든이 넘으신 노후에 스님을 뵈면서 지나간 것을 이야기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자네도 식광(識光)은 경험했네 그려. 그러시면서 당신이 16살 때 체험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당신께서는 16살에 경험했다고 말씀하시면서요? 그런데 식광(識光)이 뭔지요? 그 세계에 가면 지나간 이야기가 떠오르지요. 전생(前生) 인연이든지 전생 일을 알아맞히기도 하고 쳐다보는 힘도 생기고…. ● 8식이 넘어서면요 ? 식광의 고비에 가면 그런 고비가 생깁니다. ● 그러면 철우노스님께서도 16살에 식광(識光)을 경험하셨다고요?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그 어른은 당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안 해주시고 젊었을 때부터 조실스님으로 예우 받으며 한평생 선방에서 사신 어른입니다. 80을 넘으시면서 호흡을 못하셔요. 기운이 없으니까 부산 분도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분도병원 원장님이 그 노스님을 세밀하게 진찰을 하시면서 “젊어서 말을 안 하고 살았다. 굶고 살았다. 또 남에게 골병이 들도록 얻어맞았다.”합니다. 그걸 팔십 먹은 노인을 진찰을 하면서 알아 맞혀요. 그러니까 철우 노스님께서 웃으시면서 “의사들도 제법 맞춘다.” 그러시면서 당신이 젊어서 공부한다고 20년 묵언을 하신 이야기를 하셨으니, 말을 안 하고 살았다는 것이 맞는 거고, 굶고 살았다는 말은 20년 생식을 했는데 옛날 생식은 요즘처럼 과일이 많거나 먹을 것이 많지 않고 쌀가루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끼니때가 되면 쌀 한 숟가락씩 한 숟가락 반이나 풀어서 물로 삼키니까 완전히 영양도 없고 굶는 거지요. 20년 이상 그렇게 사셨으니까 굶었다는 말이 맞지요. 3·1 운동 때에 묵언을 하고 다닐 무렵인데 파출소에 붙들려 갔었데요. 그런데 묵언을 하고 있으니까 파출소 경찰관이 무슨 소리를 하던 일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던 우리나라 사람이 대답을 안 하고 묵언을 하고 있으니까 불순분자다 이거지요. 들어갈 때는 내 발로 들어갔다 그러시는데, 얼마를 맞았는지 그 다음의 일은 기억을 못 한다 그러시데요. 그런데 일본 경찰이 두드리다가 완전히 시신처럼 되어 버리니까 파출소 앞에 던져 버리고 가마니에 물을 뿌려서 덮어놨더랍니다. 그런데 시장에 갔다가 돌아가시는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지게에 업어 자기 집에 눕혀서 간병을 해주셨더랍니다. 며칠 만에 깨어났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재생의 은인이 되었다, 그러시면서 안 그랬으면 내가 그때 죽었을지도 모르지, 하셨지요. 그래 의사가 80이 넘은 노인을 진찰을 하면서 말을 안 하고 살았다는 거, 굶고 살았다는 거, 어디 가서 골병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이 세 가지를 알아 맞추는 것을 보니 의사들도 제법이다, 노스님이 그러시면서 웃으시데요. 그런데 그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랍니다. 스님은 정신이 육체를 공전하는 어른이 되어서 다른 분과 다릅니다. 그래서 스님의 신체적인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스님은 신체적으로 무슨 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이 그대로 신체를 끌고 가는 어른이시니까 스님은 아무 병이 없습니다, 그럽디다. 그래서 우리가 호흡이 안 되는 노인을 아무 탈이 없고 가장 정상적이라 하니 그게 말이 되느냐, 그랬어요. ●식광(識光)을 보았다고 하는 게 지견(智見)이 열렸다는 것과 같은 것인가요? 식광을 보았다고 지견이 열렸다는 소리를 못하겠죠. 보조국사의 돈오점수에 대하여 ● 그러니까 편하게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데 해오(解悟)라고 하지 않습니까? 보조국사 이후에 우리나라의 어른들 수행 방법이 돈오 후에 점수하다, 해오(解悟)인데 나는 또 그 풀이를 그렇게 해요. 확실한 신심(信心), 착한 신심이 자리가 잡힐 때가 해오(解悟) 그리고 돈오(頓悟)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신심 그게 정립이 될 때를 돈오(頓悟)라고 붙인 거다, 나는 풀이를 그렇게 해요. 요새는 보면 선방 쪽에 스님이 돈오면 그만이지 무슨 점수가 필요가 있느냐, 그래서 보조국사를 오히려 공부를 못한 분, 공부를 모르는 분,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그러나 경허 노스님이 보조국사의 수심결이든지 보조국사의 어록을 보고 보조국사가 못 깨우친 어른이라고 평을 했다가, 몇 년 지난 후에 당신이 보조국사를 잘못 평했다는 걸 알고 송광사 조사당에 가서 보조국사 영탱 앞에 일주일 참회기도를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처음 듣는 얘기인데 중요한 얘기인데요. 보조국사를 못 깨우친 사람이라고 하고 꾸지람을 하셨다가 몇 년 후에 내가 보조국사의 말씀을 잘 몰랐다고 하고, 그래서 송광사 조사당에 가서 보조국사 영탱 앞에서 참회기도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이야기를 하지요. 본분상에 있어서는 돈오뿐이지 거기에 무슨 점수가 필요하냐, 하지만 후천적으로 볼 때는 점수라는 것은 한평생 수행 그대로 점수다, 중간에 우리나라의 어른들이 전부 가장 이상적인 수행방법으로 택한 게 돈오 후에 점수하는 방법, 그래서 나는 돈오를 해오(解悟)라고 하여 돈오(頓悟)를 확실한 신심(信心),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신심을 정립할 무렵 그때가 돈오(頓悟)고 해오(解悟)다. ● 그렇게 말씀하신 건 제가 처음 듣는데요. 성철스님의 『百日法門(백일법문)이나 『禪門正路』(선문정로)에는…. 그러니까 성철 노스님은 본분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신 것이지, 후천적인 수행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그걸 이해해야 하는데 젊으신 분들이 말을 잘못 알아들어 버리고 돈오돈수(頓悟頓修)면 그만이지 점수(漸修)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하는데 『능엄경』도 그 말이 나오거든요. “이치인 즉 돈오라 깨닫는 순간 다 이루어진다. 事(사)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理則頓悟 乘悟並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이치인 즉 깨닫는 순간 다 해결이 되지만, 사상의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능엄경』 말씀입니다. 事상의 이해, 事상의 공부이지요. 마음이든지 모든 행이 그렇습니다. ● 그러니까 본분사의 입장과 분별세계의 입장이 다를 수가 있다…. 이치는 당장 끝이 난다 아차 싶은 순간에 해결이 되는데 후천적인 문제는 당장 해결이 되지 아니하고 차례차례 차츰차츰 해결이 된다, 그런 풀이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입차문래 막존지혜(入此門來 莫存智慧)』라고 했을 때, "이 문에 들어오면 알음알이 지혜를 두지 말라". 이 말은 바로 선천적인, 여기에서는 추호도 털끝 하나도 용서가 안 된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아무 시시비비 칼날 하나 번개불 번쩍하는 것도 용납을 할 수가 없다, 이 소리가 결국은 『이칙돈오 승오병소(理則頓悟 乘悟並消)』되니까 그 소리가 결국은 『사비돈제 인차제진事非頓除 因次第盡』이라. 똑같은 말이 되거든요. 선천적인 문제에서는 아무 걸릴 것도 없고 본래 번뇌망상 머무를 자리도 없는 거고 번뇌가 없는 거고 하지만 그러나 후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당장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차츰차츰 노력을 해서 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본분사 선천적인 데에는 번뇌망상 붙을 일도 없고, 번뇌망상이 일어날 일도 없는데, 번뇌망상이 일어난 일도 없는데 그러나 후천적인 번뇌가 생겼고 붙은 다음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되겠지요. ● 스님 말씀 이해하겠습니다. 지금 전국 어디에서든 돈,점(頓,漸) 문제 가지고 논쟁이나 토론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성철스님 『百日法門(백일법문)』을 읽어보고 또 그 법문이 mp3화일로 나온 것을 들어보니 성철스님은 돈오(頓悟)를 견성(見成), 성불(成佛), 정각(正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구경각(究竟覺)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성철스님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젊은 수행자들이 그르칠 수가 있는 거지요.
● 외람됩니다마는, 그래서 돈오를 정각, 무상정등각, 견성으로 보면 돈오하게 되면 부처가 되는 건데 돈오한 경지, 부처가 된 경지에서 더 닦을 것이 있다, 오후수행(悟後修行)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렇지요. 성철스님 본분사에서는 그 말이 필요하지요. 어쨌든 한국 불교에는 보조국사 이후에는 전부 그 방법이 이론적이든지 체계적이든지 수행에 타당하다고 그래서 한국 불교계에 거의 뼈마디가 되어서 사상이 내려왔지요. 그러니까 쌍계사 진감국사 비석을 보더라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하고, 그 다음에 후천적인 피를 토하는 수행이 따라야 된다는 단어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스님이 중국에서 깨치셨고…. 하지만 이쪽에 오셔서 피 땀나는 후천적인 수행을 겸하셔서 완전히 법을 이루셨다는 그런 구절이 나와요. 그래서 옛 어른들 수행방법이 모두 그걸 가장 바른 방법이라고 그랬지요. 돌아가신 서울대 철학과 교수 지낸 박종홍 선생이 가장 자랑한 게 보조국사의 돈오점수거든요. 전 세계에서 이게 한국의 철학이라는 거예요. 전부 중국사람 찌꺼기고 중국 사람들이 한 소리인데 보조국사의 이 사상은 한국의 철학이다, 그렇게 평을 하시면서 한국에서 다른 나라 본 뜨지 말고 다른 나라 것을 하지 말고 한국의 철학을 내세우라고 하면 이거 밖에 없다, 그렇게 평을 하셨거든요.
● 흔히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지요. 보조사상 그러면 한국 선의 특징을 드러낸 걸로…. 그런데 성철스님의 경우는 보조스님이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얘기했을 때 그 돈오(頓悟)는 해오(解悟)로 봐야 한다고…. 그럼요. ● 해오(解悟)로 이해해야지 그걸 구경각(究竟覺)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한국불교계 전부 옛날부터 “보조국사의 돈오라는 것은 해오(解悟)지 증오는 아니다”라는 게 한국불교의 정설로 되어 있는 겁니다. 아무도 그걸 증오로 본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아까 (돈오점수에서 돈오를) 확신이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신심의 정립이다, 그렇게 한 것도 그런 맥락이지만 요새 선방스님들 전부가 증으로 보지만, 그것은 해오(解悟)지 증오가 아닙니다. ● 보조국사에 있어서 돈오(頓悟)라고 하는 부분은 해오(解悟)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죠? 여태까지 한국 불교계에 전부 그걸 해오(解悟)로 풀었지 證悟로 판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만약에 그렇다면 성철스님께서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풀이해서 보조스님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조차도 문제가 있는 지적일 수 있겠는데요 ? 근래 수행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런데 『백일법문』을 보니까 거기에서는 보조스님께서 결사 당시에 「결사문」이나 「수심결」이 초기 저작인가요? 그 저작에서 나오는 돈오관하고 입적 직전에 나온 저술, 그리고 열반하신 이후에 나온 저술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시면서 입적 후에 나온 저술은 돈오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완전히 바로 잡혔다고 말씀하시더군요. ● 제자되는 진각국사의 저술이다, 그런 얘기도 있지만 그걸 보조스님의 어록이라 하더라도 입적한 이후에 나온 저술인데 거기에는 바로 잡혀 있는데 그 앞에 나온 저술은 보조스님이 아직 안목이 열리기 전에 지은 저술이라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다음에 송광사 조사전에 가서 칠일간이나 참회기도를 올렸다고 하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가 그렇지요. 요새 젊은 세대는 덮어놓고 자기가 실증(實證)하고 실 체험을 해보지 못하고, 말만 가지고 하니까 보조국사의 말도 정확하게 이해 못하고 아무렇게나 말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
첫댓글 인쇄를 해서 나중에 찬찬히 뜻을 새기며 읽어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