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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법은 '황달침'과 조선솔로 만든 검은색 알약│치료 후 간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소변으로 쏟아져 국내외에서 찾아온 수천 명의 위독한 간 환자 살려│양의학적인 방법으로 수술한 환자는 치료 불가능 선대 대대로 누구나 알아주는 '간 전문'으로 통해│치료효과에 탄복하고 의사 등이 치료 제휴해 오기도 |
◈ 누구나 알아주는 간질환 치료 효과
박동한(朴東漢 취재 당시 66세) 옹은 ‘황달 박사’로 통한다. 박 옹이 사는 군내(郡內)와 인근 면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옹의 집은 선대 대대로 간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해 왔고, 오랜 세월 동안 간암·간염·간경화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박 옹의 집을 찾아와 나아 갔기 때문이다. 인근만 해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치료를 받고 나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서울·부산·대구·광주·전라도·강원도·경상도·일본·홍콩·미국 등 외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치료를 받고 나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간질환만큼은 박 옹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방이 최고라고 말하고, 너나 할 것 없이 간질환에 걸렸다면 으레 박 옹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가 박 옹의 이야기를 들은 건 1993년 무렵이다. 당시 산간마을에 사는 한 향토명의를 취재하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택시 기사가 박 옹에 대해 귀띔해 주었다. 택시 기사의 말은 자신의 동생이 B형 간염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박 옹의 치료를 몇 차례 받고 나았다는 것이다. 치료 방법은 침을 맞은 후 검은색 알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모든 사람이 알아 줄 만큼 효과가 분명하다고 한다. ◈ 무고한 고발에 시달린 나머지 의술 포기 그 말을 듣고 그 후 수차에 걸쳐 박 옹을 취재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취재를 사양하였다. 이유인 즉 의료 면허가 없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드러내 놓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1995년 무렵에 어떤 이의 무고한 협박으로 울화병이 생겨 심하게 고생하면서부터는 환자 치료는 물론 일체의 외부 접촉을 피하였다.
나라 안에 수많은 사람이 간질환으로 고생하고, 또 많은 사람이 간질환으로 사망하는 처지에서 가치 있는 의술이 면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장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러다 박 옹에게 어렵게 취재를 허락받은 건 박 옹을 알게 된 지 근 10년이 지난 2002년 1월 초이다. 비록 치료하는 것에는 손을 놓고 있지만, 물려받은 소중한 의술만큼은 기록으로나마 남겨 후세에 전하겠다는 소박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옹의 이런 뜻은 국가의 의료 발전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화학약 과용 등 화학물질 등이 간질환 불러와 박 옹은 모든 간질환을 황달이라고 표현한다. 간암·간염·간경화는 서양의학이 현상만 보고 분류한 것일 뿐, 따지고 보면 한 통속이라고 한다. 즉 간에 나쁜 기운이 몰리면 간에 염증이 생기고, 간염이 심해지면 간이 경화되고, 간경화가 심해지면 황달 증상과 함께 간이 부패되어 암의 증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간질환은 선조들이 물려준 황달 치료법으로 치료하면 쉽게 나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간질환이 생기는 원인으로는 술·담배가 과한 경우, 화학약을 과용한 경우, 농약에 오염된 식품을 섭취하는 경우, 화학 첨가제로 가공한 인스턴트식품을 섭취하는 경우. 화학물질이나 독성물질에 접촉이 잦은 경우, 신경을 많이 쓰는 경우, 오랫동안 화나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경우, 심하게 놀란 경우 등을 꼽는다. 이런 원인을 유념하여 병이 없을 때나 병을 치료할 때나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 병원 전전하다 병세 깊어진 환자 찾아와 한편 일단 황달이 시작되면 담즙이 간에 퍼져 간이 부어오르면서 온몸과 얼굴과 눈과 오줌이 누렇게 된다고 한다. 또한 신장부를 압박하여 소변이 잦다고 한다. 그러나 이뇨력이 약화되어 소변량은 적다. 그리고 병이 진행될수록 복부에 물이 차 대장에서 썩으면서 복막염이 생기기도 하고, 나중에는 옆구리까지 물이 차 올라 늑막염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면 온몸에 물이 차 다리를 누르면 각기병 걸린 사람처럼 푹푹 들어가고, 피부에 노란 물집이 여드름처럼 흉하게 잡히고, 횡격막 밑으로 손을 집어 넣으면 간이 심하게 부어 한 움큼 잡힐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는 그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여기저기 양방병원을 다 돌아다니다가 병세가 깊어진 후,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면 오랫동안 황달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복수가 차 배가 남산만 하게 부어 오른 사람, 온몸이 퉁퉁 부어 걸음조차 못하여 업히거나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사람, 간이 너무 부은 나머지 뉘어 놓으면 옆구리가 흘러내려 방바닥에 닿는 사람, 온몸에 노란 물집이 생겨 차마 눈뜨고 보기 흉한 사람, 온몸에 마비와 통증이 심한 사람, 노란 물감을 들인 듯 온몸이 누렇게 뜬 사람, 몸조차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쇠약한 사람 등 상상도 못할 정도의 환자가 찾아온다고 한다. ◈ 양의학적 방법으로 수술한 환자는 치료 불가능 그는 아무리 중증의 환자라도 진단을 해보아 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자신 있게 살려내지만, 인체의 기능이 이미 상실된 사람은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어 솔직히 말하고 돌려보낸다고 한다. 특히 간을 절제 수술한 사람이나, 복수를 빼낸다고 옆구리를 뚫은 사람이나, 담도관을 자르고 대신 인공관을 단 사람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인체에 칼을 대 개복하는 순간 체내에 공기가 들어가 신경과 기혈순환체계가 교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양의학의 절제 수술은 인체의 생명 원리를 무시한 병의 현상에만 집착한 임시방편의 치료법일 뿐, 결코 병을 근본 치유하는 의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 독특한 간질환 치료 침술 비법 수 대에 걸쳐 내려온 박 옹 집안의 간질환 치료 비방을 보면 침술부터가 약간 독특하다. 먼저 신주(身柱) 혈과 팔추하(八推下) 혈에 3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찌른다. 그리고 신주 혈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각각 3센티미터 간격씩 떼어 갈비뼈 사이에 침을 한 후, 일직선으로 내려가며 그 밑의 갈비뼈 사이와 또 그 밑의 갈비뼈 사이에 좌우로 침을 한다.
팔추하 혈 위치에는 우측에만 3센티미터 간격을 떼어 갈비뼈 사이에 침을 한 후, 역시 일직선으로 내려가며 그 밑의 갈비뼈 사이와 또 그 밑의 갈비뼈 사이에 침을 한다. 그러고 나서 양쪽 다섯 손가락 끝에 침을 하고, 양쪽 발 양릉천(陽陵泉) 혈과 양릉천에서 정강이뼈 쪽으로 1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부분에 각각 침을 한다. 마지막으로 얼굴에는 인중(人中) 혈에 침을 하고, 윗입술을 들어 인중 혈과 닿은 안쪽 부위의 닭볏처럼 노랗게 자라난 것을 실에 꿰어 잡아 늘린 다음 손톱깎이나 작은 가위를 이용하여 최대한 밑 뿌리까지 잘라 낸다. 잘라 낸 부위에는 마른 조선솔잎만을 태운 무쇠솥의 밑 부분에 그을린 재를 모아 꿀에 섞어 발라 준다. 간질환이 있는 사람은 특이하게도 십중팔구 크건 작건 노란 게 닭볏처럼 길어 나와 있다고 한다. 간혹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병이 더디 낫는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목구멍까지 노란 게 끼여 있다고 한다. ◈ 치료약은 조선솔잎을 태운 재 등 7가지로 만들어 침이 끝난 후에는 약을 복용하는데, 약은 일곱 가지 약재로 만든다. 약재 중 특이한 점은 마른 조선솔잎만을 태워 오랫동안 무쇠솥 밑 부분에 그을린 재를 모아 쓰는 것이다. 재를 모을 때는 무쇠솥 밑 부분을 쇳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살살 긁은 다음, 곱게 빻아 고운 체에 거른다. 이것을 다른 약재와 함께 작은 콩알 크기의 환을 만든다.
침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맞고, 약은 아침저녁 공복에 2알씩 먹는다. 병증이 심한 환자는 3~4알씩 복용한다. 약은 불미나리 뿌리를 생즙 내어 복용하는데, 상하기 쉬우므로 그때그때 생즙을 내어 먹어야 한다.
또 불미나리 뿌리에는 거머리나 거머리알이 붙어 있을 수 있으므로 생즙을 내기 전에 천일염과 식초를 약간 풀은 물에 담가 놓았다가 깨끗이 씻어 써야 한다. 놋수저를 담가 놓아도 거머리 등이 잘 떨어지기 때문에 예전에는 천일염과 식초 대신에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약을 먹을 때 금기 사항은 콩나물·미역국·새우젓·게·커피·인스턴트 음료수·술·담배·찬 음식 등이다. 반면 수박은 이뇨 효과가 어느 약보다 우수하고, 개고기는 소염 효과가 뛰어나므로 많이 복용하길 권한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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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한 옹이 간 치료 약재로 쓰는 조선솔(좌)과 미나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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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 후 간에 쌓였던 노폐물 소변으로 쏟아져 침을 맞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일단 피곤증이 가시고, 소화가 잘 되고, 편히 잠을 자게 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또 소변이 재래식 간장과 같이 갈색으로 나오는데, 받아 두면 밑에 불순물이 잔뜩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박 옹은 이것을 간에 쌓여 썩었던 노폐물이라고 말한다.
대개의 환자는 4~5개월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되고, 아무리 심한 환자라도 1년 정도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나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 중에서 실패한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는 황달 환자를 오랫동안 치료하다 보니 신기(神氣)가 들린 것처럼 진맥을 해보고, 간을 만져 보고, 환자의 상태를 보면 어느 정도 치료하면 나을지 아니면 며칠밖에 못 살지 영감이 떠오른다고 한다.
물론 간혹 인체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여 며칠밖에 못 살 정도의 말기 환자도 “죽어 가는 사람 소원이니 한번 치료라도 해 달라”고 매달리는 바람에 치료하여 살려 낸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의 의술로 한 생명이 다시 삶을 찾았다는 생각에 보람도 크다고 한다. 하지만 살릴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는 손을 대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고칠 가능성도 적으면서 환자를 붙잡고 있다는 것은 돈에 욕심을 낸 행동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선대 대대로 '간 전문'으로 통해 박 옹 집안에서 황달 치료 비방이 언제부터 내려왔고, 어떻게 연구되어 탄생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는 그의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았고, 그의 모친은 시집와서 시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대로만 할 뿐 어떤 이유로 치료 효과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침을 하면 간과 담에 막힌 기혈이 터지고, 약을 복용하면 기력이 보강되고 해독작용이 발휘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동한 옹의 모친 고 홍봉숙 씨.▶ 박 옹이 황달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것은 37년 전으로 그의 모친(홍봉순)이 작고하고 난 후이다. 그의 모친은 마을의 대소사를 앞장서 처리해 줄 정도로 성품이 활달하고 야무지었다.
또 시집와서 시아버지에게 배운 의술로 마을에 경기(驚氣)가 난 아이나, 체한 사람이나, 삐거나 마비된 사람이나, 두통이나 신경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황달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밤낮없이 약과 침을 가지고 달려가 고쳐 주었다고 한다. 당시는 시골에서 그런 환자가 많았고, 마땅히 치료받을 곳도 없는 처지에서 그의 모친은 동네의 유용한 의원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모두가 없이 사는 때라 무료로 봉사해주는 게 인정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마을 사람치고 그의 모친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그의 모친을 마을을 위해 큰일을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 옹 역시 모친에게 배운 의술로 황달뿐만 아니라 침으로 여러 질병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달만큼은 다른 데에서 쉽게 고치지 못하는 반면, 그의 집에서는 신효하게 고쳐 내 자연히 ‘간 전문’으로 통했다. ◈ 수천 명의 위독한 환자 구해 주어 가슴 뿌듯 예나 지금이나 그의 집에 찾아오는 환자는 황달을 고친 사람의 소개로 오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소문이 퍼져 인근은 물론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 그는 1995년에 어떤 이의 무고한 협박으로 울화병이 생겨 치료하는 걸 멀리하고 있지만, 환자를 받을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가 밀려 쉴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치료 효과가 없었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환자가 오라고 해도 벌써 끊어졌을 거라고 한다.
박 옹의 말을 듣다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간질환 환자들이 그의 치료를 받고 나았다”는 마을사람들의 말이 생각나 그간 고쳐 준 환자 수를 물어 보았다. 이에 대해 그는 아마 수천 명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인근에 있는 4개 면만 해도 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백 명 고쳐 주었을 거라고 한다. 어느 경우는 일가족 전체를 고쳐 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간질환을 고치며 젊은 사람들이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가끔 찾아올 때면 자신이 헛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한다.
또 매년 명절 때마다 고맙다고 안부 전화하는 사람,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 고구마나 농사지은 것을 놓고 가는 사람, 생일을 기억하고 떡을 해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비록 시골에서 이름 없이 살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든다고 한다. ◈ 피 토하던 홍콩에서 온 간경화 환자 멀쩡히 나아 그간 고쳐 준 많은 환자 중에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느냐고 묻자, 박 옹은 먼저 홍콩에서 온 30대 중국 남자를 꼽는다. 그 중국인은 통역관을 데리고 찾아왔는데, 간경화가 너무 심해 식도까지 부어 입으로 피를 쏟았다. 침을 놓은 다음 20일 치의 약을 주어 보냈는데, 한 달 후 멀쩡히 나아서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여러 나라의 병원을 수없이 돌아다녔는데, 박 옹의 의술이 동양에서 최고라며 극진한 예의를 갖추고 돌아갔다고 한다.
또 간염이 심해 조기 제대한 군부대 사병을 여럿 고쳐 주었는데, 나중에는 그들의 소개로 여러 부대에서 사병과 장교들이 연이어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작년에 막내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그 부대의 대대장이 주소지를 보더니 “그 마을의 박동한 씨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이다”고 하자, “그분이 바로 10여 년 전 나와 아들의 병을 고쳐 준 은인인데 이렇게 다시 인연이 될 줄 몰랐다”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또 적십자사에 근무하는 사람은 간경화 말기로 양방병원에서 살 가망성 없다는 말을 듣고 퇴원하였다. 배는 남산만 하게 부어오르고, 소변을 받아 보면 쑥물과 같았다. 모두가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의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나았다고 한다. 그 사람은 지금도 가끔 생명의 은인이라며 인사차 찾아온다고 한다. ◈ 치료 효과에 탄복하고 의사 등이 제휴 제의하기도 이 밖에 처음엔 자신의 신분을 숨기다가 다 낫고 갈 때 자신도 의사라며 밝히는 사람도 여럿 된다고 한다. 그 중에는 서울에 가서 돈을 많이 벌게 해 줄 터이니 같이 가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큰 사업을 하는 교포 역시 복수가 차고 혈변을 하는 걸 고쳐 주자 나중에 갈 때는 사무실을 내주겠으니 한번 대대적으로 치료해보자고 제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제의는 의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이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런 일이 있는가 하면 서울에서 온 고등학교 선생은 항암제를 너무 많이 맞아 머리가 없다시피하고 복수도 많이 차 있었는데, 그걸 고쳐 주자 고맙다며 여기저기서 간질환에 걸린 선생을 많이 소개하여 직접 차로 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에 사는 청년은 간경화로 죽는다는 걸 고쳐 주자 나중에 나이 들어 장가갈 때 신부와 인사하러 오기도 했고, 어떤 처녀는 치료를 받고 나아서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고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한다. ◈ 황달이 심한 여인 3개월 치료받고 나아 이런 박 옹의 말은 필자가 취재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일례로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사람은 시집간 여동생이 황달이 심했다고 한다. 온몸이 마치 노란 물을 뿌려 놓은 것과 같으면서 물집이 여기저기 여드름처럼 돋아 있었다. 박 옹이 치료해 주고 매일 점검했는데, 차츰 물집이 없어지면서 3개월 만에 완치되었다고 한다.
또 전북 익산시에 사는 한 여인은 간경화 말기로 양방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퇴원하였다고 한다. 배는 복수가 차 임신 9개월쯤 된 사람처럼 나오고, 다리는 퉁퉁 부어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처음에 실려서 박 옹에게 갈 때는 모두 금방 죽는다고 말했지만, 치료받고 멀쩡히 살아 박 옹과 형제처럼 지낸다고 한다.
이 밖에 대전 모 백화점의 한 중역은 박 옹에게 치료를 받고 3개월 만에 간염을 나았는데, 양주를 과음한 나머지 재발되어 다시 박 옹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박 옹이 2번 고쳐 준 셈인데, 지금은 건강하게 살며 고마운 마음에 가끔 안부 전화도 한다고 한다.
◈ 간질환 전문 치료에 대한 전통의학 명맥 이런 박 옹의 치료 사례와 주위의 평가를 들으며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간질환에 특효인 전통 의술이 향리에 숨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도 서울 한강변에 간질환만큼은 분명하게 고치는 노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노인이 작고한 뒤라 의술을 찾을 길이 없었다.
다만 노인의 명성을 업고 주위에 한의원이 여럿 들어서 간질환 치료의 전문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 처지에서 간질환에 특효인 전통 의술 문화가 풀뿌리처럼 살아 있다는 것은 민족의 의술 발전을 위해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재 간질환은 서양의학에서 뚜렷한 완치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질병이다. 단지 무리하지 말라는 식으로 생활상의 주의점을 알려 주고 약을 계속 복용케 하다가 병세가 악화되면 간을 절제 수술한 후 화학약을 투여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간질환에 걸리면 병을 낫기 위해 녹즙 등으로 자가 치료를 하고 있는 형편이며, 자가 치료를 위한 동호인 단체만 해도 나라 안에 여럿 된다. 이에 비해 박 옹의 의술은 분명한 임상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게 조명되고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 사람 살려 주고도 죄인 취급당하는 기막힌 현실 한편 박 옹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해 주고도 의료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시비를 하여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한다. 어느 때는 관에서 나와 조사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협박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박 옹은 자신이 죄인 취급을 당하면서까지 남을 구해 주는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어 몇 번이고 고쳐 달라고 찾아와 매달리는 사람을 뿌리쳤다고 한다. 특히 1995년에 무고한 협박을 당해 고생한 후로는 일체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박 옹에게 1995년의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연인 즉 당시 간암 말기의 환자가 거의 인사불성인 상태로 찾아왔다고 한다. 환자는 양방병원에 입원하여 수개월째 치료하다 치료 시기를 놓친 사람으로, 그간 기껏 치료받은 결과로서 “살 가능성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양방병원의 무책임한 말만 듣고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환자의 자식이 전에 어떤 이가 박 옹이 용하다고 말을 해 준 게 미련이 남아 차를 돌려 뒤늦게나마 환자를 데리고 왔다.
박 옹이 진단을 해 보니 환자는 이미 간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하여 며칠 살기 힘든 상태였다. 그래서 치료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기왕 죽을 사람 내일 죽어도 좋으니 원이라도 없게 한번 치료라도 해 달라고 울면서 통사정을 하였다. 그래서 사후에라도 원망을 듣지 말자는 생각으로 치료를 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환자가 사망했는데, 엉뚱하게도 환자의 누나가 무면허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고발을 해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심한 충격으로 울화병과 중풍마비가 와 근 5년간 몸져누워 지냈다고 한다. 또 그 일로 자식들은 남에게 좋은 일하고 고맙다는 말은 못들을 망정 왜 욕을 당해야 하느냐며 약이건 침이건 모두 갖다 버렸다고 한다. ◈ 면허 가진 자의 이권을 위한 의료법 개선돼야 박 옹은 현재 양방병원에서는 인공 화학적인 시술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항암제만 보더라도 투여 후 환자의 머리가 빠지고, 구토가 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인사불성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분명한 치료 부작용이요, 의료사고임에도 어느 누구 아무런 문제도 삼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 저질렀으면 부작용이 났다며 난리 법석이 나고 의료사고로 구속되었어도 벌써 되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으로선 평생을 돌아보아도 환자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았는데, 면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죄인 취급을 하니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고 한다. ◈ 뻔히 나을 환자 돌려보낼 때 죄책감 커 그는 가족들의 만류로 더 이상 환자를 치료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있지만 마음대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일전에도 전북 김제에서 간염 환자가 찾아왔는데, 치료하면 뻔히 나을 걸 알면서도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때 환자나 자신이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때 나아 줄 수 있는 방법을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뻔히 나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처지에서 자신을 믿고 찾아온 환자를 그냥 보내는 것도 죄짓는 것이라는 생각에 며칠이고 괴로웠다고 한다.
이렇게 말을 이어가던 박 옹은 면허가 있고 없음을 떠나 자신을 믿고 집에 찾아온 환자라면 일단 구해 놓고 보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자신은 죄책감이 들어 더 이상 찾아오는 환자를 되돌려보낼 자신이 없으니, 이제 관에서 면허 없이 환자를 치료했다고 문제를 삼으려면 차라리 문 앞에 지키고 서서 오는 환자를 막아 달라고 하소연한다. 박 옹은 자신은 나이가 든 처지에서 욕심이 없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집에 그래도 희망을 안고 찾아온 환자를 마음 편히 고쳐 줄 수만 있으면 더 이상 원이 없다며 말을 맺는다. ◈ 국민에게 의료 선택권 돌려줘야 이런 박 옹의 사연을 들으며 의료법이란 무엇인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법은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인가. 국민의 바람은 면허가 있고 없음을 떠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치료받기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의료법이란 틀을 묶어 면허를 가진 자만의 의술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국민의 의료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법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면허를 가진 자의 독점적 지위와 이익을 위한 법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의료 방법을 일정한 틀 속에 묶어 두려는 한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자생적으로 탄생된 전통 의술 문화와 의료 자산은 사장되고, 의료 발전 또한 요원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1.박동한 옹을 오랜 기간의 노력 끝에 취재한 때가 2002년 1월입니다. 그리고 <주간 현대신문> 2002년 3월 3일자에 '향토명의열전'이란 제목의 기획 연재기사 중 38번째로 발굴한 명의로 글을 실었습니다. 2.기사가 나간 후 박 옹에게 찾아가 치료받기를 원하는 많은 환자들의 전화가 전국에서 쇄도하였습니다. 개중에는 막무가내로 연락처를 공개해 달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여러 사정으로 현재 박동한 옹은 환자와의 접촉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다급한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그렇다고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하고 찾아가겠으니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는 점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박 옹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개인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일이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3.박동한 옹의 간질환 치료 비방 · 비술 및 간질환 해독약에 대한 전수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저희 연구소로 전화(02-888-7780)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홈페이지 내의 민속의학사랑모임을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합니다.
4.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향토명의에 대한 글들을 묶어 『전국의 소문난 향토명의』<명인 편> <달인 편> <비방 전승 편>을 발간하였습니다. 책에는 향토명의에 대한 기사와 함께 향토명의의 비방·비술과 주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구입하고자 하시는 분은 저희 연구소로 전화(02-888-7780) 주시거나, 홈페이지 내의 신토불이장터에서 주문하시기 바랍니다.
5.민속의학사랑모임에 가입하시면 민속의약사랑모임 토론방을 통해 민속 의약 연구와 토론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비와 월 회비는 없습니다.
6.민속의학사랑모임 연구반인 대한전통의학회 회원에 가입하시면 매월 3째주 토요일에 실시되는 전통 의학 비방 · 비술 발표 모임에 초대됩니다. 또한 모임을 통해 회원 간 친목 도모 및 민속의약에 대한 공동 연구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월 회비는 2만원입니다. 회원 가입 및 비방 · 비술 발표 세미나 참가를 원하시면 연구소로 전화(02-888-7780) 주시기 바랍니다.
7.본 향토명의 글은 저희 연구소의 김석봉 소장이 15년에 걸쳐 전국을 다니며 발굴 취재한 내용입니다. 연구소의 허락 없이 위의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편집하여 인터넷 홈페이지상에 사용하거나 인쇄물을 만들면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받으실 수 있습니다. |
다음은 필자가 확인 취재한 박동한 옹의 구료 사례이다. ◈ 전북 익산시에 사는 진 아무개(취재 당시 61세 여자) 씨. 10년 전 그와 그의 집안 식구 4명이 간염으로 고생하였다. 우연히 박 옹의 치료를 받고 나은 사람의 소개로 박 옹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집안 식구 모두 2~3달 만에 병을 나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가족의 어려운 병이 낫자 박 옹의 의술에 확신을 갖고 주변에 간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과 택시 기사들에게 박 옹을 많이 소개하기도 했다. 그들 역시 나아 지금껏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또한 그는 고마운 마음에 가끔 박 옹의 집을 찾아가 보면 나아서 고맙다고 인사차 찾아온 사람도 많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박 옹을 간 전문 박사로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 대전에 사는 박정인(취재 당시 50세 남자) 씨. 10년 전 만사가 귀찮고 피곤하여 간기능을 검사한 결과 GPT와 GOT 수치가 정상보다 배 이상 높았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고 약 3년간을 힘들게 지내 왔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과 같은 병을 박 옹에게 나았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박 옹의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내 피곤한 감이 완연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5달에 걸쳐 치료를 받은 결과 완전히 병고에서 벗어나 지금껏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나중에 다시 양방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 대전에 사는 이연우(취재 당시 39세 남자) 씨. 1995년 무렵에 양방병원에서 거의 치료가 힘들다는 말을 할 정도로 황달과 간염이 심하였다. GPT와 GOT 수치가 각각 3백 이상이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피로가 심하였다. 양방병원에서는 입원하여 장기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는데, 의료비가 너무 부담이 되어 포기하였다. 그때 마침 아는 사람의 형이 황달에 걸렸다가 박 옹에게 나았다는 말을 해 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받은 지 2달 만에 황달이 사라지고, 3달이 되자 GPT와 GOT 수치가 많이 내려갔다. 4달째에 양방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니 모든 간기능이 정상이라고 하였다. 그는 박 옹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가끔 인사차 찾아간다고 한다.
◈ 박 옹과 인접한 마을에 사는 이세영(취재 당시 70세 남자) 씨. 20여 년 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들이 급성 황달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웠다. 양방병원에서는 복막이 터졌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치료에 자신을 못하였다. 그때 박 옹의 치료를 2달간 받고 씻은 듯이 나아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 셋 낳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의 아들은 박 옹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1년에 한두 차례 정도는 꼭 찾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껏 소개한 간질환 환자도 많은데, 나은 사람이 서울·대전 할 것 없이 수십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박 옹 집안의 황달 치료법은 워낙 효과가 뛰어나 누구나 ‘황달 박사’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 박 옹과 같은 마을에 사는 탁중근(취재 당시 66세 남자) 씨. 24년 전에 박 옹의 치료를 받고 황달을 나았다. 그의 조카 또한 10여 년 전에 간염에 걸렸다가 박 옹의 치료를 받고 나아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는 박 옹과 같은 마을에 살며 보아 온 바 서울·부산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나아서 가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박 옹이 고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틀림없이 고쳐 낼 정도로 박 옹의 황달 치료는 신임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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