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43:1
심판을 당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게도 화를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는 우를 범할 때가 많어요.
그분의 경고가 공갈이 아니라 회개를 위한 기회였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 같아요. 요하난의 애굽 행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오판이고 뜻을 거스른 오만이었습니다. 신앙 하면서 동시에 다원화 된 사회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까?
How difficult it is to look back on yourself before you are judged. It is often foolish to seek God after being angry. I think he belatedly realizes that his warning was an opportunity for repentance, not for blackmail. Johanan's Egypt was a misjudgment against God's will and an arrogance against the will. Is it possible to assert universal truth in a society that is both religious and pluralistic at the same time?
-
누구나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아주 충실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그릇된 확신일수도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잠14:12). 기도를 부탁할 때는 예레미야를 “여호와께 보내신”사람이라고 하던 자들(42:5)이 자신들이 기대하던 대로 말해주지 않자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아니며 그가 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거짓말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The Bible teaches that anyone can be very faithful to their moral beliefs, but that it may be a completely false conviction (Psalm 14:12). When asking for prayer, those who said Jeremiah was the "sent to Jehovah" don't tell them what they expected (42:5) to do, he insists that he is not the one God sent, and that what he said was a lie, not a word of God.
-
심지어 예레미야 배후에는 자신들을 죽이거나 바벨론에게 넘기려는 바룩의 음모와 부추김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들의 거짓 맹세와 하나님 대신 애급을 맹신하는 마음을 감추려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 심지어 자신이 한 말까지 부정한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허위의 가면이 벗겨지면 이처럼 초라하고 사납고 무자비한 얼굴이 나옵니다.
They even claim that behind Jeremiah was Baruch's plot and encouragement to kill themselves or hand them over to Babelon. To hide their blatant false oaths and their faith in Egypt instead of God, they denied God's people, God's words, and even what they said. Like a painted tomb, when the false mask is removed, a shabby, fierce, and ruthless face comes out.
-
말씀이 드러낸 내 부끄러운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큰 치욕거리로 전락할 것입니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결국 유다 땅에 머물러 살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예레미야와 바룩까지 강제로 끌고서 애급 땅으로 들어갑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기다린다고 했는데도 절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인정하지 않으니 심판의 경고가 두려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If I don't acknowledge my shameful appearance revealed by the words, I will be reduced to a greater disgrace. In the end, Johanan and all the arrogant are forced to drag Jeremiah and Baruch into the land of Egypt without hearing God's voice to stay in Judah. Even though swords, famine, and infectious diseases were waiting, he never gave up his stubbornness. The referee's warning would not have been scary because he did not recognize the prophet.
-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모릅니다. 이것이 말씀을 듣지 않은 채 만끽하는 평안이 위태롭고, 순종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의 번영이 축복일 리 없는 이유입니다. 유다 땅의 경계를 넘어서 애급 땅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곳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ven if you don't recognize or acknowledge the authority of the word, you don't know how dangerous it is to not listen to it. This is why the peace of enjoying without listening is at stake, and the prosperity of those who do not know the joy of obedience cannot be a blessing. God speaks even in the land of Egypt beyond the boundaries of Judah. Because the owner there is also God.
-
그뿐 아니라 저 멀리 있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종으로 삼아 이곳 애급까지 데려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게 하심으로써 온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애급과 신들이 불타고 신상들이 파괴될 때, 하나님을 떠나서 안전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인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기어코 역사를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을 심판 당하는 순간에 깨닫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정말 의지할 만 한 것인가?
Not only that, but you will prove the sovereignty of the whole history by bringing Nevegat Nesal, king of Babylon, to Egypt as your servant and replacing God's judgment. When Egypt and the gods are burned and the gods are destroyed, there will be those who leave God and realize that there is no safe place in the world. No matter how much we deny it, there will be those who realize at the moment of judgment that the word of God will make history alive. Is it really dependable for me to believe and rely on?
-
애급으로 내려가는 자들(1-7)
a.연결구, 신탁의 전달:1
b.예레미야의 신탁을 거절하는 자들:2-4
c.애급으로 출발:5-6
d.디바네스 도착:7
표적 행위(8-13)
a.도입부:8
b.표적행위의 명령:9
c.표적 행위의 해석:10-13
-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1a)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1b)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1c)
자기를 보내 그들에게 이르게 하신(1d)
이 모든 말씀을 다 말하매(1e)
-
아사랴와 요하난과(2a)
및 모든 교만한 자가(2b)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2c)
네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2d)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2e)
너희는 애급에 거하려고(2f)
그리로 가지 말라고(2g)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2h)
-
이는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3a)
우리를 대적하여(3b)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3c)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3d)
-
이에 아들 요하난과(4a)
모든 군대 장관과 모든 백성이(4b)
유다 땅에 거하라 하시는(4c)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4d)
-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이(5a)
유다의 남은 자(5b)
곧 쫓겨났던 열방 중에서(5c)
유다 땅에 거하려하여 돌아온 자(5d)
-
곧 남자와 여자와(6a)
유아와 왕의 딸들과(6b)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6c)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6d)
그다랴에게 넘겨 둔(6e)
모든 사람과(6f)
선지자 예레미야와(6g)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6h)
영솔하고(6i)
-
애급 땅에 들어가(7a)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7b)
그들이(7c)
여호와의 목소리를(7d)
청종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7e)
-
다바네스에서(8a)
여호와의 말씀이(8b)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8c)
-
너는 유다 사람의 목전에서(9a)
네 손으로 큰 돌들을 가져다가(9b)
다바네스 바로의 집(9c)
어귀의 벽돌 깔린 곳에(9d)
진흙으로 감추고(9e)
그들에게 이르기를(9f)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10a)
이같이 말씀하시되(10b)
보라 내가(10c)
내 종 바벨론 왕(10d)
느부갓네살을 불러오리니(10e)
그가(10f)
그 보좌를(10g)
내가 감추게 한 이 돌 위에 두고(10h)
또 그 화려한 큰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10i)
-
그가 와서 애급 땅을 치고(11a)
죽일 자는 죽이고(11b)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11c)
칼로 칠자는 칼로 칠 것이라(11d)
-
내가(12a)
애급 신들의 집에(12b)
불을 놓을 것인즉(12c)
느부갓네살이(12d)
그들을 불사르며(12e)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12f)
목자가 그 몸에 옷을 두름 같이(12g)
애급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12h)
평안히 그곳을 떠날 것이며(12i)
-
그가(13a)
또 애급 땅(13b)
벧세메스의 주상들을 깨뜨리고(13c)
애급 신들의 집을(13d)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13e)
-
선지자의 권위를 훼손하는 자들_ those who undermine the authority of the prophet_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_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the authority of the word_
유다 밖에서도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_ God who becomes sovereign outside Judah_
-
역사의 주권자이신 주님, 심판은 오만으로 시작되었고 오만이 키웠나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오니 부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리에 앉지 말게 하옵소서. 멸시 중에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죄인을 기다리시니 고맙고 감사하나이다.
Lord, the sovereign of history, the judgment began with arrogance and was raised by arrogance. Fear of God is the foundation of knowledge, so please do not sit in a position of contempt for God. Thank you and thank God, who is holy even during contempt, for waiting for sinners today.
2024.8.2.fri.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