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헌(菊軒) 이헌구 선생 졸기 (李憲球. 1784-1858)
판부사 이헌구가 죽었다. 하교하기를 " 이 대신의 충성스럽고 두터운 자질과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지조와 확고한 집념은 내가 의지하였던 바이고 모두가 사모하여 우러러보던 바이었다. 근래 병환이 심하다고는 하였으나 평일의 정력으로 보아 아직도 믿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 사망했다는 보고서를 보니 슬픈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사망한 판부사 이헌구에게 시호를 내리는 법전을 전례에 의거하여 거행하라. 관(棺) 1부(部)를 보내어 주고 성복(成服)하는 날 승지를 보내어 제사 지내고 녹봉은 3년 동안 보내어 주도록 하라."하였다.
이헌구는 충민공 이건명의 현손으로 청렴하고 검소함은 세속의 모범이 되기에 넉넉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함은 일을 주관하기에 충분했는데, 궁궐의 문서, 조칙 따위를 맡아보던 벼슬에 있은 시일이 많지 않아서 쌓아온 포부를 끝까지 펴볼 수가 없었다. 혼란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이르러서는 이를 돌보아 연연하는 마음이 가슴에 서려 있어 왕왕 눈물을 흘릴 때가 있었다. 그의 충성과 부지런함과 인품이 소박하고 후함이 그지없이 성실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지금까지 칭송하여 옛날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철종 9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