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주의 거장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 ~ 1840, C.D Friedrich)"의 1818년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이 그림은 프리드리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위대한 자연 앞에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인간의 나약함을 극대화하여 표현하였다. 독일 북동부 그라이프스발트에서 10명의 자녀 중 6번째로 태어난 프리드리히는 7살때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하였고 13살때는 동생과 빙판에서 놀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동생이 사망하는 사고를 겪는다. 이후 아버지의 사망, 다른 형제의 죽음은 우울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31살인 1805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주최한 그림대회에서 세피아 먹물로 그린 드로잉 두 점으로 최고상을 받으며 유명해졌으며 1816년에는 드레스덴예술원 회원에 선출되며 월급을 받게 되었고 44살때에는 19살이나 어린 여성과 결혼하면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결혼 2년 뒤 가장 친한 친구이자 화가인 "게르하르트 폰 퀴겔겐"이 산책 도중 강도에게 살해당하면서 마음속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서 의처증과 망상증에 시달린다. "빙해"나 "삶의 단계"등이 이시기에 그린 것이다. 1835년에는 뇌졸증이 찾아오며 수년간 고생하다 66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동안 잊혔던 그의 그림은 20세기 초부터 재평가를 받고 있으며 프리드리히는 히틀러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화가였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09년 작품 "바닷가의 수도사(The Monk by the Sea)". 이 그림은 독일 낭만주의 대표적 작품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18년 작품 "뤼겐의 흰 절벽(뤼겐 섬의 백악암, Chalk Cliffs on Rugen)". 이 그림은 독일 동북부의 "뤼겐 섬"의 석회질인 백악암 절벽을 그린 것으로 40살의 나이에 19살이나 어린 여성과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가서 그린 것이다.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이 아내이고, 가운데 절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작가 본인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10년 작품 "떡갈나무 숲의 수도원(The Abbey in the Oakwood)"이다. 수도원은 독일의 그라이프스발트 인근에 위치한 "엘데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스웨덴과 프랑스 군대가 이 지역을 침략했을때 요새를 짓기 위해 파괴한 수도원이다. 그림속에는 떡갈나무 아래 장례행렬이 지나고 있는데 이는 "독일의 죽음"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떡갈나무는 게르만 민족, 즉 독일을 상징하는 나무다. 반면 떡갈나무가 하늘높이 솟은 것은 부활을 상징한다. 즉 현재 독일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희망을 표현한 그림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30년 작품 "황혼의 산책(A Walk of Dust)".