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울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대한민국 질곡의 역사를 맨손으로 버텨낸 어머니들, ‘울엄마’. 중부시장에서 굴비를 한 두름씩 엮어서 파는 올 해 일흔 넷의 변흔자어머니는 서른에 혼자되었다. 남겨 놓은 재산 한 푼 없이 아이 셋만 두고 먼저 저 세상 간 남편. 아이들을 여기 저기 친척 집에 맡겨두고 어머니는 억척스레 식모살이를 했다. 그래서 마련한 산꼭대기 방 한 칸. 전기도 안들어오고 불도 땔 수 없는 헛간 같은 방이었지만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졌던 아이들을 찾아와 같이 살 수 있는 방이었다. 새끼들을 내 품으로 다시 데려오던 40년 전, 그 어느 날이 살면서 가장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는 또 운다. 흑산도 50번 중매인 김정진 어머니는 욕쟁이 할매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돌 지난 남동생은 돌아가신 어머니 빈 젖을 빨고 있었고 김정진여사는 그 어머니 대신해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을 업어 키웠다. 부모 복 없으면 남편 복도 없다고 흑산도 무장공비 사건으로 남편과 업어 키운 남동생을 한 날 한 시에 잃었다. 아픈 아들 한 명과 유복자로 낳은 딸 둘을 섬에서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집지을 때 벽돌도 쌓고, 나무도 베어다 팔고, 나룻배 노 저어가며 이 마을 저 마을 생선도 팔러 다녔다. 참 이보다 더 가혹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래도 엄마는 척박한 섬에서 억척같이 산다. 남편이 죽던 날, 뱃속에 있었던 딸이 있기에 오늘도 흑산도 바닷가에서 홍어 가시에 찔리며 관절염으로 굽은 손가락으로 홍어를 썬다. 많은 어머니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마지막에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이야기는 소설책 10권을 써도 부족해.” 누구든 소설 한 권 분량은 뚝딱 나오는 파란만장 대한민국의 울엄마들. 오늘도 울엄마, 내 새끼들 위해 빌딩 외벽에 줄 하나 매달고 청소하고, 내 아이에게 못 배운 설움 되물리고 싶지 않아 23m 크레인 위로 올라가고 계신다.
외할머니는 올 해 아흔이시다. 가족들이 돌볼 수 없어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지 8년. 며칠 전 외할머니께서 의식을 잃었다는 연락을 받고 울엄마의 울엄마를 만나러 갔다. 눈을 뜰 수도 없고, 코에 있는 호흡기로 겨우 숨을 쉬고, 이미 손은 차디찬 할머니.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맏딸이다. 어머니께서 ‘엄마,엄마!’ 부르자 의식 잃으신지 오래고 몸도 움직이지 못하셨던 할머니의 박동수가 빨라진다. 그리고 눈을 뜨려고 애쓰신다. 눈이 떠지지 않는데 안간힘을 다 써서 눈을 뜨려 하신다. 엄마는 그런가보다. 일흔을 넘겨 백발이 성성한 딸이라도 그 엄마 죽기 전까진 내 새끼인가보다. 그리고 생을 달리하기 전 내 아가 마지막 한번이라도 더 보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엄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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