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퇴색한 느낌을 표현하며
사진작가들이 한 때 출사지로 찾았던 곳.
대형 망원통의 카메라들을 둘러메고
노인의 주름들을 포커스로 찍어대던 곳.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높은 아파트와
빈곤에 억눌려 사는 흙담 스레트 지붕을
작가들의 콘트라스트 시선으로 대비시켜
현대와 근대, 부와 빈곤의 극명한 주제로
사진전의 주 테마가 되었던 백사마을.
사람들은 사진전에 자주 등장하니
'백사마을'을 전설이 있는 예쁜 이름으로,
한자로 해석해 '하얀 모래' 쯤으로 생각한다.
잘 모르는 지나친 오해이다.
너무도 가난하고 허름한 아픈 마을이다.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마을이다.
104번지 마을의 흙담, 시멘트 담벽에
신명나는 풍물, 놀이, 풍경 등의 벽화로
색칠한 후 '104마을' 은 '백사마을' 로
어느결에 미화되고 포장되었다.
같은 동네 중계동에서 20년을 살다보니
아픔과 한이 서린 그곳엔 차마
카메라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불암산자락길을 걷다가 서울둘레길의
화랑대역까지는 너무 먼 듯해서
중계본동으로 내려오니 그 끝은
백사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서 밀린 뒷모습들이다.
지금도 연탄 트럭이 힘겹게 올라오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탄을 내리고 받는다.
쌓아놓은 검은 연탄과 타버린 하얀 연탄재.
벗겨진 스레트 지붕, 쓰러질 듯한 축대
벽화들만 살아서 온통 웃고 있다.
목련도 피고 개나리 진달래 봄을 부르는데
사람들은 그림자도 웃음도 없다.
코로나19 탓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백사마을을 목울대 뜨겁게 지나왔다.
교회 스테인드 글래스엔 백목련이
고층 아파트엔 자목련이 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