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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9. 울돌목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을 잇는 진도대교,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명량해협에 놓인 길이 484m의 이 다리는 30년 전 개통된 국내 최초 사장교(斜張橋)입니다. 사장교는 비스듬한 줄로 다리 상판을 매달았다는 뜻인데, 진도대교가 국내 첫 사장교가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리 아래가 바로 울돌목,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의 현장으로, 워낙 물살이 빠른 곳이라 교각을 세우기 어려워 양쪽 해안에 각각 69m 높이의 탑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을 걸어 상판을 지탱한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지금 건국 이래 최악의 해난사고를 당해 전 국민이 충격 속에 있습니다. 울돌목의 인근 맹골수도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여 몇 백 명의 귀중한 생명이 바다 속에 있는데, 그 중 대다수가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어서 국민 모두가 슬픔 속에서 기적을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새끼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수습해줘요
위의 문장은 오늘 아침의 신문 제목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신문은 다음과 같이 아이가 잠긴 바다를 보며 통곡하는 부모의 심정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고 인양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 시신이라도 찾아낸 사람들이 그나마 위안이 될 상황이다. 내 새끼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인양해 줬으면 좋으련만…”
민·관·군 할 것 없이 힘을 다해 구조작업 중입니다마는, 안타깝게도 희생자의 수는 나날이 늘어가고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께 매달려 애원해 보고 통곡으로 기도를 드리지만, 사고를 겪은 지 열사흘 째인 지금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고 바다마저도 험악해지고 있다네요. 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생각할수록 기막혀서 목이 멥니다.
이순신 후예들에게 격려를
급류 맹골수도에서 사투
구조작업 중인 잠수부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기사도 보이네요. 그래요, 우리는 뱃사람 육지사람 나눌 것 없이 이순신장군의 후예들입니다. 400여 년 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을 때 기적과 같은 승리로 구국의 불씨를 살렸던 민족의 영웅 이순신…… 울돌목, 거센 물살을 도우미로 삼아 왜적의 침략 야욕을 꺾은 장군의 명량대첩……… 그때의 기적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의 구조를 기다리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게 전선(戰船)이 아직도 12척이나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올린 상소문 중 일절입니다. 모함을 받아 고문을 당하고 백의종군으로 전장으로 향하던 장군은 다시 통제사에 임명되자 패군을 수습하며 위와 같이 장계를 올려 충의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아래는 국방군사연구소 발행 한민족전쟁통사에서 찾은 임진·정유왜란의 기록 중 명량대첩 부분 요약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패전하여 와해되자 조정에서는 7월 22일에 이순신을 통제사에 복직시켜 위기를 수습하도록 하였다.
8월 3일, 단성의 정개산성에서 통제사로 임명된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즉시 임지로 출발하여 구례-곡성-옥과-낙안을 거쳐 14일에 보성에 도착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이순신은 120여 명의 병력과 9척의 전함을 수습하였다. 8월 29일에 3척의 전함을 추가로 수습하여 도합 12척의 전함을 확보하고, 이 영세한 선단을 가지고 수백 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 선단과 맞서 싸울 결의를 다졌다.
조선 수군이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을 무렵인 8월 중순, 남원성 공격에 참가한 바 있었던 일본 수군은 남원에서 하동으로 이동하여 수군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였다.
이들 일본 수군 선단 330여 척은 하동에서 해남반도 남단의 어란포에 진출하여 명량수로를 통과할 준비를 하였다. 9월 15일, 이러한 적정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수군지휘소를 벽파진에서 명량수로 서쪽으로 이동시킨 다음, 명량수로의 조수 역류현상을 이용하여 일본 수군을 격파할 준비를 갖추었다. 9월 16일 아침, 일본군 함선 130여 척이 밀물을 타고 명량수로 동쪽 입구로 진입하자 이순신의 선단 12척은 그 반대쪽의 명량수로 서쪽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일본 수군 함대가 일열 종대로 명량수로를 지나쳐 최선두의 전함이 서쪽 출구에 이르렀을 무렵에 조수가 썰물로 바뀌면서 역류하기 시작했다. 이에 통제사 이순신은 피란선 1백여 척을 명량수로 동쪽 입구에 전개시켜 군세를 과장하는 가운데, 조선 수군의 정규 전함 12척으로 명량수로 서쪽 출구를 막고 일본군 함대에 맹공을 가하였다. 일본 수군 선단의 퇴로를 차단한 조선 수군은 지자포·현자포 등 고성능의 화기로 집중 사격을 가하여 적의 전선을 격침시키는가 하면, 궁시(弓矢) 사격을 집중하여 적병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당황한 일본 수군 선단은 때마침 조수가 역류해 들어오자 선체가 심하게 뒤흔들리면서 서로 충돌하여 더욱 큰 혼란에 휘말려 들었다.
조선 수군 선단이 이러한 혼란을 틈타 일본군 전함 31척을 격침시키자, 일본군 선단은 마침내 수로의 통과를 포기하고 선수를 명량수로 입구로 돌려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에서의 승리로 제해권을 회복했고, 일본 수군은 사기가 크게 위축되어 그들의 육군과 더불어 수륙양면작전을 전개하려던 당초의 기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세월호가 사고를 당한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울돌목과 가깝습니다. 맹골수도는 인근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물길로 섬 주변에 뾰족한 바위가 많은 맹골도에서 딴 이름이라고 합니다. 거차도란 이름도 거친 바다란 뜻을 담고 있다 하니, 맹골수도가 울돌목 다음으로 험한 곳이라는 이유를 짐작케 합니다.
아래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역주하신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6일 본문입니다.
16일(갑오) 맑음. 이른 아침 망군이 와 보고하기를, “적선 200여 척이 명량(鳴梁)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다. 여러 장수를 불러 전략을 세운 다음 닻을 들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3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대장선이 홀로 적선속으로 들어가 포환과 화살을 풍우같이 쏘아대건만 여러 배들은 바라보면서 진군하지 않아 사태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배 위에 있는 군사들이 서로 돌아보며 질려 있기로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되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감히 곧바로 우리 배에 덤벼들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심 말고 힘을 다해 쏘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배를 돌아다보니, 이미 1마장 가량 물러났고,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떨어져 가물가물했다. 배를 돌려 바로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목잘라 효시하고 싶었지마는,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가 점점 더 멀리 물러나고 적선이 달려들게 되어 사세가 낭패될 것이라 중군에게 군령내리는 초요기(招搖旗)를 세우니 김응함의 배가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도 다가왔다. 나는 뱃전에 서서 친히 안위를 불러 말하기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하고 다시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으려느냐. 물러가면 살 듯싶으냐.”고 했더니, 안위가 곧바로 들어 싸우려 할 때, 적장의 배와 다른 두 적선이 안위의 배에 달라붙고 안위의 격군 칠팔 명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니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배를 돌려 바로 안위의 배가 있는 데로 갔다. 안위 배 위의 군사들은 죽기를 한하여 마구 쏘아 대고 내 배의 군관들도 빗발같이 쏘아 대어 적선 2척을 남김없이 모조리 섬멸하니 천행 다행이다. 우리를 에워쌌던 적선 30척도 깨트림을 당하니 모든 적들은 당해 내지 못하고 다시 범접해 오지 못했다. 그곳에 머무르려 했으나 물이 빠져 배를 정박시키기 어려웠으므로 건너편 포(浦)로 진을 옮겼다가 달빛을 타고 당사도(唐笥島)로 옮겨 밤을 지냈다.
열두 척의 배로 백서른 세 척의 적과 싸워야 했을 때의 장군의 심정……사령관이 몸소 진두에 서서 도망치려는 부하 장수들을 얼러 적과 싸운 기록이어서 읽는 내내 기분이 숙연해졌습니다.
아래는‘KBS 역사스페셜’에서 옮겨 온 명량대첩의 승전 요인입니다.
조선 수군의 승리의 요인이었던 것은 늘 전함과 함포였다.
일본군 전함은 첨저선으로 뱃머리가 뾰족하고 판자의 연결에 쇠못을 사용한 아타케부네(安宅船)고, 조선군의 전함은 뱃머리가 둥글고 나무못을 사용한 판옥선이다. 또한 판옥선의 크기는 일본군의 가장 큰 배인 아타케부네보다 컸다. 뱃머리가 둥글다는 것은 물에 잠기는 부분이 적어 회전이 용이하였고, 반면 쇠못은 녹이 슬어 부식되는 결과를 가져와 배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었고, 충격에 약해 쉽게 파손되었다. 조선 수군은 포격전만으로 전투를 수행하지 않았고, 필요한 경우나 불가피한 경우 충각전술로 일본군의 배를 부서뜨리는 돌격전법도 자주 구사했던 것도 이러한 배의 특성덕분이었다. 다만 거북선이 없었다.
함포는 임진왜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효과 좋은 조선군의 무기였다. 다양한 종류와 구경의 화포를 사용하였으며, 오늘날 다연장포에 비교할 수 있는 신기전, 박격포에 해당할 비격진천뢰, 대형 로켓 병기라 할만한 대장군전 등 신무기도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 일본군은 화포 주조 능력이 없었으며, 그나마 있는 화포도 갑판 바닥에 고정해서 사용하지 않고 상부 구조물에 매달아 사용했다. 배가 약해서 포의 반동을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공중에 줄로 주렁주렁 매달린 화포는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울돌목의 지형을 이용한 이순신의 전략과 병사들의 사기도 승리의 요인으로 들 수 있다.
당시 이순신은 울돌목에 철쇄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은 해협에 설치된 ‘철쇄’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포의 해양방어사령부에는 지금도 수백 척의 배를 끌어당길 때 쓰는 막개가 있는데 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에서 이런 막개를 이용한 쇠사슬 전법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울돌목의 폭은 280∼320미터 안팍이다. 여기에다 배를 끄는 데 필요한 쇠사슬의 길이를 감안하면 450미터 안팎의 쇠사슬이면 충분하다. 쇠사슬의 무게는 배의 무게를 감안하여 4톤 정도로 추정했다.
<KBS 역사스페셜팀>은 당시의 전투를 다음과 같이 재현했다. ‘수중 철쇄는 지금 진도대교가 있는 폭이 가장 좁은 자리에 걸었다. 양쪽에 막개를 박아놓고 쇠줄은 물 속에 잠기게 숨겨놓은 뒤 왜수군을 기다리는 것이다. 1497년 9월 16일 오전 11시경, 어란진에서 출발한 133척의 일본 수군은 우수영으로 흐르는 밀물을 타고 빠른 속도로 울돌목에 들어선다. 그들이 울돌목에 들어서자 수중 철쇄에 걸려 차곡차곡 쌓이며 서로 부딪쳐 여지없어 부서진다. 오후 1시경 밀물이 끝나고 물길이 멈춘다. 일본 수군은 좁은 수로에 갇혀 오도가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의 함선들이 전진하며 각종 화포를 빗발처럼 퍼붓는다. 다시 썰물이 되는 순간, 정지했던 물길이 거꾸로 바뀌어 왜수군 쪽으로 흐른다. 유리하던 조류마져 불리하게 변하자 조선 수군이 떠내려가는 일본 수군을 완전히 섬멸한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승리를 이끌어낸 장군의 지략…… 절체절명의 순간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의 신념으로 부하들을 독려하여 전장에 나섰던 이순신장군의 임전무퇴의 정신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바였고 이 나라의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귀감으로 여기는 바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힙니다. 목숨을 버려 자리를 지킨 분이 계신가하면 어린 목숨을 팽개치고 도망친 무리도 있었던 것입니다.
기상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운행, 선장의 자질부족, 승객안전에 대한 무책임, 당국의 관리감독 부실, 해난 구조체계에 구멍. 후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
세월호 사고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21년 전인 1993년 10월 10일에 일어났던 서해 훼리호 참사를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당시 엄청난 참사를 겪은 후에도 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1년 전과 똑같은 한탄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훗날에도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JTBC 손석희 앵커의 24일 9시 뉴스 오프닝입니다. 배가 침몰하자 제일 먼저 도망쳐버린 선장과 선원들…… 일부 어른들의 무책임한 처세가 우리의 아이들을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손석희 님은 21년 전의 서해 훼리호 참사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임진년의 왜란 때에도 임금과 고위관료들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고, 6.25전쟁 때에도 못난 정치인들은 발발 제3일째에 “국군이 반격하고 있습니다!”방송하고 서울을 버렸습니다.
“그 차디찬 바다 밑에서 어른들의 말을 믿고 어른들이 구해주기를 기다렸을 아이들과 아직 그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생존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무기력한 어른이라 죄송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침몰의 불편한 진실’ 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상중 님은 그렇게 사과했습니다. 저도 같은 심정이고 온 국민 모두 한 마음일 것입니다.
아래는 배가 침몰할 때 아이들이 보낸 마지막 문자입니다.
“배가 기울어졌어요. 물이 고여요 물이!” “엄마 안녕, 사랑해”
가게 옆 공터의 담벼락에 아이들이 벽화를 그려 놓았습니다. 봄밤의 경치쯤일까요, 꽃도 그려져 있고 나무도 구름도 그려져 있습니다. 배경 풍경보다 과장되게 그려진 커다란 별은 유성우로 내리고 있는지 길게 궤적을 끌고 있네요. 아마도 청소년기에 갖는 꿈의 상징인 듯한데, 20미터 남짓한 담벼락에 붙어 한 나절 옹기종기 모여 재잘대더니 그렇게 뚝딱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명을 보니 관내 고등학교의 벽화 동아리 학생들이랍니다.
아래는 ‘대통령을 만나려가겠다’고 나섰던 실종 학생의 엄마가 말리던 여경에게 한 하소연입니다.
“우리 아이도 경찰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 예쁜 아이가 바다 속에 있는데 당신들 뭐하는거냐, 제발 꺼내 달라. 더 얼굴 못 알아보기 전에 빨리 꺼내서 집에 데려가야 될 것 아니냐. 그 아이가 저기 있는데 내가 여기 있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는 아이들의 꿈을 빼앗은 죄인입니다. 바라는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고 무심한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는 4월 어느 날의 오후, 아이들이 그려 놓고 간 벽화 앞에서 어른 된 죗값을 곱씹고 있습니다.
아래는 한 유력 정치인의 토로인데 조금은 반성하고 있는 듯 보여 옮깁니다.
“저를 포함해 국정의 책임 있는 사람 모두가 죄인입니다. 세월호라는 큰 배가 바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몸부림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정유왜란은 영웅 이순신을 탄생시켰습니다. 연전연패, 무능한 조정은 전쟁 발발 보름 만에 도성을 포기하고 도망질을 쳤지만 남쪽 바다에서 들려온 장군의 승전 소식에 고무된 백성들은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켜 반격의 의지를 살렸고, 마지막 싸움에서 장군을 잃고 온 백성이 울었습니다. 이제 사고 열사흘 째를 맞은 지금, 우리는 모두 이순신장군이 되고 그 수하 뱃사람이 되어 무너진 이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우는 일에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가까운 앞날 그 아이들을 볼 때에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할 수 있도록.
첫댓글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입니다 다시 읽어도 넘 멋진 이순신장군~~왜 지금은 그런 영웅은 없는걸까요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구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게 나라냐? 하고 탄식을 해보고.... 우리 아이들.....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순신장군은 고문을 받아 누더기가 된 몸으로도 나라를 구하셨는데.... 지금 만큼 이 나라의 21세기에 살고 있는 처지가 부끄러울 때가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전략은 세계 어느 나라의 해군에 비교해도 우월했던 당시 최고이고 최신의 전략이었죠.
오랜 어업국가이며 해적국가여서 바다와 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던 왜군들이
이순신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신출귀몰하고 대담무쌍한 작전으로 수십 대 일의 왜선을 일망타진하고 다녔죠.
요즘같은 때아닌 난세에 정말이지 이순신장군같은 위인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임진왜란의 해전은 조선의 화포와 왜군의 조총의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배를 건조하는 기술 자체가 달라서 조선의 군선에는 화포를 고정할 수 있었던 반면,
왜선은 화포의 충격을 버틸 수 없어 밧줄로 매달아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 조선의 지도층에 이순신장군같은 우국충정의 영웅이 더 많았더라면,
그런 영웅을 모략으로 숙청하지 않고 더욱 키워주는 환경이었다면
몇 백년 후 왜국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전쟁 종료후 숙청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학설이 나올만큼이나 당시 조선 조정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신뢰할 수 없는 신하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만연하고 있는 안전불감증, 부실공사, 도덕부재등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에 이런 비극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나 않은지..
지금이라도 지도층이 각성하고 모든 국민들이 깨달아서,
@공벌레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나하나 밑바닥부터 고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맨 처음 버스를 탈 때 줄을 서는 것,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 공사할 때 기본설계를 지키는 것, 건설자금을 빼돌리지 않는 것, 뇌물을 주고받지 않는 것, 기업과 공장에서 오염물질을 몰래 배출하지 않는 것 등
하나하나 지켜가다 보면 오늘의 이런 비극이 점점 줄어들고 결국 사라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책임자는 반드시 엄벌하고, 모든 사람이 기본부터 하나하나 지켜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이 치솟아도 그게 우리 어른들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공벌레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 돈많이 버는 직장을 강요하기 전에
서로 믿고 의지하고 도와주는 정신부터 교육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비극적 사건의 재발을
언젠가는 꼭 근절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부터 반성하고 오늘부터 줄 잘 서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노력을 해나가겠습니다.
해를 거듭해 재발하고 있는 이런 사건들이 근절되고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신뢰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요.
가슴이 아픕니다.
KBS에서 특집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우리 새끼 아직 이쁠 때 장례 치르게 해달라고....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 어머니는 방송을 보면서 눈물이 글썽글썽 알 수 없는 소리로 기도만 드리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특히 엄마들은.... 네 아이 내 아이가 없어요. 모두 내 일이라고 오시는 분들마다 눈시울을 붉히시네요. 저를 어째.... 어떡해....하고요.
위기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게 정부의 일인데 우리는 지금 정부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사고를 보면서 총체적으로 썩어 있는 정계와 재계의 진면목을 확인한 느낌입니다. 거기다 일부 사이비 종교단체의
비리까지.... 어쩌면 그렇게 파렴치해질 수 있는 것인지..... 소위 기득권층이란.....인간들이 싫어집니다....
하기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부도덕성은 역사가 있는 것이지요. 왜란 때에도, 호란 때에도, 사대부가의 사람들은 제 목숨만 살리겠다고 줄행랑을 쳤었지요. 최근의 6.25전쟁 때만 보아도 국민들 속이고 끼리끼리 도망을 치고.... 한강 다리가 끊겨 피난 못간 사람들을 수복 후에 부역자로 몰아 핍박을 했다더군요. 다리는 누가 끊었는데.... 한심한 일입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이번의 사고, 특히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과 부실의 연속이에요.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 명색이 제일 먼저 도망을 치는가
하면, 남이 쓰다 버린 노후 선박을 들여다가 무단 개축하여 복원력도 없는 상태에서 과적까지.... 에라, ㅇㅇㅇ놈들아! 절로 욕이 나옵니다. 가게에 오신 손님들에게 옮았나봐요. 종일 xx끼 소리를 들었거든요.
이런 지경에 오고 보니 이충무공 같은 분의 위대함이 실감이 납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을 때 백성들의 편에 서서 목숨을 던진 성웅 이순신.... 그런 분이 없겠지요. 상황은 다르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지금도 그때 못지 않은 공황상태에 있건만.... 참된 지도자가 기다려지는 시점입니다.
당장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옳습니다. 우리 어른들 모두의 공동 책임이지요. 행여 뒤쳐질까 허겁지겁 달려온 결과 우리는
허방다리를 볼 수 없는 눈이 되고 말았어요. 누구라 할 것 없이 당장 나부터 돈돈돈 했으니.... 변명할 말이 없네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참담할 뿐입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이겠지만, 이제는 달라져야겠습니다. 두 눈 부릅뜨고 정부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기업의 부도덕성에 분노해야겠습니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게, 대오각성해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나마 남았던 자긍심마저 잃고만 지금, 진실로 나를 버리고 우리를 생각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떳떳해지려면, 다시는 같은 실수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심력을 다해야 합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린 생명을 구해주지 못한 부끄럽고 무기력한 어른이라 죄송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양식있는 성인들은 누구나 이런 마음을 지니고 큰 고통 속에 숨져간
어린 희생자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 것 입니다.
아울러 옛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가진자들이 생각하는 우리 국민의 생명이 이토록 하찮은 존재처럼 여겨지는
사실에 크나 큰 공분을 느낄 것 입니다.
본 비극을 교훈 삼아 권력자와 책임 부서의 대오 각성이 필요하며 안전대책을 확고히 수립하고
우리 모두는 남의 탓 대신 이 사회가 이렇게 변해버린데 대해 스스로를 자책하며
보다 안전한 국가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끄럽고 안타깝고....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대명천지 21세기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가진 자들.... 소위 기득권층의 부도덕성에는 치가 떨립니다.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몰염치해질 수 있을까 싶고.... 재난당한 사람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들고.... 재벌가의 자식은 애통해 하는 국민들을 미개하다고 매도하고.... 기강이 무너진 사회.... 도덕성이 부족한 사람들.... 그 일원인 나부터 반성해야겠지요. 욕심만 채우며 살아왔으니....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 나라.... 당장 우리부터 각성하고, 암덩어리들을 어떻게 도려내는가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떳떳하려면.... 우리가 갈 날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휴우~ 어떡해야 할 지.... 우리 아이들 추운 바다 속에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초등학교에서 17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초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시군요. 더욱 가슴이 아프시겠습니다. 하기는 이 시점에서 어른 된 이로 누구라고 죄인이 아니겠습니까마는....
기초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 무조건 찬성입니다. 다만 이제는 말의 성찬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야 할 방법을 찾을 때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구호는 잘도 외쳤으니까요.
선생님도, 저도, 우리 모두도,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될 때 다소나마 죗값을 덜 수 있도록 두 눈 부릅뜨고 나라의 장래를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세월호 구조소식에
피를 말리는 와중에도
역사공부
착실하게 하고 갑니다
책임을 망각하고
1착으로 뺑소니친
파렴치한 악마들이
이런 조상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게
믿어지나요?
그들은 어떤
돌연변이종자?
실종자 가족 한분의 말씀이 가슴을 쳤습니다. "익숙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렵다"하셨는데 딱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면 그때 뿐.... 어느새 잊고 "다 그런 것"하고 대범한 척 살아온 여진의 폐해를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강 넘어가 준 적당주의 처세가 오늘의 이런 참극을 만든 것입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부정부패에는 분노해야 합니다. 당장 나부터 대오각성하여....
아이들이 바다 속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더 많은 소를 잃기 전에 튼튼한 외양간을 다시 지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국민 모두가 각자 대오각성하고 잊지말고 ....,
또 각자의 욕심버리고....
무엇이 대의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곱씹어봐야 할것 같습니다.
요즘 중,고교 아이들 중간고사 철입니다. 어제와 오늘 시험 끝났다고 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겁습니다. 또래의 희생에 나름 슬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은 죄인입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빚어진 참사....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참담할 뿐입니다.
늦었지만 대오각성하여 새로운 나라를....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네요. 다만 맹세하기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약속뿐입니다.
반드시,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달라진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젊은 아이들에게 아이들을 대하면서 님이 가지고 있는 애국적인 지식을 인식시켜 아이들에게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보게 한다면 너무나 좋은 결과가 되어 그들이 앞으로 나라의 일군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같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님의 글을 통하여 다시한번 역사적 사실 앞에 서니
가슴이 아플뿐입니다.
좋은 글 올려주심 감사를 드립니다.
세월호 사건.... 어제 JTBC 9시 뉴스에서 보았던 영상을 진종일 되돌려 보았습니다. 위기의 순간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 절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쩌다가 아이들을.... 어쩌다가 우리 나라가 이렇게까지.....
답답합니다. 슬프고요.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하고....
달라져야할 텐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푸념을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너무 맘이 아파 말이 나오지 않네요. 그저....
역사적인 사실과 세월호의 침통함을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과하객님의 글을 읽다보니 희망의 씨앗이 아직은 남아 있느듯 보여 울컥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허술한 나라였나?"하고 회의를 갖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그 숱한 난리를 겪고도 잘 견뎌온 나라인데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시대라는 21세기에 이런 일을 겪을줄이야....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어른들 책임이 크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나라사랑을 배웁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저역시 아직도 지난 사월의 트라우마를 못벗어 나고 있습니다. 오십의 중반을 넘어도, 세상을 쉽게 살아서, 여린것인지,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지...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을진데, "구조대가 올때 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는 말을 듣고. 헬기소리 듣고도, 죽어간 아이들이 눈앞에 밟히는게... 마음이 여려서 인지, 모르겠습니다..제가 기억하는 건, 오산의 과하객님의 헌 책방이 있어서,찾아 뵈었고. 짧게 나마 쓰셨지만, 강렬한 세월호 짧은 전,오래전의 역사를 기록해 주신데 대해 많은 공부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경청하겠습니다...^^
저희 가게에 다녀가셨군요. 알음을 하시지 않으시고.... 카페 회원님들의 방문은 남다른 반가움이고 삶의 보람인데.... 차후에 오시게 되면 꼭 귀뜀을 해주세요.
사월의 트라우마는 우리가 이생에 있는 한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 어린 것들이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을 시간들이 가슴을 쳐서.... 치밀어 오르는 울분이 있을 뿐인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반드시, 정말로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몇백 명 억울한 생명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도록 가릴 것은 가리고, 고칠 것은 고쳐서....
자주 찾아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너나없이 이 땅의 사람들인데, 함께 의견을 모아 작은 것일지라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움
좋네요
잘읽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